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ryuch (개굴개굴) 날 짜 (Date): 2005년 9월 6일 화요일 오후 11시 05분 36초 제 목(Title): [펌] 일제시대 이야기 4 “제1부 일제시대란 무엇인가?-4” 우리는 식민지였던 적이 없다. clouds[구름~~] 제국주의 시절에 식민지라는 곳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장면 하나를 그려볼까 합니다. 이런 광경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이나, 리비아, 이디오피아, 하와이, 쿠바, 그리고 호주와 말레이시아, 싱가폴, 필리핀 등 당시의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우리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말레이시아의 고무 농장으로 한번 가 봅니다. 여기는 백인 농장주의 저택입니다. 수만 평의 대지와 녹지에 둘러싸인 대 저택이 언덕 위에 서있습니다. 그 집의 발코니에서는 끝없이 펼쳐진 고무 농원의 수림이 바다처럼 펼쳐져 있는 것이 보입니다. 백인 영감 하나가 발코니에서 흔들의자에 앉아 오수를 즐기고 있습니다. 그 양 옆에 얼굴이 새까만 동양인 여자애 둘이 커다란 대나무 발에 연결된 줄을 번갈아 당기면서 백인영감님한테 시원한 바람을 보내고 있습니다. 벌써 네 시간쨉니다. 저 여자애들의 나이는 겨우 10살 정도입니다. 그런데 백인영감 발밑에 왠 시커먼 것이 하나 놓여져 있습니다. 자세히 봅시다. 이건 원주민 남자애군요. 한 다섯 살 정도 되어 보입니다. 부채질을 하고 있는 여자애의 동생이네요. 백인영감은 어린 아이를 발로 밟고 있으면 몸에 좋다는 이유로 다섯 살짜리 아이를 발밑에 엎드리게 해 놓고 그 위에 발을 얹고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아이는 백인 영감의 깔개로 쓰이고 있는 중입니다. 이건 짐승도 아닌 그냥 물건입니다. 그 시간에 이 아이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고무나무에서 고무를 채취하는 고된 노동에 헐떡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루에 14시간을 노동합니다. 고무 농원의 바깥에는 흉폭한 사냥개들을 끌고 다니는 사냥꾼들이 총을 울러 매고 돌아다닙니다. 무슨 짐승을 사냥하냐고요. 바로 도망가는 원주민을 사냥합니다. 달아나는 말레이시아인은 바로 총으로 쏴 죽였습니다. 이게 당시의 식민지의 모습입니다. 말레이시아의 밀림에서 고무 채취에 내몰린 말레이 사람들이나 인도네시아의 원시림에서 벌목에 동원된 인도네시아인들은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었습니다. 이건 자바의 유전이나 하와이의 사탕수수밭이나, 쿠바의 커피농원이나 남아프리카의 차밭이나 간에 공히 마찬가지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국가와 인민의 관계가 아니라 개인 대 개인의 관계입니다. 식민지는 지배국가의 권력과 무력이 통치구역내의 인민들을 억압하고 강제하는 정도나 성격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게 되면 모든 독재국가, 군사국가는 자국민을 상대로 식민정책을 시행한다고 하는 이상한 논리로 발전하게 됩니다. 식민지배의 특성은 국가와 인민의 관계가 아니라 그 지역 내에서 살아가는 모든 개인과 개인의 관계가 어떠하냐 하는 것에서 찾아집니다. 즉, 식민지는 지배국가에서 식민된 사람들과 원주민들 사이에 계급적 차별이 법률에 의해서 결정되고, 개인과 개인 사이에 주종관계가 성립될 때 우리는 식민지라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앞에서 예로 든 말레이시아의 농장주인 백인영감과 농장에서 부리는 원주민들의 관계는 바로 주인과 노예의 관계입니다. 원주민들은 백인농장주의 사유재산이나 다름없고, 농장주는 어떤 재판이나 법적 절차 없이 원주민을 죽일 수 있습니다. 마음대로 감금, 폭행할 수 있고 굶길 수도 있고 어떤 목적이나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식민지에서 원주민들은 이와 같이 백인 주인들의 노예로 살았습니다. 노예제도가 남북전쟁을 끝으로 지구상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하거나 노예가 아프리카의 검둥이들만이었다고 알고 있다면 대단히 놀라운 무지입니다. 노예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세계의 절반에 존재하고 있었고, 지구의 반 이상이 노예 상태의 식민지였습니다. 여기서 잠깐 일제시대를 돌이켜 생각해 봅시다. 