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2년 4월 28일 일요일 오후 05시 04분 27초 제 목(Title): 조철수/ '바리공주' 신화와 무 출처: 이머지 2001.9.1 -------------------------------------------------------------------------------- 연재 / 우리 고대문화의 원형을 찾아서 〈9〉 -------------------------------------------------------------------------------- 〈바리공주〉신화와 巫 조철수 한국 고대 문화의 원형을 찾는 일에 한국의 巫의 연구는 한 부분을 차지한다. 한국의 巫는 조선시대에 巫俗이라는 칭호로 천시되어 왔으며 일제시대에는 민중의 종교로서 탄압을 받았다. 해방 이후 기독교적 가치관에 의해 巫는 迷信으로 전락되었으며, 서구식 교육 내용이 지배적인 오늘날의 교과과정에 巫는 배울 가치가 없는 것이 되었다. 실상 많은 자칭 巫俗人들은 운세와 택일에 전문이고 病者의 치유나 가택의 안전을 위한 굿으로 연명한다. 오늘날 이러한 巫俗人들이 행하는 巫는 전통적인 巫의 틀에서 벗어난다고 생각된다. 근래에 이르러 몇몇 지방의 굿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굿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다. 한국의 전통적 巫는 종교 체재를 갖춘 巫敎이다. 한국 巫의 역사는 부여, 고구려, 신라 시대 등 고대 사회에서부터 그 원형을 찾아볼 수 있으며, 고대 한국의 종교 체재가 巫였다는 것은 주지하는 바이다. 부여, 고구려 등에서 迎鼓, 東盟 등 신년 행사로 하늘신에게 굿을 거행하였으며 신라 초기에도 나라의 통치자가 제사장의 역할을 하였다. 한국의 고대의 종교가 巫敎였다. 따라서 한국 고대 문화의 초기 단계 모습을 찾는 관점에서 巫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 발전된 역사를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巫는 민중에게 살아있는 신앙 체계였으며 일상생활에 깊이 적용되는 종교의례를 지닌 종교 체재였다. 삼국유사에 실린 단군, 혁거세, 거타지 등의 이야기는 문헌신화로 생활의례에 반복되지 않는 神話/說話이지만 巫歌는 굿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종교의례에 사용되었다. 고대 한국문화의 원형을 찾는 과정으로 巫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은 문헌신화 연구와 병행하여야 한다. 巫의 연구 방법 가운데 하나는 敍事巫歌의 이해이다. 서사무가는 神의 내력을 이야기한다. 서사무가에는 〈創世巫歌〉, 〈帝釋본풀이〉, 〈바리공주〉, 〈성주풀이〉, 〈칠성풀이〉, 〈장자풀이〉, 〈이공본풀이〉, 〈심청굿〉 등 전국적으로 전승되는 유형이 있다. 같은 무가라도 전승지역에 따라 차이가 많으며 지역의 특징이 아우러져 있기 때문에 원형을 찾기란 간단하지 않다. 또한 구전된 巫歌의 역사적 상한선과 하한선을 추정하기 위하여 문화적 분석이 요구된다. 한국의 고대 문화의 원형을 찾는 길로 서사무가 〈바리공주〉를 읽어본다. 〈바리공주〉는 〈바리데기〉, 〈칠공주〉, 〈오구풀이〉 등으로 불리며 죽은 사람의 혼을 저승으로 천도하기 위해 베푸는 굿에서 구연된다. 이러한 망자천도 굿은 49일째에 행하는 굿이며 중부지방에서는 진오기굿, 영남지방에서는 오구굿, 호남지방에서는 씻김굿 등으로 불려진다. 전국에서 약 50여 편이 채록되었으며 지방마다 다르게 전승되어 다소 차이가 있지만 여기에서는 서울을 포함한 중부지역에서 구연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읽어본다. 중부지방의 〈바리공주〉본은 바리가 아버지의 병환을 치유할 수 있다는 약수를 구하기 위해 서역에 갔다가 돌아오는 영웅적 행위와 약수를 가져와 죽은 아버지를 살리고 巫祖神이 되는 神性 획득에 초점이 있다. 