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chopin (** 쇼팽 **) 날 짜 (Date): 2007년 2월 4일 일요일 오전 08시 29분 07초 제 목(Title): [펌]오랑캐로 가자/V. 나는 완양 아꿔따 오랑캐로 가자/ V. 나는 오랑캐 완얀 아꿔따 드이어 어제 김경일 씨가 쓴 "나는 오랑캐가 그립다"라는 책을 다 읽었다. [300쪽이 넘는 책을 하루나 이틀 만에 다 읽을 수 있는 까닭은 그것이 모국어로 쓰여 있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영어를 모국어로 하면서 박사가 될 정도로 교육을 받았다면, 아마 영어로 된 책들을 이렇게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것도 영어 공용화를 하지 않아서 생긴 폐해다.] 금사는 여진족이 12세기에 세운 금나라의 역사를 몽골제국 시대의 사람들이 정리해 놓은 것이다. 김경일 씨의 책에는 금나라를 세운 완얀 아꿔따의 일대기를 간략히 적으면서 거기서 배울 오랑캐의 정신을 끄집어 냈다. 그래서 책꽂이에 꽂혀 있던 중화서국 발행 <금사> 세기1권을 뽑아 들고 관련 부분을 읽었다. 이제부터 소개하는 <금사> 번역문은 단군 이래로 최초로 공개되는 것이다. 금나라의 시조는 [함보]라는 고려에서 온 사람이다. 그 형인 [아고내]는 독실한 불제자였기 때문에 고려에 남고, 동생인 [보활리]와 함께 여진의 땅으로 가게 된다. [고려사에도 이에 대한 이야기가 전한다.] 금나라의 왕실의 시조는 고려인이었다는 말이다. 금나라 사람들의 출신에 대해서 <금사>에는 "금나라의 선조들은 말갈에서 나왔는데 말갈은 원래 이름이 물길이니, 옛날 숙신의 땅이다. 위나라 때에 물길에는 7부가 있었는데, 속말부, 백돌부, 안차골부, 불녈부, 흑수부, 백산부였다. 수나라는 말갈을 일컬을 때 역시 7부라고 했다. 당나라 초에 흑수말갈과 속말말갈이란 것이 있었는데 그 5부에 대한는 정보는 없다. 속말말갈은 처음에는 고구려에 붙었으니 성은 대(大)씨였다. (당나라 고종때) [이적]이 고구려를 깨뜨리니, 속말말갈은 동모산에 보존하였다. 뒤에 발해가 되어 왕을 일컬어 10여세를 전하였다. 문자, 예악, 궁부, 제도가 잇었다. 5경 15부 62주가 있었다. 흑수 말갈은 숙신의 땅에 살았다. 동쪽으로는 바다에 닿아있고, 남쪽으로는 고구려에 접해 있어서 역시 고구려에 부속되었었다. 일찌기 병사 15만의 무리로 고구려를 도와 당태종에게 대항하였으나 안시성에서 패하였다. 개원(당나라 현종) 중에 중국에 사신을 파견하였고, 흑수부를 두어, 부족의 장으로 도독, 자사들 삼고 장사를 두어 이를 감독하였다. 도독에게는 이(李)씨란 성과 [헌성]이란 이름을 내려 주었고, 흑수경략사에 임명하였다. 그 뒤로 발해가 강성하게 되니 흑수를 강제로 병합하여 드디어 흑수부와의 외교 관계가 끊어졌다. 오대 시대에 기탄(거란)이 발해의 땅을 모두 얻으니 흑수말갈도 기탄에 속하게 되었다. 그 중에 남쪽에 사는 사람들은 거란의 호적에 올랐으니, 이름하여 "익은 여진(熟女眞)"이라 하였고, 그 북쪽에 사는 사람들은 기탄의 호적에 오르지 않았으므로 그 이름을 "날 여진(生女眞)"이라 하였다. 날 여진의 땅에는 혼동강, 장백산이 있는데, 혼동강은 또한 흑룡강이라 하였는데, 이른바 백산과 흑수가 이것이다." 다음에는 <금사>에 나오는 아골타에 대한 중요한 대목만을 적어 본다. ([함보] 이후 몇몇 대를 지나..) 