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Asteau (언젠간학생맧) 날 짜 (Date): 1998년03월11일(수) 16시18분00초 ROK 제 목(Title): 절대군주, 칼을 뽑다! 29 - (1) 디에프 기습작전 1940년 6월, 벼랑끝까지 내몰린 영국의 대륙원정군을 구출하기 위해 '덩케르크' 해안에서 철수작전이 진행되고 있을때 처어칠 수상은 의회에서 이런 투지에 넘치는 연설을 남긴바 있다. "우리는 싸움을 계속할 것이다... 바다에서든, 육지에서든 적이 있는 모든 곳이 바로 우리의 전선이 될 것이다... 마지막 한사람의 영국인이 남는 그날까지... 그리고 우리는 다시 유럽대륙으로 돌아갈 것이다." 대영제국의 역사에서 별로 유례가 없는 대패배의 충격과 굴욕감에 가득찬, 그리고 도버해협의 물보라를 뒤집어 쓴 꾀죄죄한 몰골의 생환(生還)장병들 중에서 수상의 이런 선언을 귀담아 들은 사람은 별로 없었다. 연이어 계속된 본토 항공전과 아프리카 전선의 혈투가 벌어지고 있을 때도 이 말은 그다지 실감으로 와닿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상륙으로 "유럽대륙으로 돌아간다"는 수상의 선언은 비로소 실현된 셈이었지만, 요컨데 이 남유럽의 이탈리아 반도는 적의 심장부 - 독일 - 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즉, 이탈리아는 이 전쟁의 주무대가 아니라 일종의 변경(邊境)이었고, 이것은 스탈린이 동부전선에서 소련군에 가해지는 압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미국과 영국에 대해 줄기차게 요구해 온 "서유럽 어딘가에 제2전선을 펴달라"는 주문과도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따라서 지난 4년내내 영국이 한시도 잊은 적이 없는 명제가 있다면 그것은 '벨기에나 프랑스의 어느 해안에 상륙하여' 1940년에 진 빚을 되갚아 준다는 것이었고, 이 요원해 보이는 목표를 위해 영국은 오래전부터 준비를 진행해 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준비'작업중에도 가장 손꼽을만한 사건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디에프'상륙작전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1942년 중반의 전황을 잠시 요약해 본다면 멀리 아프리카 전선에서는 '몽고메리'가 막 제8군의 사령관으로 취임하여 '토부룩'에서 대참패를 입고 의기소침해진 장병들의 전열을 가다듬는 일에 바빴고, 또 동부 전선에서는 승승장구를 계속해 온 '폰 파울루스'원수가 '스탈린 그라드'를 향해 독일 제6군을 돌입시킬 준비를 진행시키고 있었다. 비록 이 일련의 대전투들에서 예상을 뒤엎고 영국과 소련이 압승을 거둠으로서 기적적인 전세의 반전을 이룩해내게 되지만, 최소한 그 시점 당시로선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 대륙을 통털어 연합군의 승리를 예상해 볼 수 있는 희망적인 조짐은 한가지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지중해에서는 독일 해군의 U-보트 잠수함들에 의해 영국으로 반입되는 군수물자를 적재한 수송선단이 거의 완벽하게 차단 당하고 있었ㄷ고, 멀리 아시아에서는 연전연승의 일본군이 인도공략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다만 아더 해리스 대장이 이끄는 영국 공군의 폭격기들이 독일 전투기의 치열한 요격을 뚫고 독일 본토 폭격을 계속하고 있는데다, 미군 폭격기들이 막 여기에 가세하기 시작했다는 것 정도가 유일하게 희망의 그림자를 던져주고 있던 그런 때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런 순간에 영국은 무모하리만큼 야심적이고 모험에 가득찬 모종의 작전을 계획하고 있었다. '주빌리 작전'이라 불리운 이 계획의 요체는 독일 점령하의 프랑스 '디에프'에 특공대를 상륙시켜 독일군 수비대에 통격을 가하고 돌아온다는 것으로,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돌아온다'는 부분이다. 즉, 디에프 상륙작전은 처음부터 본격적인 유럽 진공작전의 일환으로 계획된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실시될 그 작전을 위해 훈련시켜온 '코만도' 특공대로 하여금 실전경험을 부여해 주는 한편으로, 그동안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런 대규모 작전 상륙적전에서 발생될 예기치 못한 문제점들을 사전에 체크해 본다는 '예행연습'의 의미가 강했던 것이다. 조오지 국왕의 사촌이며 영국군에서 가장 유능한 지휘관중의 한사람이었던 '마운트 배튼' 해군 제독이 그 지휘관으로 부임하면서, 어떤 역경의 순간에서도 반전을 모색하는 영국인의 강인한 기질을 유각없이 잘 보여주는 이 작전은 급속하게 진전되기 시작했다. 공격군의 주력으로 선정된 것은 이미 1939년이래 영국에 주둔해 있던 영연반 캐나다군 제2사단으로, 이들은 그동안 아프리카와 태평양 전선으로 파견된 영국군은 대신하여 영국의 본토 방위를 대신하여 영국의 본토 방위를 책임지고 있었다. 