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i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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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Asteau (언젠간학생맧)
날 짜 (Date): 1998년01월24일(토) 12시54분42초 ROK
제 목(Title): 이탈리아 전선의 종결 24 (2)



하지만 시실리 상륙이래 모든 연합군 병사들이 목마르게 기다렸던 로마함락은 그 
거창한 상징적 의미만큼 전술적 효과를가지고 있지 못했다.
대부분의 연합군 장병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잠시동안의 휴식을 얻었다는 것 
이외에는 별 의미가 없었고, 독일군은 멀쩡하게 부대의 건재를 유지한 채로 - 비록 
- 깊은 상처를 입고 있었지만 - 계속 북쪽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케셀링은 로마로부터 철수한지 2개월후, 로마 북방 137km의 '트라시메느'호수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반도를 가로지르는 방어선을 형성하고 북상해 오는 미 제5군과 
영국 제8군을 10일간이노 저지했다. 그 북쪽 48km 지점에는 '아레쪼 라인'이 있고, 
또 그 뒤에는 '케셀링의 걸작'이라고 불리운 '고딕라인'이 건설중이었다.
소규모의 후위부대가 치열하게 저항함으로써 시간을 벌이주는 사이에 주력부대는 
그 후방에도 견고한 방어선을 형성하고, 그 방어선이 무너질때 쯤이면 그 뒤에 또 
다른 방어선이 준비되어 있는 이런 전투방식은 이미 시실리 이래로 독일군이 
사용해온 일관된 전술이고,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근본적으로 동서로는 좁고 남북으로 길쭉한 장하모양의 이탈리아 반도의 지형은 
방어군측으로 하여금 이런 반격과 철수를 끝도없이 반복해 가며 공격군의 진을 
빼놓을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었고, 게다가 험한 산악지형은 
누가 뭐래도 방어군의 든든한 우군이었다.
이럭 식이라면 전쟁은 앞으로도 수년을 더 계속되기에 충분해 보였고, 또 실제로도 
그랬다. 연합군은 몇차례의 접전을 치러가며 독일군이 로마북방 250km 지점의 
'아펜니노'산맥 초입에다 형성해둔 거대한 방어진지 - 고딕라인에 도달하는데만도 
귀중한 그해 여름을 다 보내 버렸다.
이제 곧 겨울의 우기가 시작되면 항공기와 전차의 발이 묶이고 그 끔찍했던 카시노 
전선과 똑같은 상황이 재현될 것이다.
연합군 전쟁지도부는 마침내 이 이탈리아 전선의 가치에 대해 회의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개인의 인생사에서도 별 뚜렷한 목적없이 일김에 시작한 일이 순전히 "끝장을 
보겠다"는 오기 하나로 인해 점점 더 커지다가, 어느 한 순간에 갑자기 정신을 
차려보니 지금 자신이 아무런 의미나 목표가 없는 일에 매달려 있음을 깨달게 되는 
수가 있듯이, 이 이탈리아 전선의 연합군이 바로 그랬다.
게다가 얼마전 시작된 나르망디 상륙작전이 호조를 보이면서 급속도로 진전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이제 이 이탈리아 전선의 효과는 반감된 상태였다.
물론 케셀링 자신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지만, 바야흐로 연합군 지도자들 사이에는 
이탈리아 전선의 장래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도상오로만 본다면 이탈리아 반도의 끝 - 최북단 - 까지 올라와서 알프스산을 
넘으면 오스트리아에 닿게 되고, 이곳을 기점으로 하여 체코슬라바키아, 유고, 
헝가리를 '해방' ㅣ키자는 '발칸반도 진출안'을 열렬히 주장한 것은 처어칠 
수상이었다.
그의 속마음은 자명했다.
소련군이 빠른 속도로 독일군을 밀어 붙이며 서진을 계속하고 있었으므로, 그는 
한발이라도 더 동쪽으로 멀찌감치 소련군을 '마중' 나가고 싶어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동유럽에서 소련군을 '저지'하고 싶었던 것이다.
전쟁이 끝나면 어차피 전승 연합국들 사이에서 점령지 분할문제가 떠오를 것이고, 
이때 '소련의 몫'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영, 미군을 최대한 멀찍이 동쪽으로 
진출시켜 놓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벌써 종전후에 벌어질 정치적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고, 이런 점에서 처어칠은 역시 군이이 아니라 철두철미한 정치가였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계획은 현실성이 지극히 희박했다.
