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Asteau (언젠간학생맧) 날 짜 (Date): 1998년02월05일(목) 09시40분24초 ROK 제 목(Title): 공폭(空爆)의 서막- 25 (3) 1940년 - 탐색과 훈련의 시대 본격적인 본토 폭격전의 막이 올랐다고는 하나,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 1940년의 전략폭격은 아직도 '훈련단계'에 불과했다. 영국 공군의 주력 '화이틀리' 폭격기에 베를린까지 왕복에 필요한 연료를 가득 채우고 나면 각 기체에 실을 수 있는 폭탄은 1톤 정도에 불과했고, 그나마 하룻밤에 90대 이상의 기체를 출격시킬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게다가 폭격 전술 역시 아직도 요람기를 채 벗어나지 못한 수준이었던만큼 각 기체들은 폭격대형조차 짜지 않은채 개별적으로 목표지점을 향해 날아갔고, 목표물에다 전편대가 싣고 온 폭탄을 일제히 풀어 놓는 집중 폭격의 효과를 몰랐던 탓에 폭격목표조차 어느 다리에 두발, 공장건물에다 한발 하는 식으로 광범위하게 분산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은 정해진 목표물을 정확히 찾아가는 항법기술의 후진성이었고, 오로지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 양눈이라는 원시적인 장비밖에 갖추지 못한 항법사들이 어려운 일을 짊어졌다. 지상의 지형지물조차 보이지 않는 오밤중에, 오직 직관과 경험에 의해서 비행해야 하는 이런 추측항법은 필연적으로 수밚은 실수를 연출했다. 이를테면 베를린까지의 960km 거리를 비행하는 동은 예기치 못한 풍속 32km의 옆바람이 불면 웰링턴 폭격기는 목표지점에서 무려 106km나 벗어나버리게 된다. 설사 별이 밝게 빛나는 맑은 밤이라 하더라도 항법사는 육분의를 사용하여 성좌의 위치를 측정하고, 여기에다 풍속과 풍향, 비행기의 속도등을 고려한 복잡한 계산을 거친 다음에야 현재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고, 한참시간이 걸리는 이 계산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도 길을 잘못 든 비행기는 엉뚱한 방향으로 한참이나 날아가고 있기가 일쑤였다. 고공에서 맛볼 수 있는 영하 수십도의 얼어붙는 추위와 요란한 엔진소리, 때로는 발아래에서 작열하는 고사포의 사격속에서 행해지는 이런 복잡한 수기(手記) 계산은 실로 초인적인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었고, 여기에서 소수점 하나만 틀리면 비행기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 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원시적인 추측항법중에서도 가장 믿을만한 것은 수차례의 출격 경험을 통해 눈에 익혀둔대로 발아래에서 희게 빛나는 강이나 검은 숲, 도시의 불빛 따위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항로를 수정해 나가는 목측항법이었지만, 이것은 필연적으로 저공비행에서나 가능한 일이므로 적 고사포의 밥이 될 위험성이 너무 높았다. 두터운 먹구름이 잔뜩 끼인 어느날 밤, 항로에서 벗어나 헤메던 한대의 화이틀리 폭격기는 우연히, 정말 우연히도 그들의 발아래에 뻥 뚫어진 먹구름사이로 독일군의 비행장을 발견했다. 당연히 그들인 이 뜻밖의 행운에 쾌재를 울리며 신나게 폭탄을 투하했고, 비행장이 불길에 휩싸인 것을 확인하면서 귀로에 올랐지만 곧 연료가 떨어져 버렸다. 그들은 비행장으로부터 멀지않은 채소밭에 기체를 불시착시킨 다음, 평소에 훈련 받은대로 기체를 독일군에 넘겨주지 않기 위해 거기에다 불을 질렀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곧 들이닥칠 독일군의 추격부대를 상상하면서 비장한 심정으로 권총을 뽑아들고 가까운 농가의 헛간속으로 몸을 숨겼다. 하지만 몇분후에 그곳에 나타난 것은 영국군의 트럭이었고, 자동차에서 내려선 것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영국공군의 어느 대령이었다. "이 미친 놈들아! 너희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한지 알기나 하는거야?" 그들은 밤새도록 도버 해협조차 건너지 못한채 남부 잉글랜드의 상공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고, 신나게 폭탄을 퍼부어 버린 비행장은 연일 힘겨운 공중전을 치르고 있던 영국공군의 전투기 기지였던 것이다. 이 폭격기 승무원들과 같은 터무니없는 실수가 그다지 흔한 예라고 할 수는 없지만, 목표지점의 반경 32km 범위안에 도달하는 것만으로 일급 항법사로 인정받을 만큼 어려운 이 '길찾기'를 설사 제대로 해내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아직 문제의 50%밖에 해결되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작 임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폭격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목표반경 32km는 하늘에서는 지극히 찾기 힘든 좁은 공간이지만 지상에서는 상당히 넓은 지역이고, 적의 고사포를 피해 조명탄조차 투하하지 못하는 어둠 속에서 목표로 삼을 공장 건물이나 교량을 정확히 포착해 내는 일은 "어둠에 덮힌 정원의 잔디밭에서 바늘 하나를 찾아내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때로는 30분 이상이나 목표지점의 상공을 선회하기도 해야 하는 이런 어려운 목표확인과정을 거친 다음 지금 자신들이 목표지점의 상공에 제대로 도달해 있음을 확인한 항법사는 그때부터 폭격수로 변신해야 한다. 