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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Davin (다빈)
날 짜 (Date): 2005년 10월 10일 월요일 오전 06시 45분 20초
제 목(Title): Re: [펌] 소련의 유엔군 대항 


소련 방어부대의 기본 목적은 미국  B-29 의 북한 폭격을 방해하는 일이었다. 
중공군의 미그 15기의  목적은 달랐다. 그들은 1951년 봄의 중공군의  대진격을 
위한 close air support ( 지상 공격 임무 ) 까지도 맡았다.

미국과 소련의 가장 큰 첫 개 싸움 ( 도그 파이트 ) 은 1951년 4월에 있었다. 
소련과 중공군의 미그 15 기는 북한군 마크를 달고 있었고, 소련조종사는
아예 북한군 제복까지 입고 있었다. 그리고 소련 조종사끼리의 통신은
한국어로 하게 되어 있었다. 한국어는 러시안과 우크라이나인이 잘 모르는 
언어이다. 그래서 그들은 조그만 한국어 책자를 가지고 다녔다. 
그 책자엔 기본 한국어 대화가  기호학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 주 : 예를 들면  an nyung ha se yo 식으로 )

그러나 이러한 소련군의 북한군인척 하는 것은 공중전에서는 쓸모가 없었다.
그런 명령 규칙은 점차 희석되어 갔고, 전쟁 끝 무렵에선 아예 소련군 표식을
한 미그기도 나타났다. 아무튼 전쟁기간 동안 소련 공군은 절대로 유엔군에
의해 체포되지 않으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 예로 소련 공군 연대는 절대로 공산지역에서만 비행하지 황해를 넘어 
비행하는 것은 금지 되었다. 
1951년 5월에 소련 조종사 루테난트 Yevgency Stelmakh 가 B-29 를 공격하다 
추락하여 
유엔군 지역에 떨어졌다. 그는 체포되기 보다는 그의 권총으로 자살하였다.

소련 조종사는 곧 자신들의 존재를 
낡은 B-29 의 미군 파일럿 에게 느끼게 해 주었다. 
특히 1951년 4월 12일에  신의주 교량 폭파를 위한 폭격을 나섰을 때 미국은 
B-29  3 대를 잃었다. 
그때까지는 그런 심각한 피해를 당한 적이 없었다.

숫자가 많았지만 경험이 부족한 중공의 미그 15기는 미군 에스코트 전투기에 
그렇게 큰 위협은 되지 않았다. 그러나 1951년 5월에 소련과 중공은 공군 
최고지휘관 합동회의를 만주의 Mukden 에서 열고, 국제공산당자원공군부대를 
만들어 도와주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압록강 주변에서의 공군력을 유지하기로 
하였다. 이에 이 새로운 부대는 이제 국제적 부대도 아니고, 개인 자원부대도 
아니게 되어 소련군이 더욱 전투에 더 많이 참가하게 된다.

1951년 봄에 이차대전의 에이스였던  게오르기 로보프 장군의 지휘아래 소련 64 
방어군 부대가 중국에 주둔하게 된다. 이들은 미국 공군을 방어하게 된다. 
이 부대는 공군 전투방어부대만이 증설된 것이 아니라 지상 장비도 증가 
되었다. 예를 들어 레이다 부대, 레이다 고사포 부대, 등등이다. 


최근의 소련의 소식통에 의하면 약 7 만여명의 소련군이 당시 
압록강 주변의 지상 기지에 근무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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