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i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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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Asteau (언젠간학생맧)
날 짜 (Date): 1998년01월19일(월) 11시58분48초 ROK
제 목(Title): 안지오,안지오 22 - (1)


다음은 '취미가'에 실리고 있는 세계 제2차대전사를

올린 것입니다.

제가 가진 과월호가 한계가 있어 22편 부터 올리게

되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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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에서 로마로 통하는 길은 딱 두가닥 밖에 없다.
그 도로는 도두 고대 로마시대에 건설된 것으로, '아피오'가도는 해안선을 따라 
로마로 뻗어있고 또다른 루트인 '카실리나'가도는 험준한 '카시노' 산길을 뚫고 
이어져 있다.
얼핏 생각하면 제6군단장 루카스 장군까지도 "이제 산이라면 진절머리가 난다"고 
할만큼 이탈리아의 험한 산세에 단단히 혼이 난 미군이 비교적 평탄한 해인도로를 
공격로로 택할듯해 보였지만 미군도, 독일군도 그런 일은 멸코 없을 것이란 걸 
이미 잘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 도로의 초입은 험준한 '아우툰치' 산맥과 바다 사이에 끼어있는 
오솔길이나 마찬가지였고, 이런 곳에서 산정에서 내려쏘는 적의 집중포화에 
노출된다면 몸을 숨길 곳조차 없이 모조리 벼랑 아래의 바닷속으로 굴러 떨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용케 이 호구(虎口)를 벗어난다해도 북쪽으로 전진할수록 '폰티네'의 늪지대로 
들어서게 되고, 게다가 이탈리아가 속한 남유럽의 겨울은 우기다.
연합군의 공격이 시작되는 1943년 11월은 이미 비와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할 
것이고, 불어난 물로 인해 도로 양편의 늪지대는 무서운 기세로 활장될 것이다.
평야 한복판에서 물에 갇힌 부대가 어떤 지경을 당하게 될지는 너무도 뻔한 
일이므로, 결국 연합군은 다시 한번 그 지겨운 산길 - '제6국도'라 불린 카실리나 
가도 - 를 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2500년 전에 로마인들이 건설했고, '한니발'을 비롯한 수 많은 군대가 
거쳐간 이 어래된 옛길에는 몇가지 잇점도 있었다.
도로의 입구에 해당하는 '릴리' 강의 협곡까지 이르는 일은 험준하기 짝이 없지만 
그 곳을 통과하기만 하면 비교적 넓고 평탄한 일이 펼쳐져 있어 전차부대를 
전속력으로 로마까지 돌입시킬 수 있는 것이다.
독일군의 케셀링 원수도 물론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는 어떻게든 험준한 
'카시노'산과 릴리강 부근에서 진격해 오는 미군은 저지해낼 생각이었다.
이탈리아 전역을 통해 독일군이 선제공세를 펴본 적은 한번도 없고 줄곧 
방어작전으로 일관해 왔듯이, 케셀링은 이번에도 단단한 방어선을 둘러쳤다.
각기 '발바라', '베른하르트', '구스타프'라 이름붙인 이 3중의 방어선은 '야전 
진지건설의 귀재'라 일컬어지던 독일 육군 공병감 '한스 베젤' 소장이 직접 설계와 
감독을 맡았고, 여기에다 히틀러의 개인 기술고문이며 군수장관이기도 했던 
'프릿츠 토트' 박사가 설립한 토트 연구소의 기술자들까지 대거 참여한 것만 
보아도 돌일군이 이 방어선에 걸고있는 기대개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짐잘할 수 
있었다.
항복이래 절대적인 식료품 부족과 궁핍에 시달리고 있던 이탈리아 민간인들이 
비교적 후한 보수와 식량 배급에 이끌려 자발적으로 건설에 참여한 이 방어시설은 
정말 난공불락이라 하기에 충분했다.
포진지와 지휘소는 산중의 단단한 자연 암반층을 뚫고 그 속에 건설되었고, 무수한 
박격포와 기관충좌가 고슴도치처럼 배치되었다. 크레인으로 필요한 곳에 간단히 
옮겨 설치할 수 있는 토치카가 수 없이 제작되었고, 그 중에서 큰 것은 75mm 
대전차포를 발사할 수 있도록 된 것도 있었다.
험한 산악지형으로 인해 전차의 기동이 어려웠기 때문에 낡은 전차는 도두 
연합군의 접근 경로를 겨냥한 채로 포탑만 내어놓고 땅속에 묻혔고, 파괴된 전차와 
장갑차량의 포탑도 콘크리트 엄체호와 조합된 전차 포좌로 개조되었다.
이 방어진지에 배치된 독일 제10군의 11개 사단 병력은 한두개 사단을 제외한다면 
도두가 최고의 전력을 가진 일급 전투부대였고, 제15장갑사단이나 공군의 헤르만 
괴링사단, 제1공수사단 등인 아프리카 전선 이래로 시실리와 나폴리 전투를 통해 
줄곧 그 가공할 투혼을 유감없이 과시해온 역전의 베테랑들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위협적인 것은 독일군이 제2방어선인 베른하르트 라인 전방에 약 
7만5000개의 지뢰를 매설해둔 광대한 지뢰밭이었다.
지뢰 탐지기에도 포착되지 않는 목제 케이스로 만들어진 '슈'지뢰와 밟으면 
수미터나 훌쩍 튀어오르는 다음에 공중에서 작렬하면서 파편을 사방으로 흩뿌리는 
'S 마이넨' 지뢰는 정말 무시무시한 놈이었다.
건설작업이 끝난 3중의 방어선을 둘러본 케셀링은 대만족이었다.

