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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Asteau (언젠간학생맧)
날 짜 (Date): 1998년02월11일(수) 17시57분56초 ROK
제 목(Title): 쾰른을 '뤼벡' 시켜라! - 26 (4)


'양키'들에게 점령 당하다.
"죽을 힘을 다해 독일놈들을 물리치고 보니, 어느 사이에 우리 땅이 양키들에게 
점령되어 있었다."
1942년 여름부터 영국으로 몰려온 미육군 항공대를 두고 어느 영국인 저널리스트가 
빈정거린 말이다.
"놈들의 문제는 봉급을 너무 많이 받는다는 것과 여자를 너무 밝힌다는 것,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라고 탄식한 
영국신사도 있었다.
영국군들이 보기에는 이들이 몰고온 B24 '리버레이터'나 B17 '플라잉포트레스' 
폭격기 역시 그 미국인들 만큼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난잡한 여성의 누드그림 
따위를 잔뜩 그려 넣은 그 기체들은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폭탄의 탑재량은 
랭카스터보다 적은데다 방어용 기관총은 필요이상으로 주렁주렁 많이 매달려 
있었다.
영국군 장병들은 :이 친구들은 아직도 자신들을 인디언과 싸우는 기병대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라고들 빈정거렸지만, 이 건방진 신참자들이 설명하는 그 
기관총의 용도를 듣고나자 해리스 대장마저도 그만 기가 질리고 말았다.
그들은 영국공군이 오래전에 포기한 대낮의 정밀조준 폭격을 구상하고 있었고, 
그러자면 융단폭격에 필요한 많은 폭탄 탑재량은 필요없었으며 오히려 적의 
전투기를 요격할 수 있는 충분한 기관총이 필요하다는 뜻을 내비쳤던 것이다.
말수가 적은 해리스조차도 그말을 듣고 그 친구들은 독일군을 돕기 위해 온 
모양"이라고 한마디 했지만, 미군들은 좀체로 자신들의 의견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B24와 B17에 장치된 미국제 '노든'폭격 조준기의 성능을 자랑하며 '6000m 
상공에서 쓰레기를 제대로 명중시킬 수 있는' 그 조준기를 제대로 활용하자면 
주간의 정밀조준 폭격이 필수적이고, 이것을 통하여 독일의 항공기 공장이나 
액화석탄 공장같은 군수시설을 좀더 빨리, 그리고 효과적으로 분쇄할 수 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영국공군은 이미 그 전해인 1940년에 '랜드리스: 전시 연합국 무기 대여법'에 의해 
영국에 제공된 B17이 의외로 성능이 신통치 않았다는 점을 들어 미군들이 한시바삐 
무익한 주간폭격의 꿈에서 깨어나 야간폭격에 나서는 자신들을 도와주도록 
설득했지만, 이 건방진 신참들은 영국공군의 실패가 B17의 부족한 성능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잘못 운용했기 때문이라고 맞섰다.
다시말해 B17은 근본적으로 최소한 12대 이상을 한꺼번에 발진시켜 집단적으로 
운용하는 기체이며, 그렇게 하면 총 10문에 달하는 방어용 기관총은 거의 사각이 
없이 서로서로를 완전히 커버해 줄 수 있기 때문에 독일군의 전투기는 도저히 그 
화망을 뚫고 들어올 수 없다는 논리였다.
실제로 그 당시 영국군은 이 미국제 기체를 2~3대씩 분신시켜 운용하여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 이 지적은 꽤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근본적으로 영국군의 폭격 원칙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고, 이 외국제 
기종에 맞추기 위해 기본적인 전술을 바꿀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게다가 이 
신병들이 자신들의 폭격 조준기를 자랑하는 태도는 흡사 그런 것을 만들어 낼 수 
없는 영국의 공업기술을 비웃는 것처럼 보였다.
"조준기가 아무리 정밀해도 도대체 목표물이 보여야 명중을 시킬 수 있는 것 
아닌가? 그 양키친구들은 루르공업지대의 두터운 먹구름과 공장의 매연을 본적이나 
있을까? 그것은 카우보이식 사격술에 대한 미국인의 맹목적인 몽상이 만들어낸 
산물일 뿐이다"
이런 식의 설전이 계속되었고, 양측은 마침내 타협점을 찾아 내었다.
영국군은 이 건방진 신참들이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내버려 두기로 방침을 
정했고, '존 슬레서' 공군소장은 그것을 다음과 같이 한마디로 정리했다.
"아무리 시원찮은 우군이라도 없는 것 보다는 낫다."
남아프리카와 캐나다, 호주 같은 수많은 영연방 국가들을 거느리고 '형님' 노릇을 
해오는데 이골이 나있던 영국군이 미군을 동생, 혹은 부하로 취급하는 것을 포기해 
버리자 그 다음부터는 일이 의외로 수월하게 풀려 나갔다.
특히 영국으로 파견된 미육군 제8항공군의 지휘관 '아이라 에이커'준장은 미군들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과는 판이하게 다른 사람이어서 영국인들의 호감을 샀다.
"나는 단지 먼 훗날 영국인들이 그때 우리가 와 주길 참 잘했다는 말을 듣고 싶은 
뿐입니다"라고 겸손하게 입을 뗀 그는 순식간에 해리스 대장과 의기가 투합되었다.

