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itary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Asteau (언젠간학생)
날 짜 (Date): 1998년 6월  3일 수요일 오전 11시 04분 32초
제 목(Title): 노르망디 공폭작전 - 35 (2)


캉 함락되다
미군이 일단 제 몫을 했으니 이번에는 영국군의 차례였다.
북아프리카에서 대승리를 일구어 낸 바 있으며, 리비아에서 이탈리아군의 포로가 
되었지만 작년 9월 이탈리아가 항복함에 따라 석방되어 다시 전선으로 복귀한 
'리처드 오코너'중장이 지휘하는 제8군을 선봉에 세운 영국 제2군은 이번에야말로 
흡사 '발바닥의 종기'와도 같은 캉을 기필코 점령하기 위해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
이번에도 "이길 수밖에 없는 전력의 우위를 확보했을 때 싸움을 시작하면 반드시 
이긴다"는 몽고메리의 철학에 따라 6만의 병력과 600여대의 전차, 700여문의 화포, 
그리고 거의 독무대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는 공군과 해군의 지원까지 등에 업은 
영국군의 '엡솜작전'은 6월 25일에 시작되었다.
'북극곰'이라는 별명이 붙은 8군 예하 제49사단의 보병들이 이른 새벽의 짙은 
안개를 뚫고 전진하기 시작했고, 지원을 맡은 제7기갑사단의 전차들이 캐터필러가 
푹푹 빠지는 진창속을 꾸물꾸물 나아갔다.
그 다음 이틀동안 제8군은 간신히 '오돈'강을 건너 그 대안에 작은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었지만, 바로 그때 심상찮은 징후가 발견되었다.
포로가 된 독일장교의 소지품속에서 독일군이 엡솜작전의 진로상에 놓여있는 
'바이유'에 대해 대대적인 반격작전을 구상하고 있으며, 그것을 위해 최근에 
동부전선으로부터 정예의 제2장갑군단이 이 지역으로 파견되었다는 증거가 발견된 
것이다.
몽고메리는 잠시 공격을 중단하고 수비태세를 강화했다. 양군의 전차와 보병이 
뒤엉켜 버리면 공군과 해군은 마음놓고 지원포,폭격을 가할 수 없기 때문이고, 
그것은 현명한 결정이었다.
6개 기갑사단을 앞세운 독일군의 반격잔적이 6월 29일에 시작되었지만, 몽고메리의 
계산대로 연합군은 공군과 해군이 이 싸움을 가로맡아 버렸다.
먼 바다에서 무전으로 불러주는 좌표에 따라 목표를 보지도 않고 쏘아대는 해군의 
함포는 근본적으로 명중을 기대할 수 없는 물건이지만, 구경이 300mm나 넘는 
거대한 포탄은 지근거리에 떨어지기만 해도 70톤의 타이거 중전차를 마치 
장난감처럼 뒤흔들어 놓았고, 포탄이 떨어진 탄공은 그대로 전차가 빠져들면 
헤어날 수 없는 대전차호가 되어 버렸다.
잠시 빗발이 그치면 하늘에서는 폭탄을 매단 '야보' 전투기들이 새까맣게 쏟아져 
내렸고, 대전차포가 이 공격에 가세하는 것만 제외한다면 영국 지상군은 거의 
구경밖에는 할 일이 없었다.
독일군의 바이유 반격계획은 단 하루만에 기가 꺾여 버렸고, 롬멜과 룬트슈테트 
원수 역시 이런 결과를 충분히 예측하고 있었다.
요컨데 이 공격은 "한시바삐 영국군을 바닷속으로 되쓸어 넣으라"는 총통의 
재촉으로 인해 시작된 것일뿐, 독일군은 지금 이런 식의 반격에 나설 입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은 더이상 무익한 반견작전을 포기하고 한시바삐 방어체체로 전환해야 할 
때라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 룬트슈테트와 롬멜 원수가 베를린으로 날아갔지만, 
그에 대한 히틀러의 대답은 룬트슈테트를 서부유럽 총사령관직에서 해임한다는 
것과 함께 "토미들에게 제2의 덩케르크 철수를 다시 한번 안겨주라"는 공허한 
장광설 뿐이었다.
맥이 빠진 채로 베르히테스가르텐에서 물러나오던 롬멜은 그때의 심정은 이렇게 
술회했다.
"총통의 지휘소는 흡사 잠망경 없는 잠수함 같다. 전선에서 올라오는 모든 불리한 
보고는 주변의 아첨배들에 의해 차단되고 왜곡된다. 그런 속에서 그는 전혀 현실과 
동떨어진 공허한 명령만을 계속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총통은 그다지 
유능하지 못할지라도 상황은 제대로 판단할 줄 아는 영리함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 그것도 옛날 얘기인 듯하다"

