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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halee (아기도깨비)
날 짜 (Date): 2002년 11월 19일 화요일 오후 01시 39분 52초
제 목(Title): Re: 개콘 부연


  저도 경상도 출신입니다.
  개그콘서트의 사투리 코너를 서울 사는 저랑 오빠랑 같이
  정말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

  개그콘서트 관련 쓰레드가 길어지는 반면에
  경상도나 전라도 어느 쪽 토박이도 아무런 반론을 내지 않고 있기에,
  그리고 조금은 민감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문제이기에
  댓글을 달지 않고 있었는데요...
  너무 이야기가 진지해지는 반면, 실제 사투리 사용자들에 대한
  의견이 너무 없는 듯 하여, 몇글자 적어봅니다.

  이른바 매체에서 이용하는 "전형성"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다소곳한 여자는 긴 생머리이어야 하고,
  전형적인 모범생은 안경을 쓰고 있어야 하고,
  뚱뚱한 사람은 모두 굼뜨고 머리 나쁘고 어리숙한 사람이다.. 
  이런 것들이 유사한 예제가 되지는 않을까 싶네요.

  이런 경우... 뭐 말도 안 되는 비유일 수도 있겠지만... 
  개그콘서트 중에서, 예전에는 아주 애교있고 부드럽던 여자친구가
  오래 사귀고 났더니 남자를 업어치기까지 해 버린다는
  "무림남녀"라는 코너가 있습니다.
  하지만, 무림남녀를 본다고 모든 사람들이 연애를 오래 한다고 
  모든 여자들이 그렇게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죠. 마찬가지로 
  뚱뚱한 사람을 우리 모두가 굼뜨고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지요.

  많은 곳에서 거칠거나 세련되지 못 하거나 폭력적 성향이 두드러질 때
  사투리를 쓰는 지방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렇게 상투적인 방식으로 쉽게 인물이나 상황을 표현하려고 하는 것이
  새로운 아이템의 개발에 대한 제작자나 작가나 연기자의 
  노력 부족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직관적이며 익숙한 예제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는
  모든 분들이 다 알고 계실 꺼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개그라는 영역은, 특히나, 이러한 전형성을 극대화함으로써
  사람들의 쉬운 이해와 빠른 반응을 얻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슬랩스틱 코메디의 경우에는 과장된 행동이나 서로 치고박고 하는 유치한
  행동을 통해서 웃음을 유발하고자 하고, 많이 코메디언들이 자기 자신을
  바보스럽게 만드는 것으로 웃음을 만들어 내곤 하는데,
  만일 "웃음을 유도하는 방식"을 문제 삼는다면 그런 개그들도 모두 심판대에
  올라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사투리를 쓰는 사람을 등장시켜 투박하고 거칠 사람을 표현하는
  일반적인 표현 방식이 옳다고는 저도 절대 생각하지 않지만,
  이번 문제에 대한 반응은 조금은 민감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

  여담이지만...

  저랑 오빠는 그 코너를 보면서 무진장 즐거워하고,
  우리만큼 그 코너를 보면서 웃지 못하는 
  서울 출신 새언니를 불쌍하게 생각한답니다. ^^;
 
  사투리를 들으면서 "투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감있어서 너무 좋다"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지난 주에는 연구실 후배가 너무 보고 싶어해서 개그콘서트를 같이 봤습니다.
  "아주 ~하다"의 강조 용법에서 무조건 목소리만 커지는 경상도 사투리를 
  보면서 후배 A와 B가 너무 재미있어 하더군요. 
  뭐 무뚝뚝한 표현 방법도 마찬가지이고.

  그래서, 
  "경상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애정을 표현하는 것에 
   조금 익숙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좋은 것이 있어도 좋다고 표현 못 하고 
   싫은 것이 있어도 그대로 싫다고 표현 못 하는 편이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 아들 우리 마누라 잘 지냈어? 
   오늘 저녁은 뭘까? 무슨 반찬이지?'하고 말하지 못 하고
   '아는? 먹자!'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거다" 하고 말해 줬더니....

  "아.. 그래서 연구실에 C 선배가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구나.." 
  하고 푸하하 웃더니 끄떡끄떡 하더군요.
  
  뭐..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경상도 사람들이 
  감정표현에 솔직하지 못하고 서툰 것이 사실이 아닌가 싶거덩요...
  
  고등학교때 담임선생님 한분이 강원도 출신이셨는데,
  경상도에 와서 가장 특이했던 점이
  "잘 먹고 잘 살아라"가 가장 큰 욕이라는 거였답니다.
  "잘먹고잘살아라"라는 거이 안 좋은 상황에서 쓰이면 
  "너랑 앞으로 더 볼일 없었으면 좋겠다, 꺼져라" 뭐 이런 뜻으로 쓰이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나쁜 말이 아닌 좋은 말을 쓰는 게 
  참 특이하게 느껴진다고 하시더군요. 쓰고 있던 우리들은 잘 몰랐는데요.

  그렇게 치면 아주 재밌는 말을 했을 때 "에구. 지랄한다" 뭐 이런 표현이
  응답으로 쓰이는 것도 생각해보면, 진정 경상도 사람들이 반어법을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이래저래. 그 지역민의 표현 방식을 전형화시켜서 보여주는 개콘 덕분에.
  세련되지 않은 표현 방식 때문에 후배 A와 B양이 C군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오해를 풀 수 있게 되서리. 아주 기뻤답니다.
  근데 이러한 "세련되지 못한 표현 방식"의 문제는 이공계 남자분들이
  많이 가지고 있는 문제이다보니... 공감대를 느끼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긴 한데..

  작은 문제로 제가 너무 확대해석한 것 같긴 하군요. ^^;

  게다가 별것도 아닌 의견이 너무 길어져버렸네요. -..-

  뭐.. 개그콘서트의 사투리코너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각 지역의 특성에 대한 이해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다는 말이었습니다.

  이만 .. 휘리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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