미국의 '마셜' 육군 참모총장과 루즈벨트 대통령은 이탈리아 반도의 절반을 
종단하는데만도 딱 일년이 걸렸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 발칸반도 계획은 
지금까지 진격한 몇배나 되는 거리의 엄청난 대장정이고, 그럴바에야 차라리 
이탈리아 전선의 병력을 빼내어 '남프랑스의 어딘가에' 상륙시킴으로써 노르망디 
전선을 지원하도록 하는 편이 더 현명하다는 주장을 펴면서 처어칠의 의견에 
반대했다.
이 논쟁에서는 결국 처어칠이 졌다. 그리고 더 훗날의 얘기지만, 이 결정으로 인해 
발칸반도와 동유럽은 소련군에 의해 해방되었고, 전후 40여년의 세월동안 소련의 
위성국가로 전락하도록 운명지워 졌다.
그리고 이런 방침에 따라 이탈리아 전선의 병력일부를 뽑아내어 그해 8월에 
남프랑스의 '리비에라'해안에 상륙시킨다는 합의가 이루어졌고, 6월말에는 
7개사단이 영국으로 소환되어 가버렸다.
이 리비에라 상륙작전은 결국 실행되지 않았지만, 하여간 이 조치는 알렉산더 
장군을 낙담시켰다.
이때 이탈리아로부터 철수한 7개 사단중 4개사단이 산악전에 익숙한 프랑스군 
식민지병들이었다는 사실은 분명 현명치 못한 조치였고, 또 이제 이탈리아 전선은 
'별로 의미가 없는 제2전선'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이 일부 병력의 철수로 인해 비로소 이탈리아 전선의 독일군과 연합군의 
병력비율은 각기 22개사단과 20개 사단으로, 비로소 비슷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항상 공격군은 방어군에 비해 3배 이상의 병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 전술상의 상식이고 보면 이것은 실제로 연합군이 이제 이탈리아 전선에서 
더이상의 적극적인 공세를 포기한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클라크 장군의 미 제5군과 '올리버리즈' 장군의 영국 제8군은 1944년의 아까운 
여름날도 얼마남지 않은 8월25일, 다시한번 일제공세를 펼침으로써 
고딕라인에서만도 4000명 이상의 독일군을 포로로 잡는 분전을 과시했지만, 9월 
중순이 되자 다시 그 원망스런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전선에서 겨울의 우기는 험한 산고 더불어 항상 독일군의 든든한 친구였다.
이거은 연합군의 전력이 독일군에 비해 기상과 지형에 따라 심각한 제약을 받는 
기계화 부대와 항공전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방어군과 
공격군이라는 근본저인 입장 차이에 그 원인이 있다.
방어군은 악천후속에서도 참호속에 가만히 들어앉아 기다리면 그만이지만, 
공격군은 물이 불어난 강을 건너야 하고 진창속을 허우적거리면서도 어떻게든 
움직여야 한다. 또 그게 힘들다고 해서 잠시라도 공세의 고삐를 늦추게되면 그 
전투는 사실상 방어군쪽의 승리다 - 피해의 최소화와 현 진지의 고수야 말로 
방어군의 궁극적인 목표이기 때문이다.
10월 22일, 클라크 장군이 멀리 알프스 산이 바라다 보이는 '포오'강의 
하구지역에서 펼친 공세를 마지막으로 1944년 전투는 사실상 끝이났다.
항상 '신참' 미군에게 자신들이 싸움에서는 한수위라는 사실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도 같은 우월감을 가지고 있던 영국 제8군은 아드리아 해안을 따라 
진격을 계속했지만 - 사실은 그때까지도 '발칸계획'을 아주 포기하지 못하여, 
한시바삐 그들이 알프스를 넘어 오스트리아의 비인까지 진출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처어칠 수상의 기대에 부응한다는 의미가 더 컸을 것이다 - 12월이되자 
마침내 그들도 얼어붙고 말았다.
알프스 산맥을 따라 불어오는 북부 이탈리아의 매서운 눈보로속에서 양군은 긴 
동면에 들어갔고, 새로운 전투는 눈이 녹는 1945년의 3월 이후에나 재개될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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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 o n g m u d o h a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G o n g k y u n g d o h a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T a h a i e s a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D a n g t a e g o n g h a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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