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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t ] in KIDS
글 쓴 이(By): hl1sul (생선전)
날 짜 (Date): 2010년 09월 09일 (목) 오후 11시 55분 25초
제 목(Title): 깜돌이가 생각난다.


일전에 썼던 정돌이 보다 먼저 우리집에 왔던 까맣고 털이 북실북실한 깜돌이.
정돌이보다 3살이 더 많았을겁니다. 2개월 때에 강아지로 왔는데, 얼마나 
귀엽던지. 마당에서 우리와 너무나 재미있에 놀곤 했습니다. 막대기 던지면 
물고 돌아오고. 엄청난 속도의 질주를 하곤했죠.  그러다가 6개월이 되더니,
물고 돌아오다가 싹 방향을 바꿔 도망가기 시작.  그래도 항상 주인의 사랑을
독차지하는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 녀석이 사납다는 것은 친구가 놀러왔다가 물린 후에야 알았습니다. 주인과
있을 때는 전혀 사남지 않았거든요. 다행히 아직 어려서 상처가 별로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는 그런걸로 난리치고 그럴 때도 아니었고요.
뭐 그럴 수도 있는 거였죠.

깜돌이가 집에 왔을 때 다른 개가 없었는데, 사실 그 전에 키우던 개가 
쥐약을 먹고 죽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정많던 흰돌이. 그 때는 개들이 쥐약
먹고 많이 죽었습니다. 어떻게든 비집고 집을 나가 밖에서 뭔가를 먹고선
그렇게 되었습니다.  당시 겨울이라서 땅이 얼어 묻을 수도 없고 해서 
제대로 묻지 못하고 그 위에 눈으로 쌓아서 임시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봄이 다가오며 눈이 조금 녹았는데, 흰돌이의 머리가 조금 드러났던 
모양입니다. 밖에서 놀던 어린 깜돌이가 흰돌이 머리에 가서 호기심에 드러난 
이빨을 핥았던 것 같은데, 쥐약을 먹으면 개들의 행동이 변하기 때문에 빨리 
알아채고 이번에는 동물 병원에 바로 대리고 갔습니다. 당시 거금 3만원을
주고 다음날 비실거리는 깜돌이를 찾아왔습니다. 죽을 고비를 넘긴거죠.

이 녀석이 어릴 때 다른 연륜이 많고 영험한 개가 우리 집에 들어 왔는데,
그 이름은 "발발이". 이 개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하죠. 
발발이는 풍류를 아는 개였는데, 밥을 주면 좋은걸 골라서 편안한 자리에 가서
옆으로 누워 천천히 즐기며 먹고, 나중에 돌아와 나머지를 천천히 먹곤 
했습니다.  밥을 주면 게걸스럽게 머리를 박고 먹는 다른 개들과 좀 
달랐습니다.  

깜돌이는 당시 작은 강아지. 먹을거를 보면 환장을 하죠. 밥을 주면 자기 밥을
먹다가, 발발이가 딴곳에 가서 여유부리며 별미를 시식하고 있으면 몰래 발발이
밥그릇으로 가서 훔쳐 먹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발발이에게 걸려서 된통 혼나곤
했는데, 그래도 꾸준히 훔쳐먹기를 계속했습니다.

결국 깜돌이는 점점 커서 힘세고 단단한 녀석이 되었고 왕좌를 차지하였습니다.
그렇게 덩치가 크지 않았지만, 가끔 동네 산책을 하다가 싸움을 걸어오는 큰
개들을 아주 간단히 물리치곤 했습니다. 큰 개들이 비실 비실 꼬리 내리고 
물러나거나 자빠져서 재롱을 피우는걸 보면 참 웃겼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뒤로 누워서 가장 취약한 배를 보여주는 것이 완전 항복의 의미라고
합니다. 

깜돌이 한창 때에 정돌이가 강아지로 들어왔습니다.  아마 그 때는 이미 
발발이가 세상을 떠났을 때였을 겁니다.  정돌이가 커서 깜돌이의 새끼를 
여러번 뱄는데, 깜돌이는 자신의 파워를 과시하며 밥도 못먹게 하는등 못되게 
굴어서 정돌이를 따로 불러 집안에서 밥을 먹이곤 했습니다. 특히 새끼를 배고 
있었으니까요.

