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agasi (단물총각) 날 짜 (Date): 1998년03월24일(화) 22시14분26초 ROK 제 목(Title): [발지전투] 공세를 위한 준비 히틀러는 반격 목표지점으로써 급히 유동하는 서부전선의 몇 개 전투지구를 검토하고 있었다. 미군과 영국군은 급격한 돌파작전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리라고 생각되었으므로, 장소의 선택은 매우 중요했다. 9월초에 그는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에 걸친 아르덴느 지역을 돌파하여 공격하기로 최종적으로 결정햇다. 이 아르덴 지역은 1914년과 1940년에 독일 침공군이 통과한 적이 있는 유서 깊은 루트로서 지형이 험하기로 유명했다. 울창한 숲에 덮이고 파도처럼 기복하는 연산은 깊은 골짜기와 바위투성이의 협곡으로 패여잇었다. 그러나 독일군은 9월 초순에 그 지역으로부터 철수할때까지 4년 간이나 거기에 주둔하고 잇었다. 따라서 부대장들은 장갑사단의 급진이 가능한 주요 도로에 관해서는 그 굴곡까지 손바닥 보듯 환히 알고 있었다. 장소선정과 함께 공세에 필요한 물자와 병력을 쥐어짜내는 작업도 병행되었 다. 전쟁이 개시되고 독일군은 총 336만이 사상하거나 행방불명되었다. 독일군 의 최정예부대 몇 개는 소모가 지나쳐서 원형을 알아 볼수 없을 정도로 축소 되어 버렸다. 긍지높던 교도장갑사단은 원래 1만 7200명의 병력과 190대의 탱 크로 구성되어 잇었는데, 지금에 이르러서는 총병력이 보병중대 2개, 약간의 낙오병, 그리고 5대의 탱크분이었다. 2만의 병력과 238대의 탱크로 구성되어 있던 제2SS 장갑사단도 이제는 2650명의 병사와 움직일수 있는 탱크 1대로 축소되어있었다. 독일공군은 지나친 소모로 이미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못하 는 상황이었으며, 군수산업, 통신시설, 철도, 고속도로등은 연합군의 폭격으로 파괴당하고 잇었다. 이런 병력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일 인력을 속속들이 훑 어내는 일련의 조치를 단행했다. 산업계에서 잉여노동력이 차출되었으며 학교 와 극장을 폐쇄하고 정부기관에서 불필요한 인력은 전부 군으로 보냈다. 군내 부에서는 히틀러가 "후방의 돼지새끼들"이라고 부르는 관리,보급관계 요원들 이 일선 전투병력으로 배치되기 시작했다. 16 - 60세의 남자에게는 모두 병역 의 의무가 주어졌다. 필요없는 공군과 해군의 인력들도 전부 육군으로 배치되 고 있었다. 이처럼, 샅샅이 훑어낸 건강한 청년을 모아서 25개 사단을 만들기로 했고 히 틀러는 그것을 "국민 척탄병"이라 명명했다. 각부대의 편성은 초기 독일 보병 사단의 규모(1만 7000명)보다는 작아서 1만 정도였다. 그래서 전력의 부족을 보완하기위해 자동화기의 장비율을 높였다. 그 중에는 잡아째는 듯이 브르르 릅 하는 총성 때문에 미군이 버프(burp)라고 부른 단기관총도 포함되어있었 고, 우수한 휴대용 대전차포인 판저 파우스트를 대량으로 지급받았다. 국민 척 탄병외에 히틀러는 다시 10개 장갑사단을 창설하고 각 여단을 각각 탱크 40대 를 핵으로해서 편성하라고 명령했다. 이 여단에는 연합군의 공습하에서도 기 록적인 수량으로 생산중인 신형 중형 팬더전차와 타이거전차가 우선적으로 배 치되었다. 이러한 수개 장갑부대와 국민 척탄병 사단들이 반격에 투입된다. 히 틀러는 마지막으로 "요새"보병대대 100개 부대를 편성토록했다. 이 보병부대 는 나이 많은 병사들로 구성된다. 이들의 임무는 "서부 방어선"을 지키는 것 이다. (이들은 대부분 그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게 된다.) 또한 실전경험이 부 족한 이들 공격병력을 지원하기위해 동부전선으로부터 백전노장의 장갑사단을 은밀히 뽑아내 오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공세를 위한 준비는 히 틀러의 머리에서 나와 9월 초까지 차근차근 준비되고 있었다. @이런걸 생각하다니...히틀러는 역시 대단하네요....정신병자인가....천재인가...정말 궁금하네.... @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in time......like tears in the rain.... Time to di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