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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Asteau (언젠간학생)
날 짜 (Date): 1998년 5월 14일 목요일 오전 11시 05분 58초
제 목(Title): 녹색의 지옥 - 노르망디 34 - (3)


"만일 연합군의 대 진공작전이 개시된다면, 그 최초의 24시간 안에 승부가 
결정된다."고 했던 롬멜원수의 예언을 옳았다.
뒤늦게 출동명령을 받은 '쿠르트 마이어' 소장의 제12 SS기갑사단은 한시라도 빨리 
전선에 도착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지만, 그들은 아직도 '생로'와 '카랑탕'을 잇는 
도로위에서 꿀물거리고 있었다.
만약 이 전차들이 한나절만 더 빨리 오마하 해안에 도착했더라도 미군 상륙부대는 
지리멸렬을 면치 못했을테고, 거기서 서쪽으로 한참 떨어진 유타해안의 상륙부대 
역시 완전히 고립되거나 전멸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부대가 캉부근에서 제21장갑사단의 잔존전차들과 합류한 것은 6월 7일 
저녁 무렵이었고, 이미 그 시각 연합군은 해안을 완전히 벗어나 캉과 파이유를 
압박하고 있었으므로 이제 독일군은 반격을 시도하기보다는 어떻게든 캉 일대를 
지켜내는 일이 더욱 시급한 과제가 되어 있었다.
반격을 구상할 틈도없이 제12 SS기갑사단은 캉 서쪽의 '카르피케' 비행장을 목표로 
쇄도해 들어오는 캐나다군 제3사단과의 전투속으로 휩쓸려 들어가 버렸고, 
제21장갑사단은 레비지를 영국군에게 내어주고 캉으로 되밀려 들어갔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양편의 군대가 마구 뒤섞여 있던 전선이 차츰 정리되기 
시작했다.
독일군은 캉을 중심으로 견고한 방어서을 형성했고, 6월 8일에는 바이유가 
연합군에게 함락되었다.
독일 제84군단의 정보장교 '프리드리히'소령은 '생로'의 사령부 상황실에서 그 
소식을 들었다.
전화를 걸어온 것은 바이유에 있던 독일여성 보조부대의 한 무전수였다.
"지금 영국군 전차부대가 마을 광장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들어보세요."
그 무전수는 전화기를 창밖으로 내밀었고, 곧이어 수화기를 통해 연합군 전차의 
우렁찬 굉음이 생생하게 들려왔다.
바이유를 점령한 영국군은 처음으로 해방된 이 프랑스 도시의 주민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더 타임스'지의 종군기자 '앨런 무어헤드'는 이 도시가 노르망디 지방의 다른 
마을에 비해 거의 전화(戰火)를 입지않은 깨끗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주민들도 의외로 밝고 활기에 차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평상시와 조금도 다름없이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 한 호텔을 찾아내어 
그곳에서 전차대대장 '스탠리 크리스토퍼슨' 중령과 함께 늦은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사람좋게 생간 뚱뚱한 그 집의 안주인은 갑자기 들어선 이 영국인들을 보고도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이 태연하게 점심상을 차려 내왔다.
"고급 '아르마냑' 브랜디까지 곁들여지 그 점심은 지난 수년간 런던의 피카딜리 
번화가에서도 구경할 수 없을 만큼 썩 괜찮은 것이었다. 점심값을 치르면서 보니 
안주인의 돈궤짝안에 마르크 군표가 수북히 들어있었다. 그날 아침까지도 독일군 
장교들이 그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했던 것이었다."

전차교도 사단을 덮친 불운
아프리카 전선에서 롬멜원수의 참모장을 지내기도 했던 '프릿츠 바이에를라인' 
장군이 지휘하는 전차교도사단은 독일 육군 전차병 학교의 교관과 생도들로 편성된 
부대로, 250대 이상의 최신형 전차들로 무장하고 있어 이 무렵 독일군 기갑부대 
중에서도 최정예 부대중의 하나였다.
노르망디에서 160km나 떨어진 '샤르트르'에 주둔하고 있던 이 부대는 연합군의 
상륙이 개시되던 첫날 오후 늦게 주둔지를 출발했지만, 부대의 전진은 
지지부진하기만 했다.