룬트슈테트의 후임으로는 최근에 동부전선에서 돌아온 '귄터 폰 크뤼게'원수가 
기용되었다.
잠시 중단되었던 영국군의 공세는 7월 4일에 캐나다 제3보병사단이 캉의 인접도시 
카르피케의 비행장을 공격하는 것으로 다시 재개되었다.
전차와 함포의 지원을 업은 캐나다군은 공세 첫날에 비행장안까지 진입하는데 
성공했지만, 그들에 맞선 독일군은 제12 SS 기갑사단 '히틀러 유겐트'였다.
이름 그대로 전장병이 히틀러 소년단 출신의 나치당 당원들로 구성된 이 사단은 이 
무렵 10대 소년병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지만, 총통과 나치즘에 대한 광신적인 
충성심이 얼마나 실제적인 전력으로 승화될 수 있는지를 유감 없이 증명해 보였다.
"그 작은 악마들은 그때까지 만나본 어떤 독일군보다도 사납고 격렬하게 
저항해왔다. 흡사 죽지못해 안달이 난 것 같아 보이는 그들의 살기등등함에는 기가 
질릴 지경이었고, 어쩌다 포로가 된 그 어린 녀석들의 눈빛은 기묘한 살기를 
내뿜고 있어서 흡사 야수의 눈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7월 7일까지도 비행장은 아직 독일군의 수중에 남아있었지만, 영국군은 이 날을 
기해 캉을 향한 마지막 철퇴를 알렸다.
작은 도시 캉을 완전히 가득 메워버리고도 남을 11만5,000명의 병력이 도시의 
북방으로부터 일제히 공세를 취하는 한편으로, 공군의 중폭격기 약 500대가 
동원되어 시내에다 2,500톤의 폭탄을 투하했다.
7월 9일의 이른 아침, 히틀러 유겐트 사단장 '쿠드트 메이어' 친위대 소장은 
총통의 명령을 무시하고 부대를 오르느강 건너편으로 철수시키기 시작했다.
"당신들은 4발 중폭격기가 퍼붓는 융단폭격의 위력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단순히 공포라든가, 치열하다는 따위의 단어로 표현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 집중폭격의 한가운데 앉아 있어 본다면, 설사 폭탄에 맞아 죽지 
않더라도 이 세상의 종말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조금 
지나면 이제 그런 생각조차 사라진다.
공포심이라든가 어떻게든 이 자리를 빠져 나가야겠다는 본능조차 마비되고, 
머릿속이 텅 비어 버린 쭉전이의 육신만이 그 자리에 남게 되는 것이다."

캐나다군은 오전 11시경에 카르피케 비행장을 완전히 점령했고, 영국군은 그날 
정오경에 캉에 입성했다.
하지만 그것은 더이상 '도시'라고 부를 수 없는 것으로 변해 있었다. 시내는 
주택지구와 도로를 구분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폐허의 벽돌더미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그 폐허 밑에서 갸날픈 신음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약 6,000명의 애꿎은 
시민들이 이 무자비한 '독일군 청소작업'의 덤으로 희생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영국인들에게 배신당했다. 그들은 우리의 머리위에다 망설임도 없이 
폭탄을 쏟아부은 것이다. 한 명의 독일군을 잡기위해 열 명의 프랑스 시민이 
희생되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당신들은 더이상 우리의 친구가 아니다"
간신히 날아남은 시장이 어느 영국군 장교를 붙들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항의했다.
독일군도 이 캉 공방전에서 시민들과 비슷한 숫자가 전사했고, 영국군도 
3,500여명의 전사자와 부상자를 내고 있었다.
"주변에 온통 시체가 널려 있었다. 임자 잃은 손목이나 발목을 비롯하여 무엇인지 
알아보기도 힘든 신체의 일부와 함께 거울조각, 약 상자, 묵주 따위의 
신변잡화들이 폐허속에 어지럽게 널려 있다.
나는 종전될 무렵 베를린 근교에 도착할 때까지 서부유럽을 완전히 두발로 걸어서 
횡단했지만, 이 캉에서만큼 참혹한 광경은 두번다시 보지 못했다."
영국 제49사단 소속의 '엔터니 말론' 상병의  술회다.

 
      -------------------------------------------------------------------
      G o n g m u d o h a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G o n g k y u n g d o h a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T a h a i e s a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D a n g t a e g o n g h a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