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Asteau (언젠간학생) 날 짜 (Date): 1998년 7월 3일 금요일 오후 05시 53분 15초 제 목(Title): 노르망디 전선의 종결 - 36 (2) 미군 기갑부대의 쾌진격이 되살아 나면서 개전이래 이때만큼 미국제 셔먼전차의 기동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적이 없다고는 하지만, 이처럼 쾌조의 진격을 기록할 수 있다는 것과 목표지역의 독일군을 완전히 섬멸하고 목표지역의 독일군을 완전히 섬멸하고 그곳을 점령한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독일군은 여전히 놀라운 투혼을 발휘하고 있었고, 손쉬운 목표물은 하나도 없었다. 브레스트는 독일군 중에서도 최정예라고 하는 헤르만 람케 소장의 공군 제2공수사단이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했으므로, 이 항구도시를 함락시키는데는 그후로도 6주일이나 더 걸렸던 것이다. 게다가 제8보병사단까지 공격에 가세하여 치열한 격전끝에 간신히 점령해 놓은 브레스트는 역시 예상했던대로 상당기간 항구로서 기능을 발휘할 수 없을만큼 철저히 파괴되어 있었다. 그리고 생 말로 역시 '브레스트로 가는 길에 잠시 들러 손좀 봐줄 수 있는 곳' 정도로 여겼던 미들톤의 생각이 틀렸음이 입증되었다. 이곳을 수비하던 독일군 역시 미 제83보병사단의 맹공 앞에서도 굳건히 버티었고, 그들의 지휘관 '안드레이스 폰 올로크' 대령은 탈주를 시도하던 몇 명의 부하를 자신이 직접 권총으로 처형해 보이면서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적을 앞에 두고 도망치거나 항복을 주장하는 비열한 개들은 이렇게 내 손으로 죽여주겠다." 미군은 용케도 올로크가 그곳에 주둔하던 동안 그의 현지처 노릇을 하던 프랑스 여성을 찾아내었고, 이 무렵 '독일군 위안소의 암캐'로 불리우면서 프랑스인 동포들로부터 몰매를 맞아 죽을 위기에 처해 있던 이런 여자들이 연합군에 협력하는 것을 거부할 턱이 없다. 이 여자는 미군의 지시에 따라 용케 그때까지 남아있던 민간 전화를 통해 올로크에서 항복을 권고했지만, 이런 시시한 수작이 씨알이 먹힐 턱이 없었다. 83사단은 모든 화력을 동원하여 거듭 맹공을 퍼부었지만, 나폴레옹 시대에 건설된 요새를 강화한 독일군의 방어선이 마침내 무력화된 것은 공군의 대형 폭격기가 이 요새에다 대규모 융단폭격을 퍼붓고 나서였다. 이처럼 미 제3군의 브르타뉴 반도 탈환작전은 수천 km에 이르는 영토를 수복하고 수많은 프랑스인들게 해방의 기쁨을 안겨 주었지만, 정작 물자하역을 위한 항구의 확보라는 작전의 주목적은 하나도 달성하지 못했다. 독일군은 항상 최후의 백기를 올리기 전에 모든 항구 시설을 철저히 파괴해 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패튼은 브래들리 장군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그 따위 사소한 문제'는 아예 관심도 없는 듯했고, 그가 아는 것은 오직 진격 - 그것뿐이었다. 전차대가 너무 적진 깊숙히 달려 들어감에 따라 보급선이 길게 연장되고, 그로 인해 측면이 위협받게 되는 것을 염려한 부하들이 그런 의견을 제기하기라도 하면 패튼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측면? 그건 독일놈들이 결정할 문제일 뿐이다. 자네들은 가솔린이 있는한 앞으로 달려가기만 하면돼. 가솔린이 떨어지면 전차에서 내려서 뛰어가!" 이처럼 앞만보고 내달리는 패튼식 기병전술의 효과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했고, 실제로 패튼은 격전이 예상되는 독일군의 강력한 방어거점을 고스란히 남겨두고 우회해 버리는 일도 서슴치 않았다. 이것은 다시말해 질풍같은 기병돌격이 지나간 후에도 멀쩡하게 남아있는 독일군 부대를 섬멸하고 그곳을 완전히 장악하는 '궂은 일'을 다른 부대에 떠넘기는 결과가 될 수도 있고, 평소 패튼에 대해 반감을 품고 있던 사람들은 바로 이런 점을 지적하여 신랄한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패튼은 오직 신문지상에서 스타가 되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그는 연일 눈부신 전격전으로 프랑스 도시를 해방시킨 개선장군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그의 화려한 명성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이 정도까지의 독설은 아니더라도 신중하고 입이 무거운 브래들리 장군조차도 패튼의 이런 방식을 가리켜 "하지즈는 섬멸한 적군의 숫자를 전공으로 생각하는 반면, 패튼은 자신이 달려나간 거리를 전공의 척도로 여긴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이때 패튼이 정면공격을 회피하고 우회해버린 2개의 항구도시 '로리앙'과 '생 나제르'는 프랑스 전역이 해방되고 독일이 연합국에 완전히 항복하던 그 이듬해까지도 그냥 독일군이 버티고 있는 '미수복지구'로 남는 기현상이 벌이지기도 했다. 꼼꼼하게 요모조모를 챙기는 스타일로 보자면 패튼보다는 오히려 그 아래에 있는 미들톤과 더 흡사한 점이 많았던 브래들리는 패튼에게 "군단장을 건너뛰어 사단장들에게 직접 명령하는 일을 자제하나"고 누차 강조했지만, 패튼은 그때마다 애매한 웃음과 얼렁뚱땅으로 그 자리를 넘겨 버리곤 했다. 