"이만한 준비를 끝내고 기다렸다면 한니발도 로마를 어쩌지 뭇했을 것이다. 
연합군이 여기에 맞서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정말 어리석은 것의 표본으로 세계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이다.
이처럼 높은 산과 철통같은 수비시설 이외에도 공격을 서두르는 연합군을 괴롭힌 
또다른 적은 높은 산과 산 사이를 흐르는 '릴리'나 '라피도', '싱그로' 같은 크고 
작은 강들이었다.
연합군기 간신히 산을 넘어 독일군의 방어선을 격파했다 하더라도 그 한고비, 
한고비를 넘을 때마다 어김없이 이런 강을 도하해야만 하고, 로마에 이를 때까지 
이런 모진 고생은 수없이 반복되어야 하는 것이다.
10월 초에 나폴리를 출발한 미국 제5군은 이미 시작된 겨울장마로 물이 불어난 
'볼투르노'강을 도하하여 독일군의 첫번째 방어선 발바라 라인까지 진출해 있었고, 
이 빗속에서 벌어진 악전고투로 인하여 나폴리에서 벌이진 악전고투로 인하여 
나폴리에서 가졌던 짧은 휴식으로 인해 얼마간 비축했던 기운마저도 이미 
잃어버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 이탈리아 반도에서의 싸움은 이제 시작된거나 마찬가지였으므로, 그들은 
한숨을 돌릴 틈도 없이 곧장 발바라 라인의 '미냐노'협곡을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연이은 산들은 평균 해발이 8000mm에 달할만큼 높은데다 평균 경사가 대부분 
60도를 넘을만큼 깍아지른 비탈을 기어 올라각 수 있는 차량이나 중화기는 아무 
것도 없었고, 네발을 이용하여 암벽을 엉금엉금 기어서 올라가기도 힘든 이런 
지형에서 별다른 작전계획이 있을 턱도 없었다.
게다가 풀 한포기 자랄 수 없는 암반에는 참호를 팔 수도 없었으므로 기관총의 
탄막사격이 쏟이질때 미처 바위틈으로 몸을 피하지 못한 병사들은 돌멩에처럼 비탈 
아래로 굴러 떨어졌고, 더우기 나쁜것은 독일군의 박격포탄이 작렬하면 깨어진 
돌멩이가 파편과 함께 비신하므로써 살상효과가 더욱 극대화되었다는 점이었다.
식량과 물, 탄약의 수송은 당나귀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지만 산중턱에 들어서면 
비탈은 더욱 가팔라지고, 여기서부터는 병사들이 그 짐을 떠맡아 메고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맨몸으로 기어 올라가기도 힘든 매끄로운 바위비탈을 네발로 기어 오르는 
병사들이 멜 수 있는 짐의 양은 한계가 뻔했으르로, 용케 몸을 숨길만한 바위를 
찾아 내어 달라 붙어있는 병사 하나가 계속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7~8명의 전우들이 그의 짐꾼노릇을 떠맡아야 했다.
밤이 되자 찬 빗줄기와 함께 온도는 영하로 곤두박질쳤지만 어렵사리 정상부근에 
엄폐물을 확보한 병사는 도저히 그 자리를 떠날 수 없다. 간신히 자신의 몸 하나를 
가려줄만한 바위뒤에 몸을 숨긴 캔자스 출신의 이탈리아계 미국인 '제임스 마리노' 
하사는 그 자리에 못박힌 채로 이틀밤과 사흘낮을 보냈다.

