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2년 5월 19일 일요일 오후 07시 11분 52초 제 목(Title): 손원제/ 새엄마,새아빠를 당당하게 [ 특별기획 ] 2002년05월15일 제409호 새엄마·새아빠를 당당하게! 재혼가정 급증 속에 떠오른 복합가족의 현실, 팥쥐엄마·장화홍련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자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가족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다. 이혼과 재혼의 증가로 친부모와 자녀로만 이뤄진 전통적 혈연가족의 비율은 줄어들고 있다. 한부모가족·동거가족·재혼가족 등 복합가족의 비율은 급증하고 있다. 이제 정상가족 대 비정상가족(결손가족)의 이분틀 안에 다양한 복합가족의 문제를 가둬두기 어려워졌다. 가정의 달 5월을 보내며, 새롭게 떠오르는 복합가족의 현실을 들여다본다. “아빠는 왜 늘 엄마를 너무 힘들게 하세요. 전에 저랑 동생과 살 때는 엄마가 그렇게 힘들진 않았던 것 같아요. 제가 동생도 돌보고 있는 힘껏 엄마를 도우려 했는데. 지금은 엄마가 밖에서 일하고 집에 와서도 늘 아빠 시중만 드는 것 같아요. 새아빠가 너무 미워요.” 김수영(12·가명)군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김군의 새아버지 최영수(41·가명)씨도 눈시울을 붉혔다. “그래, 그랬구나. 하지만 나도 섭섭한 게 많았단다. 동생 수연이는 이 아빠를 잘 따르는데, 날 보는 네 눈에선 늘 미운 감정이 느껴졌어. 지난 설 연휴 때도 식구들 다 같이 여행가기로 약속해놓고, 너만 친구집 갔다가 2시간이나 늦게 나타나는 바람에 가족여행을 망쳐버리지 않았니. 그날 너무 화가 나 그만 네게 손을 대고 말았지. 지금도 가슴이 아프구나. 난 정말 너와 수연이를 내 친자식처럼 생각하고 키우고 싶은데….” 초혼보다 훨씬 높은 재혼 이혼율 어린이날인 지난 5월5일 서울 종로구 효자동의 카페 이벤트에선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www.nowme.co.kr)이 재혼가족 회원들을 위해 마련한 ‘부모와 함께 하는 심성수련회’가 열렸다. 5가족 10명의 어른과 아이들이 놀이공원 대신 이곳을 찾았다. 계부모와 자녀들이 가슴을 열고 서로 마음과 마음을 나눠보자며 만든 프로그램이었다. 이날 참가 가족들은 그동안 가슴에 꼭꼭 쟁여둔 아픈 응어리들을 어렵사리 끄집어냈다. 모두 초등학생인 아이들과 새엄마·새아빠들은 자기 얘기를 하며, 또 다른 참가자들의 얘기를 들으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어쩌지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가족들은 서로 부둥켜안았다. 재혼가정이 급증하고 있다. 새엄마·새아빠는 더 이상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다.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 김숙기 원장은 “누구라도 새엄마·새아빠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통계청 자료는 이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2000년 결혼한 33만4천쌍 가운데 부부의 한쪽 또는 양쪽이 재혼인 경우는 18%에 이르렀다. 5번의 웨딩마치 가운데 한번은 재혼가정을 위해 울려퍼진 셈이다. 물론 이 수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4년 전인 1996년의 재혼비율은 14.1%였다. 재혼가정의 증가경향 배후엔 이혼율의 급증이 자리잡고 있다. 한국여성개발원 장혜경 가족보건복지연구부장(사회학 박사)은 “재혼가정 증가는 이혼율 증가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말한다. 2001년 결혼한 부부는 32만1천쌍, 이혼한 커플은 13만5천쌍에 이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4번째로 높은 이혼율이다. 일본과 대만 등 아시아 국가는 물론 서구 대다수 나라의 이혼율도 추월한 지 오래다. 급격한 성장에는 그림자가 따른다. 김숙기 원장은 “이혼하고 다시 결혼하는 일은 참 쉬워졌지만, 재혼가정을 꾸리는 문화적 감수성은 전혀 준비돼 있지 못한 상태”라고 이를 요약했다. 