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Asteau (언젠간학생맧) 날 짜 (Date): 1998년01월22일(목) 18시19분25초 ROK 제 목(Title): 몬테카시노의 혈전 23 - (3) '진짜 연합군' 알렉산더 장군은 별 수확이 없는 아드리아해 전선의 영국 제8군을 카시노로 데려오는 한편, 미국 본토와 아프리카 전선으로부터 아직 전력이 '팔팔한' 신참 부대들을 속속 카시노로 실어왔다. 애초에 '로마로 향한 관문'으로 시작되었던 카시노 전투는 이제 그 자체가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는 골치아픈 숙제처럼 변해 버렸고, 이론적으로 말할때 이 곳을 우회할 수만 있다면 구태여 장악하려고 애쓸 필요조차 없는 카시노 산의 포위를 위해 오히려 우회로를 뚫어야 한다는 기묘한 사태로 발전해간 것이다. 그 결과 총연장 40km에 불과한 카시노 전선은 '병사들이 애깨와 어깨가 맞닿은' 유례없는 병력의 집중이 이루어졌고, 사실 이 정도의 병력이라면 '병사들이 손을 맞잡고 카시노 산을 몇 바퀴나 둘러쌀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그 연합군 부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실로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했는데, 미군과 영국군은 물론이고 자유 프랑스군단 휘하의 모로코와 알제리 식민지군 3개사단, 프랑스군 1개사단, 인도, 캐나다, 뉴질랜드 사단들까지 가세함으로써 카시노 전선의 연합군은 정말 지구상의 온갖 인종이 다 모인 혼성부대가 되어갔다. 그 중에서도 '블라디슬라프 안테르스'장군이 이끄는 자유 폴라드 군단은 특히 강한 동기의식과 복수심으로 불타고 있는 부대였다. 1939년 개전 당시 독일과 소련에 의해 국토가 절반쯤 불할점령된 폴란드군은 철저하고도 조직저으로 파괴되었다. 전 장교단의 60%이상이 처형되고 수백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던 육군강국 폴란드군은 완전히 해체되었을 뿐 아니라, 그들의 국토는 독일과 소련의 영토로 완전히 통합되었다는 점에서 다른 독일 점령지들보다도 더욱더 가혹한 운명을 겪었다. 하지만 그후 1941년에 벌어진 두 도둑의 불화 - 독소전쟁 - 으로 인해 가까스로 소련 점령지 안에서 소규모의 군대가 재건되었고, 영국군이 제공해 준 무기와 장비를 갖춘 그들이 이제 바야흐로 그 '1939년의 복수'에 나서고 있었던 것이다. 고향집은 불타 없어지고 가족들은 살륙됨으로써 돌아갈 곳조차 억는 사람이 많았던 이들 폴란드군들로 하여금 카시노산 정상의 수도원 공격을 담당케 한 알렉산더 장군의 결정은 결과적으로 현명했음이 곧 증명된다. 이 '최후의 대공세'를 위한 춘비에 만도 다시 한달 반이 걸린 5월11일 밤11시. 연합군은 카시노산 남쪽과 동쪽을 완전히 에워싼 40km에 걸친 전 전선에다 1600문 이상의 화포가 동원된 맹포격가 함께 다시 공세의 포물을 열었다. 이에 맞서는 독일군의 케셀링 원수는 연합군의 병력과 배치를 거의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공권이 연합군에 의해 장악됨에 따라 한대의 정찰기도 띄울 수 없었던데다, 연합군은 엄격한 통신과제와 위장술을 통해 병력의 집결과 이동상황을 철저히 감추었기 때문이다. 독일군은 지금 자신들이 맞서고 있는 병력이 6개사단 정도라고 믿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16개사단 이상이 투입되고 있었고, 그나마 제6남아프리카 기계화 사단 하나만을 계비병력으로 남겨둔채 전 병력이 공격개시 첫날부터 공세에 투입되었던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독일군은 '로마와 독일 본토로 향하는 연합군의 진격속도를 최대한 지연시켜 시간을 번다'는 기본적인 목표를 이미 충분히 달성하고 있는 셈이지만, 시실리 전투 이래로 거의 일년 가까이 계속된 산악 전투경험을 통해 그들은 이미 산악전의 귀신이 다되어 있었다. 릴리망을 도하하는 영국 제8군은 독일군의 치열한 반격을 뒤집어 썼고, 카시노 산의 배후를 포위하기 위해 해안도로를 따라 진출하던 미군도 다시 그 자리에 발이 몪였다. 카시노 산 정상의 수도원을 향해 공격을 개시했던 폴란드군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그들은 '수도원의 언덕'이라 불리운 카시노산 정상부의 마지막 고지에서 여러날 동안 꼼짝도 못한 채로 못박혀 있었다. 다만 카시노 산맥의 '아우룬치' 산맥을 통해 진입을 시도하던 자유 프랑스 군단만이 약간의 성공을 거두고 있었는데, 이것은 유달리 험준한 이곳의 지형으로 인해 도저히 인간의 접근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던 케셀링이 소수의 병력만을 이곳에 배치해 두었던 결과였다. 하지만 그는 프랑스군의 북아프리카 식민지군 병사들을 고려에 넣지 않는 실수를 범했다. '알퐁소 쥐앙'장군이 이끄는 이 프랑스 원정군단(FEC)의 모로코인 '구미에'족은 산악지대에서 살아온 타고난 등산가들이었다. 