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Asteau (언젠간학생맧) 날 짜 (Date): 1998년03월11일(수) 16시18분51초 ROK 제 목(Title): 절대군구, 칼을 뽑다! 29 - (2) 이튿날 새벽 무사히 목표 해상에 진입한 선단은 해면에다 상륙용 주정들을 내려 놓았고, 최초 선발대로서 독일군의 해안포대를 제압하는 임무를 담당한 코만도 대원들을 가득 태운 주정들이 해안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을때 그 비극은 시작되었다. 제3코만도의 일원으로 상륙용 주정바닥에 잔뜩 웅크리고 있던 '론드리 앨리스'하사는 갑자기 정면에서 불쑥 모습을 나타낸 검은 배 그림자를 보고 기겁을 했다. 다음 순간, 검은 밤바다를 환하게 밝히는 조명탄이 날아 올랐고, 그 불빛속에서 최소한 7~8척의 독일 함정이 자신들의 진로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곧 이어 중화기의 속사음이 귓전을 때렸다. 그들은 우연히, 정말 우연히도 그곳을 통과하던 독일의 화물선과 그것을 호송하던 3척의 무장 호위함에 똑바로 걸려 들었던 것이다. 합판과 얇은 알루미늄 판으로 만들어진 상륙용 주정에는 이들에 맞설만한 중화기가 없었고, 순식간에 벌집이 된 주정 몇척이 침몰했다. 바로 그때 상륙 부대를 호송해온 영국 해군의 구축함이 사격을 개시했고, 이 순식간에 벌어진 '해전'으로 인해 그들이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기습의 효과는 일찌감치 사라졌다. 독일군의 '베르느발' 해안포 진지를 제압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던 제3코만도의 잔존병력들은 새벽 5시경에 가까스로 해안에 당도했지만, 그들은 이미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기다리고 있던 독일군의 십자포화 속으로 뛰어든 셈이었다. 그들은 해안포대에는 접근조차 못해본 채로 해변에서 철저하게 유린당했다 - 시체위에 시체가 쌓였고, 붉은 피로 물든 모래밭 위로 파도가 넘실거렸다. 그 무렵 또 하나의 하안포대인 '바렝지빌'로 향했던 제4코만도 역시 그들의 존재가 백일하에 노출되어 있었지만, 스코틀랜드 귀족출신의 부대장 '로뱃 프레이저' 남작 중령의 탁월한 지휘에 힘입어 그나마 6문의 포를 파괴하는데 성공했고, 이 작은 '성공'이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더 큰 화를 부르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정상적이고 지각있는 판단에 의한다면 당연히 그쯤에서 작전을 취소하고 줄행랑을 쳐야 마땅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해상의 함대를 향해 퍼부어질 독일군의 해안포대가 침묵하자 5,000여명의 캐나다군으로 구성된 상륙부대 본대의 상륙이 예정대로 강행된 것이다. 이 한바탕의 난리법석이 지난 후에도 독일군 수비대가 그냥 새벽잠을 자고 있을 턱이 없다.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퓌스' 해안의 백사장에 접안한 상륙용 주정의 램프가 열리는 그 순간, 캐나다군은 온갚 중화기로 무장한 독일군 수비대의 '사격 연습표적'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예정에 없던 소란으로 귀중한 시간을 낭비해버린 바람에 그들이 해변에 발을 디딘 순안에는 이른 아침의 여명에 또렷히 모습을 드러낸 그들의 머리위로 소총과 중기관총, 박격포와 포탄이 빗발처럼 날아 들었다. 벌레 한마리 몸을 숨길 곳이 없는 해변의 백사장에서 캐나다군은 문자 그대로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지옥으로 화한 백사장을 50m쯤 죽을 힘을 향해 달리면 바위절벽 밑에 도달할 수 있고, 미친듯이 총탄을 퍼부어대는 독일군의 기관총좌 바로 아래쪽에 위치한 그곳은 그 사격으로부터 완벽한 사각을 이루는 곳이기도 했다. '맥다니엘 로이' 병장은 몇명의 재빠른 동료가 이미 그곳에 달다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용기를 내어 앞으로 달려 나갔지만, 때마침 날아온 기관총탄이 그의 두 다리를 날려 버렸다. 그는 장작개비처럼 그 자리에 쓰러졌고, 연이어 날아온 총탄은 그의 오른 손을 또 다시 분질러 놓았다. 