한 재혼여성은 “재혼은 깊고 깊은 터널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며 “그러나 나는 전혀 준비돼 있지 않았다”고 돌이켰다. 재혼의 어려움은 초혼보다 훨씬 높은 이혼율에서 쉽게 엿볼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초혼가정의 이혼율이 40%인 데 비해 재혼가정의 이혼율은 70%에 이른다. 세 번째 결혼일 경우엔 이혼율이 90%에 육박한다. 장혜경 연구부장은 “우리나라도 공식통계는 없지만, 초혼보다는 재혼부부의 이혼율이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혼의 증가로 한부모가정이나 재혼가정 등 복합가족이 크게 늘어난 반면, 재이혼율이 보여주는 복합가족의 해체 또한 심각한 사회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정법률상담소의 이혼상담 중 재혼부부의 상담비율은 2000년 11%에서 2001년 12.1%로 늘어났다. 계부·계모는 진실이 안 통한다? 사진/ 문화방송에서 방영된 특집드라마 <난 왜 아빠랑 성이 달라>. 재혼부부의 갈등을 그렸다. 재혼가정이 다시 한번 해체의 아픔을 겪게 되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장혜경 연구부장은 “재혼이 초혼보다 가족관계, 친척, 사회적 관계에서 훨씬 더 복잡한 변수들이 작용할 여지가 많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변수는 역시 자녀문제다.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 배대훈 운영위원장은 “자녀문제는 한국 부부들이 가장 관심을 두는 문제”라며 “자녀와의 갈등상황이 결국 부부갈등과 재이혼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장혜경 연구부장은 “재혼가정의 부부관계는 단독으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와의 관계에 크게 좌우된다”며 “본인자녀에 대한 편애, 계자녀 양육 거부, 계부모로서의 배우자에 대한 본인의 선입견, 재혼생활 내 자신의 불안정한 위치의 방해자로서의 계자녀 등이 갈등의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장 연구부장은 지난해 말 108명의 재혼부모를 대상으로 한 심층면접과 설문조사, 문헌연구 등을 통해 ‘재혼가족의 적응실태와 지원방안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다. 최근엔 이를 다듬고 내용을 더해 <당당하게 재혼합시다>(조선일보사)라는 단행본으로 펴내기도 했다. 자녀문제가 재혼가정 갈등구조의 핵이 된 데는 재혼과 계부모에 대한 한국사회의 전통적 편견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새엄마를 부정적으로 그려온 전통과 대중문화의 영향이 컸다. 전래동화들은 여지없이 새엄마를 악독한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장화홍련전>의 새엄마 허씨는 전처의 딸들을 구박하다 못해 죽음으로 몰아간다. <콩쥐팥쥐>에서도 새엄마는 자신의 친딸만 편애하고 전처 딸은 심하게 구박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신데렐라> <백설공주> <백조왕자> 등 널리 읽히는 서양동화들에서 그리는 새엄마상도 한결같이 사악하다. 초등학생 딸아이를 둔 남편과 재혼해 사는 김지영(42·가명)씨는 “딸아이와 함께 텔레비전이나 비디오, 동화책을 읽다 보면 민망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런 사회적 편견의 문화에 노출되다 보면 자녀들은 계부·계모라는 말만으로도 부정적인 느낌에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기 쉽다. 심명희(53·가명)씨는 어느 날 우연히 전처 딸의 일기장을 봤을 때의 아픈 느낌을 잊지 못하고 있다. “처음 시작부터 계모, 계모, 계모, 계속 계모라면서, 자기는 마음이 안 간다, 계모는 진실이 안 통한다라고 써 있었어요. 친엄마 같이 안 된다는 뜻이겠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했는데 가슴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더라고요.” 