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Asteau (언젠간학생) 날 짜 (Date): 1998년 5월 14일 목요일 오전 11시 07분 05초 제 목(Title): 녹색의 지옥 - 노르망디 34 - (5) 녹색의 지옥 노르망디의 전투는 점점 더 고약한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상륙 첫날 캉을 점령하고, 잘하면 팔레즈까지도 함락시킬 수 있다"고 했던 몽고메리의 장담은 공염불이 되어 버렸다. 몽고메리는 곧 "특정 도시를 빼았고 빼앗기는 것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이곳에서 독일군의 주력을 철저히 때려 부수고, 가능하다면 그들의 예비병력까지도 깨끗이 소멸 시키는 것"이라고 말을 바꾸었지만, 정말 전투는 그런 양상으로 치달아 가고 있었다. 지역점령(地域占領)과 색적섬멸(索敵殲滅)은 근본적인 개념부터가 다른 것이지만, 이 서부전선에 배치되어 있던 모든 독일군 부대란 부대가 모두 해 몰려들고 있었으므로 전투는 자연히 일진일퇴가 거듭되는 난타전의 양상으로 전개되어 갔다. 한시바삐 카르피케 비행장을 빼았아 그곳을 유럽 대륙 전체를 커버하는 발진기지로 사용하고 싶어 안달이 나있는 공군이나, 후속부대와 보급물자를 양륙시키기 위해 셀부르 항구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는 연합군 총사령부의 입장에서 본다면 정말 답답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지만, 연합군의 진격이 이처럼 답보상태에 빠져버린 원인은 크게 두가지였다. 그 하나는 물론 독일군의 격렬한 저항 때문이지만, 다른 하나는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이 노르망디 지방 특유의 지형이었다. 높은 산이 전혀 없는 이 지방은 얼핏 생각하기에는 전차대가 기동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한가로운 북프랑스의 전원지대른 공격군을 방해하는 방어군을 도와주는 한가지 결정적인 인공의 장애물로 가득 차 있었다. 옛부터 이 노르망디 지방의 농부들은 자신의 경작지를 구분하기 위해 밭과 밭사이에 키가 낮은 잔나무를 심어 울타리를 만들었고, 이것을 가리켜 '보카쥬'라 불렀다. 산사나무, 딸기나무같은 잡목들이 밀생한 그 생나무 울타리들은 그 높이가 1~4m나 될 뿐 아니라 그 견고함이 마치 돌로 쌓은 성벽과도 같아서 도저히 사람이 통과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왠만한 총탄이나 파편까지도 끄떡없이 막아주었다. 높다란 생나무 울타리 위에 널판지 한장을 걸쳐놓고 그 위에 엎드린 독일군 저격수는 섬광이 일지 않는 특수한 화약으로 제조된 실탄을 사용하여 연합군 병사들을 수없이 저격할 수 있었고, 울타리 밑부분을 비집고 기관총 한 자루를 설치해 놓으면 밭 하나하나가 그대로 견고한 요새가 되어 버렸다. 연합군의 전차가 이 보카쥬의 낮은 부분을 골라 그것을 넘어갈라치면 여지없이 포신을 하늘높이 쳐들고 장갑이 얇은 차체 앞쪽의 복부를 훤히 드러내는 자세를 취하게 되는데, 바로 이때를 노려 울타리 밑에 숨어있는 독일군이 1인용 대전차 무기 '판쪄 파우스트'를 한발만 날려 보내도 그 전차는 여지없이 박살이 났다. 그에 반해 이 경작지 사이사이를 그믈망처럼 가로지르고 있는 농로(農路)는 수백년에 걸쳐 짐수레와 사람의 발길에 밟히고 다져진 결과 주변의 경작지보다 훨씬 더 낮은 기이한 모양을 보여주고 있고, 그 위에는 덤불과 잡목이 뒤덮혀 있기 때문에 그 형태가 흡사 지하 하수도나 두더지굴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하늘에서는 잘 관측되지도 않는 이런 '들쥐통로'를 이용하여 독일군은 방어부대를 마음대로 전개시키거나 후퇴시킬 수 있었다. 북아프리카의 거칠 것없이 탁트인 지형에 익숙해 있던 연합군 전차병들에 있어서 이런 생나무 울타리는 전차의 전진을 가로막는 전차 병벽이며, 경작지 사이사이를 가로 지르는 농로는 잘 위장된 견고한 대전차 함정이었던 것이다. "주변보다 낮은 농로 바닥을 따라 바작바작 기다보면 긴장과 더위로 온 몸이 후줄근하게 쥐어짜이는 느낌이었다. 이런 농로의 교차점이나 생나무 울타리의 모서리에서 갑자기 독일군과 얼굴을 딱 맞닥뜨리는 경우도 흔히 있었다." 