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snuiwa (큰바우얼굴() 날 짜 (Date): 1996년05월01일(수) 13시12분11초 KST 제 목(Title): 정도전의 생애와 사상 (11) 5. 經濟思想 (1) 重農思想 鄭道傳이 강조하는 政治思想은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仁政'과 '德治'이다. 이러한 仁政은 위로는 天理에 순응하고 아래로는 民心에 순응되는 정치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德治를 이루는데는 個人의 道德 修養과 國家의 敎化만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民의 經濟的 生活의 안정이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爲政者는 經濟問題를 중 요시해서 民의 經濟生活 안정에 주력해야 한다. 그래서 鄭道傳은 "農 事와 養蠶은 衣食의 근본이요, 王道政治의 먼저 할 일" {{ ) {朝鮮經國典}(上), 賦典 農桑. }} 이라고 해서 農蠶의 장려가 王道政治의 출발점임을 주장했다. 그리고 經濟生活의 해결에서 중요한 점은 天理 즉 義理가 전제되어 해야한다는 것이다. 만약 義理가 수반되지 않는 구차하게 먹는 행위가 있다면 막아야 한다 고 주장한다. 구차하게 먹는 행위는 곧 義理를 해치는 일이기 때문이 다. 이렇게 義理를 해치는 者들은 姦民으로써 官吏, 士(儒者), 農民, 商 人, 手工業者를 除外한 자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특히 승려를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義理가 전제된 경제생활은 결국 윤리와 직결되고 다시 정치와 결합되기 때문에 鄭道傳에 있어서는 政治·經濟·倫理의 삼자 는 하나로 인식된다 {{ ) 韓永愚, {鄭道傳思想의 硏究}, p. 192참조. }} . 그리고 농사를 중히 여기는 그의 생각은 다음과 같은 정책과 사상으로 나아간다. (a)商工에 대한 통제 키기 위해서는 농업을 발전시켜야 하기 때문에 지나친 商工業者數의 증가는 곧 농사에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 한다. 물론 정도전은 상공업을 등한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農業이 국가재정의 기본적인 수입원이 되며, 民生의 번영과 風俗의 淳 厚가 농업을 기초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초가 되는 �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농업인구의 감소 와 국가경제의 약화를 초래했던 상황을 고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b) 流民問題의 解決과 農業生産의 增大 농업생산을 늘리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나올 수 있다. 첫째는 단위면적당 산출량을 늘리는 것이고, 둘째는 농지의 절대면적을 늘리는 방법일 것이다. 그런데, 高麗末의 상황으로 볼 때, 農業生産의 증대를 위해서 우선시되는 전제 조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農業人口의 증 가였다. 당시에는 많은 농민들이 고향을 등지고 流民이 되어있는 상황 이었기에 이러한 전제는 무엇보다도 먼저 선행되어야 했다. 그리고 이 들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고 또한 절대 인구수 자체를 늘리기 위해서는 먼저 賦稅의 公正을 기하고 또한 稅를 낮추는 일이 먼저 실 행되어야 했다. 그래서 鄭道傳은 賦의 公正을 위해서 �. 첫째 賦의 기회균등을 이루어야한다. 그러면, 個人이 지는 賦의 부담은 적어 지면서 賦의 총량은 오히려 증가될 가능성이 크다. 만약 賦의 부담이 불평등해진다면, 賦의 부담이 漏落者들에 의해 他人에게 넘어가게 되 고, 여기서 계속 賦의 부담을 넘겨 받는 자는 또 그 부담을 감당못하 는 사태가 생겨서 다시 脫漏者가 생기게 되서 결국 脫漏者의 악순환이 이루어져 국가의 수입도 賦의 부담도 모두 감소한다는 것이었다. 그래 서 賦의 균등이 절실하게 필요하게 되고, 또한 이를 위해서 地方行政 區域인 州郡과 戶籍制度가 정비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流民을 農民으로 전환시켜서 農業에 종사하게 해야한다고 그 는 주장한다. 특히 그가 제거되어야 할 流民으로 말한 대상은 僧侶, 才 人 禾尺, 무당, 子弟之閑散 등이다. 이들은 그야말로 아무런 기여없이 보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토지개간과 권농정책의 강화를 주장했는데, 이는 농작지의 증 대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지방관인 수령을 파견하는 일차적 인 목적은 토지개간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 ) 한영우, {鄭道傳思想의 硏究}, p. 198 참조. }} . 그 밖에 勸農政策으로 堤防修築이나 殺牛禁止 등을 주장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