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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Asteau (언젠간학생)
날 짜 (Date): 1998년 6월  3일 수요일 오전 11시 05분 21초
제 목(Title): 노르망디 공폭작전 - 35 (3)


악전고투의 이름 - 생로 공방전
셀투르를 함락시킨 미 제1군은 다시 남하를 시작했다.
물자보급을 위한 항구확보라는 사명이 이제 간신히 달성되었지만, 저 지긋지긋한 
생울타리 지대를 가로지르는 거미줄처럼 복잡한 도로망을 하나하나 장악하고 
연결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파리로 향하는 길을 뚫는다는 본연의 임무가 아직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이다.
캉과 셀부르라는 두 개의 걸림돌을 제거해 버리기만 하면 모종의 희망적인 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철썩처럼 믿었던 것과는 달리, 이 두 도시가 점령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악전고투의 양상은 좀처럼 해결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처럼 전선이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교착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양측 모두 
무더기로 죽어나가는 극심한 소모전이 계속되었다.
셀부르 남방 30km 지점의 '생로'를 탈취하기 위한 공격에서 정예의 미82공수사단은 
사흘간의 전투에서 단지 6km를 전진하는 댓가로 1,200명의 사상자를 내었고, 
제79보병사단과 90보병사단 역시 비슷한 거리를 전진하는데 4,000여명의 희생자를 
내었다.
새로 투입된 제3기갑사단의 경험 부족한 전차장교들은 지름길을 찾아본답시고 겁도 
없이 생나무 울타리 속으로 뛰어들었다가 옴싹달싹 못한채로 공병 폭파작업반을 
불러 길을 뚫어달라ㄹ고 아우성치는 판이었고, 울타리 뒤쪽에서 도사리고 있는 
것이 적군인지, 아군인지 조차 알 수 없는 이런 대혼란 속에서 곧잘 아군부대 
사이에 오인접전이 속출했다.
이 무렵 새로 지급되기 시작한 얼룩무늬 전투복을 가장 먼저 지급 받았던 
제30보병사단에서 특히 이런 희생자가 많았는데, 그것은 오래전부터 독일 
무장친위대 병사들이 입고있던 얼룩무늬 위장덧옷에 워낙 익숙해져 있던 병사들이 
얼룩덜룩한 무늬가 눈에 뜨이기만 하면 거의 반사적으로 사격을 가해 버렸기 
때문이다.
뒤늦게야 실수를 깨달은 군수당군은 부랴부랴 이 위장복의 착용을 금지시키고, 
그것을 모두 회수하여 태평양 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해병대에 지급하는 현명한 
조치를 취했고, 이로 인해 '얼룩무늬의 해병대'라는 전통이 생겨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류의 오인접전 중에서도 가장 큰 사고는 '존. J. 본'준장이 지회하는 
제3기갑사단 B전차연대를 덮친 재난이었다.
쏟아지는 독일군의 포화를 뚫고 '생로를 향해 달려가는 이 연대의 전차 8대는 
처음부터 위험을 안고 있었다.
전차장이 포탑 위로 상반신을 최대한 내밀어도 담장만큼이나 높은 생나무 울타리는 
전방의 관측을 가로 막았고, 그렇잖아도 원래 습지가 많은 이곳에서 최근에 쏟아진 
비로 인해 도로마저 군데군데 물에 잠겨 있었으므로 자칫하면 그것을 놓쳐버리기 
십상이었다.
후방에 있는 본대에서 지도를 보아가며 무전으로 길을 불러주는 유도에 따라 
꾸물꾸물 나아가고 있던 이 전차병들에게 있어서 폭격으로 생나무 울타리가 넓게 
절단된 곳은 영락없이 도로로 착각되기 십상이었다.
마침내 길을 잃어버린 그들은 미로와도 같은 생나무 울타리 속을 한참 헤맨끝에 
간신히 생로 부근의 작은 마을로 통하는 도로를 발견했다. 하지만 반가운 마음에 
도로 위로 뛰어 올라온 그들은 자신들이 마침 부근에 배치되어 있던 제823 
구축전차대대의 사정권안으로 뛰어들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구축전차의 포수들은 약3km전방에 갑자기 나타난 
전차의 그림자를 보자 틀림없이 그것이 독일군이라고 단정했다. 조심성 많은 
지휘관은 무전으로 혹시라도 그 부근에서 작전을 전개하고 있는 아군 전차대가 
있는가를 문의해 보았지만, 공교롭게도 일은 더욱 꼬여갔다 - 때마침 제19군단 
사령부는 독일군 제2SS기갑사단이 그곳에 출몰했다는 정보를 접하고 있었던 것이다.
"틀림없이 독일군이다. 멋지게 날려버려!"
전차들이 600m전도의 거리까지 접근했을 때 M-10구축전차의 90mm주포가 불을 
뿜었다.
맨 선두에서 달려오던 전차와 2번 전차가 순식간에 나뒹굴었고, 나머지 6대의 
전차는 급히 방향을 바꿔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자신들이 독일군으로부터 호된 기습을 당한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이 전차들의 고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나서야 간신히 최초의 목표지점인 '생 오뱅'마을을 
찾아내었을 때, 이번에는 아군의 항공기가 그들을 덮친 것이다. 아군의 포격에 
얻어맞고 간신히 살아남은 6대의 전차는 마침내 이 아군기의 공습으로 일소되어 
버렸다.
같은 육군부대 안에서도 이처럼 지휘통신이 뒤죽박죽인 상황속에서, 악전후로 인해 
뒤늦게 공습을 시작한 공군이 시전에 그 존재를 통보받지 못한 아군 전차를 
적군으로 오인했다고 해서 그걸 탓할 수 없는 일이었다.