그는 방향을 돌려 남아있는 한팔을 이용하여 필사적으로 해변을 향해 기어 가다가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런데 더 기막힌 사실은 그 무렵 해상에 떠있던 구축함 '갈프'에서 대기하고 있던 지휘관들은 해변에서 벌어진 이 아비규환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독일군의 탄막사격이 얼마나 집요했던지, 무전병이 짊어지고 다니는 소형 무전기 한대조차 남기지 않고 깡그리 파기되어 버리는 바람에 상륙부대는 자신들의 머리위에 덮친 재앙을 지휘부로 보고할 수조차 없었던 것이고, 또 함대는 함대대로 자신들의 위치를 감추기 위해 해상에 터뜨려 놓은 연막탄으로 인해 해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관측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전혀 상황을 판단하지 못한 지휘부로서는 작전을 속행할 수밖에 없었고, 처음으로 실전에 참가하는 27대의 처어칠 전차와 후속 상륙부대를 추가로 발진시켰다. 해안이 가까와 졌을때 캘거리 전차연대와 에섹스 스코티시 보병연대의 병사들이 발견한 것은 한편의 지옥도 그 자체였다. 몇대의 전차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해변으로 기어 오르자 빗발치는 기관총에 대굴대굴 굴러 다니던 중상자들이 순식간에 전차뒤로 몰려 둘었고, 끽끽거리는 소리를 내며 어렵사리 몇발자국을 전진하던 전차들은 곧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거대한 대전차 용치(龍齒)장애물에 봉착하고 말았다. 그런 그들을 향해서 독일군의 대전차포가 불을 뿜었고, 에섹스 스코티시 연대의 보병들은 해변에 발을 딪는 순간 이미 30~40 퍼센트의 병력을 상실하고 있었다. 해변에서 들려오는 치열한 포성과 총성을 듣고 기습작전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은 캐나다군 사단장 '존 해밀턴 로버트'장군은 '퓨질리어 몬트리올' 연대와 영국해병 코만도 부대를 추가로 투입했고, 해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 학살극은 실체가 알려진 것은 바로 이들에 의해서였다. 영국 해병 코만도 대대의 지휘관 '필립스' 대령은 타고 있던 주정이 두터운 연막층 밖으로 빠져 나오자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악몽과 같은 광경에 온몸이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대령은 자신들이 불과 수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연막에 휩싸인 채로 부하들을 의미없이 호랑이 아가리 속으로 차례차례 밀어넣는 일을 벌써 네시간째 반복해 왔다는 사실을 단숨에 알아 차렸다. 그는 상륙용 주정에서 벌떡 일어서서 뒤따라 오고있는 후속 주정들을 향해 필사적으로 고함을 질렀다. "모두 돌아가! 방향을 돌려!" 그때 해변에서 날아온 적탄이 그의 등을 꿰뚫었고, 그는 쓰러지면서도 부하들을 향해 되돌아가라는 손짓을 반복하다가 마침내 절명하고 말았다. 그제서야 연막뒤에 웅크리고 있던 함대에서도 사태의 진실을 깨달았다 - 작전은 완전히 실패했다. 이제 한시라도 빨리 도망쳐야 할 순간인 것이다! 시간은 이미 오전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몇대의 구축함이 연막을 헤치고 달려 나가며 해안의 적포대를 향해 함포를 발사했고, 부상병을 구조하기 위해 구조정이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해안을 향해 내달렸다. 기함 칼프의 확성기가 왕왕거리며 "작전중지, 전원 철수"의 명령을 토해냈고, 해안절벽의 바위틈과 백사장의 폭탄구덩이 속에서 간신히 몸을 숨기고 있던 생존자들은 다시 해변을 향해 줄달음쳤다. 때맞추어 날아온 허리케인 전투기들이 개미떼처럼 해안으로 도만치는 우군과 그들을 추격하는 독일군 사이에 벌어진 200m도 채안되는 공간에다 연막탄을 투하함으로써 많은 생명을 구했지만, 곧이어 독일 전투기들이 모습으 나타냄으로써 하늘에서는 치였한 공중전이 벌어졌다. 철수작전은 상륙작전 그 자체보다도 더욱 처참했다. 오전 11시경이 되어서야 철수용 주정이 해변에 당도했지만, 너무 많은 병사들이 매달렸기 때문에 그대로 가라앉아 버리는 사태가 속출했고, 그 위로 독일군의 박격포탄이 쏟아졌다. 구축함 칼프가 포탄을 퍼부어 철수하는 병력을 지원하기 위해 해안 가까이 다가갔을때, 로버트 소장은 비로소 이 아비규환의 현장을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쌍안경을 통하여 해안의 높은 벼랑 위에 설치된 독일군의 전투 지휘소를 관찰했을때 다시한번 더 '못볼 것'을 보고 말았다. 그것은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 입은 독일군의 고위 장교들이 저마다 포도주 잔과 시거따위를 손에 든 채로 희희낙락하며 이 일방적인 살륙의 현장을 '관전'하고 있는 광경이었다. 