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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ckim ( )
날 짜 (Date): 2008년 1월 19일 토요일 오전 08시 30분 58초
제 목(Title): 펌)투르크인, 1909년의 조선땅을 밟다4/6



<서울> 한국의 수도는 서울이다. 그러나 서울이라고 했을 때 한국인들은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다. 일본인이나 중국인들도 서울이란 용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경성' 또는 '게이쥬'라고 불렀다. 서울은 문자
그대로 수도이다. 주위가 웅장한 성으로 둘러싸여 있고, 왕궁이 있다. 왕궁을
제외하고는 딱히 눈에 띄는 건축물은 보이지 않는다. 한국인의 문화 유적으로
칠 만한 작품이 얼마 없는 것 같다. 가옥과 상점들도 모두 단층이었다. 퍽
단순하고 평범한 건축물이었다. 러시아의 시골이 오히려 질서정연한 건물이
많은 편이다. 무릇 한 나라의 수도로써, 이층 건물이 없는 것은 참으로
기이하다. 일층 건물조차 장식이나 규모에서 호화로운 맛은 없다. 오직
고관대작들의 집들은 불쌍한 국민들에게 위압감을 주려는 듯 담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되어 있다. 다음날은 내부대신을 방문했다. 한국 정부 내부대신의
이름은 제린-역자(이희수씨)주-내부대신 박제순(朴齊純)의 호 평순(平齋)의
일본식 발음으로 보인다-이고, 퍽 훌륭한 인물이었다. 우리는 시간을 가지고
한국민의 참담한 현실에 대해 몇가지 예를 나누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국가는
이미 한국인이 손에서 떠난 상태라고 했다. 내부대신의 설명에 의하면 왕조차
자유 방종에 빠져 국가의 존망이 위기에 처하고 일본의 침략이 가속화 되어
가는데도 유감을 나타내지 않았다. 더구나 때때로 "국민이 우리 통치보다는
일본 정부 행정 하에서 더욱 편안히 살아간다" 라고 탄식하고는 했다. 그러나
왕세자는 국권이 완전히 빼앗겼다고 통곡을 했으며, 아녀자들도 통곡을 했다고
한다. 비록 나의 질문이 대신에게 정신적 부담을 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정부가 주도적 행정을 담당하는 자치나
연방정부의 형태라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할까요?" " 행정이 마비상태입니다.
현재 국민의 삼분의 일이 일본 정부의 통치를 원하고 있어요. 일본인이 들어온
순간부터 국민들이 일종의 자유의 분위기를 누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물론 일본
통치하에서 폭정과 수탈이 뒤따르게 되겠지요.  이를 알면서도 일본인을 원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주요한 사회 복지 시설을 그들이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길을
만들고 수많은 증기선이 오가고 도시가 정비되고 전기가 들어오고 철도가
정비되는 등, 모두가 일본이 이룩한 업적이지요. 우리 스스로 편리해졌다는
것은 인정해야겠지요. 이제 국가 운명은 경각에 달렸습니다. 선량한 새끼 양의
입장에서 보면 중국의 통치보다는 일본의 통치가 낫겠지요. 일본이 침략하지
않았다면 중국이 야욕을 보였을테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탄식만 하고 시간만
보낸다고 해서 일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민족이 말살되가고 국가의 운명이
꺼져가고 있어요. 그러나, 이제는 아무런 방책도 없어요." 더 이상 대신을
공격해봐야 좋을 것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자리를 뜨려는데, 소매를 잡고
한사코 말리는 대신의 청에 못이겨 다시 자리에 앉았다. " 생각컨데
우리나라에도 예전에 당신네 타타르인들이 온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
공관에 최초로 이렇게 고매한 분을 모시게 되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어찌된 영문인지 이슬람 전도사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역사서에는 언젠가 아랍인들이 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언제 어느 시기에 왔습니까?" "우리 역사에 기록이 있습니다. 서력으로는 당장
환산해서 말씀 드릴수가 없지만은 대락 1천년 정도 되었을겁니다." "어떤
목적으로 누가 왔었는지 알고 계시는지요?"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전도
목적으로 온 것 같습니다." 이 렇게 하여 작별을 고하고 대신과 헤어졌다.
