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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landau ()
날 짜 (Date): 2003년 9월 28일 일요일 오전 02시 21분 19초
제 목(Title): Re: 각개전투?



짐작으론 패트리어트 영화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은 서서 밀집해 가는 대형이
각개전투 식으로 바뀐 것은 총의 발사속도와 관련있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병사 개개인이 소지한 M16 소총이 연발로 발사하면 기관총에 버금가는 속사가
가능한 오늘날에 보면 군인들이 똑바로 서서 `나를 쏘시오'하고 줄맞춰 
걸어가는 병법이 미친 짓 같아 보이겠지만, 소총의 속사가 불가능했던 옛날엔
오히려 이 방법이 가장 효율적인 돌격법 이었습니다.

아마 원시시대에는 작전도 병법도 없이 우와~ 하고 그냥 각자가 알아서 용감
하게 돌격하는 방식의 전투였을 것입니다. 이런 방식을 고쳐서 군인들이 
대형을 짜고 밀집해서 흩어진 적을 돌파하는 방법을 고안해낸 사람은 바로
정복왕 알렉산더 입니다. (정확히는 알렉산더의 아버지 필리포스가 고안한
것을 물려받았다고 하더군요.) 중장갑으로 무장한 보병이 밀집해서 방패로
가리고 긴 창을 사방으로 뻗으면 흩어져서 산개한 적군의 보병이 그걸 격파할
방법이 없었답니다. 그리고 이런 밀집부대가 적군의 덩어리를 돌파해내면 
적군은 뿔뿔이 흩어져서 각개격파 당하여 패전하는 것이었구요.

총이 없고 칼과 칼이 부딪히던 시절에는 이런 전투법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
이었습니다. 

문제는 총이 발명된 다음인데, 많은 사람들이 옛날총을 무슨 M16처럼 생각
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임진왜란에 이미 포르투갈제 조총이 사용됐을만큼
총이 발명된 것은 수백년전 일입니다만, 당시의 총은 워낙 장전과 발사가
불편했고 기술이 부족해서 적중률도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시절의
`총'은 오늘날의 총처럼 마구 난사할 수 있는 개인화기가 아니라 오히려
지금의 포(包)에 더 가까왔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기관총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어느정도 연발이 가능한 총이 개발된 것은 19세기 후반입니다. 그 전까지
총은 한발 쏘고 청소하고 재장착해서 발사하는 일종의 간이식 포 였습니다.

19세기 중반까지의 지휘관 입장에서 볼때, 보병을 흩어뜨려놓는 것은 아주
위험한 배치형태였을 것입니다. 아군이 흩어져서 산개하고 있는데 적군이
밀집해서 대형을 이루어 아군을 돌파해오면, 비록 총으로 밀집한 적군을
요격한다 해도 워낙 발사에 시간이 오래걸리기 때문에 운나쁜 몇명을 총에
맞아 죽겠지만 상당수의 적군은 살아서 아군의 산개대형을 돌파해낼 수 
있습니다. 적군의 상당수가 아군의 전선을 돌파해 낸다면 이쪽이 지는 겁니다.

따라서 연발총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밀집된 보병과 속도가 빠른 기병대를
앞세워서 적진을 돌파해 내는 것이- 비록 진군중에 운나쁜 몇몇은 총에 
맞아 죽겠지만 - 훨씬 효율적인 전투법이었습니다. 패트리어트에서 영국군이
총에 맞아 죽으면서도 대오를 유지하고 뻣뻣이 서서 전진해 오는 것은
영국군이 미련해서도 바보이기 때문이어서도 아닙니다. 이 당시 전쟁에서는
뿔뿔이 흩어져서 엎드려 있다간 밀집해서 돌파해오는 적에게 패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과 같은 각개전투가 발달한 것은 아마도 총의 연발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총의 연발이 가능해지고 발사속도가 빨라지면서, 19세기
후반쯤부터는 옛날처럼 뻣뻣이 서서 진격하다가는 연달아 날아오는 총알에
대형을 짠 보병이 모조리 죽어나갈 지경이 되어 버린 것이죠. 
우리편이 전부 흩어져서 엎드려 있고 적은 밀집대형으로 밀고 들어와도
총을 연발로 발사해서 밀집대형 전체를 죽여버릴 수 있으니 흩어졌다고해서
밀집대형에게 돌파당할 염려도 없어졌고요. 

대략 이 시점부터 보병들이 줄맞춰 전진하는 방식을 포기하고, 총알을 피해
땅에 바짝 붙어서 기어가기 시작했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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