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Convex (4ever 0~) 날 짜 (Date): 1996년04월30일(화) 11시49분23초 KST 제 목(Title): [북한논단] 신지글자와 훈민정음과의 관계 Posted By: namsan (namsan) on 'History' Title: [북한논단] 신지글자와 훈민정음과의 관계 Date: Mon Aug 28 21:20:43 1995 본 논문은 평양에서 발행되고 있는 <로동신문> 1993년 10월 13일-15일자에 실린 15편의 논문중에 하나이며 일본 동경에서 발간되는 <조선신보> 1993년 10월 26일자에도 실렸었다. 읽으시면서 북한 학계에서 사료선택에는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지도 파악해가면서 보도록하라. 그동안 본 게시판에서 다루었던 사료들도 나올 것이다. 비비독자들의 개인적인 판단에 맡기기로하여 아무런 내 개인적인 주해는 달지 않았다. 어휘 문법은 북한에서 사용하는 그대로 하였음으로 잘 파악하며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요거 옮기는데 왜 그렇게 내가 직접 쓰는 내글 보다도 더 힘이 들지... 아휴..힘들어......쓰는 분들만 힘이 많이 드는줄 알았더니 글 옮기시는 분들도 보통분들이 아니었구나.... 우리민족은 고조선시기부터 고유한 민족문자를 가진 슬기로운 민족 류 렬 우리나라 옛기록은 훈민정음 창제 이전에 고유한 우리 민족글자가 쓰이였다는 것을 적지않게 전하고 있다. 훈민정음 창제에 적극적으로 참가한 주요 성원의 한 사람인 신숙주의 후손인 18세기의 신경준도 [훈민정음운해]에서 훈민정음 이전에 우리 나라에는 옛날부터 민간에서 쓰는 글자가 있었는데 그 수가 다 갖추어지지 못하고 그 모양이 일정한 규범이 없어 한나라의 말을 적어내기에는 모자라나 일부 제한된 범위에서는 쉽게 쓸 수 있다고 하였다. 이밖에도 고려와 탐라(제주)에서도 한자가 아닌 고유글자가 씌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름있는 실학자 리덕무의 [청비록]에서는 10세기 후반기에 나서 11세기 초에 호부상서라는 높은 벼슬까지 한 장유가 중국의 강남에 갔을 때에 마침 고려에서 떠내려간 `슬'이라는 악기의 밑바닥에 쓰인 글을 중국사람들은 도무지 읽지 못하는 것을 그가 한문으로 옮겨 주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데 이것은 곧 고려에 일정한 조선 고유글자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특히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훈민정음 창제당시 집현전 부제학을 하던 최만리가 훈민정음을 반대하여 세종대왕에게 낸 상소문에서 "혹 말하기를 언문은 본래 옛글자이지 새글자가 아니라 하는데..." 또는 "가사 언문은 전왕조 때부터 있었다고 하여도... 그대로 따라 쓸 것인가."라고 한데서 그때 사람들이 언문 곧 훈민정음이 원래부터 있던 옛글자에 기초한 것이지 완전히 새로 만든 글자가 아니라고 하고 또 그러한 글자는 훈민정음 창제 이전인 고려 때에도 있었다고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지글자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글자 그러면 훈민정음 창제 이전에 우리나라에서 어떤 글자가 쓰이였겠는가? 15세기 후반기까지 전해 온 [삼성기]라는 책에서는 "단군때에 신전(신지전자, 신지글자)이 있었다." 고 하였으며 16세기 초의 학자 리맥의 [태백일사] (태백유사라고도 한다.)에서는 "단군때에 신지전서(신지전자, 신지글자)가 있었는데 그것을 태백산과 흑룡강, 청구(조선), 구려 등의 지역들에서 널리 썼다."고 하였다. 16세기 말에 편찬된 [평양지]에서는 평양 법수교 다리에 옛 비가 있었는데 그 글자가 우리 글자(훈민정음)도 아니고 인도의 범자도 아니며 중국의 전자도 아니라고 하면서 혹 말하기를 이것은 단군때의 신지가 쓴 것이라고 하였는데 세월이 오래되어 없어졌다고 쓰고 있다. 또한 17세기의 북애자가 쓴 [규원사화]에는 단군 시기에 신지가 사냥을 하다가 사슴 발자국을 보고 처음으로 글자를 만들었다고 하면서 "일찌기 듣건데 륙진 지방에는 진나라 이전 시기 바위돌에 때로 글자를 새긴 것이 나타나군 하는데 범자(고대 인도글자의 하나)도 아니고 전자(중국 한자의 옛 글자체의 하나)도 아니어서 사람들이 그뜻을 해득하지 못한다고 하니 이것이 어쩌면 신지씨가 만든 옛글자가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또한 리맥의 [태백일사]에 인용되어 있는 [대변설](세조 때에 금지도서로서 국가적 회수목록에 들어 있던 책)의 `주'에서는 "남해협 량하리의 계곡바위에 신시(신지)글자의 옛 새김이 있는데 그 글은 `환웅이 사냥을 가서 세 신에게 제사를 지내다.'"