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oveNfriendship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guest) 날 짜 (Date): 1994년06월20일(월) 02시09분08초 KDT 제 목(Title): 내가 울린 남자에게 그에게 편지가 왔다. 아직도 내가 꿈속에서 나타난다고, 꿈속에서 나에게 "잠깐만 기다려." 신신당부를 하고 어디를 갔다오면, 내가 온데 간데 없어서, 나를 애타게 부르다 깨는 꿈을 자주 꾼다고......... 그의 낯익은 필체를 보는 순간, 내가 남긴 멍으로 퍼렇게 부어있는 그이의 가슴이 보이는 것 같아 목이 메어왔다. 헤어진지 벌써 일년하고도 한 달이 지났는데........... 그는 아직도 나를 못잊어하고 있었다. 대학 3년때 사람수가 모자라서 대신 나가게 된 졸팅에서 그를 만났다. 매일 저녁 5:00시에 하는 타임지 특강에 미쳐있었던 나는 그날의 예습을 하고 뿌듯한 맘으로 잘생긴 강사의 명강의를 들으러 강의실로 종종 걸음을 치고 있었는데, 중간에 사냥감을 찾던 선배에게 발각되어 거의 질질 끌리다시피 해서 울며 겨자먹기로 나간 미팅에서 였다. 3:3으로 한 미팅에서 그는 나에게서 거의 눈을 떼지 않아 주위 친구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했다. 파트너를 정하자는 말에 그냥 내 손을 잡고 나오면서 미안한 대신 지금의 차값은 내가 내겠다고 하면서 그 얌전한 얼굴에 어울리지않는 박력을 발휘 해서 나를 정신없게 만들었다. 내가 좋다 싫다를 생각하기도 전에 너무나도 친절하고 자상하게 신경을 써주는 바람에 어느 덧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는 남들보기에 연인처럼 사귀고 있었다. 그렇다. 그는 늘상 입던 옷처럼 사람을 편하게 해주었던 사람이었다. 아마 나이차이가 좀 나서 그랬을까? 오빠같은 느낌, 심지어 아빠같은 느낌이 드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성으로서의 느낌이 내게는 전혀 들지 않았다. 2년정도 사귀고 난 후...... 그의 태도는 점점 남자로서 나에게 여자가 되어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에게 그런 역할을 할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었나 보다. 남들이 다 하고, 친구들도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스킨쉽이 나는 허용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기다렸다. 침착하게, 착하게, 진실하게....... 그는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근데, 나는 이상하게도 그와 결혼한다는 상상을 하니 너무 기분이 어색하고 이상하기만 했다. 자연스럽게 내 어깨에 얹는 손, 내 허리에 감는 손이 징그럽게만 느껴졌다. 그가 손을 잡는 것이 싫어서 주머니가 있는 옷을 입고 나갔고, 내 손은 더운 여름에도 주머니 속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가 나에게 키스를 하려고 시도한 여름 저녁......... 그에게 전화를 걸어 화를 내면서, 내가 생각해도 너무 심한 무안을 주면서 앞뒤가 맞지 않는 이유를 대면서 그만 만나자고 일방적인 통보를 했다. 3개월 간, 그이의 전화와 편지와 집앞에서 기다림들을 매몰차게 거절하다가 다시 마음이 약해져서, 그냥 또 만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그가 이성으로 다가오려고 하면 참을 수가 없었다. 한 1년정도 흐른 어느 날, 대화의 화제를 결혼한 뒤의 얘기들로 끌고가는 그를 갑자기 참을 수가 없어서, 그에게 아무런 이유도 없이 또 헤어지자는 말을 했었다. 그대로 있다간 그와 꼭 결혼을 해야할 것 같아서이다. 그와 부부가 되어있는 모습, 우리의 아이들과 같이 거니는 모습..... 그런 상상들이 아름다와야 되는 데, 그때의 나에게는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도 너무나 딴 세계의 일,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들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와 결혼을 하면 안 될것 같은 강박관념인지, 그냥 결혼 자체에 대한 거부감인지 분간을 못하겠지만, 어쨌거나 그이와의 스킨쉽도 징그러운 나에게 결혼은 말도 안되는 요구였다. 그의 편지를 보면서 나의 멋대로의 행동이 그에게 얼마나 상처를 남겼는지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에게 애초부터 그런 맘이 없었더라면 그가 아무리 잘 대해주었더라도 그와 그렇게 오랫동안 사궈서는 안되었었는데....... 