일제시대는 일본이라는 국가의 무자비하고 혹독한 통치가 조선인 전체에 미치던 시절이긴 했습니다. 그러나 일제시대의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는 개인적 주종관계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통치권력과 인민이라는 관계 속에서는 일방적인 강제와 억압이 가해졌지만 개인으로서의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에는 이러한 일방적인 관계가 성립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악독한 일본 고등계 형사 모리가 마을의 조선사람들을 걸핏하면 붙들어다가 매질을 하고 닦달을 했다고 칩시다. 이때 모리와 서에 붙잡혀 온 조선사람들의 관계는 일본 경찰과 조선인이라는 관계이지 모리라는 일본인과 삼득이라는 조선인이 아닙니다. 개인으로서의 모리와 삼득이는 상하관계나 주종관계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리의 악행은 국가권력이 저지르는 악행이지, 모리라는 개인이 주인으로서 자기의 노예나 종인 삼득이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조선사람을 붙잡아 재판을 하고 총살을 한 것과 달아나는 원주민을 농장주가 고용한 감시인들이 쏘아 죽이는 것은 그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일제시대는 일본이라는 국가가 관료조직을 통해서 무력과 권력으로 조선민중을 강제로 지배한 것은 사실이나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사적으로 지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식민지배와는 확연하게 다른 성격을 보입니다. 소, 중학교 교장이 허리에 니뽄도를 차고 조선인 학동들을 몽둥이로 패기도 했지만 학교 교장이 자기학교 학생들을 사적인 용무로 종처럼 부려먹지는 않았습니다. 일본의 조선지배는 전체적으로 봐서 공적인 것이었고, 조선, 일본 양국 국민들의 사적인 관계를 상하로 구분 짓거나 주종으로 차별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일본인들이 더 경제적으로 부유했고, 지적으로 더 배웠고, 사회적으로 더 높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일본이 아니라 일본인이, 조선이 아니라 조선인들을 지배했던 것으로 잘못 비쳐지기도 하지만 사실에 있어서 개인들 간에는 그런 상하나 주종관계가 강제되지 않았습니다. 통괄적 우열의 상태는 정도의 차이가 있겠으나 굳이 식민지가 아니라도 어느 나라나 다 계층간에 존재할 수 있고 또 존재하게 되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일제시대에 일본인과 조선인의 전체적인 계급적, 세력적 우열의 차는 조선시대의 양반과 상민의 사회적 우열관계보다도 훨씬 약했다고 나는 봅니다. 북조선인민공화국의 세습적지배계급과 인민들과의 관계보다는 비교해서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내가 일제시대를 미화하거나 친양하는 것으로 비약하지는 말기 바랍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일제시대는 일본이라는 나라와 조선이라는 나라가 불평등하고 일방적인 조건에 의해 강제적으로 합병되었던 시기였지, 조선인이 일본인의 노예로 전락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명백히 밝히기 위함입니다. 일본인과 조선인은 사적으로는 주종 관계가 강제되지 않았습니다.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아니었고, 조선인은 일본인의 노예가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일본인들부터가 그 시기에 자신들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조선인들이 자기들의 노예나 종이었다고 떠들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주장을 할작시면 펄쩍 뛰면서 손사레를 치며 부인하는 것이 일본사람들입니다. 일본인들이 아니라 하는데, 우리는 한사코 우리 조선땅이 일본의 식민지였다고, 우리 조선사람들이 그네들의 노예였다고 바락바락 우깁니다. 나는 왜 그러는지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해가 안 됩니다. 우리가 그렇게 우겨야 하는 이유를 누가 설명 좀 해주시겠습니까? 구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