"처음에는 그저 두렵다는 생각뿐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그냥 머리속이 텅 
비어버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머리위로 총탄이 스쳐 날아가는 소리마저 
무감각해졌고, 독일군의 기관총탄이 내가 숨어있는 바위를 후려갈기는 소리도 
자장가처럼 들렸습니다.
적의 사격이 잠시 뜸할 때마다 거의 습관적으로 몸을 내밀고 총을 몇발 쏜 
다음에는 또 웅크리고 있었죠.
그 경황중에도 순간순간 잠도 좀 잤습니다."

하지만 이 지옥과도 같은 바위산을 마치 계집처럼 반가와한 사람들도 있었다.
제5군에는 영국군 이외에도 캐나다, 인도,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등 영연방 
국가병사들이 많이 배속되어 있었다.
그밖에 런던에 있는 폴란드 망명정부에 소속된 자유 폴란드 군단, 드골 임시정부의 
자유 프랑스군과 함께 얼마전에 항복한 이탈리아군의 일부 부대도 이제 연합군의 
일원으로 독일군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에 비해 한눈에 돋보이는 특이한 존재는 프랑스군에 소속된 모로코, 
알제리 출신 병사들이었다.
북이프리카 원주민 '구미에'족 병사들인 원래 가관총의 조작업을 익히는데 1주일이 
걸리는 사람들이고, 아무리 트럭을 갖다대 놓아도 자신들이 걸음마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타고 다리던 말이 없이는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전통무기인 짧은 칼 한자루를 쥐어주며 싸우라고 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험한 바위산의 준령을 다람쥐처럼 잽싸게 오르내리는 그들의 솜씨는 어두운 밤이 
되면 아연 더 활기를 띄게 되고, 이들은 매일 아침이면 피묻인 칼을 닦으며 
돌아왔다.
지휘관인 프랑스군 장교로부터 간밤의 야습에서 거둔 전과를 과장하여 보고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힐책을 받자 그들은 아주 '실제적인' 방법으로 자신들의 결백을 
입증해 보였다. 어느날 야습에서 돌아왔을때, 선지피가 뚝뚝 떨어지는 인간의 귀가 
가득 들어있는 부대자루를 그 장교의 텐트 앞에다 던져 놓았던 것이다.
이들의 용맹에 결코 뒤지지 않는 또 다른 부대는 영국군에 소속된 인도사단의 
'라지푸트'와 '구르카'족 전사들이었다.
구르카는 원래 구미에족과 마찬가지로 산안부족이고 '쿠크리'단검 한자루로 
독일군의 목을 쳐 날라는데는 귀신들로 유명한 투사들이지만, 라지푸트족은 원래 
산악부족이 아니라 기마민족이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동안 그들이 가지고 있던 투사의 전통은 그들로 하여금 가장 
힘들고 어려운 임무만을 골라 자발적으로 나서도록 했고 그런 일에서 제외되는 
것은 더없는 모욕으로 받이들였다.
구르카병과 라지푸트병은 경쟁을 벌이며 열심히 독일군의 목을 잘라왔고, 이것은 
어떤 면에서 가장 실제적이고 효과적인 공격방법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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