무기를 내던지고 바닷속으로 뛰어 든 장병들까지 대충 구조를 마친 선단이 영국을 향해 뱃머리를 돌린 것은 오후 1시가 다 되어서였고, 로버트 소장은 또 한가지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그 참혹했던 아비규환 속에서도 에섹스 스코티시 연대와 퓨질리어 몬트리올 연대의 극소수 병력이 해안선을 돌파하는데 성공하여 예정대로 디에프 시내 일각과 비행장까지 진출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웅들'을 구출할 시간이 없었다. 갑판 위는 부상자들의 피로 미끈거렸고, 죽어가는 중상자들의 신음소리로 가득찬 배는 영국을 향해 내달렸다. 웬일인지 독일 공군기들이 추격해 오지 않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 아니, 어쩌면 그것은 당연했다. 불과 반나절 사이에 디에프 해안에 상륙했던 장병 5,100명 중에서 3,700여명이 전사해 버린데다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조차 절반 이상이 중상을 입고 있는 판이었으니, 독일군은 굳이 영국공군과의 공중전을 무릅써 가며 이들을 추격하지 않더라도 이미 압도적인 대승리를 거두었던 것이다. 디에프 기습작전은 완벽한 실패로 끝났다. 주공을 맡았던 캐나다군 제2사단은 이 단 한번의 전투에서 사실상 괴멸되어 버렸고, 그에 반해 독일측의 피해는 경미했다. 디에프에 남겨진 약 2,000여명의 영국군과 캐나다군은 그날 일몰무렵까지 절망적인 저항을 펼쳤지만 결국 모두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다. 그밖에도 이 전투에서 독일군은 몇가지 흥미있는 전리품을 챙길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영국군이 새로 개발한 전차 양륙정과 27대의 신형 '처어칠'전차가 그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 전차들은 곧 빠리로 운반되어 독일 기술진에 의해 신중한 테스트가 행해졌음은 물론이고, 독일측은 2m깊이의 물속을 잠수상태로 주행할 수 있는 이 전차의 설계에서 다시한번 자신들의 예상이 맞아 들어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속을 갈 수 있는 전차...! 이것만큼 놈들이 여전히 유럽대륙 어딘가에 상륙하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말할때 영국군 역시 이 실패한 작전을 통해 독일군보다도 훨씬 더 많은 '전리품'을 얻었다. 때로는 성공보다 실패가 더 소중한 경험을 안겨 주기도 하는 법이어서, 디에프 작전의 실패는 책상위의 탁상공론으로는 도저히 얻어질 수 없는 수많은 교훈을 뎡국군에 안겨 주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은밀한 기습에 의존하기 보다는 상륙개시 직전에 동원할 수 있는 최대한의 중화력 - 함포사격과 항공기의 공중지원 - 을 동원하여 해안의 적을 철저히 두들겨 놓는 편이 더 유리하다든가, 일단 제공권을 장악하고 나면 적의 해안포대는 의외로 상륙함대에 큰 위협이 되지 못한다는 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해상에 대기하는 함대는 결코 연막 따위로 스스로의 눈과 귀를 틀어막아 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되며, 상륙부대와의 사이에 긴밀한 연락수단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점도 소중한 교훈이었다. 실패를 통해 배워가며, 같은 실수를 두번 반복하지 않는 영국군의 특성을 가리켜 '착실한 모범생과 같은 군대'라고 평하는 이들이 있지만, 이 디에프 작전의 대실패 이후에 보여준 영국인들의 패로에 관한한 이 말은 정말 더없이 정확한 것이었다. 그리고 훗날, 마운트 배튼경은 그것은 다음과 같이 한마디로 정리했다. "디에프에서 죽은 한 사람의 병사른 그로부터 2년후, 노르망디에서 10명의 병사를 살려냈다." ------------------------------------------------------------------- G o n g m u d o h a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G o n g k y u n g d o h a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T a h a i e s a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D a n g t a e g o n g h a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