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w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鄭 相 熙) <163.152.90.95> 날 짜 (Date): 2000년 11월 24일 금요일 오전 09시 45분 04초 제 목(Title): 법률가 세익스피어 시비 제목 :법률가 셰익스피어 시비 안경환(서울대 법대교수/헌법학) - 서울대 법대졸업, 동대학원 수학 -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 산타 클라라 대학 졸업 - 미국 워싱턴(D.C) 및 켈리포니아 주 변호사 - 런던 정경대학(L.S.E)방문교수 역임 - 미국 남 일리노이 주립대 방문교수 역임 - 현재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셰익스피어는 법률가였는가? 문자를 매개체로 하여 인류의 삶에 기여한 수많은 문인 중에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만큼 우뚝한 존재는 없다. 그는 단순히 영어권이나 유럽 문화권의 영웅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문성(文聖)이다. 그의 위치가 높은 만큼 그의 정체에 대한 시비도 많다. 대저 인류의 지성사를 몇 사람의 천재의 업적을 놓고 이에 지적으로 기생하는 무리들의 설전의 역사라고 규정한다면 문학세계에서의 셰익스피어는 무수한 후세인 들에게 끝없는 논쟁거리와 찬거리를 제공해준 천재임에 틀림없다. 셰익스피어에 대해서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하더라도 최소한의 반응은 기대할 수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셰익스피어를 빌려서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팔고 있는 것이다. 금세기 초 한때, 셰익스피어가 법률가였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적이 있었다. 그 중에도 대표적인 "이설"(異說)이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당시의 영국 최대의 석학이었던 법률가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이 진짜 셰익스피어라는 주장이었다. 1910년에 출판된 『베이컨이 셰익스피어이다』(Bacon is Shakespeare)라는 책은 나름대로의 근거자료를 갖추어 세인의 주목을 끌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동원된 언어와 지식이 워낙 탁월하다 보니 이런 작품이 어찌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스트랫퍼드 촌놈"에 의해서 쓰일 수 있었겠는가라는 의혹이 항상 따라다녔고, 누군가 "많이 배운 사람"이 썼음이 분명하다는 가설이 발전되어 베이컨에게 월계관을 씌운 것이다. 천재는 정규의 제도교육에서 탄생하는 것이 아님을 믿기 싫어하는 "식자"들이기에 이러한 신원조회의 일에 열을 올렸던 것이다. 어쨌든 "법률가 셰익스피어"의 시비가 탄생할 만한 충분한 이유는 있다. 그의 작품에 법이 너무나 빈번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법률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시도하기 힘든 발상과 사용하기 힘든 법률용어가 엄청나게 많이 동원되어 있다. 대표작 『햄릿』(Hamlet, 1600-01)만 해도 그렇다. 등장인물의 거의 전부가 명대로 못살고 부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한다. 클라우디스에 의한 선왕의 독살, 햄릿에 의한 폴로니우스의 살해, 오필리아의 익사, 합법적인 운동경기를 통한 레아티스와 주인공 햄릿의 죽음, 왕비 거트루드의 빗나간 죽음, 아버지의 복수로서의 햄릿에 의한 삼촌 클라우디스의 살해 등, 이 모든 죽음이 상궤를 벗어난 일이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이 모든 경우가 당시의 살인죄의 법리와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오필리아는 자살했기 때문에 정식 기독교의식에 의해서 매장할 수 없노라는 산역(山役)꾼의 항변은 자살을 신에 대한 죄로 규정하던 당시의 법리를 반영한다. 우유부단하게 비치는 길고도 지리한 햄릿의 복수의 과정도 자세히 관찰해보면 참지 못할 "법의 지연"(제3막 1장)을 감내해가며 살해 후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한 치밀한 계산에 불과하다. 마지막에 굳이 필요할 것 같지도 않은 포틴브라스를 등장시킨 것도 왕위계승자를 확정시켜 권력의 공동(空洞)상태를 방지한다는 법률가적 배려이다. 무질서보다 차라리 악법을 선호하는 법률가의 생리이다. 『햄릿』만이 아니다.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 of Venice, 1596-97)의 소위 "인육계약"과 포셔의 형평법 이론, 『말괄량이 길들이기』(The Taming of the Shrew, 1593-94)와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 1599-1600)의 혼인계약과 기혼여성의 재산권 문제 등은 작품의 주된 테마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인의 상식으로 보면 셰익스피어는 결코 법률가였을 리가 없다. 판사, 검사, 변호사 등, 모든 법률가는 한통속이고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법률가 놈들을 모조리 때려죽이는 일이다"(First thing we do, let"s kill all the lawyers ; 『헨리 6세』[Henry VI. Part Two, 1590-92], 4막 2장)라고 외쳤던 그였으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