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i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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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Asteau (언젠간학생맧)
날 짜 (Date): 1998년01월21일(수) 13시18분15초 ROK
제 목(Title): 뭇솔리니 구출작전 23 - (4)



그 이후
9월18일, 히틀러의 격려를 받으며 이틀리아로 돌아간 뭇솔리니는 방송을 통해 
"파시스트의 깃발 아래 다시 뭉칠 것"을 이탈리아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이미 이탈리아 정부는 연합군에 항복했고, 일부 이탈리아군 부대가 연합군과 손을 
잡고 독일군에 맞서 싸우고 있는 시점에서 그것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라 
돌려보겠다는 무의미한 시도였다.
하여간 로마에서 480km쯤 떨어진 가르다 호수가의 작은 마을 '살로'에 자리잡은 
뭇솔리니의 이른바 '살로 공화국'은 그 이후로도 594일 동안이나 그 명맥을 
유지했는데, 그것은 순전히 로마에 있는 패전이탈리아의 신정부가 뭇솔리니의 
존재를 아예 잊어버린 덕택이었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는 이 자침 '제2의 시이저'가 이탈리아의 운명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이 극적인 탈출 작전을 통해 그를 
구출해 내었던 뭇솔리니의 '진정한 벗' 히틀러까지도 말이다.

도망다니는 독재자
1944년 6월 4일, 로마를 함락시킨 연합군이 계속 북상하고 있었고, 뭇솔리니는 
그것을 피하기 위해 '밀라고'를 향해 도망치고 있었다.
그리고 스위스에 인접한 이 이탈리아 최북단의 도시는 잠시 이 독재자에게 다시 
한번 과거의 영화를 상기시켜 주는듯 하기도 했다.
 그가 '데아뜨르 리리코'극장에서 '로마에 있는 무력한 배신자들을 대신하여' 
최후의 일전을 벌이자고 열변을 토하자 4만의 밀라노 시민들은 열렬히 박수를 보내 
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연설은 그저 연설일 뿐, 그것은 죽어가는 파시즘의 마지막 비명소리에 
불과했다.
밀라노 북방 80km의 '발테리나'계곡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이자는 호소는 한때 
일국을 호령했던 지도자다운 기상이 넘첬지만, 그 '결전'을 위해 총을 들고 나타난 
사람은 12명에 불과했던 것이다. 마침내 모든 것을 포기한 뭇솔리니가 결단을 
내렸다.
"도망치자. 이곳을 빠져나가 '메라노'까지 간 다음에 그곳에 있는 독일 대사관에 
망명을 요청하자"

정작 주인인 이탈리아인들은 그들의 국토를 전쟁터로 내어준채 둿짐만 지고있고, 
그 이탈리아 땅에서 연합군과 독일군이 격돌을 벌이는 이상한 전쟁도 이미 끝나고 
있었다.
40여대의 트럭으로 구성된 독일군의 패주대열이 '코모'호수의 구불구불한 
서쪽도로를 따라 끝없이 이어졌다.
이제 그 알량한 '살로 공화국' 마저 잃어버린 지도자는 그 독일군을 뒤따라 가고 
있었다.
패전의 징후가 역력한 독일은 이미 이 한심한 동맹자의 존재를 아주 잊어버린듯 
했고, 아무른 실권이 없는 이탈리아의 신정부 역시 그의 행방에는 관심이 없었다.
다만 연합군의 정보부대들만이 이 근사하고 상징적인 전리품을 생포하기 위해 그의 
행방을 찾고 있었고, 그리고 또 한무리의 사람들이 비슷한 목적으로 그의 뒤를 
쫓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항복과 더불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이탈리아 공산당 
빨치산이 바로 그들이다.
뭇솔리니 집권기에 잔혹한 탄압을 받았던 그들은 파시즘 정권이 무너지자 즉시 
총을 들고 '파시스트 잔당 사냥'에 나섰고, 이론적으로 말한다면 독일군도 그들의 
적이었지만 그들은 정작 그 독일군과 맞서 싸우는데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가만히 놔둬도 어차피 놈들은 저희나라로 돌아갈 것"이고, "종전 후에 건설될 
새로운 사회주의 국가 이탈라이"를 위해서는 뭇솔리니를 포함한 과거의 
파시스트들을 한놈이라도 더 색출해서 처형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지론이었다.
뭇솔리니 일행이 끼어있는 독일군의 철수 대열이 '제52가리발디 여단'의 공산당 
빨치산 부대와 마주친 것은 1945년 4월 27일이었다. 무기라고는 오직 넘치는 사기 
한가지뿐, 빈약한 무장을 갖추고 있던 빨치산과 이미 전의를 상실한 독일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대신 이 이탈리아인 공산주의자들은 '당신네들 속에 이탈리아 파시스트가 
한놈이라도 끼어있으면' 즉시 자신들에게 넘길 것을 요구했고, 독일군 사병으로 
변장한 뭇솔리니는 숨을 죽인채로 부들부들 떨면서 이 숨막히는 협상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몇명의 독일군 병사들이 그에게 칫수가 큰 군용 외투와 철모를 씌우고 
기관단초까지 들려줌으로써 신분을 감추려고 애썼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뭇솔리니의 운은 여게서 다하고 말았다.
빨치산 대원중에는 과거에 이탈리아 해군 병사로서 뭇솔리니에게서 직접 훈장을 
수여받음으로서 그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던 '주세페 네그리'라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뭇솔리니는 체포되었고, 독일군의 대열은 그 자리를 떠났다.
뭇솔리니는 이렇게 울부짖었다.
"놈들이 나를 배신했다. 그 돼지 같은 독일 놈들이 나를 발이넘긴 거야. 놈들은 
내가 개처럼 끌려 갈때돌 그저 멀거니 바라보고만 있었어."

빨치산이 뭇솔리니를 체포한 이유는 단 한가지 뿐이었다.
그리고 뭇솔리니는 처형직전에 이렇게 말함으로서 한때 일국의 두체(지도자)였던 
사람다운 기개를 조금이나마 보여 주었다고 전해진다.
"그래도 동족의 손에 죽게되어 다행이다. 나는 싸움에 졌다. 이제 승리한 그들이 
나를 처단할 차례다"

1945년 4월 28일.
뭇솔리니는 코모 호수가의 시골마을 '줄리노 디베쩨그라'의 작은 농가에서 
총살되었다.
그의 친구 히틀러가 베를린의 총통지하호에서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가솔린이 
끼얹어져 불태워지기 딱 일년전이었다.
20여년간 뭇솔리니를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던 그의 젊은 정부 '클라리 페타찌'도 
함께 저형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시체는 밀라노로 옮겨진후 '피짤로 로레토'광장에 
거꾸로 매달렸다.
그 장소는 과거에 파시스트 경찰이 이탈리아 공산당원을 검거하는 대로 처형하던 
바로 그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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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 o n g m u d o h a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G o n g k y u n g d o h a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T a h a i e s a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D a n g t a e g o n g h a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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