그리고 이때쯤되면 으례 지상에서는 그들을 환영하는 고사포의 예광탄이 마치 불꽃놀이처럼 날아오기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고, 그런 속에서도 냉정을 유지마현서 구식 ㅍㄱㅗ격조준경을 들여다 보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폭탄을 투하해야 하는 그들의 임무를 어느 폭격스는 이렇게 비유했다. "그것은 땅바닥에다 바늘 하나를 세워둔 다음 지붕위에서 콩알을 떨어뜨려 그 바늘 끝에 꿰는 것과 흡사는 작업이다. 더구나 그 지붕이 요동을 치며 흔들리고, 발밑에서는 쉴새없이 총알이 날아온다고 생각해 보라"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여러가지 난관을 뚫고 투하한 폭탄이 정확히 목표물을 산산조각 내었는지를 확인할 재간이 없다는 사싰이었다. 대부분의 폭격기 승무원들은 자신들이 투하한 폭탄이 지면에 부딪쳐 폭발하는 섬광을 미쳐 확인할 틈도 없이 서둘러 목표지역 상공을 벗어나게 되고, 1940년말까지만 해도 영국 폭격기에는 피폭지역의 사진을 촬영하는 카메라가 설치되지 않았으므로 (사실은 그런 개념 조차도 없었다), 일단 폭탄을 투하한 다음에는 무조건 그것이 목표물에 명중했다고 간주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었다. 이것이 실로 터무니없는 낙관론이며 자신들의 실력을 과대 평가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얼마가지 않아 곧 밝혀지게 되지만, 하여간 이런 속편한 계산법에 의해 산출해 낸 1940년 연말까지 폭격작전의 성과는 폭격기 승무원들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무렵 영국 폭격기들이 가장 큰 목표물로 삼았던 것은 루르 탄광지대에 산재한 독일의 액화 석탄정유공장이었다. 이것은 원래 석유자원이 부족했던 독일군은 석탄을 액화시킨 인공연료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고, 이 공장들을 파괴해 버리면 독일군이 자랑하는 기갑부대와 항공기들이 모두 멈추어 설 것이라는, 지극히 전략 폭격의 본질에 접근한 목표물의 선정이었던 것이다. 영국군의 어느 전문가는 폭격의 평균 오차거리가 270m라는 통계치에 근거하여 지난 반년동안 퍼부은 폭격으로 인해 독일의 액화석탄 생산 능력이 15%이상 상실 되었을 것이라는 계산을 해내었지만, 진실을 말하자면 그 피해율은 1.2%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종이 위의 숫자 놀음이 가진 맹점을 가장 먼저 지적한 사람은 영국 공군 참모장 '로버트 사운드비'소장이었다. "자네들은 200톤의 폭탄을 그 정유공장에다 퍼부은게 아닐세. 물론 200톤의 폭탄을 싣고 출격하기야 했을테지만, 그중에서 정확히 목표물에 명중한 것은 아주 잘해야 절반 정도일게 틀림없네" 사운드티 장군의 평가는 옳았다. 다만 곧 폭격기 항공단 사령부가 본격적으로 운용하기 시작한, 고성능 항공 카메라를 장착한 정찰기들이 촬영해 온 사진을 판독한 결과 그 명중률은 절반이 아니라 8%미만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정도가 틀려 있었다. 50%와 8%는 실로 끔찍한 격차가 아닐 수 없다. 폭격 항공단이 그동안 해오던 방식에는 무언가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분명하고도 절실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이런 항법상의 원시성, 폭격술의 미숙, 전과 확인 방법의 부재 같은 일련의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폭격기들의 피해가 비교적 경미했다는 점이 유일한 위안거리였는데, 이것은 순전히 독일군의 요격기술 역시 그 폭격을 가하는 쪽 만큼이나 엉성했다는데 그 이유가 있었다. 예를 들어 독일군의 Bf-109전투기는 지상에서 쏘아 올리는 고사포 보다 효과가 낮은 요격 수단으로 간주되었는데, 이것은 이 우수한 전투기조차도 야간에 폭격기를 요격하는 임무에는 영 신통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전투기는 어둠속을 이리저리 왕복하면서 영국 폭격기를 수핵하기에는 항속거리가 너무 짧았고, 무선 통달거리도 짧았기 때문에 복격대의 위치와 진행 방향을 알아내어 시시각각 타전해주는 관제탑과의 교신이 끊겨 버리기 일쑤였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Bf-109는 한 사람이 조종하는 단좌(單坐)전투기이기 때문에 조종사가 기체를 조종하면서 어둠속에서 다가오는 적의 폭격기를 수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무렵 어둠속의 눈 - 전차전 폭격대를 정확히 목표지점까지 유도하는 항법기술상의 문제에 있어서 독일군은 영국군에 비해 다소 위에 서 있었다. 