뾰족한 방도 없이, 한국인들은 얼마 안가 장례식을 치르고 말것이다. 전국의
주요 행정이 일본 관리의 손에 넘어갔고, 간간히 일본인 관리들 사이에 한국인
하급 관리가 있다고 해도 주요 기관의 부서장은 모두 일본인이었다. 이미
한국은 일본이 통치하고 있었다. <학교> 일본이 한국에 1200여개의 소학교를
열었다. 10개 정도의 중등학교도 있다.  한국도 일본에서처럼 의무교육은
일반화 되어 있는 것 같다. 고등교육을 희망하는 한국인은 일반적으로 일본으로
건너간다. 한국에서의 교육은 한국어로 가르쳐지고 있으나, 교사들은 대부분
일본인들이었다. 나는 시골에 있는 조그만 학교들을 둘러보았다. 교사들
대부분이 일본인이었다. 그러나 서울에 있는 학교에서는 한국인 교사들이
많았다. 한편 일부 시골 구석에서는 아직도 구식으로 교육하는 곳도 눈에
띄었다. 어린 학생들이 밀짚을 깐 멍석 위에 앉아서 칠판이나 교육 기재도
제대로 없이 과거로부터 전통적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방식을 따라 공부하고
있었다. 이곳은 한국인 고유의 전통적 교육장이다. 물론 일본인에 의해 개교된
신학교의 교육 방법은 상당히 질서 정연한 면이 있다. <여성> 여인 들 간에는
일부는 얼굴에 내놓고 자유롭게 보행하는 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한국 여자들은 얼굴을 얇은 천으로 가린채 긴 외투를 걸치고 길거리를 다닌다.
일부 젊은 처녀들도 얇은 베일을 쓰고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데, 베일 쓰는
풍속과 여인들의 양태가 부하라나 투르키스탄 등지에서 무슬림 여성들이 하는
풍속과 유사하다. 여인들의 쓰는 망토 같은 외투는 남자들의 줏베(외투)에
해당한다. 특히 한국 여성들은 하얀색 베일을 즐겨 쓴다. 이로써 여자들이
남자들과 자유 교제를 맺는 것은 매우 어렵게 된다. 얼굴을 가리지 않는 소위
신여성들도 일본 여자들과는 달리 무질서한 자유 교제를 피하는 경향이 있다.
베일 쓰는 풍속에 대해 한국인 종교 지도자-동학 지도자??-한 사람과 아래와
같은 대화를 나누었다. "한국 여인들이 얼굴을 베일로 가리는 이유가 뭔가요?
당신들 종교적 관습에 그런 가르침이 있나요? 아니면 도덕적 윤리관에
입각한건가요?" "얼굴 가리는 관습은 보편적인 자연 현상이오. 백년간이나
내려오는 국민의 윤리적 전통이요. 그러나, 지금은 그 숫자도 상당히
줄어들었다오." "자연적 현상이라니 잘 이해가 안됩니다." " 약자가 강자에
대항해 자신을 보호할 방도를 갖추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지요. 약자는 항상
폭행과 억압의 위협에 직면해 있어요. 어떤 인간이고 어떤 민족이건 간에
남자들은 공격 근성이 있게 마련이어서 여자들이 얼굴을 가리지 않는 것은
남자들의 이러한 충동과 공격 근성을 유도하여 그들의 희생이 될 수 있는
소지를 만들어주게 되지요." "교육과 교양의 문제지요. 기본적 소양을 갖춘
자는 상대방의 권리와 인격, 명예를 공격하지 않게 됩니다." " 당신들
서양인들은 상당히 교육 수준이 높고 교양이 있는 양반들이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동양에만 왔다고 하면 맨 처음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오?  
