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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ckim ( )
날 짜 (Date): 2008년 1월 19일 토요일 오전 08시 31분 48초
제 목(Title): 펌)투르크인, 1909년의 조선땅을 밟다5/6



<한국의 선교사들> 세계에서 기독교 선교사들이 가장 자유롭고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나라가 한국일 것이라는 데에는 조금의 의심도 없다. 특히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성공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요인으로는 막대한
금력의 사용뿐만 아니라 외세를 업고 현지 행정력을 최대한 이용하여 선교에
연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기독교도가 되면 죄를 짓더라도 서양 외교
공관의 주선으로 현지 정부에 압력을 넣어 석방되거나 외국 공관의 보호를 받게
된다. 이렇게 그들의 도움에 이른 한국인들의 수는 백만에 이른다. 실상 가난에
찌든 한국인들은 배고픔때문에 무엇이든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될 지경에
놓여있다. 특히 최근 몇년간 계속된 흉년과 수탈은 국민 생활을 최악의 경지로
몰고 갔다. 원래 한국의 평야는 어느 곳에도 비교할 수 없을만큼 비옥한
땅인데다 총 경작 면적도 결코 일본보다 작은 규모가 아니었다. 평방킬로미터당
45인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년 동안 수많은 일본인들이 한국에
이주해왔고, 지금도 속속 이주자가 늘고 있다. 3~5년동안 비옥한 토지의
소유자가 한국인에서 일본인으로 바뀌었고, 결국은 일본인이 한국 농토를
경영하는 상황에 이르게 될 것은 분명하다. 한국인은 더욱더 극심한 수탈과
가난에 시달릴 것이다. 어디서든지 제한된 토지에 이주자가 늘어날 수록
토착민의 생활은 궁핍해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주정책은 토착민에게는
사형과도 같은 최악의 조치이다.  세력을 업고 새로 이주해 온 침략민에 대해서
토착민들이 자기 권리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통계는 현재 곳곳에서
불법 또는 강제 이주자에 의해 토착 경제가 파탄된 수많은 예를 보여주고 있다.
이슬람 역사에서도 비옥한 토지를 가진 토착민들이 이주민에 의해 그 존재가
소멸된 기록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현재 메디나 지역에는 아랍
원주민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새로 이주해 온 이방인들이 아랍화되어
메디나의 주인으로 남게 되었다. 오늘날 시베리아에서도 토착 타타르인들은
거의 소멸될 위기에 처해있다. 자연의 법칙은 그들의 소멸을 예고하고 있다.  
동투르키스탄-현재 중국의 신장 자치구 지역-에서도 슬라브계 러시아인의
이주가 시작되었을때, 이미 토착민 말살의 기운이 싹텄다. 세계 어느 지역의
예를 보더라도 통계상으로 새 이주자가 토착민을 지배한다는 것은 자연의
법칙처럼 되 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토착 원주민들이 거의 사라진
상태이다. 이런 배경을 고려해서 짐작컨대, 일본인들이 대규모 이주를 통해
한국에 정착하게 된다면 그들은 이 땅의 주인이 될 것이다. 토착 한국인들은
1세기 이내에 소멸되거나 약화될 것이 분명하다. 또한 벌써부터 사망자의 수가
출생자의 수를 앞지르고 있다는 통계가 민족 말살의 조짐이 될 수 있다. 여기에
한국인들의 지나친 과음과 주벽이 인구 감소 현상의 주요한 원인이 되는 것
같다. 오늘날 한국인들 사이에서 음주의 악습이 그토록 만연되어 있다. 어느
시각 어느 장소에서도 취해 나뒹굴고 있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다. 기독교의
만연도 국민 의식의 마취에 일익을 담당하는 것 같다. 사실 선교사들이
한국에서의 선교를 위해 가장 효과적으로 쓰는 무기는 술인것 같다.  평생 술을
입에 대봄직도 않을 사람이 기독교인이 됨과 동시에 적어도 한 차례는 성
예수의 신성한 피가 담긴 포도주라 하여 술을 마시게 되는 것이다.  포도주를
마시면서 예수의 피니, 성령이 담겨있는 잔이니 하며 인간의 참다운 이성의
힘과 판단력을 종교의 힘으로 상실시키는 것이다. 기독교 학자들이 한 국가의
도덕관을 자기네들의 종교적 신조에만 의거해서 판단하고 유도하는 이상 참다운
해결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화재> 한국의 고대 문화적 유물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면 성곽 정도일 것이다. 건축 양식은 생각컨대 그리 오랜 역사를
지니지 않은 것 같고, 특히 중국식 건축 양식을 많이 본딴것 같다. 한국의
독창적인 건축물이나 고유한 문화적 금자탑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것 같다.