라는 내용이라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우에서 본 이러한 옛 기록들을 통하여 고조선 시기에 이미 신지글자가 있었을 뿐 아니라 우리 반도의 북쪽 륙진 지역에서부터 남쪽의 남해지역에 이르기까지 압록강, 두만강 이북의 고조선 령토 전지역에 이르기까지의 넓은 지역에서 쓰이여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지'란 `신시'라고도 표기하였는데 원래 `큰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말로서 처음에는 `왕'을 가리키었으며 나중에는 높은 벼슬 이름으로 되여 지배자, 통치자를 뜻하였으므로 `신지글자'란 "왕이나 지배자, 통치자의 글"이라는 말이다. [녕변지]에서 전하고 있는 신지글자 16자는 다음과 같다. (옮긴이 주: 논문에는 16자의 글자가 있음 한자같지도 한글같지도 않는 글자들) 글자수가 모두 16자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글자를 다 보여 주는 글자표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글자 짜임의 특성으로 보아 이것은 뜻글자 류형이 아니라 소리글자, 그것도 소리마디 단위의 마디글자 류형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신지글자의 모양 짜임에서 일련의 글자들은 두 글자 요소가 결합되여 있어 일정하게 글자 짜임의 특성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녕변지]에 수록된 이 16자만으로는 자료의 제한으로 신지글자의 수가 모두 몇자인지, 그 체계와 차례 그리고 그 매 글자와 소리값과 그 쓰임의 규범 등은 밝히기 어렵다. 그러므로 더 많은 자료의 수집과 그것들에 대한 넓은 고찰과 깊은 연구가 요구된다. 그러나 이 신지글자 16자는 단군 시기부터 고조선에서 쓰인 우리 민족 고유의 글자라는 것만은 명백하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우에서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삼성기]와 [태백일사] [규원사화], [평양지]와 [녕변지] 등 여러 옛문헌들에서 한결같이 신지글자가 단군조선-고조선에서 쓰인 글자라고 한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고조선 유적에서 나온 토기의 밑굽에 신지글자와 같거나 비슷한 글자들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고조선 시기의 토기들에 새겨져 있는 신지글자는 이 글자가 그 시기에 사회적으로 쓰이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위력한 물질적 증거로 된다. 초보적으로 조사한 데 의하더라도 평안북도 룡천군 신암리와 중국의 료녕성 려대시 백람자에서 발굴된 고조선 토기에 새겨진 글자에는 [녕변지]에 있는 신지글자와 같거나 비슷한 글자들이 있다. 다음으로 그 근거는 또한 그 글자 모양이 우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의 이웃 나라 글자들, 례를 들어 뜻글자인 중국의 한자와도 구별되고 몽골글자와 인도의 범자와도 구별되며 마디글자인 일본 가나자와도 구별된다. 다른 한 측면으로 신지글자가 처음부터 고유한 우리 민족글자로 창제되였다는 것은 글자생활과 관련되는 기본 어휘인 `글', `붓',`쓰다' 등 모든 말마디들이 원래부터 다 고유한 우리말로 되여있다는 데서 알 수 있다. 이것은 신지글자가 우리 민족 고유의 글자라는 것을 말해준다. 고조선 시기의 우리 민족의 고유한 글자인 신지글자에 대한 고찰에서 반드시 밝혀야 할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 단편적으로나마 일정하게 이야기되고 있던 `왕문글자'나 `삼황내문글자'는 무엇이며 신지글자와 그것들과의 관계는 어떠한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왕문글자'는 [류문화보]라는 책에서 "왕문이 글자를 썼는데 전자(중국의 한자의 전자체)와 같기도 하고 부적(미신에서 귀신을 쫓는다고 그려 붙이던 것) 같기도 하다." 라고 써 놓은데서 유래된 것이다. 여기서 왕문을 고조선 시기의 부여국 사람이라고도 하나 사실은 `왕문'은 개별적인 사람의 이름인 것이 아니라 `왕의 글자', `지배자, 통치자의 글자'라는 말로서 `신지글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 글자모양이 "전자같기도 하고 부적같기도 하다."