여성들의 명예를 짓밟는 것이오. 더욱이 이러한 비열한 행위가 문제로 대두되면
재빨리 대사관에 구원 요청을 하면서 스스로를 방어하고는 하지요. 대사들도
그들의 구원 요청을 무시하지 못하고 자국민 보호라는 미명 하에 악행을
두둔하게 되지요. 날이 갈수록 우리 민족의 명예가 침범당하고 윤리는 타락되어
갑니다. 스스로의 보호를 위해 여성들의 얼굴을 가리는 것은 이런 면에서
지극히 당연한 자기 보호의 현상일것이오." "일부 몰지각한 서양인들의
야만적인 행위는 마땅히 규탄받아야 하겠지요.  그러나 일반 서양인들 모두를
비윤리적인 야만인으로 성토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표현으로 생각되오." "
아니오. 난 여기 토박이오. 내 나이 이미 환갑을 넘었소. 수많은 서양인들을
보았소. 특히 종교 전도를 목적으로 온 사람들도 상당수 왔고, 현재 거주하고
있소. 그들 종교의 계율이 엄격히 결혼을 금지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수많은
우리 여인들의 명예를 손상시켰소. 베일 없이 얼굴을 내놓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여자들이 그런 부류요. 기독교를 받아들인답시고 모두들 윤리와
도덕을 팽개치는 지경이지요. 종교의 이름으로 국민 전통과 미풍 양속을
파괴하고 있어요." 이 노인의 사상은 나를 퍽 감동시켰다. 물론 통역을 통해
대화를 엮어 나갔다.  일본인 통역이 옆에 있기는 하지만, 나는 대담하게
한국과 한국민족의 장래에 대한 그의 소신을 물었다. 우리와 대화를 나눈
노인의 이름은 일본식으로 '콘시야마'였다. 노인은 대답했다. "우리나라 는
오늘날 일본과 다름이 없어요. 그러나 일본인들은 시간적으로 상당히 늦게
상륙한 편이오. 민족 의식과 윤리가 완전히 파헤쳐진 다음에야 허겁지겁 행동을
개시했지요. 민족혼을 말살한 진짜 장본인은 기독교 선교사들이오. 이제 한국에
민족이나 국가의 개념은 사라졌지요. 오직 생존의 문제만 남았소. 즉 먹고 살
방도를 강구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어요. 한국의 장래를
생각해보면 '일본이 우리를 쉽게 강점하느냐?  아니면 한일 전국을 피로
물들이는 치열한 투쟁이 있느냐' 하는 문제로 요약되오. 이런 과정을 겪은 후에
한국의 소유권은 일본인에게로 넘어가겠지요." "당신들 조금씩 힘을 뭉쳐
나가시오. 그러면 민족의 정통성은 어느 정도 수호할 수 있겠지요. 자주의식을
소유하고 있는 민족은 결코 어떠한 폭정이나 식민 상태 아래서도 민족혼을
지켜나갈 수가 있어요. 고난에 처해서도 민족적 긍지와 기상을 잃지 않는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나 자신도 러시아정부 통치 하에 있는 타타르인이오. 우리
타타르인은 400년간 러시아의 간섭과 압정 하에 있지만, 자치적 민족공동체를
형성, 유지해나가고 있지요. 장래에는 반드시 우리 민족만의 정통 국가를
회복할 수 있다는 신념과 희망으로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노인은 무척
놀라는 표정이었다. "400년씩이나" 라고 중얼거리며 다짐하듯이 물었다. 나도
강조하면서 "400년씩이나"라고 답변했다. 이렇게 해서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생각을 대충 수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국을 밝혀주는 긍정적인
요인이 거의 없는 것과 함께, 한국인들 자체도 어떠한 희망이나 신념을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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