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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Asteau (언젠간학생)
날 짜 (Date): 1998년 4월 25일 토요일 오후 01시 46분 16초
제 목(Title): 지상에서 가장 길었던 하루 33 - (3)


그래도...파드깔레다!
6월 6일의 오후로 접어들면서 각 해안에서 연합군은 차차 전투의 주도권을 잡아가기 
시작했지만, 그 시간까지도 독일군 지휘부는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독일군 지휘관들이 영국군의 상륙 사실을 알게된 것은 이미 그들이 해안 지대를 
완전히 돌파하고 내륙을 향해 진격을 시작한 아침 9시경이며, 그보다 먼저 
이루어진 유타해안의 미군 상륙을 보고 받은 것은 11시가 다 되어서였다.
그리고 마침내 이 노르망디 해안에서 연합군의 대규모 진공작전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은 런던과 워싱턴에서 동시에 발표된 '연합군, 프랑스 해안에 
상륙'이라는 뉴스 방송을 통해서였다.
이런 기막힌 정보의 단절 상태를 불러온 것은 연합군의 공군기들이 주도면밀한 
사전계획에 따라 독일군의 통신 시설을 집중적으로 때려부셨고, 또 프랑스 
'레지스탕스' 저항운동 대원들이 독일군의 통신라인을 파괴하는 등의 방해공작을 
대대적으로 전개했기 때문이지만, 이처럼 적국의 뉴스방송을 통해 진공작전을 알게 
되었다는 그 자체가 필연적으로 또 다른 의심을 불러왔다.
OKW(국방군 총사령부)의 통수부장 알프레드 요들 상급대장은 그 뉴스방송이야말로 
자신의 판단을 뒷받침해 주는 좋은 증거라는 확신을 굳혔다.
"어디 생각해 보라! 귀관들 같으면 우리가 어리를 공격할 것인지를 방송까지 
해가며 동네방네 떠들어대겠는가? 이것이야말로 연합군의 주공이 파드깔레로 
향하고 있으며, 노르망디는 그것을 위장하기 위한 양동작전이라는 사실을 더없이 
잘 드러내 보이고 있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무리 이 무렵의 요들이 야전 지휘관이라기보다는 히틀러의 군사고문과도 같은 
직책에서 성격의 나쁜 일면 - 고집불통 - 만을 더욱 키워가고 있던 중이라 
하더라도, 노르망디에 상륙한 연합군의 규모에 대해 정확한 보고만 받았더라도 
이런 억측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시각에도 노르망디에 상륙한 연합군이 도저히 위장을 위한 
견제행동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병력이고, 따라서 그것은 의심할 바 없이 
주공(主功)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적이 어느 방향에서 공격해 올지 모르는 방어군은 아무래도 병력을 넓은 지역에 
골고루 분산시킬 수 밖에 없고, 그에 반해 공격자는 그들이 가진 힘을 오직 
한방향으로 강력하게 집중시킨다는 것은 전술의 기초상식이다.
그리고 또 이것이야 말로 모든 조건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서있는 
방어군을 위협하는 유일한 전술상의 함정이며, 병법의 모순이기도 하다.
특히 이 노르망디 해안처럼 길게 늘어선 방어진지가 몇개 장소에서 일시에 시작된 
공격에 의해 토막토막 허리가 잘리게 되면, 전체적인 전황과 적의 세력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해진다. 병사들은 그저 눈앞에 보이는 
적을 향해 총을 쏠 뿐 해안 저편에서 벌어지는 일같은 것에는 도저히 신경을 쓸 수 
없게 되고, 특히 이처럼 전선의 지휘통신이 단절되고 나면 후방에 앉아있는 
지휘관들이 그런 보고들을 종합하여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해지고 마는 것이다.
다만 몇사람, 경험과 직감에 의해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깨닭고 있던 지휘관들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
그날 아침 남부 독일 헤링겐의 자택에 있던 롬멜 원수는 오전 10시경에 참모장 
시파이델 장군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통해 "노르망디가 수륙양면으로터 공격을 
받고 있다"는 보고를 받는 순간 사태의 전말을 이해했다.