이러한 바리공주 이야기는 전통적인 고대 근동의 신화소를 많이 담고 있어 고대 근동 문화와 비교 연구될 수 있다. 특히 〈바리공주〉는 저승 여행 신화의 범주에서 이해되며, 망자천도 굿을 거행하는 巫女가 망자의 혼을 저승으로 편안하게 천도해줄 수 있는 힘을 바리 공주에게서 받는 의례로 〈바리공주〉 신화를 구연하며 실현하는 것이다. 〈바리공주〉 신화의 줄거리 오구대왕이 아내를 얻어 딸을 여섯 얻는다. 연이어 딸을 낳자 아들을 얻기 위해 공을 드린다. 오구대왕은 태몽에 보라매, 백매, 금거북이, 해와 달, 청룡·황룡을 보고 이번에는 세자대군을 얻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딸을 낳았다. 화가 난 오구대왕은 일곱 번째 공주를 버리기로 작정한다. (이래서 '바리데기'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버림받는 내용이 지방마다 다양하며 판에 따라 세 번이나 갔다 버리는 경우도 나온다. 버리는 장소도 뒷동산이나 후원과 같은 가까운 곳에서 다시 황천강, 피바다 등 먼 곳으로 보낸다. 아이를 함이나 옥함에 넣어 버리는 경우가 가장 많으며 바리공주가 버려졌을 때 주로 학이 나와 아기를 보살피는 경우가 잦다. 버려진 곳에서 바리공주를 구해주는 인물로 석가여래가 등장하며 산신이나 도사스님, 사해용왕도 나온다. 대부분 바리를 구해준 인물과 바리를 키우는 양육자가 다르다. 외롭게 사는 늙은 할아비와 할미가 바리를 데려다 키운다. 바리가 15세가 되었을 때 바리공주의 아버지가 병에 걸린다. (중부지방판에는 부모가 모두 병에 걸린다.) 오구대왕은 병에 필요한 약을 구하였으나 백약이 무효였다. 마침내 서천서역국의 약수를 먹으면 치유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점을 쳐서 알게 되는 경우도 있고 스님이나 도사가 와서 알려주기도 한다. 오구대왕의 여섯 딸 중 누구도 서천서역국에 가서 약수를 가져오겠다고 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서천서역국은 저승을 가리킨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저승에 가려고 하지 않았다.) 바리의 부모는 바리를 찾아 그 딸에게 그 짐을 맡기기로 작심한다. 바리공주는 궁궐에 불려 와서 부모의 병을 위한 약수를 구해오겠다고 약속한다. 바리공주는 男裝을 하고 약수를 구하러 길을 떠난다. 가는 도중에 길 안내를 받기 위해 몇 가지 과업을 수행한다. 한번은 검은 빨래를 하얗게 빨아주고, 다음에는 아흔아홉 칸의 다리를 놓아주었으며, 길 가 언덕에 높은 돌탑을 쌓아 주어 서역 가는 길을 알게 된다. (과업을 처리하는 단락이 나오지 않는 본도 여럿 있으며 다른 지방판에는 밭을 갈아주거나 매주는 일로 길 안내를 받는 경우도 있다.) 가는 도중에 바리는 석가여래를 만나 그에게서 洛花를 받는다. (산신령에게서 낙화를 받는 지역본도 있다.) 바리는 지옥에 도달하였으며 낙화를 흔들어 지옥의 두려움을 몰아내었다. 또한 지옥을 지나가다가 죄인들을 구제하기도 한다. 드디어 바리는 약수가 있는 서천서역국에 도착하였으며 약수터를 지키는 이를 만난다. 그는 무장승, 무장선관 등으로 불리며 동해안 지역에서는 그를 동수자라고 부른다. (동수자는 하늘에서 죄를 지어 약수터 지키는 이로 내려와 아들 셋 혹은 다섯을 낳아야 다시 하늘로 돌아갈 수 있었다.) 무장승의 키는 하늘에 닳는 듯하며 얼굴은 쟁반만 하고 눈은 등잔 같았다. 손은 솥뚜껑 같고 발은 석자세치였다. 그는 바리에게 "그대는 사람인가 귀신인가"하고 묻는다. 날 짐승, 날 벌레도 들어오지 못하는 곳에 어떻게 들어 왔으며 어디서 왔느냐고 계속해서 묻는다. 바리는 국왕의 세자로서 부모 봉양하려고 이곳에 왔다고 대답한다. 무장승은 부모 봉양 왔으면 물 값을 가지고 왔느냐고 반문한다. (藥水 값을 내라는 말이다. 바리공주가 약수 값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면 오구대왕이 그냥 보냈을지도 모른다.) 