전국을 골고루 돌아다닌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서울은 한 국가의 중심이고
수도인데도 특별한 문화 유산이 없다. 고도(古都)  인천에도 가봤지만 거기에도
특별한 예술성을 담은 유적은 없었다. 지극히 평범하고 단순한 건축물
뿐이었다. 관심을 끌 만한것이 있다면, 도로가 사방으로 넓게 잘 정비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마을의 도로는 꽤 넓고 직선으로 뚫려있다. 골목들도
꼬불꼬불 이어진 것이 아니고 비교적 계획적으로 정비된 직선 형태이다.
일반적인 가옥 양식도 평범 단순하고 지역별로 큰 차이가 없는 듯 하고,
서울이나 인천의 도시 건물들도 같은 양식이었다.  성문이나 성곽이 많은 점이
특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성문 양쪽에는 문화적 가치를 지닌 두 동물의
석상이 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꽤 오랜 역사를 가졌다 한다. 동물 석상을
받치는 아래쪽 석판에는 아랍어 문자에 가까운 글자체가 보였다. 어떤
동양학자는 그것을 아랍어라고, 다른 학자는 몽골어라고 주장한다. 나도 여러번
가서 몇 시간이라 해독을 해보았지만 단 한 글자도 읽을 수 없었다. 내가 아는
어떠한 글자에도 해당하지 않는 문체였다. 그나마 일부는 마멸되어 지워져
해독의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다른 성문들도 중국풍이었다. 얼굴 모습을
말하자면, 한국인들의 모습은 정말 우랄-바쉬쿠르트족과 흡사하고, 차이를
발견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언어는 전혀 상관이 없는 듯 하다.  일상
생활에 쓰이는 많은 용어를 물어보면서 두 언어의 연관성을 찾으려고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두 종족간의 상호 관계는 언어학자 피셔에 의해 이미
밝혀졌다고 한다. 왕과 왕비들의 용모와 복장, 신발들도 바쉬쿠르트족과 너무나
유사했다. 오늘날, 왕은 동경정부의 손님처럼 되어버렸다. <한국의 일본인> 현
재 일본은 한국을 거의 자기 소유로 한 셈이다. 철도를 이용해 전국을 침략해
들어갔다. 전시만 해도 소규모의 장비로 좁은 도로 복구 공사에 치중하던 것이
전쟁이 끝나자 대규모의 군대를 수송해 와서 넓고 견고한 도로공사에 착수했다.
해안가의 항만들도 꽤 훌륭한 규모로 재정비되고 새로운 설비가 이루어졌다.