고 한 것은 그대로 신지글자가 전자도 아니고 범자도 아니라고 한 것과 같은 말임을 알 수 있다. [류문화보]라는 책이 단군과 깊은 인연이 있는 구월산 일대의 고장인 옛 문화현을 본(환향)으로 하는 `류'씨의 오랜 족보라는 점에서 더욱 큰 주목을 끈다. `삼황내문글자'라는 것은 중국의 옛 책인 진나라 갈홍의 [포박자]에 나오는 기록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이 책에는 "황제(중국의 전설적인 황제의 한 사람)가 동쪽으로 동구(조선)에 이르러 풍산(대풍산이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백산, 태백산을 뜻하는 표기이다.)을 지나다가 자부 선생을 뵙고 삼황내문을 받았다." 고 한 기록이 있다. 여기서의 `삼황내문'이라는 것도 구경은 `왕, 지배자, 통치자의 글'이라는 뜻으로 `왕문글자'와 마찬가지로 `신지글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된다. 이러한 기록들은 무엇보다도 신지글자는 고조선 때부터 유일한 단일민족의 글자로 씌였으며 대외적으로 전파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으로서 큰 의의를 가진다. 신지글자와 훈민정음과의 관계 그러면 신지글자와 우리 인민의 고유한 민족글자 훈민정음과의 관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세종실록] 25년 12월조에는 "이 달에 임금이 어문 28자를 만들었는데 `그 글자는 옛 전자를 본땄다.'[자방고전]"고 하였으며 당시의 집현전 대제책이였던 정린지도 [훈민정음](해제)에 쓴 머리글에서 "글자는 옛 전자를 본땄다."고 썼다. 여기서의 `옛 전자'는 `신지글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은 우에서 본 바 있듯이 신지글자를 옛 기록들에서는 한결같이 `신지전', `신지전자'라고 하여 왔기 때문이며 또 신지글자의 후신으로 보이는 글자가 훈민정음 창제 때까지도 일정하게 씌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녕변지에 있는 신지글자 16자와 훈민정음 사이의 직접적 계승관계는 어디서 찾아 볼 수 있는가? 8세기의 발해 사람 대야발의 [단기고사]와 14세기의 리암의 [단군세기]에 있는 가림도 글자(가림토글자)에 대한 자료에는 고조선의 3대왕 가륵 때에 정음 38자를 만들게 하였는데 그 이름을 `가림도(가림토)'라 한다고 하였다. 이 38자는 훈민정음과 너무도 비슷하여 놀라움을 금할 수 없게 한다. 그리고 일본의 옛 문헌의 하나인 행지의 [훈석언문해]에서 훈민정음에 대하여 "옛날체와 지금체의 두가지가 있었는데 옛날체는 세 나라 시기(고조선 말기) 초에 만들어 전하는 것이고 지금체는 리조 세조 때에 옛날 글자를 고쳐 만든 것이라고 하고 지금 그 나라에는 옛날 글자는 없어지고 다만 지금 것만 쓰이는데 옛 글자는 곧 지금 일본에서 전해 온 `비인서'(조선사람의 글자라는 뜻으로서 일본에서는 신대글자라고 이르고 있다)이다."라고 한 것도 주목을 끈다. 이것은 신지글자와 훈민정음과의 계승관계만이 아니라 신지글자와 일본 신대글자와의 관계도 보여 주며 또한 우에서 본 `삼황내문' 자료와 함께 신지글자의 대외 전파관계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의의를 가진다. 이러한 의미에서 신지글자는 단군조선 시기부터 고조선에서 쓰이여 온 우리 민족 고유의 글자로서 그 이후 부단히 변화 발전하여 여러 가지 글자를 낳은 우리 민족의 시조글자라고 말할 수 있다. 참으로 우리 민족은 단군 시기부터 고조선에서 고유한 민족글자를 가진 슬기로운 민족이다. * 북한 논문이라고 해서 첨보는 분들은 신기했습니까? 학계에선 오래전부터 북한 논문을 볼 수 있도록 했었지요.. 제한된 인원에 한하였지만요.... 이 논문은 이미 지난 5월(1995)에 서울에서도 발행되었기에 여기에다 올릴 수가 있었지요.(이형구편, 단군과 단군조선, 살림터, 서울 1995. PP 113-119) 오두방정(namsan)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퍼오고 나서 보니 고고학적 유물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군요. 남한학자 북한학자.. 점점 모양새가 이상해지는데..:) 참고로 살수대첩의 위치도 남한학자 북한학자간 이견이 있으며 남한학자는 잘 방어하는 선에서 그쳤다고 하는반면 북한학자는 반격까지 했다는 주장을 하지요. 남북한 학자들의 교류도 있어야 하겠네요. 현재로선 어느쪽이라고 말하는 것 보류합니다. 비전공자의 입장에서. --,--`-<@ 매일 그대와 아침햇살 받으며 매일 그대와 눈을 뜨고파.. 잠이 들고파.. Till the rivers flow up stream | Love is real \|||/ @@@ Till lovers cease to dream | Love is touch @|~j~|@ @^j^@ Till then, I'm yours, be mine | Love is free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