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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Asteau (언젠간학생맧)
날 짜 (Date): 1998년01월24일(토) 12시54분02초 ROK
제 목(Title): 이탈리아 전선의 종결 24 (1)


임무냐? 영예냐?
2차대전의 전 기간을 통해 연합군이 안고있던 가장 고질적인 문제는 미군과 
영국군간의 뿌리깊은 경쟁관계였다.
이것은 때때로 양군의 자존심을 부추김으로써 능력 이상의 전투력을 발휘하게 하는 
동기로써 작용하가도 했지만, 그 반면 많은 전투에서 조직적인 협조와 공동작전을 
방해하는 걸림돌로 작용했던 것이다.
카시노 덫에서 간산히 빠져나오자마자 미군과 영국군은 곧장 이런 실수를 다시한번 
박복했다.
안지오의 교두보에 갇혀있던 트러스코트 장군의 미 제6군단은 지금이야말로 
자신들이 로마진공의 최선두 위치에 서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들에게 떨어진 임무는 로마로 향하는 카실리나 가도를 차단함으로써 
퇴각하는 독일군의 퇴로를 끊으라는 것이었고, 이것은 논리적으로 볼때 합당한 
처사였지만 미 제5군 사령관 클라크 장군은 이 조치에 발끈했다.
"알렉산더가 이탈리아 전역의 총사령관이라고는 하나 그도 역시 영국군이다. 
이것은 영국 제8군에게 로마입성이라는 월계관을 씌어주기 위해 우리에게 그 
둘러리를 서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그의 말에도 불명히 일리가 있었다.
인지오 교두보에서 곧장 북쪽으로 가면 제7국도 - 아피아가도 - 변의 '알바노'에 
닿게 되고, 여기서 로마까지는 북서쭉으로 채 20km가 안되는 뻥뚫린 탄탄대로가 
놓여 있을 뿐이다.
하지만 명령받은대로 제6국도 - 카실리나 가도 - 로 가자면 험한 알바노 고지를 
다시한번 넘어야 하고, 이것은 대망의 로미로부터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던 
그들이 쓸데없이 진격로를 직각으로 가로질러 올라감으로써 '시간을 낭비'하도록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면도 있었던 것이다.
알렉산더 장군이 정말 이 미군부대로 하여금 쓸데없이 '뺑뺑이'를 돌도록 하기 
위해 그런 명령을 내렸는지 어쩐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하여간 클라크 장군은 
이 명령에 복종하는 대신 제6군단으로 하여금 로마로 직행하도록 지시를 내렸고, 
그때 마침 와해된 카시노 전선으로부터 북상해온 미 제2군단이 도착함으로써 두 
부대는 감격적인 악수를 나누었다.
처음 구상대로라면 이미 넉달전에 이루어졌어야할 이 양군의 굳은 악수는 보기에 
따라서 사뭇 감격이기도 했지만, 그들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다.
직속상관인 알렉산더의 명령에 정면으로 맞선다는 인상을 피하기 의ㅣ하여 
클라크는 마지못해 떼어낸 소수의 미군 병력이 알바노 고지를 넘어 카실리나 
가도의 '발몬토네'로 향하고 있을때 뷔히팅호프 장군의 독일 제10군단은 그야말로 
'바람처럼' 그들의 눈앞을 스쳐 로마쪽으로 철수해 버렸던 것이다.
결구 카시노와 안지오의 연합군은 몇달에 걸친 격전끝에 가까스로 로마로 향한 
길을 열었지만, 그 와중에서 '충분히 잡을 수 있었던' 독일 제10군단의 잔존병력을 
포위,섬멸하는 기회를 놓쳐 버렸고, 당연히 클라크 장군을 향해 비난이 쏟아졌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신랄한 비난을 퍼부은 사람은 물론 영국의 처어칠 수상이었다.
"도대체 뭘하는 짓이냐? 그는 로마에 입성한 첫부대라는 영광을 탐낸 나머지 
우리가 기울인 몇달간의 노력을 순식간에 허사로 만들어 버렸다. 로마 입성 - 
그것이 그렇게도 중요한 문제더란 말인가?"