도시에는 전차가 다니고, 전화 및 전신이 가설되고 우편제도가 정비되는 등,
일본에 있는 산업시설 및 기술이 그대로 한국에 이전되온 느낌이다. 아마도
한국에서 더욱 튼튼하고 견고한 설비가 갖춰지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일본의
대외정책의 기본은 가능한 한 많은 식민지를 가지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은
한국을 자신들의 영구한 정착기지로 삼기 위해서 가능한 모든 투자와 총력을
기울여서 필요한 모든 준비를 서두르는 것 같았다. 이러한 식민 경영의 목적을
위해 전국을 새로이 정비하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고 있다. 현재
부산-신의주-봉천을 연결하는 꽤 넓고 튼튼한 철도가 개설되었으며, 봉천에서
다시 철도가 연결되어 중국 내부로 운행된다. 현재 안동-봉천 사이에는 아직도
좁은 노폭에 소형 기관차가 운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으로 이주해왔거나,
이주 준비를 마친 일본인들의 숫자는 백만을 육박했다고 한다. <한국의
외국인들> 여 러가지 내외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한국에 있는 외국인의
숫자-여기서 외국인은 선교사를 제외한, 일반 상인들이다-는 지극히 미미하다고
하겠다.  한국 내에서는 아직까지 국제 무역이 활발하지 못하고, 무역 거래가
다소 있다 해도 일본 상인의 손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과는 달리 한국에는 외국 상인들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생산이 내국
수요에도 미치지 못하니, 외국 상인들의 활동 분야가 제한될 수 밖에 없다.
한국인은 남녀를 불문하고 흰옷을 즐겨 입는다. 주로 삼베옷을 입는데 다른
옷감으로 옷을 지어 입은 사람도 간혹 볼 수 있다. 그야말로 백의민족이다.  
가옥이나 건물들도 웅장하거나 화려한것은 없다. 모든것이 평범과 단순
일색이다. 그래도 일본 가옥들은 내부에 복잡한 장식품 몇개는 갖추고 있고,
여인들도 최소한 평생에 한 두번정도는 허리띠를 매 보는 비단옷을 만들어 입곤
한다. 일부 명문가에서는 상당한 정도의 옷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사치스럽고 값비싼 것이라고는 없다. 한국인은 헌 삼베천으로 옷을 해 입으면
몇년이고 계속 입는 모양이다. 혼사조차도 별다른 비용을 들이지 않고 간단히
치른다. 외국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시장도 없다. 가끔 외국 수입상들이
원목을 구입하러 오지만, 그렇게 큰 규모의 거래는 아니다. 일상 생필품의
대부분은 일본에서 들여오는 실정이고, 일본인이 거의 모든 국가경제를
장악하고 좌지우지하니 외국 상인들의 경쟁력은 자연히 제한당하게 된다.  
외국상인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진출할 품목이 거의 없는 셈이다. <부유층>
한국에는 부자들이 수도 얼마 되지 않는 것 같다. 백만장자는 아니더라도
십만장자도 손에 꼽을 듯 하다. 그나마 그들도 원목장사로 한밑천 잡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지금까지 형성되지 않은 부유층이 앞으로 생길 가능성도
희박하다. 현재의 국민경제와 현실을 고려해볼때 가까운 장래에 어떤 부유
상인층이 형성되리라는 데 비관적이다. 능력이 있다해도 그 능력을 펼 수 없다.  