독일군은 이런 노르망디 특유의 지형적인 조건을 교묘히 이용하며 끈질기게 싸우고 있었고, 연합군 장병들은 이 답답하고 지루한 ㅓㅈㄴ투에 점차 진저리를 치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이처럼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로의 극에 달하게 되면 제일 먼저 군기가 무너진다. 너나없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술은 흔했다. 이 지방은 그 유명한 '팔바도스 와인'의 명산지였고, 자기네 앞마당에서 벌어지는 독일군과 연합군의 싸움을 마치 소닭보듯 구경하던 프랑스 농부들은 병사들이 요구하기만 하면 기꺼이 자신의 술창고에 쌓여 있던 술병을 내다 팔았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제공권이 완전히 연합군의 수중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독일 병사들 사이에 이런 농담이 퍼려 나갔다. "반짝반짝 은빛으로 빛나면 그건 미군기다. 거무스레한 위장무늬가 칠해져 있다면 그것은 영국기다. 그리고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틀림없이 우리 독일 공군기다." 대낮에 도로를 따라 이동하던 독일군의 차량행렬이 여지없이 하늘로부터 불벼락을 뒤집어써야 했기 때문에 독일군전차의 이동은 야간으로 한정되었다. 동부전선에서 종군했던 한 독일군 병사들의 회상이다. "내 평생 이런 이상한 전쟁은 처음이다. 영국군과 미군은 싸움을 모두 비행기에 맡겨버린 것 같았다. 아군의 전차가 한대만 발견되어도 최소한 10대 이상의 '야보'가 새까맣게 몰려와서 부근 일대를 완전히 초토로 만들어 버린다. 동부 전선에서 소련군과 싸울때는 그래도 인간과 인간의 싸움이었다. 그런데 이곳 서부 전선은 기계와 인간의 싸움이다." 견디다 못한 독일군의 전차들은 지하로 숨어 들었다. 캉을 둘러싼 북서부 전선에 전개한 그들의 과거에 전혀 해본 적이 없는 판이한 방식의 전투를 강요 받고 있었다. 울참한 생나무 울타리 뒤쪽에 모습을 감추고, 때로는 포탑만 남기고 차체를 땅속에 묻어버림으로써 기동력을 잃어버린 전차는 이미 전차가 아니었다. 특히 장갑 방어력이 약한 구식 4호전차들에게 이런 임무가 강요되었는데, 그것은 일종의 강철로 만들어진 대전차 포대이며 그들이 싸우는 방식은 대서양의 깊은 해저에서 싸우는 U보트 승무원들의 그것과도 흡사했다. 건초더미가 잔나무 가지등으로 철저히 위장을 마치고 나면 몇 시간이고 정성들여 캐터필러 자국을 지운다. 전차의 캐터필러 자국은 저공을 비행하는 연합군의 야보를 똑바로 자신들의 머리위로 끌어들이는 절호의 표식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생나무 울타리 사이나 숲속에 은신한 1대의 전차는 그대로 1개 전초부대의 중핵이 된다. 전차안에서 승무원들은 유일하게 잠망경을 통해서만 아름다운 여름날의 전원을 접촉할 수 있으며, 공기가 잘 통하지 않은 전차의 실내는 후덥지근하고 짜증스럽다. 이윽고 시골길 저편에서 흙먼지가 피어 오르면 나른하게 늘어져 있던 전차병들 사이에 일순 생기가 되살아난다. "온다! 영국군이다" 좀 떨어진 숲그늘에서 쉬고있던지휘관이 줄달음을 쳐오면서 외친다. "조준, 맨 선두전차" 포수가 마른 침을 한번 꿀떡 삼키며 긴장한다. "발사" 요란한 포성과 함께 포탄이 작렬한다. 하지만 흙먼지가 걷히자 영국군의 영국군의 전차는 그대로 달려오고 있다. "밧나갔다. 철갑탄 재장진." 영국 전차도 이쪽의 위치를 눈치챘다. "조준, 거리 300m" 적전차의 포탑이 이쪽을 향해 회전하고 있다. "발사" 굉음과 함께 전차가 한번 펄쩍 튀어오르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있을 틈조차 없다. 한번 위치가 노출된 전차는 즉시 그 자리를 떠나 새로운 매복지에 은신하지 않으면 곧 야보가 새까맣게 몰려오기 때문이다. 그것은 독일 전차부대의 장기라고 할 수 있는 전격전과는 전혀 다른 싸움의 방식이었고, 노르망디의 독일군은 그런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 G o n g m u d o h a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G o n g k y u n g d o h a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T a h a i e s a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D a n g t a e g o n g h a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