영국 본토 항공전의 서전에서 주간에 폭격기를 발진시켰다가 '허리케인'이나 '스피트 파이어' 같은 영국 전투기에 의해 대피해를 입었던 독일군도 이 무렵부터 야간폭격으로 전환하고 있었고, He-111이나 Ju-88, Do-17 같은 독일군의 폭격기들은 '크니케바인'이라는 독특한 무선유도 항법장치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것의 원리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독일 국내에 있는 2개소의 무선 송신소에서 각기 A와 B라는 두줄기의 무선 비임을 발사한다. 이 2개의 전파줄기는 영국 본토에 있는 폭격 목표지점 상공에서 딱 교차하게 되고, 이 무선비임을 추적할 수 있는 특수한 수신기를 갖춘 폭격선도기가 편대를 이끌고 A의 전파를 따라 비행한다. 그리고 마침내 B의 전파가 교차하는 지점에 도달하게 되면 조종사가 쓰고 있는 헤드세트를 통해 '핑'하는 신호음이 울리게 되고, 그 순간 폭격기는 정확히 목표 지점 상공에 떠있는 것이므로 그저 폭탄창의 문을 활짝 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 초탄의 폭발로 불타오르는 지상의 밝은 불길은 후속편대에게 폭격 위치를 분명하게 알려주는 목표물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영국군은 곧이 신무기의 존재를 눈치챘고, 그들은 야간폭격을 통해 무선 비임의 송신소를 때려 부수는 한편으로 크니케바인 시스템을 혼란시키는 전술을 어렵잖게 개발해 내었다. 즉, 영국국내에서 크니케바인과 똑같은 주파수의 무선비임을 발사하여 이 위장 비임이 엉뚱한 곳에서 독일군의 진짜 비임과 교차하도록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당연히 혼란을 일으킨 독일 폭격기들은 남부 잉글랜드 '켄트'주의 전원지대나 도버해협의 해인에다 폭탄을 쏟아붓고 돌아가곤 했지만, 영국군의 이 새로운 방어 전술을 눈치채는데도 역시 오래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독일군은 곧 다시 새로운 방법을 개발해 냈는데, 그것은 본국의 무선 송신소를 간단히 이리저리 이동시킬 수 있는 차량에다 설치하는 한편으로, 무선 비임을 한줄기만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즉, 폭격 편대는 목표지점 상공을 통과 하는 무선비임을 따라 비행하면서 비행시간과 속도를 계산하는 재래식방법을 혼합함으로써 자신들이 목표에 도달했음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인데, 이것은 사실상 교란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하지만 연합군의 전파 주적팀은 이 무선 비임의 소재와 방향을 추적함으로서 독일 폭격기들의 출현 위치와 진행 방향, 그리고 폭격 목표지점을 거의 정확하게 예측해 낼 수 있었는데, 이것은 이무렵 독일에 비해 유일하게 영국이 한발 앞서 있었던 기술 - 즉, 레이더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국군은 1939년 가을부터 원래 기상예보용으로 개발되었던 레이더를 개량하여 방공경계 시스템으로 활용하기 시작했고, 잉글랜드의 동부해안에 늘어선 이 20여개소의 레이다 기지는 적기 편대의 침공을 정확히 포착하여 상공에 떠 있는 요격기들에게 타전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어둠속에서 인간의 눈은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자연의 법칙을 극복해 보겠다는 양측의 이런 필사적인 노력은 필연적으로 전자기술의 발전을 촉진시켰고, 이것이야말로 현대전쟁의 특징이 되어 있는 정교하기 짝이 없는 복잡한 하이테크 전자전(電子戰)의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1940년은 낮에는 영국과 독일 양편의 전투기가 공중에서 뒤엉킨 난투전이 벌어지고 밤이되면 서로 적후방을 향해 폭격기를 띄우보내는 한편으로, 어둠 속에서 적의 폭격기를 요격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온힘을 기울이는 혼전의 양상이 계속된 한해였다. 그리고 이 전투에서 야간 폭격의 기술에 있어서는 독일이 좀더 우세했던 반면 그것을 요격하는 기술에 있어서는 레이더의 힘을 빌리고 있는 영국쪽이 약간 우세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 G o n g m u d o h a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G o n g k y u n g d o h a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T a h a i e s a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D a n g t a e g o n g h a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