아무리 일이 힘들어도 불평할 수 없다. 겨우 일거리를 찾으니 작업이 중단되어
버린다. 처절한 생존투쟁만이 있을 뿐이다. 배를 불리는 일 이외에 당장 딴
일에 신경을 쓸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다. 즉 미래를 내다보는 장기적인 계획과
안목을 가질 틈이 없다. 이런 면에서 가까운 장래에 두터운 상인층이
부각되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서울에 있는 일본 상인들의 견해도
부정적이었다. <도덕관> 한국은 도덕적을 상당히 타락해가는 징조를 보이고
있다. 각종 주류 범람과 그들의 과도한 음주 기질이 도덕성의 파괴를
촉진시키고 있다. 사회 여러 분야에서의 급속한 변화와 전통의 퇴조에 따라
도덕과 윤리의 타락 현상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과거에 한국인들은 정직하고
성실한 민족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다. 그들은 결코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없었는데, 자식 중 하나가 거짓을 행한것이 드러나면 부모는 당장 그를 자식
취급 하지 않을 정도로 엄하게 다루고, 당사자는 사회에서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수치스러운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거짓이 만연해
일반화되는 위험도 보이고 있다. 성범죄나 간통은 과거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흉악 범죄였는데, 최근 10년간 이런 비윤리적인 사건이 출현하기 시작했고,
점점 확산되는 조짐이다. 나는 물론 한국에서 짧은 시간을 보내면서 보고 들은
것을 토대로 묘사하기 때문에, 또한 직접 대화가 통하지 않아 자세하고
정확하게 사안을 파악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상황을 종합해 보건대, 오늘날
한국의 장래는 심각한 위험에 빠져 있다. 전국 어디를 가도 술병을 손에 든 채
취기에 빠져있는 한국인을 볼 수 있다. 물론 일부 책임은 무책임한 기독교
선교사들이 선교의 이름으로 음주 행위를 만연시킨데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어느날 저녁, 한 선교사는 한국인 남녀를 모두 한 장소에 모아놓고서는
술잔부터 돌리며 선심을 쓴다. 원하는 대로 술을 마시게 한다. 모두가 취기에
빠진다. 다음날 아침에는 또다른 한국인들이 기독교도가 되기 위하여 앞다투어
줄을 선다. 한잔의 술을 얻어마시기 위해. 입교한 자는 등록 카드에 기록이
되고 곧 바로 술이 나온다.  이보다 입교가 더 쉬운 종교가 어디 있으랴. 이
사실들을 되도록 많이 수집해서 머릿속에서 정리해 보았다. 러시아에서는 자유
선언이 있자마자 많은 부랴트인들(소련 연방내에 부랴트자치공화국을 세운
부랴트족)이 기독교 신앙에서 불교 신앙으로 돌아갔다. 한국인의 경우 반대로
전통적인 신앙에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기독교로 개종하고 있다. 개종에
비례해서 악행의 만연도 심해지고 있다. 나는 일주일 가량 한국의 내부를
돌아다녔다. 한국의 장래에서 희망적인 요소를 찾지 못했다. 아마도 한국이란
단어는 몇년 후에는 한 국가의 명칭이 아닌 한 도의 명칭으로 사용될지도
모른다. '일본국 한국도' 라는 상황이 당장이라도 일어날 수 있는 여건에 있다.
지금은 한국의 독자적인 국익이라는 문제를 생각할 시점은 지났다. 한국이
일본에 합병된다면 당분간 그들의 보호 아래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한국인이 해야하는 가장 적절하고 현실적으로 유일한 방도는 일본과의 합병일
것이다. 일본인은 적어도 한국인과 정신적 세계와 문화 배경이 같고 종교와
종족에서 친밀감이 있기에 합방은 어느정도 한국민의 사생활을 보호해 줄
것이다. 일본 정계 지도자 이토 히로부미이 말하기를 "한국인들의 사생활은
일본에 의해 보장될 것이다. 일본은 이 보장을 준수함은 물론 한국인과
일본인과 동일화시키려는 노력을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인의 존재는
일본인의 영속성을 지켜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내 가 서울에 머무는 동안,
러시아어를 아는 한국인을 찾아 백방으로 수소문을 해보았으나 결국 허사로
돌아갔다. 일본어를 아는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를 하면서 수많은 접촉을 했지만
생각컨대 그들의 대부분이 일본 통치의 옹호자들이었던 관계로 나에게 피력한
견해들이 실상을 대변해 주지 못하고, 한국인이 처해 있는 정확한 상황이
사실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나 자신도 일본어로 내 의중에 있는
생각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으므로 어려움이 있었고,
이런 연유로 사실 왜곡과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이 점이 항상 마음에 걸리어
개운하지 않았다. 일반 한국인들의 반대 의견도 수렴하기 원했다. 그러나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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