바삐 오다보니 잊었다고 말하자 무장승은 물 삼 년 길어주고, 불 삼 년 때어주고, 나무 삼 년 해달라고 그녀에게 청한다. 이래서 바리공주는 구 년 동안 무장승 밑에서 일을 했다. 석삼 년 아홉 해를 살고 나니 무장승은 바리에게 "앞으로 보면 여자의 몸이 되어 보이고 뒤로 보면 국왕의 몸이 되어 보인다"고 말하며 그와 혼인하여 일곱 아들을 낳아 주고 가달라고 요구한다. 그것도 부모 봉양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하겠다고 하여 일곱 아들을 낳으며 산다. 1) (이래서 바리공주가 서역/저승에 온지 벌써 십육 년이 지났다.) 아무리 부부의 情도 중하지만 부모봉양이 늦어지자 바리는 꿈에 부모가 위독한 것을 알게 된다. 무장승은 지금까지 길어온 물이 바로 약수라고 이제서야 알려주며 그녀가 베던 나무가 살[肉]과 뼈가 살아나게 하는 꽃나무이니까 가지고 가라고 말한다. (사람 살리는 꽃을 이야기한다.) 혹은 뒷동산 꽃밭에 있는 三色 복숭아꽃이 숨살이[圖息], 뼈살이[圖骨], 살살이[圖肉]라고 말하는 지방본도 있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앞 바다 물 구경하고 뒷동산 꽃구경하자고 권한다. 바리는 그럴 경황이 없다고 말하자, 무장승은 전에는 혼자 홀아비로 살아왔는데 이제 여덟 홀아비가 되어 어찌 살겠느냐고 일곱 아들 데리고 바리공주와 함께 가겠다고 나선다. 한 몸으로 와서 아홉 몸이 되어 돌아간다. 바리공주 일행이 바삐 돌아오는 도중에 앞으로 黃泉江이고 뒤로는 流沙江인 곳에 이르러 피바다에 줄줄이 떠오는 장례 행렬 배를 본다. 연꽃으로 꾸미고 거북이로 받들어 청룡황룡이 끌고 가는 배에는 세상에 살 때 다리를 놓아 행인을 도와주고, 가난한 자에게 옷을 벗어주고,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나누어주던 사람들이 극락세계 연화대로 가는 길이었다. 그 뒤에 오는 배는 활기에 차 있으며 그 안에는 세상에 있을 때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성하고 동기간에 우애있고 일가에 화목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구순하고 없는 사람 구제하고 선심으로 평생을 산 사람들이 극락세계로 往生薦度왕생천도하여 가는 배이었다. 그 뒤에는 활을 들고, 창을 들고, 칼을 들고 머리를 풀어헤친 사람이 예복을 벗고 결박을 당한 채 殺氣 충천하며 악한 기운이 가득 찬 배가 오고 있었으며, 그 안에는 세상에 있을 때 나라에 역적질하고 부모에게 불효하고 동기간에 우애 없고 동네 사람에게 모질고 남의 말 엿듣고 이간질에 쌈 붙이고 탐이 많아 적은 되로 주고 큰 되로 받아먹고 착한 사람을 비방한 죄로 칼산 지옥으로 가는 배이었다. 한편, 돌에 얹혀오는 배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세상에 살았을 때 자식 없이 지내다가 죽은 사람과 해산하다가 죽은 여인들로 죽은 뒤에도 진오기굿, 새남굿, 四十九祭사십구제, 백일제도 못 받고 길을 잃고 떠돌아다니는 배이었다. 바리공주는 이들을 보자 가는 배 위에 올라서서 祝手를 하였다. (이미 바리공주는 巫女/巫神의 儀式을 행하고 있다.) 바리공주는 어느덧 세상에 돌아왔다. 집 가까이 왔을 때 초동이 지게 목발을 두드리며, "칠공주가 서역에 약수를 얻으러 갔다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이 頓絶돈절하다"는 노래 소리가 들린다. 바리공주는 깜짝 놀라 일곱 아이는 덤불 밑에 숨기고 무장승은 수풀 속에 숨겼다. 모퉁이를 돌아서니 상여소리가 들려왔고 멀리 쳐다보니 銘旌명정에 임금 王자가 쓰여있는 것을 보았다. 급히 달려가 머리를 풀어 發喪하고 죽은 부모에게 나아가 앞 매듭 일곱과 발 매듭 일곱과 大小殮대소렴의 매듭을 풀어서 좌편 우편을 평안하게 하였다. 그리고 서역에서 가져온 숨살이는 숨에 넣고 뼈살이는 뼈에 넣고 살살이는 살에 넣고 日映珠일영주는 눈에 놓았다. (일영주는 눈을 뜨게 하는 구슬 같다.) 