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Asteau (언젠간학생) 날 짜 (Date): 1998년 5월 14일 목요일 오전 11시 06분 47초 제 목(Title): 녹색의 지옥 - 노르망디 34 - (4) 영궁 미하일 비트만 연합군 지휘부는 해안에 상륙하기만 하면 프랑스 내륙으로 전진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차츰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 가고 있었다. 계획대로라면 상륙 첫날에 점령했어야 할 캉은 여전히 독일군의 수중에 있었고, 미군이 코탕탱 반도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함에 따라 셀부르 항구로 향하는 교통의 요지 '카랑탕'에도 여전히 독일군이 버피고 있었다. 파리를 향해 불과 200km도 안되는 직선도로가 시작되는 캉의 중요성은 연합군만이 아니라 독일군도 잘 알고 있었으므로, 바야흐로 노르망디 지방의 최대 도시 캉이 서서히 격전의 무대로 떠오르고 있었다. 더 시간을 끌었다가는 이 북프랑스의 해안지방에서 영원히 발목을 잡히고 말겠다는 초조함에 내몰린 몽고메리는 마침내 이 도시에 대한 대대적인 포위작전을 개시했다. 북쪽해안으로부터의 정면공격이 몇 차례나 실패했던 경험을 거울 삼아 이번에는 제51사단과 제4기갑사단을 캉 남서쪽으로 크게 우회시켰다. 이들과 합세하여 '빌레르보카쥬'읍을 관통하는 반달모양의 포위망을 형성하게 될 영국 제7기갑사단은 영국 제8군의 일원으로 아프리카에서 몽고메리와 더불어 엘라메인의 대승을 일구어내었던 바로 그 역전의 정예부대이며, 바로 그 때문에 역시 롬멜의 지휘아래 그곳에서 싸웠던 독일 제21장갑사단과는 수차례의 전투에서 포화를 교환했던 오랜 숙적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전선이 종결된지 근 2년 만에 이 두 라이벌은 싸움의 무대를 유럽대륙으로 옮겨 다시 격돌하게 된 것이고, '사막의 쥐'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이런 제7기갑사단에 대해 몽고메리가 품고 있는 신뢰와 기대는 그만큼 각별했다. 6월 13일 아침, 제7기갑사단의 22전차 여단은 쾌속전차 '크롬웰'을 앞세우고 굉음을 울리며 빌레르보카쥬 읍을 빠져나가 캉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선두의 크롬웰 전차에 타고 있던 '릭 디아스'대위는 사람 그림자 하나없이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면서 이곳이 과연 치열한 격전지의 한복판인가 하는 느긋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불과 수초후에 자신들을 향해 덮쳐올 재앙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도로와 길양편의 농경지를 구분짓는 생나무 울타리 뒤쪽에 4대의 독일군 전차가 매복한 채로 잔뜩 그들을 노리고 있었다. 전차와 병력의 숫자로만 본다면 그것은 당연히 상대가 안되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그 독일 전차들은 모두 연합군 전차병들 사이에 공포의 대명사와도 같았던 '타이거-I'중(重)전차였고, 게다가 그들의 지휘관도 예사 인물이 아니었다. 어떤 분야에나 남다른 천제가 있는 법이라고 한다면, 독일 무장 SS 제101독립 중전차대대의 '미하일 비트만'대위가 바로 그런 천재였다. 동부전선에서 119대의 소련전차를 때려부숨으로써 위관급의 초급장교로서는 드물게 독일군의 최고 훈장인 백염검 기사 십자훈장을 받았을 분 아니라, 전 군에 그 명성을 날리고 있던 이 전쟁영웅은 그 바로 전날 노르망디 전선에 도착했고, 영국 제22전차여단이 운이 나쁘게도 그의 첫 제물로 걸려 들었던 것이다. 디아스 대위는 느닷없이 터져나온 폭음과 함께 앞에서 달리고 있던 장갑차 한대가 산산조각으로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길 오른편의 생나무 울타리 너머로 거대한 전차의 포신이 불쑥 솟아 오르는가 싶더니, 그농이 펄썩 도로 위에 떨어져 내렸다. "적이다! 타이거다." 타이거 전차의 50톤에 달하는 거체가 곧바로 정면으로 달려들면서 88mm 주포를 연달아 발사했고, 기습을 당한 선두의 병력 수송차와 장갑이 빈약한 경(輕)전차 몇대가 순식간에 박살이 나며 나딩굴었다. 디아스 대위도 즉시 반격이 나섰다. "거리 100m, 철갑탄 발사" 크롬웰의 75mm 전차포가 타이거 전차의 전면에서 작렬했지만, 그 '괴물'은 그 정도에는 꿈쩍도 하지 않고, 오히려 디아스 대위의 크롬웰 전차에다 명중탄을 안겼다. 디아스 대위는 불타오르는 전차에서 탈출하여 죽을 힘을 다해 뛰었고, 그 단 한대의 독일 전차는 유유히 마을 안팎을 오가며 제22전차여단의 선도부대를 철저하게 유린했다. 뒤이어 8대의 독일 전차들이 이 전투에 합세했고, 불과 10분도 안되는 전투에서 영국 제22전차여단의 전차 28대와 각종 차량 14대는 모두 고철로 변해 버렸다. 영국군은 빌레르보카쥬 읍내의 페허 속에 대전차포를 매복시키고 격렬하게 저항했다. 마침내 비트만 자신이 타고 있던 전차도 대전차포에 피격되었으므로, 원없이 '포식'을 즐긴 독일군도 마침내 후퇴하기 시작했다. 단지 캉을 향한 길목 정도로 생각했던 이 곳에서 입게 된 이 뜻밖의 참패로 인해 몽고메리의 구상은 큰 차질을 빚게 되었다. 단지 12대의 전차로 연합군의 야심적인 캉 포위작전을 좌절시킨 비트만의 대활약으로 인해 무명의 작은 촌락 빌레르보카쥬는 세계전사에 그 이름을 남기게 되었고, 그 이후에도 캉을 둘러싼 양군의 공방전은 두달이상이나 계속되면서 치열한 전차전의 양상으로 전개되어 간다. 그리고 미하일 비트만은 단신으로 캉을 구출해낸 영웅답게 이 노르망디 전역에서 피투성이의 싸움을 계속하다가 8월 7일, '팔레즈'가도에서 영국군 전차 '파이어플라이'에 피격되어 전사하는 운명을 맞게 된다. ------------------------------------------------------------------- G o n g m u d o h a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G o n g k y u n g d o h a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T a h a i e s a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D a n g t a e g o n g h a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