결국 심씨는 재이혼을 하고 혼자 산다. 최근 그 수가 크게 늘어난 새아빠들도 의붓자녀들의 완강한 심리적 장벽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기 쉽다. 맨 앞 김수영군과 최씨의 사례에서 보듯 자녀들은 특히 새아빠가 자신들의 친엄마 위에 군림하는 존재라고 생각해 적개심을 갖는 경우가 많다. 김숙기 원장은 “아이들이 집안일을 하는 친엄마가 새아빠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고 생각하고 미움을 품게 된다”며 “특히 아들은 자기가 대신하던 아빠의 역할을 빼앗겼다고 생각하기 쉽다”고 분석했다. 문화적 훈련이 필요하다 사회적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한 건 아이들만이 아니다. 새엄마·새아빠들도 늘 편견을 의식하며 고통스러워한다. 정영주(53·가명)씨는 전 남편과 사별한 뒤 딸 하나를 둔 황아무개(56)씨와 재혼했다. 정씨도 딸이 하나 있다. 그는 두딸을 대하는 태도를 스스로 자기검열하며 자주 곤혹스런 느낌에 빠지곤 했다. “남편 딸이 뚱뚱하고 내 딸이 마른 편인데 부모들은 누구나 마른 자식에게 마음이 간다. 그래서 밥상에서 마른 딸에게 반찬이라도 더 권한 것과 남편의 뚱뚱한 딸에게 살빼라고 한 것이 남편 딸에 대한 홀대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장혜경 연구부장은 “한 재혼정보회사에 등록된 재혼 희망자 대상의 설문조사에서도 재혼하는 데 우려되는 사항 중 ‘새엄마·새아빠에 대한 편견’이 44.9%로 높게 나왔다”며 “때로는 계모라는 이름 자체가 욕이 되기도 해 새엄마에게 적응하려는 노력 자체를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재혼가정의 적응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선 개별가정의 노력에 더해 사회적 의식의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한다. 장 연구부장은 “이혼과 재혼 등으로 복합가족이 늘어나는 사회적 변화에 맞춰 그들의 이야기를 긍정적으로 다룬 작품들이 많이 만들어지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녀의 양육문제를 재혼가정 안에서 모두 맡아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는 것도 새엄마·새아빠와 자녀들의 갈등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김숙기 원장은 “부모들이 이혼과 동시에 아이들과 전 배우자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는 아이들과의 갈등을 더욱 깊게 할 뿐”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결국 새엄마·새아빠가 친부모와 똑같이 해줄 수는 없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며 “이는 부모와 아이들이 모두 깨우쳐야 할 1순위 조항”이라고 덧붙였다. 새엄마·새아빠와 헤어진 친부모가 함께 자녀 양육에 참여할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드는 게 궁극적으로 가족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배대훈 운영위원장은 “독일에선 아이들이 원하면 떨어져 사는 부모들을 만나는 권리를 막을 수 없다”며 “한국에선 아직 전 부모와 만나면 ‘남의 자식’이 된다고 믿는 부모들이 너무 많다”고 아쉬워했다.장혜경 연구부장은 △혈연중심적 부모자녀 관계에서 벗어난 다른 차원의 부모자녀 관계 설정 △둘 이상의 부모에 대한 긍정적인 사회적 차원의 인식 △둘 이상의 부모들끼리 대립관계 아닌 협력적 관계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역할 계발 등을 과제로 제시했다. 이런 변화를 위해선 재혼 전과 후의 가족관계 사이를 잘 조율할 수 있는 문화적 훈련이 필요하다. 또 그를 위한 사회적 교육과 지원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제안한다. 김숙기 원장은 “‘팥쥐엄마 콤플렉스’(부모 쪽), ‘장화홍련 콤플렉스’(자녀 쪽)에 얼마나 더 많은 재혼가족들이 아파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이들은 더 이상 소수가 아니다. 