그의 레주메(resume)를 한 번 적어 보자. 이름 : 완얀 아궈따 (중국식 이름 민(旻) 출생 : 1068년, 음력 7월 1일, 하얼빈 지역 호랑이 물가 사망 : 1123년 (56세) 특이사항 : 태어날 때 오로라가 나타났다고 함. 가족 사항 : 아버지 [영가(盈歌)] 어머니 [라라(拏懶)] 씨 형 [우야소(烏牙束)] 형인 [우야소]의 뒤를 이어 족장이 되고, 1115년 금나라 황제가 됨. [족장에게는 요나라에서 절도사 벼슬을 주고, 태사(太師)라고 불렀음.] [모욕 당하는 여진족] (1) ([아골타]의 형인 [우야소]가 족장이었는데,) 늑대를 쫓고 있는 꿈을 꾸었다. 아무리 화살을 쏘아도 늑대를 맞힐 수 없었는데, 늑대는 [아골타]의 앞에서 화살에 맞고 죽었다. 사람들은 "길조다. 형이 얻지 못한 것을 아우가 얻을 징조다."라고 말하였는데, 그 달에 [우야소]는 죽고, 동생인 [아골타]가 자리를 이어받았다. 이 때 요나라의 사신인 [아식보]가 와서 말하가를 "왜 상을 당한 것을 보고하지 않았는가?"하고 물었다. [요나라의 입장에서는 지도자의 교체가 중요한 국제 정치적 첩보이므로, 힘이 약한 나라에서는 항상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 [아골타]가 말하기를 "그렇게 하면 상을 당하고도 애도할 수 없기 때문에 그랬다. 그것도 죄가 된단 말인가?"하였다. (2) 다른 날에 [아식보]가 다시 왔을 때, 말탄 병사 곁을 지나 [우야소]의 빈소에 이르렀는데 좋은 말을 보고 이를 가지려 하였다. [아골타]가 노하여 장차 [아식보]를 죽여 버리려 했으나, [종웅]이 간하여 그쳤다. (3) 이윽고 요나라의 명령이 오래도록 닿지 않았다. 요나라의 임금은 사냥을 좋아하였고, 술마시고 음탕하여 정치를 게을리하여 사방에서 일을 아뢰어도 왕왕 살핌을 받지 못하였다. (여진 사람) [아속]이란 자가 일찌가 요나라로 도망쳤는데, [영가]는 그 성과 그 부락을 취하였다. [아속]은 돌아갈 수 없게 되자, 부족의 동생인 [은술가], [사리간] 등과 은밀히 남쪽 강에 사는 [혼도복속]과 결탁하여 모두 고려로 망명하려 하였다. 그러나 일이 발각되어 [아골타]는 [협고철갈]을 시켜 체포하도록 하였으나, [은술가]와 [사리간]이 먼저 요나라의 국경 수비대에 사로 잡히고 말았고, [혼도복속]은 이미 (고려로?) 도망을 한 상태였다. [철갈]은 그 처자를 잡아서 돌아왔다. [국내 정치범의 체포를 요나라가 막은 것임.] (4) 태조 아골타 2년. [아골타]는 강서(江西) 지역에 있었는데, 요나라의 사신이 와서 [아골타]더러 절도사의 명을 받으러 (직접) 오라고 하였다. [이것도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다.] (5) 처음에 요나라는 매년 사신을 보내 이름난 매 해동청을 바다 위에서 사갔다. 그런데 그 길이 국경의 안쪽으로 나 있었고, 사신은 탐욕스럽고 제멋대로여서 (여진 사람들을) 징발하여 (매를) 수색함이 끝이 없었기 때문에 관가의 사람들과 백성들이 이를 고통스러워했다. [해동청을 잡으러 가는 길을 매길(鷹路)라고 했다.] (6) [우야소]는 일찌기 [아속]의 일을 말하면서 점차 요나라의 사신들을 거부하였다. [아골타]가 절도사를 이어받아서 역시 [포가노]를 보내 [아속]을 수색하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이 두가지 일에 대한 이야기를 요나라를 멸한 뒤까지 항상 하였다. [아골타의 반격] (1) 이에 다시 종실인 [습고내]와 [완얀 은술가]를 보내 [아속]을 수색하도록 하였다. [습고내] 등이 돌아와서 이구동성으로 "요나라의 임금은 교만하고 나태하고 해이해져 있는 모습이었습니다."