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구르미 (구르미) 날 짜 (Date): 2004년 6월 5일 토요일 오전 01시 25분 13초 제 목(Title): Re: [펌/한겨레] 김구 1901년 5월에 쓰여진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의 '어디에서 시작할 것인가'에서 발췌했습니다. --- 원칙적으로 우리는 테러를 부정하지 않으며 부정할 수도 없다. 테러는 주어진 일정한 군대의 상황 아래의 일정한 전투에서 완전히 적합하고 필수적일 수도 있는 군사행동의 한 형태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현재 테러가 야전군의 활동. 투쟁의 전체계에 밀접히 관련되고 통합된 활동이 아니라, 어떤 군대와도 연결되지 않는 고립적인 우연적 공격의 형태로서 제시된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중앙기관이 없고, 지역의 혁명조직이 취약할 때에 테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현상황에서 그러한 투쟁수단은 부적절하며, 가장 활동적인 투사들을 그들의 진정한 임무, 운동 전체의 이해의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로부터 이탈시키며, 정부의 힘이 아니라 혁명의 힘을 해체시킨다고 강력히 선언한다. 그것은 최근의 사건들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는 도시의 노동자들과 "평민" 대중이 투쟁으로 나아가는 반면, 혁명가들은 지도자와 조직가 간부를 결여하고 있는 현실을 우리 자신의 눈으로 본다. 그러한 상황 아래서, 가장 정력적인 혁명가들이 테러로 넘어가고,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투쟁부대가 약화될 위험성은 없는가? 분열되었기 때문에 약하지만, 불만에 차있고, 항의하고, 투쟁하려는 대중들과 혁명조직들 사이의 접촉을 파괴할 위험성은 없는가? 그러나 우리의 유일한 성공의 열쇠는 바로 이러한 접촉이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우리는 영웅적 개인의 타격의 의미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현재 많은 사람들이 그런 행동에 강하게 끌리고 있는 까닭에, 테러에 열중함으로써 그것을 투쟁의 주요한 기본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테러는 결코 정규적인 군사활동일 수 없으며, 기껏해야 결정적인 습격에서 채택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그러한 결정적인 습격을 하라고 _호_소_할_ 수 있는가? [라보체예 델로(노동자의 대의)]는 명백하게 우리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외친다. "공격대열을 형성하자!" 그러나, 이것은 이성이라기 보다는 열정이다. 우리 군사력의 주요한 부분은 의용병들과 봉기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단지 약간의 소단위 군대만을 갖고 있으며, 심지어 이들은 동원되지조차 않는다. 그들은 서로연결되어 있지 않으며, 공격 대열은 말할 것도 없이 어떤 종류의 대열을 형성할 훈련도 받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을 통해, 우리의 투쟁의 일반적 조건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역사적 과제의모든 "전환점"에서 그 조건을 염두에 두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현재 우리의 슬로건이 "공격으로!"일 수 없으며, "적의 요새를 포위하라!"이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시 말해, 우리 당의 긴급한 임무는 지금 당장 공격하기 위해 모든 가능한 세력을 불러 모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세력을 통일시킬 수 있고, 말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실천에서 운동을 지도할 수 있는 혁명조직, 즉 언제든지 모든 항의와 모든 폭발을 지원하고, 결정적인 투쟁에 적합한 투쟁세력을 건설하고 강화하는 데 활용할 준비가 있는 조직을 결성하도록 호소하는 것이다. ----- 일리치는 당시 짜르 전제를 타도하기 위한 혁명조직인 전위당의 건설을 위해 온 힘을 쏟고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걸림돌이 되었던 "대중의 자생성에 굴종하고 테러를 주요한 투쟁수단으로 설정하였던 경제주의라는 독립적인 경향"에 대항하는 단호한 투쟁을 벌입니다. "어디에서 시작할 것인가"에 개진되었던 견해들이 상세하게 구체화되고 확대 발전된 팜플렛이 그 유명한 "무엇을 할 것인가"입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도 당시 테러리스트 조직인 [스보보다]의 테러리즘 옹호에 비판하는 부분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스보보다]는 노동계급운동을 "자극하는" 수단으로써 그리고 노동계급운동에 "강한 추진력"을 주는 수단으로써 테러를 옹호하고 있다. 이보다 더 철저히 자가당착적인 논의를 상상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별도의 "자극제"를 발명하지 않는다면 러시아의 삶에서 저질러지는 폭정이 충분하지 않단 말인가? 다른 한편으로 러시아의 폭정에 의해서조차 흥분할 수 없는 사람은 몇몇의 테러리스트들이 정부와 한판 싸움을 벌이는 것을 ("손가락을 까딱거리면서") 서서 구경만 할 것이라는 사실은 명확하지 않는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