이렇게 자리가 잡히자, 장차 수많은 에피소드와  로멘스, 그리고 풍부한 
얘기거리를 만들어 내게 될 미 제8공군은 특유의 미국식 병참업무를 동원하여 
자신들의 둥지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쵸콜렛과 츄잉껌으로부터 쓰레기통에 이르는 
모든 물건을 한사코 대서양 건너 본국에서 실어오는 미군들의 태도는 전시의 
물자부적에 시달리고 있던 영국군 장병들의 심기를 건드리기도 했지만, 그들의 
조립식 '퀸세트' 막사같은 지극히 능률적이고 실용적인 물건들은 영국인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영국전역에 설치된 약60개의 미군시설이 건설되는 동안 양군은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와 존경심을 키울 수 있었고, 그 한편으로 실전경험이 
전무한 미군 폭격기의 승무원들은 영국군 정병들의 소중한 실전경험을 경청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서로가 배워야 할 것이 많고 많았다.
영국군은 미군이 '팬츠'를 찾으면 그것이 속옷이 아니라 바지를 뜻한다는 것을 
배웠고, 미군은 '가스마스크'가 영국에서는 '리스피레이터'가 된다는 것을 배워야 
했다.
그리고 같이 하늘을 나는 전문직업인이라는 동질의식 때문인지는 몰라도 양국의 
공군장병들은 다른 지상군 병사들에 비해 서로 동화되어 가는 속도가 빨랐고, 
트러불도 비교적 적었다.

양키두들, 루앙으로 날다
제8공군 최초의 출격을 1942년 8월 17일에 이루어졌다.
이날 12대의 B17이 동부 잉글랜드의 영국공군기지 '그랩턴 언더우드'를 이륙하여 
파리 북서쪽의 '루앙'으로 향했던 것이다.
4대의 영국군 스피트 파이어가 호위하는 이 '양키' 폭격대의 선두에는 에이커 
자신이 직접 탑승한 '양키두들'호가 나섰고, 320km의 이 장정에서 미군 폭격기들은 
철도조차장과 기관차의 수리공장을 성공적으로 폭격했다.
엄청난 물량을 동원하여 초토화 작전을 계속하고 있는 영국공군의 기준에서 본다면 
이 루앙폭격은 '어린애 장난'같은 수준이었지만, 그만하면 데뷔전으로서는 가히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기에 충분했다.
이 출격에서 돌아온 에이케는 "양키두들, 루앙으로의 성공걱인 비행을 축하한다"는 
해리스의 축전을 받았고, 그 며칠뒤에는 그 축전보다는 더 훌륭한 선물을 받았다. 
정찰기가 찰영해 온 사진을 분석한 결과, 루앙공습과 그 이틀뒤에 있었던 '애브빌' 
공습에서 미군들이 투하한 폭탄이 실로 놀랄만큼 정확하게 목표물을 박살내었음이 
확인되었던 것이다.
이런 결과에 고무된 미군들은 자신들의 주간폭격이 영국군의 무차별 야간폭격에 
비해 10배 이상의 파괴 효과가 있다는 자신감을 다시한번 확인했고, 해리스 역시 
'차일스 포털'공군참모총장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미군들은 자신들이 거둔 작은 성공에 좀 우쭐해 있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합리적이고 실제적인 방법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주간폭격을 
계속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사료되는 바입니다"
이래서 마침내 '밤에 나는 토미'와 '낮에 나는 양키'라는 공식이 성립되었고, 그 
반면 독일은 그야말로 밤낮없이 연합군 폭격기에 시달리는 나날이 시작되었다.

하늘의 카우보이
영국군들이 지적한대로, 확실히 미군들은 '카우보이'와 같은 기질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전쟁을 흡사 개인적인 영웅담이나 서부개척시대의 건맨과 같은 신화를 
만들어내는 무대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특히 B17이나 B24의 
방어총좌사수들이 자신들의 사격솜씨를 뽐내는데서 그런 현상이 두드러렸다. 어느 
기관총 사수는 "적의 전투기가 50야드까지 접근할 때까지 침착하게 기다렸다가 단 
5발 이내의 초탄으로 승부를 결정짓는" 자신의 솜씨를 자랑하기도 했는데, 아닌게 
아니라 이 미국제 폭격기들이 사방으로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튀어나온 기관총을 
이용하여 독일 전투기에 맞서는 모습은 서부 개척시대에 인디언과 싸우는 
보장마차들의 원형방어진과도 흡사해 보였다. 그리고 또 그들은 전과를 터무니없이 
과장하는 버릇도 있었다.
10월9일, 북프랑스의 '리일'제강소를 공습하고 돌아온 B24 리버레이터의 
승무원들의 전과보고를 종합하면 그날 하루에 무려 56대의 독일 전투기가 
격추되었다는 계산이 나왔는데, 이날 투입된 독일 전투기는 모두 24대뿐이라는 
사실이 곧 밝혀졌다.
미군 폭격기의 대열사이로 뛰어든 전투기를 향해 모든 사수들이 기관총을 
쏴대었던데다가, 이 무렵부터 독일군이 맹랑한 기만전술을 구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집중사격을 받은 독일 전투기는 곧장 기체를 뒤집은 채로 지면을 향해 
하강하거나, 꼬리에 일부러 매달어둔 연막통을 점화시케 흡사 불 붙은 것처럼 
위장했던 것이다.
게다가 독일군측의 기록에 의하면 이날 그들이 입은 손실은 단지 2대에 불과해서 
미군 승무원들의 과장과 현실 사이의 엄청난 괴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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