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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MinKyu (김 민 규)
날 짜 (Date): 2007년 3월  7일 수요일 오후 05시 00분 58초
제 목(Title): Re: [펌]당의 멸망과 서 만주 왕조의 복귀 


한가지 딴지를 겁니다. 

명나라가 망한 것은 북경이 만주에 가까워서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많습니다.
명이 망한 직접적인 계기는 청나라가 아니고 이자성의 난으로 인한 것이고
이자성이 북경에 쳐들어 갔을 때에도 오삼계의 군대는 산해관에서 청군을
막아내고 있었습니다. 만약에 수도가 북경에 있지 않았다 하더라도 명이
(혹은 이자성이) 북경을 청에게 빼앗기고 나서도 중원을 지배할 수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명의 국력이 강했을 때를 생각하면 북경을 기반으로 만주나 몽고를
제압하고 있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한족의 입장이나 북방민족의 입장에서나
북경이 결국 요충지이니까 수도로 삼지 않았나 싶습니다.

명도 처음에는 남경이 수도였는데 건문제(맞나?)가 황제였을 때 북경에
기반을 두고 있던 영락제 (황제는 나중에 되었지만, 왕자일 때 이름이 생각이
안나서)가 반란을 일으켜서 실력으로 권력을 차지하면서 북경으로 수도가
옮겨진 것으로 압니다. 이 사건의 내면에는 수도가 군사 중심지에서 떨어져
있을 때 쿠데타가 일어난다던지 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는
명나라 때만의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한나라(전한)나 당나라도 수도가 장안에 
있었는데, 이는 장안이 서방 민족을 견제하는 군사 요충이라 그랬을 것입니다.

수 양제가 중국을 통일한 후에도 수도를 강남 가까운 곳으로 옮기지 않고 
대운하를 팠고, 당나라가 들어선 다음에도 강남의 물적 자원에 의존함에도 
불구하고 수도를 옮기지 않은 것도 군사적인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이 송나라 이후에는 주전선이 서북방에서 동북방으로 옮겨지면서 북경이
요충지가 되고 북방 왕조이던 남방 왕조이던 계속 북경을 수도로 삼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은 그냥 제 짐작뿐이 아니고 페어뱅크스의 신중국사에
나오는 관점입니다.

참고로 고대 로마사를 봐도 비슷한 문제가 있는 것이, 오현제 시대 이후 
게르만족에 대한 수비를 위해 국경지대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황제들도
다뉴브강 유역 출신들이 주류를 이루고 로마 대신에 밀라노나 콘스탄티노플의
중요도가 올라가는 변화를 보입니다. 후기 로마 황제들 중에는 로마에 개선식
참석을 위한 것 외에는 한번도 가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글이 장황해졌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명이 수도가 만주에 가까와 
망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많은 것 같고, 역사에 만약이라면을 말하기는
뭐하지만 명의 수도가 북경이 아니었으면 멀리 남쪽에 있는 왕실이 북쪽 
국경지대의 군부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서 훨씬 일찍 망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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