전차는 물론 제 힘으로 굴러갈 수 있는 물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래 자동차나 
열차처럼 먼 길을 자력으로 이동하는 교통수단으로 만들어진 물건은 아니다.
이 정도의 먼 거리라면 전차를 전용화차에 실어 철도를 통해 이동시키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전차 교도사단은 그것이 불가능했다. 연합군의 진공소식이 전해지자 
프랑스 전역에서 레지스탕스 대원들이 일제히 봉기를 시작했고, 이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투쟁수단중의 하나가 철도를 파괴하여 독일군 병력과 물자의 수송을 
방해하는 일이다.
D데이 당일 하룻밤 사이에만도 프랑스 전역에서 약 950개소의 철도가 파괴되었고, 
그 때문에 전차 교도사단은 이 먼길을 전차 스스로 이동하는 자력행군을 강행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던 것이다.
샤르트르에서 노르망디로 이르는 도로는 대부분 비포장이었고, 이런 길에서 전차의 
속도는 시속 20km 남짓으로 뚝 떳어질 뿐 아니라 캐터필러가 파손되는 등의 고장도 
빈발했기 때문에 최소한 두세시간에 한번씩은 전진을 멈추고 전차의 상태를 
점검해야 하므로 그들의 속도는 한없이 느린 것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이처럼 전차에게 있어서 160km는 매우 먼 거리이지만 항공기로는 불과 한시간도 
안걸리는 짧은 거리다. 맢서 싸울 상대가 사라져버린 무스탕과 썬더볼트, 그리고 
타이푼이나 스피트파이어 같은 연합군의 전투기들은 이 무렵 대부분 이 지상부대를 
지원하는 공격기와 같은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고, 이처럼 지상 폭격임무를 
수행하는 전투기를 가리켜 독일군은 야보(Jabo:전투 폭격기)라고 부르고 있었다.
전차교도사단이 주둔지를 출발할 때부터 머리 위를 맴돌기 시작한 연합군의 
야보들은 노르망디에 가까와 질수록 점점 더 맹렬한 공습의 열기를 더해갔다.
"전방에 저공비행하는 적기"
선도 전차에 배치된 경계병의 외침이 들릴 때마다 허둥지둥 길 양편의 가로수 그늘 
밑으로 몸을 숨겨야 하는 전차대열의 행진은 하없이 늘어지기만 했고, 사단장 
바이에를라인 장군 역시 이런 고역에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바이에를라인의 전속부관 '하르테겐' 대위는 사단장의 전용차가 6월 8일 
하룻동안에만도 열반이나 이런 공습을 받아야 했던 경험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3대의 적기가 우리의 정면을 향해 똑바로 내려 꽂히고 있었다.
운전병 카르토이스 하사가 급 브리에크를 밟았고, 장군과 나는 길가의 도랑속으로 
몸을 날렸다. 적기의 제1탄이 자동차를 꿰뚫기 직전에 운전병도 가까스로 
탈출했지만, 자동차는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나는 눈앞에 보이는 콘크리트 하수관 안으로 기어 들어갔고, 카르토이스 하사가 
장군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 장군님, 차에서 떨어지십시오. 위험합니다! - 그 
순간 적기가 되돌아오면서 기관총을 쏘아댔다.
도로를 따라 곧게 일직선을 이루며 흙먼지가 피어 올랐고, 운전병이 길 옆 
도랑으로 데굴데굴 굴러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적기가 물러간 후에 그를 안아 들었을 때는 가슴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아 
오르고 있었다. 바이에를라인 장군도 파편을 맞아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그는 
애써 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악전고투를 치르면서 노르망디를 향해 달려오고 있던 전차 교도사단이 그들의 
도착을 학수고대하고 있던 우군과 합류했을 때는 이미 반격의 기회를 완전히 놓쳐 
버린 뒤였고, 결국 이 부대도 역시 다른 수많은 독일군과 마찬가지로 보리밭과 
수풀, 누런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노르망디의 시골길에서 슬금슬금 사라지고 마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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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 o n g m u d o h a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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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 a n g t a e g o n g h a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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