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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Asteau (언젠간학생)
날 짜 (Date): 1998년 5월 14일 목요일 오전 11시 05분 27초
제 목(Title): 녹색의 지옥 - 노르망디 34 - (2)


포히팅거 장군은 날이 어두워지자 다시 50여대의 전차를 긁어모아 완전히 영국군의 
수중에 떨어진 페리에르 고개의 탈환을 시도했다.
"놈들은 어떻게든 캉을 수중에 넣으려 할 것이고,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이 
고개마루를 단단히 틀어쥐고 있어야만 한다."
장군의 이런 판단을 적절한 것이었고, 그것은 제21장갑사단이 이 공세의 첫날 밤에 
시도해 볼 수 있었던 마지막 반격의 기회였다.
하지만 이런 상황분석이나 용병술 이외에도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또 하나의 
법칙이 바로 우연(偶然)이다.
오펠른 대령이 이끄는 독일 전차들이 페리에르고개의 영국군은 막 덮치기 직전, 
무서운 우연이 그들의 의도를 좌절시키고 말았다. 하늘을 완전히 뒤덮은 항공기의 
대군이 그들의 머리위로 날아들었던 것이다.
본능적으로 비행기의 그림자만 보면 얼어붙는 속성을 가진 전차대열이 딱 멈추어 
섰다.
그것은 동쪽의 오르느가 기슭에 있는 영국 제6공수사단을 향해 투입되는 
증원병력과 물자를 실은 수송기와 글라이더의 대편대였다.
글라이더들은 검은 밤하늘을 유유히 미끄러져 내려왔고, 바로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는 그것을 향해 전차포탑에 설치되어 있던 대공기관총을 쏘아댄 것이 
화근이었다.
수송기와 글라이더 편대를 호위해 왔던 연합군의 '무스탕'과 
스피트파이어'전투기가 얼씨구나 하고 전차를 향해 달려 들었다.
"양쪽의 군대가 뒤섞인 어둠속에서 차라리 가만히 있었더라면 적기의 조종사들도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하여간 그런 끔찍한 공습은 처음 받아보는 
것이었다."
엄청난 규모의 글라이더와 항공기의 위세에 기가 꺽이고 상당한 피해를 입은 
독일전차대는 죽을 힘을 대히 꽁무니를 뺐고, 전날 밤부터 거의 20시간 이상 
필사적인 사투를 계속하고 있던 제6공수사단은 이 대규모의 증원병력으로 인해 
일거에 생기가 되살아났다.
독일 제21장갑사단의 전차소대장 '빌헬름 마이어'중위는 그 광경을 이렇게 
증언한다.
"그것은 마치 해상과 영국군 공수부대의 교두보를 이어주기 위해 하늘에 걸쳐놓은 
거대한 다리 같았다. 병력과 물자를 가득 실은 그 날개달린 나무 상자들이 꼬리를 
물고 끝도 없이 날아오는 무서운 광경을 지켜보면서, 나는 이 싸움이 이미 
결판났다는 것을 직감했다."
D-데이 첫날 밤이 다가기도 전에 제21장갑사단이 보유하고 있던 전차 146대는 
76대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캉을 사수하고 있었고, 이제 날이 밝으면 후방으로부터 다른 
아군부대들이 달려와 싸움에 합류할 것이다.