새끼가 나온 후에는 정돌이의 태도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엄마는 위대하다.
그냥 순하던 정돌이가 단순 방어를 넘어서 아주 적극적인 방어를 위한 공격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몸집은 작아도 에너지가 대단하고 집요해서 깜돌이도 보통
결국은 더 이상 괴롭히지 않고 돌아서곤 했죠. 그러나 제대로 싸우면 물론 
깜돌이의 승리였습니다.  보통은 별로 그럴 이유가 없어서 깜돌이가 돌아서곤
했고요. 그래도 끊임없이 정돌이를 괴롭히곤 했습니다. 그리고 주인의 사랑을
독차지하려고 주인이 나오면 근처에 못오게도 하고.

이렇게 샘도 많고 사나운 편이었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수준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기억해보니 집의 유리창에 부딛혀 떨어졌던 새에서 시작된 것 같습니다.
보통 새가 잘못해서 유리창에 박치기하고 떨어지면 정신을 잃지만 결국 
깨어나서 날아갑니다.  그런데, 깜돌이가 달려들어 낙아채어 가지고 가서 먹어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깃털도 하나 안남기고 깨끗하게요. 

나중에 집에 관상용 닭을 몇 말리 키웠습니다. 처음에는 밤에 도둑 고양이가 
채가는줄 알았는데, 나중에 깜돌이의 짓임을 발견했습니다. 닭장에 다가가서
툭툭 건드리면 닭들이 패닉해서 푸덕거리다가 천정의 아주 작을 틈에 꼈다가
비집고 밖으로 나옵니다. 닭대가리라는게 참... 그러면 깜돌이가 목을 채어
물고 구석으로 뛰어가 통닭을 먹는거죠.  그걸 닭이 한 마리 남았을 때에야
알았습니다.

쫓아가서 목띠를 잡고 한참 혼내고도 놓지를 않다가,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닭을 척 내려 놓고는 꼬리를 내렸습니다. 그 닭은
이미 숨이 거의 끊어져서 소생 불능이었고, 아버지께서 털뽑고 목잘라 손질을
하신 후 냉동했다가 나중에 끓여 드셨습니다. 식용이 아니라 살도 별로 없고
질겼다고. 

그 귀엽기 그지없던 우리 깜돌이가 닭잡아 먹는 야생 개 처럼 될 줄이야!

발발이는 닭하고 살면서 닭이 자기 집에 들어가면 그냥 양보해주곤 했는데.
발발이도 사납고 싸움 잘했지만, 이유없이 약자를 괴롭히지는 않았습니다.
깜돌이는 모험 정신이 강하고 하고 싶은거는 꼭 해봐야 하고 그래서 힘이 
절정에 이른 시기에는 다른 동물들에게 폭군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주인에게는 어찌나 살갑게 굴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견생은 영원하지 않는 법. 12살이 넘자 깜돌이 역시 수염이 쇠기 시작.
기운도 떨어지고, 정돌이의 처절한 복수를 매일 받으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매일 물리고 뜯기면서도 절대로 항복을 안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이
다쳤죠. 싸우는 것도 아니고 거의 일방적으로 당하면서도 옛 버릇을 못버리고
정돌이에게 시비를 겁니다. 팔팔한 정돌이는 전혀 봐주지 않고 젊은 날에 당한
것까지 더해서 갚아줬고요.  13살이 된 해 여름날, 양지바른 한 구석에 
웅크리고 엎드려 숨만 쌔근 쌔근 쉬며 며칠을 밥도 안먹도 있다가 결국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그 며칠간은 강열하던 눈빛도 부드럽고, 스다듬어 주면
고맙게 받으며 바라보곤 했습니다.  사납고 야생적이고 샘많던 검은 황제는
그렇게 떠나갔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던 개였습니다.

아 한 가지 빼먹은 것.  정돌이가 나물 캐서 먹는 것을 처음에는 관심없어
하다가 나중에는 배워서 따라했습니다.  아마 들에서 살았어도 사냥하고 
캐먹으며 잘 살았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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