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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Asteau (언젠간학생)
날 짜 (Date): 1998년 8월  5일 수요일 오전 09시 59분 07초
제 목(Title): 파리해방 - 37 (3) 드골이라는 사나이


드골이라는 사나이

당연히 파리의 해방을 가장 열망한 사람은 '샤를르 드골'이었다.
1940년 5월 프랑스가 항복할 때 그는 막 대령에서 준장으로 진급한 무명의 
장군이었지만, 스스로 '자유 프랑스 공화국의 내각수반'을 자처한 이래 4년간의 
투쟁을 통해 이 무렵에는 명실공히 영국, 미국과 대등한 '연합국의 일원' 프랑스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어 있었다.
또한 그는 알제리에 본부를 둔 '프랑스 민족 해방 위원회'의 의장도 겸하고 
있었는데, 이 단체는 프랑스 국내에서 항독 지하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모든 
레지스탕스 조직을 지휘하는 중앙기구라고 설명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논리에 의할 것 같으면 당연히 그의 '부하'라고 할 수 있는 
레지스탕스 중에는 드골을 자신들의 대표로 인정할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싸잡아 레지스탕스라고는 하지만, 이것은 처음부터 어떤 통일된 원칙이나 
명령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제각기 약간의 지도력을 갖춘 인물을 중심으로 
자생적으로 생겨났다는 특성으로 인해 그 속에는 저마다 '딴 생각'을 품은 
수십개의 크고 작은 파벌이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드골이야말로 당연히 유일무이한 프랑스의 지도자로고 믿는 
소위 '드골파'를 제외한 다른 파벌 중에서 가장 큰 세력을 이루고 있는 것이 
공산당이었다.
그동안 드골과 레지스탕스와 공산당 계열의 레지스탕스 조직이 가끔씩 불협화음을 
내면서도 '불편한 동거'를 계속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독일군과 싸운다는 
공통의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지만, 이제 독일의 패배와 조국의 해방이 눈앞에 
다가오자 이들은 제각기 장차 자신들이 차지하게 될 정치적 입지를 재빠르게 
계산해 보기 시작했다.
해방된 프랑스는 당연히 사회주의 국가로 새출발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공산당 
레지스탕스들의 시각으로 보자면 드골은 나라고 망한 틈을 타고 제멋대로 
망명정부랍시고 엉성한 조직을 만들어 놓고서는 제맘대로 국가원수를 자처한 '좀 
웃기는 친구'일 뿐이니, 지난 수년동안 고향땅을 지키면서 목숨 걸고 독일군과 
싸워온 자신들과 비교할 바가 못되는 인물이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드골과 그의 지지자들은 해방된 조국에서 드골이 진정한 
지도자로 받아들여 지기 위해서는 모든 프랑스 국민들이 열광할 만큼 눈에 띄는 
공적을 하나쯤 세워야 한다는 압박감에 쫓기고 있었고, 그들이 내린 결론은 
어떻게든 드골을 '파리를 수복한 개선장군'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아직도 독일군의 수중에 있는 프랑스를 두고 성급한 권력투쟁이 시작된 
셈이었고, 여기서 드골이 '믿는 구석'은 밉든곱든 지난 4년동안 그를 유일한 
프랑스의 대표자로 대접해온 연합국이었다.
드골은 이미 지난 7월에 미국으로 건너가 루즈벨트 대통령으로부터 자신이 이끄는 
민족 해방위원회가 장차 해방된 프랑스에서 통치임무를 인수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약속을 받아놓고 있었다.
그리고 1944년 8월부터 드골파는 행정공무원, 경찰, 심지어는 재판소에 이르는 
임시 정부기구를 구성하고 맹진격을 계속하는 연합군의 뒤를 따라가며 '샤를르 
드골'과 해방위원회의 이름으로 수복된 지방의 행정권을 속속 접수해 나가고 
있었다.
연합군의 입장에서 보자면 수복지구의 질서회복과 치안유지를 프랑스인들이 스스로 
해결하겠다고 나서주니 귀찮은 일을 덜어버린 셈이고, 드골의 입장에서는 이제 
누가 무어래도 합법적인 프랑스의 국가원수로 인정받을 수 밖에 없는 코스를 착착 
밟아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마음이 다급해진 것은 공산당이었다.
연합군이 파리에 입성하며 십중팔구 드골의 자유 프랑스군이 그 선봉에 서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다른 지방에서와 마찬가지로 파리의 지배권이 드골의 
수중으로 굴러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드골에게 파리 해방의 영웅이라는 영예와 국가 전체의 통치권이 어물쩍 넘어가 
버리는 이런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연합군이 파리에 도달하기 
전에 공산당 스스로 독일군을 몰아내고 이 도시를 해방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파리에 버티고 있는 독일군은 여전히 강력하고, 비록 병력이 25,000명에 
이른다고는 하지만 한결같이 엽총이나 구식소총 같은 빈약한 무장을 갖춘 공산당 
레지스탕스만으로는 도저히 승산이 없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스페인 내란에도 자원하여 참전한바 있는 열렬한 공산주의자이며 '룰 대령'이라는 
가명을 쓰고 있던 파리 공산당 레지스탕스 대장 '앙리 탕귀'는 결론을 내렸다.
"봉기다! 파리시민들을 선동하여 독일군에 맞서 싸우도록 부추기면 된다."
당연히 무기도 없이 맨손으로 일어선 시민들이 떼죽음을 당하겠지만, 그래서 
독일군을 내쫓고 파리를 해방시킬 수 있다면 '점령군의 선두에서 걸어 들어온 
드골의 발 아래에 온 국민이 조아리고 경배하는' 사태는 막을 수 있다.
"비록 한 20만명쯤 죽느다 하더라도 이 일은 그럴만한 값어치가 있다."

공산당의 이런 속셈을 꿰뚫어본 드골은 또 나름대로 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자크 샤반 델마스'라는 이름을 가진 젊은 자유 프랑스군 장군을 비밀리에 파리 
레지스탕스 조직 안으로 침투시킨 것이다.
"어떻게든 공산당의 불장난을 막아야 한다. 그들이 파리시민을 선동하여 어설픈 
봉기가 일어나게 되면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는 것은 물론이고, 아름다운 우리의 
수도도 잿더미가 된다. 연합군이 도착할 때까지 그런 불상사가 없도록 시간을 끄는 
것이 자네의 임무다."

이처럼 1944년 8월의 파리라는 이름은 전략적인 문제가 아니라 치열한 권력암투가 
벌어지는 정치적인 문제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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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 o n g m u d o h a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G o n g k y u n g d o h a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T a h a i e s a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D a n g t a e g o n g h a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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