본 준장의 B연대는 이날밤 이런 식으로 어이없이 16대의 전차를 잃었고, 
제30사단의 보병들을 향해 신나게 기관총 사격을 가해서 16명의 아군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제19군단장 '코어레트'소장은 그 졸렬한 지휘의 책임을 물어 본 준장을 해임했다.
"개인적으로는 귀관의 노력을 인정한다. 당신은 단지 고약한 상황의 제물이 된 것 
뿐이다. 전쟁이란 원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많은 법이 아니던가?"

독일군이라고 해서 이런 '상황의 제물'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7월 11일 이른 아침부터 독일군의 전차 교도사단도 반격을 개시했지만, 이들 역시 
미군 전차들과 마찬가지로 맥을 추지 못했다.
튀니지와 시실리의 전투에서 단련된 역전의 미군 제9보병사단 병사들은 독일군과 
똑같은 방법으로 생나무 울타리를 방패 삼아 바주카포와 대전차포를 이용하여 
독일전차들을 마구 때려 부쉈고, 그 효율은 오히려 독일군을 상회횄다.
모든 조건에서 방어하는 쪽이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는 이 노르망디의 
전투에서는 '먼저 움직이는 쪽이 손해'라는 사실이 명백했지만, 요컨대 갈길이 
바쁜 연합군에 비해 독일군은 그 자리에서 버티기만 해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 셈이었고, 바로 이점이 연합군을 곤경에 몰아넣고 있는 핵심이었다.
미군은 지옥같은 생나무 울타리밭을 헤치고 생로로 통하는 도로상으로 빠져 
나오는데만도 4만명 가까운 사상자를 내었고, 그 90%이상이 보병이란 사실 또한 
브래들리 장군의 기분을 참담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잘 훈련되고 실전경험을 갖춘 보병을 충원하는 것은 전차나 항공기를 보충하는 
것보다도 훨씬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 북프랑스의 '브르타뉴'지방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관광도시 생로는 지금 
연합군의 폭격으로 처참한 폐허로 변해있고, 그 벽돌더미 밑에는 1,000여명 
시민들의 시체가 묻혀있다.
독일군이 폐허위에 도사리고 앉아 결전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그곳까지의 거리는 
불과 10km 남짓 했지만, 미군병사들의 머릿속에서 그 길은 흡사 베를린까지 
만큼이나 아득히 멀게 느껴졌다.
도저히 살아서 도착할 수 없는 것 같아 보이던 생로를 향한 돌파구를 뚫은 것은 
제29사단 116연대의 2대대였다. 그리고 이번에도 전쟁의 승패를 가름하는 가장 큰 
요소는 역시 '행운'이라는 법칙이 어김없이 들어맞았다.
'시드니 빙검'소령이 지휘하는 이 부대는 짙은 안개속을 헤치고 한발한발 
전진하다보니 어느사이 자신들이 생로 외곽 1km지점까지 진출해 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연질색했다. 그들은 우연히 독일군 방어선 사이의 작은 틈새로 접어 
들었던 것이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독일군의 옆구리를 스쳐 빠져 나왔던 것이다.
그것이 의도한 바였든 우연이든 간에 그 정도면 충분했다.
즉시 제3대대가 같은 루트를 따라 2대대와 합류했고, 미군은 총공세에 앞서 적진 
깊숙히 하나의 쐐기를 박아 넣는데 성공한 것이다.
뒤늦게 그들의 존재를 눈치챈 독일군의 모든 화력이 이들 선도부대에 집중되었다.
이들에게 탄약과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 강행돌파를 시도하던 미군의 반궤도 
장갑차와 전차들은 치열한 대전차포의 불벼락을 뒤집어 썼고, 좁은 시골길을 흡사 
고철 수집장과도 같은 모습으로 변해갔다.
7월 17일 밤에 제116보병연대의 본대가 고립된 이들 2개 대대와 합류하는데 
성공했지만, 이들은 이미 제3대대장 '토마스 하우이'소령까지 포탄에 맞아 
전사하는 대피해를 입고 있었다.
생로는 그 이튿날인 7월 18일 밤에 마침내 함락되었다.
노르망디 전역 최대의 전략적 요충지 캉과 생로를 장악하는데 성공한 연합군은 
이제 물에 잠긴 생울타리지대를 빠져나와 단단한 마른 대지위에 발판을 마련한 
셈이지만, 이런 역전의 계기를 잡기까지 막대한 희생을 치루었다.
상륙작전이 개시된 이래 이 순간까지 연합군의 사상자는 12만2,000명에 달했고, 
이것은 상륙초기 단계에서 예상보다 작은 피해에 그쳤다고 희희낙낙하던 연합군 
총사령부를 침묵시켜 버리기에 충분한 숫자였다.
상륙작전을 입안했던 사람들은 어떻게든 해변에 첫발을 내딛는 그 순간이 최대의 
고비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 정작 그 뒤부터 이 '녹색의 지옥' 노르망디에서 
두달여나 발목을 잡힌 채로 이런 대피해를 입게될 것이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한가지 위안이라면 독일군 역시 이때까지 11만5,0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지만, 이처럼 사나운 기세로 응전해 오는 독일군을 하나하나 
격퇴시키고 프랑스 전역을 해방시킨다는 그들의 갈 길은 아직도 요원했고, 지난 
한달 반동안의 전례를 미루어 볼 때 그것은 정말 끔찍한 고역이 될 것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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