라고 하니, 이에 [아골타]는 관료들과 원로들을 모두 모아 요나라를 정벌하려 함을 고하고, 요충지를 점검하고, 성을 쌓고, 무기를 수리하여 다음 명령을 기다리도록 하였다. (2) 요나라의 통군사가 이 소문을 듣고, 절도사를 보내어 묻기를 "병기를 수리하고 수비하라는 명령을 내리니 너희는 무슨 딴 뜻이 있는 것이냐?"라고 물었다. [아골타]는 "방어 시설을 만들어 스스로를 지킬 뿐이니, 또 무엇을 묻겠는가?"하였다. (3) 요나라는 또 [아식보]를 보내서 이를 힐책하였다. [아골타가 말하기를 "우리는 작은 나라다. 큰 나라를 섬기어 감히 예의를 폐지하지 못하였다. 대국의 은덕이 베풀어지지 않으면, 달아나 (스스로) 주인이 된다. 이 작다는 글짜로도 능히 희망이 없겠는가? 만약 [아속]을 나에게 보내면, 조공을 하겠다. 잡히지도 않았는데 어찌 손을 묶고 (남의) 제어를 받겠는가?" (4) [아식보]가 돌아오자 요나라 사람들은 비로소 전쟁 준비를 시작하여, 총군 [소달불야]에게 명하여 군대를 녕강주에서 가다듬으라 하였다. (5) [아골타]가 이를 듣고 [복괄랄]을 보내 다시금 [아속]을 수색하도록 하였으나, 사실은 요나라의 형세를 살피게 한 것이었다. [복괄랄]이 돌아와 이야기하기를 "요나라의 군사는 많아서 그 숫자를 알지 못하겠습니다."하였다. [아골타]는 말하기를 "저들은 군사를 처음 가다듬고 있는데, 어찌 이와 같이 모일 수가 있겠나?"하고, 다시 [호사보]를 보내었다. 그가 돌아와 보고하기를 "오로지 [사원] 총군사가 녕강주의 군사와 발해군사 800여명만을 거느리고 있을 뿐입니다. [아골타]가 말하기를 "과연 내 말과 같지 않느냐."하고, 제장에게 "요나라 놈들이 우리가 장차 전쟁을 일으키려 함을 알고서 각 지역의 군사들을 모아 우리를 방비하고 있다. 반드시 선제 공격으로 이를 제압하고, 남의 제압을 받지 말라!"하자, 모두들 "옳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6) 9월에 여진족의 여러 부족의 군사가 래류수에 모였는데, 2500명정도 되었다. [아골타]는 하늘에 고하고, 마침내 여러 장수들에게 명하여 곤봉을 주며 맹서하기를 "너희들은 한마음으로 온 힘을 다하라. 공이 있는 자는, 노비나 부곡 사람은 양인으로, 벼슬하지 못한 양인은 벼슬을 주고, 먼저 벼슬이 있는 자가 차례로 나아가 경중을 따질 공을 보이라. 만일 이 맹서를 어기면, 이 곤봉 아래 죽을 것이며, 그 가족들도 용서하지 않겠다."하였다. (7) 요나라와의 국경에 도달할 즈음, 먼저 [종간]으로 하여금 병사들이 참호를 파는 것을 감독하게 하였다. 이윽고 발해군이 우리의 왼쪽 날개 일곱 무커(오늘날의 대대병력)를 공격하여 무리가 약간 퇴각하였는데, 적병이 바로 우리의 중군을 침범하였다. [사예]가 출전하는데, 철질(말의 종류인듯)이 먼저 달려 나갔다. 아골타가 말하기를 "전투가 쉽지 않다."하고, [종간]을 보내 이를 그치게 하엿다. [종간]은 말을 달려 [사예]의 앞에 나아가서, 철질마의 고삐를 잡아 이를 중지시켰다. [사예]는 마침내 함께 돌아왔다. 적군이 이들을 쫓아 오다가, [야율시에스(요나라 장수)]가 말에서 떨어졌고, 요나라 사람들이 나아와 구원하였다. [아골타]가 구원병을 쏘아 죽이고, 아울러 [시에스]를 쏘아 맞추었다. 