또 가끔 자신의 뜻과 상반되는 상부의 명령을 받았을 때는 그것을 곧잘 무시해 버렸고, 나중에 그에 대한 문책을 받게 되면 통신두절로 명령을 받지 못했다고 잡아떼거나 혹은 그때 마침 전선에 나가 있었던 바람에 그 명령을 늦게야 알게되었다고 둘러댔다. 패튼의 부대가 질풍처럼 내달리며 점령했다는 도시들은 한결같이 파괴되어 점령의 의미가 없어져 버렸으며, 패튼이 상대한 독일군 부대들 역시 모두가 약체화된 2선급 부대이므로 패튼의 전공은 전공이라 부를만한 가치조차 없다는 극단적인 비판론도 있지만, 다만 패튼은 이런 비판자들조차도 도저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몇가지 뛰어난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 첫번째는 그가 보여준 솔선수범과 대담무쌍함이다. 그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때 한시도 안전한 후방의 지휘소에 머무른 적이 없고, 항상 최전선에서 직접 부대를 지휘했다. 패튼의 이런 행동에 대해 군사령관으로서는 고위 지휘관으로서는 무모하고 무책임한 만용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여지껏 모든 연합군 지휘관중에서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패튼은 쉴새없이 전선의 이곳저곳을 휘젓고 돌아다니며 특유의 걸쭉한 입담으로 부하들을 독려하고 몰아세웠다. 그가 특히 혐오한 것은 장교가 적기의 공습을 피해 길옆 도랑에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었고, 독일군 저격수를 의식하여 반짝거리는 장교 계급장을 테이프 따위로 가려놓고 있던 장교들은 영락없이 그의 불호령 앞에서 부들부들 떨어야 했다. "미합중국의 장교 계급장이 그렇게도 부끄러운 물건인가? 네놈은 부하들에게 독일군이 그토록 무서운 존재라는 걸 애써 설명하고 있는 셈인가? 그렇게도 장교 계급장이 부담스럽다면 내가 그걸 이 자니에서 당장 떼어주마!" 3성장군이 지휘봉을 휘둘어대며 몸소 전선을 뛰어다니는 패튼의 이런 지휘방식은 부하들의 사기를 크게 고무시켰다는 점 이외에 몇가지 실제적인 이점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상대한 독일군이 전선으로부터 수천 km나 떨어진 베를린의 총통 대본영으로부터 날아오는 명령에 의해 싸우고 있는데 반해, 직접 전선을 누비고 다니는 패튼에게는 자연히 그 자신이 '행운의 틈새'라고 이름붙인 크고 작은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았던 것이다. 적군의 배치상태나 전황의 진전에 따라 기회가 포착되었을때, 날카로운 매처럼 부릅뜬 그의 두눈은 결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패튼은 즉석에서 사전에 계획딘 작전을 대폭 수정해서라도 시시각각 변화하는 사태에 유연하게 대처했고, 또 휘하의 부대장들에게도 그런 식의 재량권들 폭넓게 인정해 주고 있었다. 두번째는 역시 패튼과 그의 제3군이 전 연합군의 사기를 크게 고무시켜 놓았다는 점이다. 지난 몇달간 수주일에 걸친 혈전을 치르고 나서도 겨우 수km도 전진하지 못했던 뼈저린 경험을 가지고 있는 연합군 장병들에게 있어서, 실제적인 전과야 어찌되었든 하루에도 수십 km를 질풍처럼 달려나가는 아군의 전차대는 그야말로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신바람이 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종군기자 '제임스 윌라드'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갑자기 모든 것이 변해 버렸다. 전창이 돌연 신바람 나는 축제, 혹은 흥미진진한 스포츠 경기와도 비슷한 것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승리의 무드가 고조되고, 이제 곧 이 지긋지긋한 전쟁도 끝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병사들이 많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치의 땅에 며칠씩이나 못박혀 있던 지지부진한 악전고투를 생각한다면, 그 어느 쪽이 진정한 전쟁의 모습인지 아리송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패튼의 제3군이 이룩한 가장 큰 성과는 이런 맹진격으로 독일군의 전선을 크게 우회하여 마침내 단단한 포위망을 형성해 버렸다는 사실이다. ------------------------------------------------------------------- G o n g m u d o h a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G o n g k y u n g d o h a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T a h a i e s a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D a n g t a e g o n g h a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