수화기를 내려 놓는 이 백전노장의 손이 와들와들 떨리고 있었고, 부관 
'헬무트'중위는 장군이 그처럼 절망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바보... 우리가 바보였어. 싸움은 이미 졌다. 적을 물가에서 저지하지 못했다면 
그 싸움은 이미 진거나 마찬가지야."
롬멜은 히틀러 총통과의 면담계획을 취소하고 즉시 라로스기용의 사령부로 
귀대하기 위해 출발했다.
같은 시각.
잠에서 깨어난 히틀러는 요들장군과 육군 참모총장 '빌헬름 카이텔' 원수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하지만 잠옷바람으로 침대에 걸터 앉은채로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총통의 결론은 
"좀더 사태가 명확해 질때까지 기다려 보자. 전략 예비군을 모두 노르망디로 
투입해 버리는 것은 적의 기만행동에 말려드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 대신 히틀러가 취한 유일한 조치는 그들이 가진 '비밀병기'를 런던을 향해 
발사하라고 명령한 것이었다.
그 비밀병기란 바로 장거리 무인 비행포탄 'V-1'이었다.
이 독재자는 오직 연합군의 독일본토 폭격에 복수하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이 
기상천외한 병기의 개발을 진행해 왔고, 이것이야말로 수세에 몰린 전세를 일시에 
만회하고 마침내 독일에 승리를 가져다줄 비장의 카드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때문에 이 신무기의 이름조차 '복수'를 뜻하는 Vergeltungs의 머릿글자를 때서 
V-1이라고 명명해 놓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장군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것은 얼마전에 그의 명령에 따라 개발이 착수되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던 100톤짜리 초거대 전차의 예에서 보았던 것처럼, 유달리 비밀무기 때위에 
관심이 많은 히틀러의 아마추어 과학도적인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실전적인 효과는 
지극히 의심스러운 "총통의 값비싼 장난감"에 불과하다는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하여간 명령은 명령이었으므로 요들 장군은 이 신무기의 발사를 명령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명령은 시행되지 않았다.
영국을 겨냥하여 주로 도버해협의 프랑스 해안에 건설되고 있던 60여개소의 V-1 
발사기지는 그 무렵에도 건설공사가 진행중이었고, 공사를 마친 7개소의 기지도 
부품 부족과 같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이 신무기를 당장 런던을 향해 날려보낼 수 
있는 형평이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장거리 순항 미사일의 원조와도 같은 이 V-1 로켓의 데뷔전은 히틀러가 
전선의 현실과는 거리가 먼 공허한 명령을 쏟아내기 시작했다는 또 하나의 
사례만을 남긴 채로 그 열흘뒤인 6월 16일로 미뤄지게 된다.

그러는 사이에도 양측 모두에게 금쪽처럼 귀중한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고 있었다.
오후 4시경, 동맹국인 헝가리의 수상과 함께 늦은 오찬을 마친 총통이 마침내 
요들장군을 불러 첫 명령을 하달했다.
"아무래도 무슨 조치를 취하긴 해야 할 것 같군. 전략 예비군으로 남겨둔 2개 
기갑사단을 출동시키시요."
그것은 바로 그늘 롬멜 원수가 총통을 만나 자신의 휘하로 돌려줄 것을 간청해 볼 
참이었고, 또 새벽부터 룬트슈테트 원수가 몇차례나 출동허가를 효청했던 제 12 
SS기갑사단 '히틀러 유겐트'와 전차 교도사단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파리 근교의 '루앙'과 '류르트르'에 주둔하고 있던 이들 기갑사단에 출동 명령이 
떨어진 것은 오후 4시 30분 경이었다.
독일군이 자랑하는 최강의 전차 '다이거'의 엔진이 요란스런 소리를 내며 시동이 
걸렸지만, 그 시각 연합군 상륙부대는 이미 해안을 완전히 제압하고 내륙을 향해 
진격을 계속하고 있었다.
아무리 짧게 잡아도 이 전차들의 출동은 최소한 12시간 이상 늦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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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 a n g t a e g o n g h a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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