그들은 불과 며칠만에 길조차 없는 험준한 아우룬치 산맥의 깍아지른 벼랑을 돌파하여 카시노산의 서쪽에 도달해 버렸다. 원래 소수의 병력으로 사방에서 몰려드는적을 막아내는 방어작전에서는 단 한곳만 구멍이 뚫려도 순식간에 전체의 균형이 무너지고, 그것을 '땜질'하기 위해 전력을 집중시키다 보면 필연적으로 또 다른 곳이 무너지는 법이다. 이것은 마치 단 하나의 쥐구멍이 거대한 댐을 무너뜨리는 것과 같은 원리로, 뛰어난 전사인 독일공수부대조차도 어쩔 수 없는 한계상황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프랑스군의 성공에 고무된 미군이 마침내 산꼭대기로부터의 치열한 사격을 뿌리치고 해안도로를 확보했고, 영국 제8군도 라피도 강을 건너 카시노 산의 동쪽기슭에 도달하는데 성공했다. 특히 장렬한 영웅담은 카시노산 정상에서 전개되고 있었다. 마치 지난 4년간의 울분을 모두 이 한판의 전투에 걸어버린 듯한 폴란드군의 용맹은 결코 그들의 적 - 독일군 공수부대에 뒤지지 않는 장렬한 것이었다. 치열한 기관총의 탄막속에서 숱한 전우가 쓰러지는 것을 보면서도 그들은 독일군의 방어거점인 수도원의 폐허를 향해 수십차례의 돌격을 거듭했고, 총탄이 떨어진 병사들은 독일군을 향해 돌맹이를 집어 던졌다. "46000명의 우리 폴란드군은 더이상 잃을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 대부분이 독일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으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우리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더 이상 독일군을 죽일 수 없게 된다는 아쉬움을 빼고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전투는 밤낮없이 계속되었다. 낮에는 치열한 총격전이 이어졌고, 밤이되면 폐허의 이곳저곳에서 야전삽과 총검을 앞세운 백병전이 전개되었다. "우리는 명실공히 최강의 군대였고 그 점은 이미 우리의 적들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폴란드군은 모든 점에서 이성을 상실한 듯 보였다. 그들은 흡사 이 전투에서 전원이 몰살당하기를 진심으로 원하는 듯해 보였다. 나는 부상을 입은 어느 폴란드군 부상병이 우리가 다가가자 마치 야수와 같은 괴성을 질러대며 마구 돌을 집어 단지며 저항하는 것을 보았다. 그의 하반신 전체는 이미 수류탄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만큼 뭉그러져 있었음에도 말이다." 독일군 제1공수사단 '하인츠베르거'중위의 증언이다. 5월17일, 영국 제8군이 카시노읍까지 바짝 진격하고 프랑스군이 '에스페리아'읍으로 진출함에 따라 카시노읍과 산정의 독일군은 포위의 위협에 빠져 들읍다. 그때서야 케셀링도 자신들이 '연합군의 바다속에서 헤엄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 이제 퇴로의 문이 굳게 닫혀 버리기 전에 그 자리를 빠져나가야 할때인 것이다! 곧 전 독일군에게 퇴각명령이 내려졌지만 산꼭대기의 수도원에 있던 제1공수사단의 장병들은 철수를 거부했다. 뛰어나 용기는 적에게까지도 전염성을 발휘하는 것인지, 세계 최강의 정계부대라는 그들의 드높은 긍지가 폴란드군의 뛰어난 분투에 맞부딪히게 되자 본연의 임무조차 잠시 망각한채 어떻게든 여기서 끝장을 보고 말겠다는 자존심 싸움으로 발전했던 것이다. 이런 그들은 케셀링 원수가 직접 나서서 지휘관을 명령 불복종으로 문책하겠다는 으름장을 놓고서야 간신히 산을 내려갔다. 마침내 8일간의 육탄전 끝에 수도원의 폐허는 점령되었다. 폴란드군은 이 전투에서 거의 4000명이 전사했고, '스네이크 시드'라는 이름을 가진 카시노산 중턱의 폴란드군 전사자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씌어져 있다. '우리 폴란드군은 우리의 육체를 이탈리아의 흙에 바쳤고 우리의 마음을 조국 폴란드에 바쳤다. 당신들, 이탈리아의 자유와 폴란드의 자유를 위해' 5월23일, 독일 제10군은 전 전선에 걸쳐 후퇴를 시작했다. 그것은 이제 연합군이 그 지루한 '카시노의 덫'에서 빠져나온 것을 뜻하고, 로마로 향한 길이 활짝 열린 것을 뜻한다. 그리고 또한 절대절명의 위기에 몰려있던 안지오의 연합군이 마침내 구출되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며, 이제 로마로 향하는 진격대열에서 그들이 곧장 최선봉에 서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 G o n g m u d o h a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G o n g k y u n g d o h a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T a h a i e s a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D a n g t a e g o n g h a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