그리고 약수를 떠서 입에 흘려 넣으니 한날 한시에 회춘하였다. 다시 살아난(부활한) 부모는 바리공주가 아들 일곱을 낳았고 혼인하였다는 말을 듣고 사윗감을 입시하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무장승은 키가 매우 커서 대궐문에 걸려 들어오지 못한다. 대왕은 대궐의 한 쪽을 헐고 들어오게 하였다. (바리공주가 약수와 약초를 얻어오게 해준) 무장승의 공덕을 기리며 산신제를 받을 수 있게 그에게 神職을 정해주고 그의 일곱 아들은 佛錢(부처 앞에 바치는 돈)을 받게 하였다. 바리공주는 지방본마다 다소 다르게 나오지만 만신의 몸주, 북두칠성신, 인도국왕의 보살 등 巫祖神이 된다. (바리공주는 神으로 좌정한다.) 巫祖神 대왕이 버린 막내 공주가 나이 15세 될 때 대왕은 병환으로 위급하게 되었다. 그녀는 왕궁으로 돌아오게 되고 대왕의 치유를 약속하는 태자의 역할을 감당한다. 바리의 태몽이나 그녀가 서역으로 떠나가는 길에 남장한 것이나 약수터를 지키는 무장승이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대왕의 몸'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아도 바리공주는 당당한 태자로서 서역 여행의 길을 택한 것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화에서 15는 사랑과 전쟁의 여신 인안나/이쉬타르의 숫자이다. 이쉬타르는 로마의 여신 비너스Venus와 동일시되었다. 바리공주가 15세에 왕궁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15의 상징성을 분명히 알려주는 지시어signifier이다.) 저승에서 돌아와 죽은 부모를 살린 바리공주는 대왕의 위업을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巫祖神이 되어 神의 자리에 앉게 된다. 저승 여행으로 바리는 神性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죽은 사람을 살리는 권능은 神만이 소유한 특권이라는 문화에서 형성되는 신화이다. 전체적 맥락으로 보아 오구대왕을 계승하게 되는 인물은 바리공주의 남편 무장승일 것이다. (오직 딸들만을 둔 왕에게 왕권을 넘겨줄 인물은 사위뿐이며 그 중에 바리공주의 남편이 적격임은 자명하다. 그래서 대왕은 궁궐의 문을 허물면서까지 무장승을 궁 안에 들어오게 하였다고 생각된다.) 한국의 고대 문화에서 탈해가 신라의 제2대 남해왕의 사위로 왕권을 계승하였다. 탈해도 배타고 건너온 龍城國의 왕자로 그 체격이 무장승처럼 9척 7촌이나 되었다고 전한다. 무장승은 신적인 존재이며 바리공주가 무조신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현실적인 조건은 신적인 무장승과 혼인하여 아들들을 낳았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내려와 약수터지기를 하던 무장승이 아들 셋 혹은 다섯만 얻으면 하늘로 다시 돌아 갈 수 있었지만 그는 일곱을 낳을 때까지 바리공주와 함께 살았다. (무장승이 하늘로 올라갈 수 있었지만, 그 영광을 버리고 바리와 함께 아들 일곱을 낳을 때까지 산 것이다.) 바리 또한 부부의 정이 깊어 아들 일곱을 낳을 때까지 함께 살았다. 부부의 정이 깊은 것은 무장승이 아들들을 데리고 바리공주를 따라온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바리공주가 대왕의 위독함을 뒤늦게나마 감지하고 떠나려 할 때에는 홀몸으로 떠나는 것이었다. (아들들을 데리고 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문맥에서 분명하다.) 즉 아들들은 무장승에게 속한다. (물론 무장승이 하늘로 돌아가는 기회를 포기하고 있었을 때는 이미 바리공주와 함께 이승으로 와서 대왕의 궁궐에 入侍하겠다는 꿈은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바리공주가 약수터에서 무장승과 함께 살 동안에 무장승과의 미래는 생각하였을 것이며 벌써 그녀의 나이는 15+9+7살이나 되었다. 