하지만 처어칠 자신도 바로 그 로마입성을 가장 간절히 염원했던 사람중의 
하나이며, 그리고 가급적 그 영광이 영국군에 의해 이루어졌으면 하고 은근히 
바라고 있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도대체 '영원의 도시' 로마에 가장 먼저 발을 들여놓은 장군이라는 영예를 
포기하고 싶은 지휘관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 그 옛날 카르타고의 
한니발이나 고트족의 알라릭, 게르만의 오도아케르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클라크 장군은 이런 모진 비난을 뒤집어 쓴 댓가로 마침내 그 로마입성의 
영예를 안은 장군이 되었다.
알렉산더 장군의 엄청난 물량작전은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 카시노, 
안지오, 로마를 잇는 삼각지대의 전투에서 연합군의 사상자는 4만을 헤아렸다. 
그리고 독일군의 전사자는 3만8000명이었고, 부상자의 숫자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피투성이의 사투를 전개하며 험한 산길을 달려 북쪽으로, 북쪽으로 철수하는 
이 힘든 장정에서 대부분의 독일군 부상자들은 제대로 치료조차 받지 못했을 
것이고, 연합군이라면 능히 본국으로 후송되기에 딱 좋은 정도의 '100만 
마르크짜리 부상'을 입은 장병들까지도 모두 전사자의 대열에 합류하게 될 수밖에 
없었으리란 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로마 - 영원의 도시
1944년6월4시 오후9시.
초저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시내는 쥐죽은듯 조용했고, 철수하는 독일군을 
태운 마지막 트럭이 '스페인 광장'의 포도위를 조용히 미끄러져 갔다.
바로 그때, 트럭에 타고있던 어느 독일군 하사관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어느 
주택의 2층 창문을 향해 기관단총을 난사했고, 그 통에 유리창이 박살나면서 한 
시만이 죽었다.
그것은 지난 일년동안 사실상 이 로마를 점령하 왔던 독일군이 '무방비 도시'로 
선언된 이곳을 연합군에게 내어주고 떠나는 기분을 단적으로 압축해 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들이 떠나고 난뒤 한 시간이 채 못되었을때, 누군가가 나직하게 외치는 소리가 
광장에 메아리쳤다.
"그들이 온다!"
곧 몇대의 '셔먼'전차가 석조 포도 위에 요란한 캐터필러 소리를 울리며 광장으로 
물러들어 왔고, 그 뒤를 이어 병사들의 긴 형렬이 달빛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민들은 이 새로운 정복자들을 한영하기 위해 거리로 달려나갔지만, 몹시 지치고 
초췌해 보이는 미군병사들은 그 조차도 귀찮다는 듯이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그냥 
묵묵히 그들의 눈앞을 지나쳐 갔다.
4두마차도, 승리의 월계관도 없는 이 개선행진의 선두에 서 있는 부대는 이른바 
'라피도 강변의 학살'을 경험했던 미 제2군단의 제36보병사단이었고, 드디어 광장 
한복판에 도착한 그들은 일제히 무너져 내리듯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잠시후, 다시 광장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던가 싶도록 깊은 정적속에 
휩쌓였다. 낮동안 햇살을 받아 따뜻한 기운이 남아있는 광장의 돌바닥에 각가의 
배낭을 베고 드러누운 병사들이 깊은 잠속에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오히려 싱거워져 버린 것은 로마시민들이었다. 그들은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이처럼 연합군의 로마입성 첫날밤은 일부 시민들이 
우려했던 것처럼 잔인한 보복이나 약탈행위도 억고, 떠들석한 전승 축하행사조차 
없이 그렇게 싱겁게 지나갔다.
승리의 환희조차 잊어버린 깊은 피로와 침묵 - 그것이야말로 전쟁의 또다른 
참모습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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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 o n g m u d o h a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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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 a n g t a e g o n g h a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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