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snuiwa (큰바우얼굴() 날 짜 (Date): 1996년05월01일(수) 13시07분47초 KST 제 목(Title): 정도전의 생애와 사상 (7) . 4. 社會·政治思想 (1) 民本·革命·天人感應說 鄭道傳의 人生觀과 宇宙觀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그의 전 사상의 영역에 있어서 一貫되게 나타난다 {{ ) 최종고 교수는 {朝鮮經國典} 등을 참조해서 정도전의 憲法정신을 民本사상, 仁治사상, 事 大사상, 世襲사상, 天命사상, 文治사상이라고 요약하고 있다. 이는 鄭道傳이 조선의 건국 에 모든 체제 확립에 자신의 思想을 투영시켰으며, {朝鮮經國典}도 결국은 그의 사상에 의한 것으로 했다고 전재한 것이다. [按說] 단지 여기서 문제되는 점은 앞으로도 언급되 겠지만, 事大思想은 어디까지나 민족보존이나 유지 정책의 일환으로 부각하면서 民族 自 主性 思想으로 바꾸어 생각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종고, 1980, {法史와 法 思想}, pp. 346∼349. }} . 인간은 氣에 의해서 차등하게 태 어나지만 敎化로 인해서 또한 聖人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어서, 좀더 實質的인 人間觀을 형성하면서 또한 平等한 인간사회를 지향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백성을 대상으로 해서 적극적이며 실천적인 윤 리관을 주장한다. 백성을 위한 정치를 강조하기 위해서 그는 民本思想 을 더욱 강조한다. 결국, 그가 관심을 가졌던 사회 개혁은 상부 지배층 을 위한 사상적 배경과 개혁뿐만 아니라, 실제로 핍박받고 빈궁했던 사 회 일반 백성을 위한 사상적 배경과 그 개혁이 필요했다고 믿었던 것 으로 보인다 {{ ) 以上은 按說로서 더 살펴본다면, 신분적으로 瑕疵가 있었던 鄭道傳은 旣存의 身分制를 革破할 필요가 있었고, 또한 그 혁파를 위한 힘을 당시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不滿勢力化 가 되던 一般百姓인 被支配層에서 찾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앞에서도 언 급이 했듯이 그의 流配期間 중에 경험에 특히 강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더불어 困窮한 百姓과 자신의 처지를 同一하게 여기는 혹은 그들의 代辯者로서의 자신을 생각하는 측면 도 그의 思想體系에서 무시할 수 없는 한 단면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그가 생각했던 새로운 社會란 性理學的인 倫理觀이 강조되기는 했지만, 실상 性理學의 깊은 이해를 보 이기보다는 諸子百家의 源流的인 생각을 중심으로 했고, 身分制의 再編成에 의한 당시의 社會 問題의 解決 方案 및 그 名分으로 성리학을 採用했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그 러나, 王朝開創과 轉換期에는 方法論인 下學이 우세하다는 一般的인 傾向을 고려할 때 義理之學보다는 社會改革이 더 시급했던 당시 狀況으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 . 그가 백성을 어느 정도까지 중시했는가는 다음 인용문 에서 살펴보자. 蓋君依於國 國依於民 民者國之本 而君之天 故周禮獻民數於王 王 拜而受之 所以重其天也 爲人君者知此義 則其所以愛民者不可不至矣 ({朝鮮經國典}(上) 賦典 版籍) (대저 君主는 國家에 의지하고, 國家는 백성에 의존한다. 그러므 로 民은 국가의 근본인 동시에 군주의 하늘이다. 그래서 {周禮}에 서는 民의 戶籍을 군주에게 바칠 때에 군주는 절을 하면서 받았으 니, 이것은 자기의 하늘을 중히 여기는 까닭이다. 人君된 사람이 이 러한 뜻을 안다면 民을 사랑하는 것도 불가불 지극해야 한다.) 여기에서 그는 統治者나 統治權이 民을 위해서 존재하고, 民을 위해 서 기능할 때에 비로소 統治者나 統治權이 正當化될 수 있다는 입장을 표방하면서, 군주나 관리는 民을 지배하는 權力者라기보다는 民을 위 해서 일하는 봉사자라는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요건 을 갖추지 않는다면 통치자는 그의 資格을 상실했다고 말한다. 또한, 여기에서 鄭道傳이 民本思想은 더욱 발전해서 결국 革命思想 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의 革命思想에 의하면 統治權이란 天命 곧 天 理에 의해서 부여되고 합리화되는 것인데 만약 天命이 떠나면 統治權 은 소멸이 되고 다른 有德한 자에게로 天命이 옮겨가서 그가 새로운 통치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天命이 不德한 자를 떠나 有德한 자에게 넘어가 통치자가 바뀌는 것은 革命이라고 할 수 있고, 이 受命 者가 다른 姓氏를 가진 사람일 때는 易姓革命이라고 한다. 이러한 革命과 民本理念은 {孟子}에서 빌어온 것인데, 그것을 단순 히 敎科書的으로 받아들인 것만은 아니었다. 鄭道傳은 孟子의 時代와 다른 특수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특수한 方法論과 연결되었다는 점에 서 독자적인 의미를 가진다. 맹자의 혁명 이론은 개인과 개인간에 이루 어지는 禪讓과 放伐의 두 가지 형식만을 말했고, 士나 民의 집단이 혁 명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鄭道傳은 士나 民 의 집단을 주체로 해서 방법의 수단으로 혁명을 수행했고, 권좌에서 밀 려나는 자에게는 禪讓의 形式을 그리고 권력을 쟁취하는 자에게는 天 命의 이름으로 推戴형식의 절차를 밟았다. 이러한 면에서 權力移讓과 정에 推戴와 禪讓 그리고 認准의 새로운 형식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중 요한 차이점이 발견된다 {{ ) 韓永愚, {鄭道傳思想의 硏究}, pp. 103∼110 참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