그 앞으로 돌진하는 기병이 있었는데, 또한 쏘아 가슴을 관통시켰다. [시에스]가 화살을 뽑더니 도망하자 추격하여 그 등을 쏘아 맞추니 화살이 절반정도나 들어갔고, [시에스]는 울부짖다가 죽었다. [시에스]가 타던 말을 얻어 돌아왔다. [종간]과 여러 기병들이 요나라 군사들에게 포위 당하였는데, [아골타]가 이를 구하여, 맏아들을 전투에서 면하였다. 또, 곁에서 화살을 쏘는 사람이 있었는데, 화살이 이마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골타]가 화살을 쏜 사람을 돌아다 보고 한 화살로 쏘아 죽였다. 장병들에게 이르기를 "적들을 모두 죽이고서 그치라."하니, 뭇 병사들이 이를 따랐고 용기가 스스로 배가 되었다. 적들은 크게 달아나며, 서로 밟혀 죽은 자가 70-80%가 되었다. (8) 녕강주에 진군하여, 뭇 군사들이 성을 공격하였다. 녕강 사람들은 동문에서 출전하였다. [온적흔]과 [아도간]이 이를 쳐서 모두 쓰러뜨렸다. 10월 1일에 그 성을 0若募� 소식을 듣고 크게 노하여 스스로 칠십만을 거느리고 치문에 이르렀다. ([아골타]는 적병의 수가 많아서 방어선을 구축하고 수비를 하고 있었다. 아골타는 잡혀온 요나라 포로들로부터 [장누]란 자가 반역을 일으켜 요나라 임금이 이틀 전에 돌아 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 틈을 타서 요나라 임금을 추격하여 호보타강에 이르렀다. 이 전투에 참가한 여진족 병사는 2만에 그쳤다. [아골타]는 말하기를 "적들은 많고 우리는 적으니, 군대를 나누면 안된다. 보아하니 그 중군이 가장 단단해 보인다. 요나라 임금이 반드시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 중군을 깨뜨리면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하고 우익으로 하여금 먼저 싸우게 하였다. 군사들이 몇번 붙었을 때, 좌익을 합하여 이를 공격하였다. 요나라 군대가 크게 무너졌다. 우리 군대가 그 위로 치달려서 그 속에서 가로지르니 요나라 군대는 패하여 죽은 자가 백여리를 서로 이어졌다. 싸움에 진 요나라의 [소특말] 등이 병영을 불사르고 철수하니, 마침내 군대를 물리었다. [중간 생략] (12) 수국 7년, 8월, 무신, 임금이 행궁에서 붕어하니 나이는 56세였다. [이하 생략] 금사에 나오는 찬에는 [아골타]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태조 [아골타]는 영특한 계책과 밝은 전략이 있었고, 활달하고 큰 도량이 있었으며, 사람을 알고 임무를 잘 주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쓰이기를 즐거워 했다.[리더의 조건] 처음에 동경을 점령하자, 곧 요나라의 법을 없애고 조세를 살피어 감하였고, 여진족의 제도를 사용하였다. [자주성] *참고: 사고전서의 요사, 금사, 원사는 모두 조선 출신인 김간(金簡)이 음을 교정한 것이다. 김간은 조선인으로 북방 언어에 능통하였는데, � 그가 위의 사서에 나오는 북방 민족들의 언어로 된 관직명, 지명, 사람이름 등을 교정하였다. 출처: http://samtay.egloos.com/581339 __ 쇼팽 http://brainew.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