무료하기 짝이 억는 '남아도는 시간'을 오직 거듭된 맹훈련으로 메워왔던 이들은 실전참가의 기회를 얻지못해 몸살이 날 지경이었고, 실제로 영국이 가진 '가장 잘 훈련된 정예의 예비부대'라는 정평을 얻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곧 실전은 훈련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때갇게 된다. 그리고 이 작전은 역설적으로 말할때 그 계획단계에서부터 장차 다가올 '진짜' 유럽대륙 상륙작전의 시금석으로 삼겠다는 그 본연의 목적에 더없이 충실하고 있었다. 주빌리 작전의 계획서는 얼핏 보기에는 그야말로 주도면밀하고 빈틈 없이 짜여 있었지만, 상륙작전의 ABC라고나 할 중요한 조건들이 하나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해군과 육군, 그리고 해병 '코만도'특공부대가 작전에 동원되었지만 그 모든 부대를 유기적으로 조화시키고 조정할 수 있는 최고 지휘관은 없었다. 이 작전에 참가하는 육군과 해군의 지휘관은 모두 동격이었고, 이런 상태는 자칫하면 각 부대간의 효율적인 협동을 저해하는 불협화음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는 문제점은 터무니없이 간과되었다. 게다가 이 작전에는 공군의 선제폭격도, 해군에 의한 함포사격 지원도 예정되어 있지 않았다. 디에프 상륙작전의 요체는 어디까지나 적의 의표를 찌르는 '기습'이며, 이런 사전공격은 도리어 이쪽의 공격의도를 노출시킬 위험이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똑같은 이유로 인해 공수부대를 적의 배후에 투하시키는 것조차 고려되지 않았으므로, 문자 그래도 상륙부대는 단지 캄캄한 밤의 장막 그 하나를 방패삼아 거의 알몸으로 독일군이 기다리고 있는 해안으로 몸을 내던질 판이었다. 게다가 이 작전의 규모와 궁극적인 목표마저 어정쩡했다. 이름 그대로 야음을 틈탄 소규모 부대의 기습이라면 이미 덩케르크 패주로부터 한달도 지나지 않았던 1940년 6월에 120명의 코만도 대원이 프랑스 해안의 '볼로뉴'를 기습하여 대성공글 거둔 바도 있지만, 이런 작은 규모의 기습작전은 아무리 멋지게 해치워 봤자 역시 전체적인 전세에는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는 '장난'같은 수준이다 - 이런 판단에 따라 상륙부대의 규모는 7,000여명으로 불어났고, 게다가 1개 전차연대까지 투입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이밖에도 상당한 병력의 예비대가 동원되어 이들을 지원하도록 되었는데, 사실 이 정도의 병력이라면 이미 소수 정예의 특공대식 '히트 앤드 런'전법을 펼치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병려이고, 그렇다고 해서 한달음에 프랑스 내륙부를 향해 진격해 들어가기에는 턱없이 적은 병력이다. 이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디에프 항구에 상륙하여 디에프 시(市)를 점령하고, 그곳으로부터 6km반경 이내에 있는 독일군의 비행장과 독일군 제302사단 사령부를 제압한 다음, '가능한한 많은 포로와 기밀문서를 획득하여' 되돌아 온다는 것으로, 그야말로 이 작전의 성격만큼이나 애매하기 짝이 없는 목표였다. 디에프를 하루나 이틀 정도 독일군으로부터 '해방' 시킨다고 한들 그것이 전략적으로 무슨 도움이 될 것이며, 예하병력이 멀쩡히 건재해 있는 독일군 사령부를 기습하여 참모장교 몇명을 죽이는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 역시 적의 전력에 상당한 타격을 입혔다고 하기는 힘든 것이다. 그나마 이 작전에서 거둘 수 있는 가장 실제적인 성과라고 한다면 역시 다가올 본격 상륙작전을 '도상 연습'해 본다는 근분취지와 함께 독일군이 영국 본토 상륙작전을 위해 디에프 항국에 쌓아 놓았다고 하는 상륙용 주정을 모두 파괴해 버리는 정도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렇다면 차라리 비록 일부나마 내륙으로 진출한다는 계획을 완전히 포기하고 해안에 발을 디디는 순간 즉시 뒤돌아서서 도망쳐 오라는 지시가 차라리 더 현실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1942년 8월 18일밤, 이런 모든 문제점을 가득 안은 채로 영국군과 캐나다군으로 구성된 기습부대는 사기충천하여 도버해협을 건너갔다. 6,500여명의 병력을 태운 237척의 함정들은 불빛 하나없이 아름답고 조용한 한여름의 밤바다를 헤쳐 나갔고, 이때까지만 해도 정말 모든 것이 순조로와 보였다. ------------------------------------------------------------------- G o n g m u d o h a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G o n g k y u n g d o h a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T a h a i e s a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D a n g t a e g o n g h a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