지상에서 가장 길었던 하루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었다.
슈롭셔 경보병대대와 스태포드셔 요우먼리 기병연대처럼 내륙으로 상당한 거리를 
진격하는데 성공한 부대가 있는가 하면, 오마하 해안의 미군처럼 밤이 깊어질 
때까지도 아직 해안을 벗어나지 못한 부대도 있었다.
곳곳에서 연합군과 독일군이 마구 뒤섞인 혼전이 계속되고 있었지만, 그 시각 
아이젠하워 장군의 연합군 최고 사령부는 온통 축제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15만이 넘는 대병력을 상륙시폈지만 전사자는 불과 2,500명 정도이며 부상자와 
포로, 행방 불명자를 모두 합쳐도 이 공세의 첫날에 연합군이 입은 피해는 약 
12,000명 정도에 불과하다.
연합공군은 이날 하룻동안 약 11,000회 이상의 출격을 기록하며 노르망디 일대의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했지만 격추된 기체는 단 한대도 없었다. 그에 반해 독일 
공군은 불과 319회우 출격을 기록했지만 그조차도 대부분이 격추되거나 상륙부대에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 못하고 격퇴되었다.
하늘을 장악하게 되면 지상군의 전력이 3배로 강화된다는 연합군 사령부의 계산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최초 상륙단계에서 최소한 1만명 이상의 전사자가 발생할 
것으로 계산했던 연합군으로서 그것은 믿기 어러운 대성공이었다.
독일군 수비대가 일소된 해안을 통해서 제2차 상륙부대가 속속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일찌감치 교두보가 확보된 유타해안을 통해서 이날 정오경에 상륙을 마친 미군 
제4보병사단과 같은 후속부대 장병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상륙작전은 정말 
싱겁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그처럼 혹독한 훈련을 반복하며 온 신경을 집중시켰던 상륙의 순간이 "그냥 배에서 
내린 다음 모래밭에 줄지어 서서 점호를 받는 것"으로 끝나버리자 그들은 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다만 해안 가득 흩어진 상륙용 주정의 잔해와 불타버린 전차, 그리고 아직도 
한곳에 모두 집결되지 못한 채로 곳곳에 나딩굴고 있는 시체들이 몇 시간전에 
이곳에 상륙한 전우들이 치루어야 했던 끔찍한 경험을 말해 주고 있지만, 요컨데 
그것을 직접 당해보지 않고서 그 상황을 모두 이해핬 수 없는 법이다. 상륙을 
마칠때까지 이 사단에서는 불과 1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그 대부분은 미처 
제거되지 못한 독일군의 지뢰에 의한 것이었다.
그들은 독일군 포로중의 상당수가 십대의 어린 소년들과 60대의 늙은이들이라는 
사실에 놀랐고, 각 부대의 정보장교들은 도저히 알 수 없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독일군 포로들을 심문하느라고 쩔쩔 매고 있었다. 병력이 부족했던 독일군은 
다수의 프랑스인, 체코인, 폴란드, 그리고 리투아니아인과 전향한 소련군 
포로들까지 이 노르망디 수비에 동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이 전쟁도 곧 끝나겠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린 병사들도 
많았지만, 거기서 불과 수km 떨어진 곳에서 총검을 앞세우고 지하실 하나하나를 
뒤져가며 격렬한 전투를 계속하고 있던 또 다른 병사들은 독일군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제1보병사단의 '조지 에반스'일병은 오마하 해안에서 불과 1km 남짓 전진한 
참호벽이 기대어 고향의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저는 아직 살아있고 건강하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독일군은 정말 악귀처럼 
집요하게 싸움을 걸어옵니다. 오늘 하루가 다른 때의 10년처럼 길게 느껴집니다."
'지상에서 가장 길었던 하루'가 점점 저물어 가고 있었다.

바이유 함락
D+1데이의 아침 해가 떠올랐다.
해안을 고철 처리장과 같은 모습으로 변모시켜 놓은 각종 장비의 잔해나 
모래언덕의 참호 속에서 잠깐이나마 눈을 봍을 수 있었던 병사들은 그래도 
행운아였다.
해군의 구축함들은 밤새도록 연안을 휘젓고 다니며 함포사격을 퍼부어 대었고, 
전시동원된 미군연안 경비대원들과 공병대원들은 밤을 홀랑 지새우며 해안의 
장애물과 파괴된 차량의 잔해를 제거하여 후속부대와 물자가 통과할 통로를 
개척하는 작업을 계속했다.
그렇게도 애간장을 졸이게 했던 지난 며칠간의 악천후는 깨끗이 걷히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초여름날이 시작되고 있덨다. 새파란 하늘을 벼갱으로 무리를 지어 
남쪽을 향해 날아가는 전투기의 낮은 폭음이 맑은 아침공기를 가르고 있었다.
이 6월7일의 이른 아침에 연합지상군 사령관 몽고메리 대장이 영국 군함 
'포크너'를 타고 느로망디 해안에 도착했다.
함상에서 제1군 사령관 브래들리 중장, 그리고 마일즈 템프시 2군 사령관과 간단한 
회의를 가진 그는 승리를 확신했다.
작전은 대체로 예정에 따라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영국군은 '바이유'와 캉 두 도시를 목표로 독일군을 모아부치고 있고, 그 한편 
치열한 악전고투 끝에 새벽녘에야 간신히 오마하 해안을 빠져나온 미 제5군단과 
그들 좌익의 영국군사이에 연결이 막 이루어지고 있었다.
다소 불안한 것은 코탕탱 반도의 미군이었다.
오마하 해안에서 예상외로 격전이 계속됨에 따라 상륙부대의 진격이 늦어졌고, 
먼저 그곳에 투입된 미군의 2개 공소사단이 거듭되는 독일군의 반격이 밀려 무너져 
버리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아닌게 아니라, 그 시각 '리지웨이'장군의 제82공수사단이 처해 있는 상황은 
모고메리의 그런 염려보다도 훨씬 더 나빴다.
그들은 벌써 이틀밤을 꼬박 뜬눈으로 지새며 끈질긴 싸움을 계속 하고 있었고, 
탄약도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허기와 피로에 지친 병사들은 총을 쏘면서도 꾸벅꾸벅 졸았고, 가까운 거리에서 
독일군의 포탄이 작렬하면 펄쩍 놀라 눈을 떴다.
리지웨이 장군의 지휘소에서 불과 100여미터 앞까지 육박해온 독일군을 향해 
사단장까지 나서서 카빈소총을 쏘아대고 있는 판이었고, 병력은 사단 총수의 
30%에도 못미쳤다.
이런 난국은 이날 정오경에 후속부대가 투입되기 시작하면서 간신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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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 o n g m u d o h a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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