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Davin (다빈) 날 짜 (Date): 2005년 10월 10일 월요일 오전 06시 35분 12초 제 목(Title): [펌] 소련의 유엔군 대항 The nationality of the "honcho" pilots is no longer a mystery. The Soviets now admit their part in the Korean War. ------------------------------------------ ( 한국전 당시의 혼초의 국적에 대한 의문이 이제 풀렸다. 소련이 한국전 참전을 고백했기 때문이다. ) - 이 글은 1991년의 글임 - 미그기 부대의 러시아인들 By Steven J. Zaloga ( 스티븐 짤로가 ) 약 40 여년전 한국전에서 나타났던 미그 15기들의 조종사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중국은 이미 오래전에 이 조종사들에 대해 고백했고 그들이 소련 최고의 조종사들이었다는 리포트도 있다고 한다 ( 아직 확인은 안되었음 ) 소련 예비역들은 최근에 자신들이 한국전에 참전했던 혼초 들이라고 인정하기 시작했다. 1989 년 비밀해제 이후, 한국전에서의 소련 참전은 이제 정부 비밀이 아니다. 소련 언론에 의해 밝혀진 것들을 볼 때 소련의 한국전 참전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대단했다. 지금까지는 '희망'했던 소련인 조종사에 의해 한국전 참전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소련이 가진 미그기의 많은 부분이 미국 전투기와의 싸움에 사용된 것이 밝혀 졌다. 1950년 전쟁 개전 당시 북한군은 제트가 없었다. 당시 가지고 있던 공군력은 98 대의 Yak-9U 피스톤 엔진 프로펠러기 였다. 그리고 70 대의 II-10 피스톤 엔진 공격기도 있었다. 무경험 조종사들이어서 이 비행기들은 곧 전쟁터에서 미군에 의해 사라졌다. 유엔군에 의한 북한군의 격퇴는 곧 중국과 소련의 회의로 이어졌다. 그들은 북한에 대해 도와주기로 결정한다. 10월 1일 ( 주: 바로 오늘이네요 ! ) 북한 독재자 김일성은 중국 마오쩌뚱에게 중공군의 개입을 요구하게 된다. 마오는 군대를 보내기로 허락했고, 소련에게 원조를 요구했다. 그러나 조셉 스탈린에게는 이러한 침입에 대한 미국의 반응에 불쾌한 놀라움이 있었다. 그는 마오쩌뚱에게 소련이 공중전을 해 줄 수 있다고 약속은 했었다. 그런데 10 월 10일에 그는 이를 다시 생각했다. 최근 소련에 의해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는 미국의 공군력을 두려워 했고, 미국의 핵폭탄 공격에 빌미를 제공할 것을 걱정했다. 실지로 그는 북한에 주둔한 소련인 고문들을 북한에서 떠나도록 명령했다. 그는 소련인 군인들이 체포되어 소련의 유엔에서의 이중성을 보여 주기는 싫었던 것이겠다. 그래서 스탈린은 중국과의 약속을 어기고 대신 중국에 미그 15 기를 더 주기로하고 최소한의 작전 도움만을 주기로 했다. 그 첫번째 행동으로 모스코바는 극동에 몇개의 미그 15 연대를 주둔시켰다. 소련 공군은 진짜 전투에 참가했다. 그러나 최근 소련에서 밝혀진 한국전에 대한 내용들은 대부분 당시 조종사에서 나온 것이지, 정부에서 나온 정보가 아니므로 실지로 당시 이러한 작전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가에 대한 고위층의 의도는 아직 알길이 없다. 아마도 스탈린은 소련 공군이 있었다는 것을 계속 비밀로 할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The First MiG-15s Arrive ( 첫 미그 15 기 도착 ) 한국전 씨어터에서의 ( 주: 전장을 씨어터 라고 부른다. 즉 극장 ) 첫 전투기에 의한 combat 패트롤은 11월에 이루어졌다. 미국 조종사는 날씬한 새로운 미그 15기의 출현에 충격을 받았다. 이미 미그기가 극동에서 몇달전부터 활동하고 있었지만 직접 안 것은 충격이었다. 1950년 4월 미그기는 상하이에 나타나서 중국국군 폭격을 방해하였다. 당시 그 미그기 조종사는 소련인들이었고, 그 소식은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당시 정보기관에서 미그기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에 실패했었다. 한국전 참전 미그기 부대는 소련의 평상 공군의 tactical arm 인 frontal aviation( 주: 공격부대) 에서 차출되지 않았다. 그들은 공군 방어부대의 intercepter( 공격방어군 ) 연대에서 왔다. 이를 PVO 라고 불렀는데 나중에 다른 독립적 부대로 편성된다. 1950년대 까지는 소련의 방어군의 미그 15기가 극동에 배치된 적이 없었다. 그들은 주로 모스코바 주변에 배치되어 미공군의 모스코바 폭격을 저지하는 역할을 맡았었다. 결론적으로 소련공군의 정예부대가 극동으로 온 것이다. 그리고 그 소련 공군 방어부대 지휘관은 콜로넬 이반 코제두프 였다. 그는 무려 52 대의 적기를 격추시킨 제2차 대전의 에이스 조종사였다. 스테인은 이러한 이반 코제두프의 명성을 알아서 개인적으로 그에게 전투비행에 참가하지 말것을 지시했다. 이 division 은 11월 중순에 한국으로 출발하기 시작했다. 당시 공군 방어부대는 한 regiment 는 35대에서 40 대의 미그 15기가 있었고 한 division 은 세개의 regiment 였다. 부대는 중국의 만주 영역에 기지를 가졌고, 연습은 근처의 바닷쪽 소련 부대에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