지금 헤어짐을 생각하고 새로운 만남을 떠올리는 당신, 물론 새엄마·새아빠의 가능성에서 예외일 수 없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 특별기획 ] 2002년05월15일 제409호 아이의 성을 바꾸게 하자 16만명의 여성이 자녀 성씨문제로 고통… 국회 통과 못한 ‘친양자제도’ 김영은(37·이하 가명)씨는 3년 전 이혼한 뒤 재혼을 준비하고 있다. 재혼상담업체에도 등록했고, 주위에서 권하는 맞선자리에도 스스럼없이 나간다. 그러나 맞선을 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그가 고집하는 한 가지 조건 때문이다. 맞선 상대가 꼭 박씨 성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김씨가 이 조건을 고수하는 것은 딸 박민아(7)양 때문이다. 현행 민법은 재혼을 하더라도 아이들의 성을 바꿀 수 없게 하고 있다. 김씨가 박씨 아닌 이씨나 최씨 성과 결혼을 해도, 민아의 성은 바뀌지 않는다. “아빠와 성이 다른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말로 다 못합니다. 학교에선 아이들이 놀리고, 나중에 결혼할 때도 호주와 성이 다르면 분란이 생길 수 있어요.” 최지원(34)씨는 5년 전 김동기(37)씨와 재혼했다. 재혼 당시 최씨는 2살짜리 딸 엄지민을, 김씨는 4살짜리 아들 김영훈을 두고 있었다. 부부는 재혼 3년 만에 딸 김세은(3)을 낳았다. 지민이는 지금도 자기 성을 김씨로 안다. 헤어진 아빠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민등록등본은 바꿀 수 없었다. 엄지민은 ‘동거인’으로 기록돼 있다. 의료보험카드에도 언니인 지민이보다 동생인 세은이 이름이 앞에 올라 있다. 지민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최씨는 요즘 걱정이 말이 아니다. “학교에 성을 바꿔 불러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건지, 벌써부터 가시방석이에요.” 성씨 문제는 재혼가정들이 맞닥뜨리는 가장 큰 제도적 장벽이다. 새아빠와 성이 다른 아이들의 문제는 최근 문화방송에서 드라마(<난 왜 아빠랑 성이 달라>)로 제작돼 방영되기도 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따르면, 96년 이후에만 대략 16만명의 재혼여성이 자녀들의 성씨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새아빠의 성을 따를 수 있게 한 ‘친양자제도’가 마련됐지만,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이 제도는 1998년 처음 입법예고됐지만, 유림의 반발을 의식한 탓에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도 못한 채 폐기됐다. 2000년 법무부가 친양자제가 포함된 민법(가족법) 개정안을 새로 국회에 제출했지만, 아직 국회를 떠돌고 있다. 더구나 이 법안은 친양자가 될 수 있는 나이 제한을 만 7살 미만으로 하고 있어 반발을 사고 있다. “성씨 문제에 가장 민감한 시기인 청소년기를 포함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친어머니가 7살 미만과 이상의 두 자녀를 데리고 재혼할 경우, 성이 서로 갈릴 수도 있다는 문제점도 제기됐다. 친양자제도가 완벽한 대안이 못 된다는 지적도 있다. 김숙기(이하 실명) 나우미가족문화연구소장은 “재이혼율이 높은 상황에서 아이들의 정체성이 너무 자주 바뀔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친양자제가 현재 혈연중심 가족문화에 상처받는 이들을 위한 장점이 있지만, 궁극적으론 아이들에게 이혼과 재혼의 상황을 알리고 두 부모가 함께 양육에 참여하는 열린 사회적 분위기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장혜경 한국여성개발원 연구부장은 “근본적으로 호주제에서 비롯된 문제인 건 맞다”며 “하지만 지금 당장 재혼가정의 안정을 위해선 친양자제를 포함한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무우를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