그렇다고 독신으로 살겠다는 어떤 주관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 전에 주고 받았던 많은 편지들을 다시 꺼내서 차근 차근 읽어보았다. 수많은 추억들이 가슴 한 구석을 아프게 긁으면서 떠오른다. 그 이에게 나는 첫사랑이었다고 했다. 나는 누구를 좋아한 적은 많았지만 그것들이 과연 사랑이었는지, 몇번째 사랑이었는지 헤아릴 기준이 없다. 나를 그렇게 사랑해 줄 남자가 이 세상에 다시는 없을 것 같기도 하고, 그를 이번에도 거부하고 나면 후회할 것 같은 두려움도 든다. 그런데, 왜 나는 그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 그이의 마음을 알면서도, 그이에게 고마와하면서도, 감사해 하면서도, 이 감정이 결코 사랑은 아니다라는 것은 확실하다. 내마음의 문을 조금만 열어줘도 커다란 행복으로 삼고 있는 그이를 알면서도 이렇게도 내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 인색하고 어려운 일일까? 내가 대단한 존재라고 착각하고 있어서 인지, 아니면 사랑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서인지...... 사랑이 무슨 거창한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는지...... 혹시, 내가 그이를 사랑하고 있는데 그이의 커다란 사랑에 묻혀서 미처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르겠다....... 뭐가 정말인지 모르겠다........ 지난 일년동안 힘들고 지쳤을 때, 그이가 간간히 생각이 났다. 그는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사람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움추려 들지 않고 발휘될 수 있도록 격려와 지지를 해주는 영원한 내편이었다. 이렇게 아련하게 그이와의 추억을 그리워하는 것이 사랑인지 혼자임이 외로워서 드는 미련인지.......... 다시 한번 그이와 시작을 해야할지, 그냥 이대로 두어야 할지........ 내가 지금 솔로라고, 외롭다고 그이에게 또 마음 약해서 의지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인지...... 지난 번에 헤어질 때 그 사람에게 나의 감정을 솔직히 다 얘기 했었다. 내가 그대에게 이런 마음인데, 더 이상의 만남이 아직도 의미가 있겠는가? 그는 너무도 아파했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또 다시 그사람을 아프게 하는 결과가 되지 않을지....... 그는 나와 헤어지고 나면 나를 탓하지 않고 자기가 무얼 잘못했을까만 생각하는 사람이다. 헤어지는 원인이 나의 변덕과 이기적인 마음에서라는 것, 내가 그대만큼, 아니 절반 만큼도 그대가 갖는 감정을 가질 수 없다는 것, 이해하지 못했다. 그 사람과 몇번 헤어짐을 거듭하는 동안 주위에서는, 여자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보다는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과 사는 것이 훨씬 행복하다고 하면서 후회할 거라고들 했다. 그렇다고 내 의지가 없는, 내가 주체가 되지 못하고 받기만 하는 사랑이 과연 행복한 것일까? 결혼의 이유가 "내가 사랑하니깐"이 되지 못하고 "그가 사랑하니깐"이 되어도 여자이기 때문에 행복해 질까? 그이에게 돌아간 뒤 혹시 더 큰 상처를 남기도 또 도망치듯 나오게 되는 것은 아닌지...... 솔직히 나의 변덕스러움에 자신없다. 내가 진정으로 그이를 사랑하지 않는 다면 이대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 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이렇게 받기만 하는 사랑도 귀찮아 하는 내가 누굴 사랑할 줄이나 아는지도 의문이고........ 그렇다고 그를 사랑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태에서 그에게 다가간다는 것이 또 하나의 죄가 될 것 같기도 하고...... 에구... 고민이다....... 이번에, 다시 그이에게 돌아간다면 이것은 거의 결혼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게 중요한 인생의 선택이 지금 결정되어져야 하는데...... 하루종일 펜을 들었다가 놓았다가, 수화기를 들었다가 놓았다가 했다. 한 남자의 마음에 수년간 상채기만 남기고, 한 사람은 그 상처가 아프다 아프다 못해 마지막 자존심까지 버리면서 나를 찾았고, 한 사람은 준 상처를 까맣게 잊고 똑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고.......... 내가 너무 뻔뻔해서, 스스로가 너무 얄미워서 이렇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