무장승이 이승에 왔으면 그는 죽어 다시 저승으로 돌아간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리공주를 따라온 것은 짧으나마 이승의 삶이 저승에 영원히 사는 것보다 훨씬 좋다는 것을 알려준다. (부부의 情이 즐겁다는 이야기이다.) 바리공주는 만신의 몸주/무조신으로 망자천도굿에 망자들의 혼을 극락세계에 보내주는 일을 하고 무장승은 왕이 되어 옥좌에 앉아 정사를 돌보는 이야기로 〈바리공주〉 신화의 마지막 부분을 상상할 수 있다. 과연 바리공주는 효성으로 약수와 생명꽃을 얻었을까? 바리공주는 효심으로 서역에 가서 생명수와 생명초를 구하려고 하였을까? 신화는 이야기story 자체가 반복적이다. 신화를 이해하는 지름길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읽어보는 것이며 시작과 끝을 함께 보면서 전개되는 양상을 읽어 나가는 것이다. 시작에 끝을 예고하며 끝에 일어나는 사건은 시작과 연결된다. 바리공주가 끝에 무조신이 된다는 것은 〈바리공주〉 시작에 예고되었다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오구대왕이 꾼 태몽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으며 무장승과 혼인하는 상황에서도 그 결과를 볼 수 있다. 물론 끝까지 다 읽은 다음에 거꾸로 생각하며 맞추어 보는 작업에서 얻어지는 결과이지만, 신화는 반복적이기 때문에 어느 듣는 이나 이야기의 전말을 알고 있으며 사건의 전개를 예상한다. 바리가 효심에서 서역 약수를 얻어온 것이기보다는, 바리가 만신의 몸주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서역 여행을 하고 무사히 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역/저승 여행을 하고 돌아와야 망자의 혼을 그곳으로 무사히 인도할 수 있으며, 〈바리공주〉 신화를 듣는 이는 이러한 바리공주의 능력을 인정하고 확신할 수 있다. 바리의 부모의 병환을 치유하기 위해 약수를 구하러 서역/저승에 가려고 결심한 것은 저승여행의 표면적 이유/수단이며 내면적 의도는 망자의 혼령을 저승세계로 인도할 수 있는 권능을 소유하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바리공주가 약수와 생명꽃으로 죽은 부모를 살려내는 장면을 들으면서 망자의 혼은 저승에 가서 다시 살 수 있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망자의 혼이 자기 살던 집 근처에서 배회하지 않고 저승에 가서 편히 지낼 수 있다는 기대를 보여준다. 또한 망자천도굿을 해주는 가족의 입장에서도 망자의 혼령이 이승세계에서 방황하지 않고 저승에 들어가 안주하기를 바란다. 저승여행을 하고 돌아온 바리공주가 巫女로 이 역할을 담당하는 巫神이 된다. 이러한 劇的 사고가 신화의 힘이다. 〈바리공주〉 신화는 인간이 신이 되는 신화의 범주에서 이해될 수 있다. -------------------------------------------------------------------------------- 1) 일곱의 상징성은 인류 문화에 보편적으로 나온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화 〈길가메쉬와 엔키두의 저승여행〉에 엔키두는 저승에서 아들 일곱을 낳고 죽은 사람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말한다: "자식이 일곱인 사람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무엇처럼 하고 있냐?""신들의 서기관으로 의자에 앉아 판결을 듣고 있습니다." 바리공주 신화와 길가메쉬 신화를 비교하면, 무장승은 신들의 서기관이 되어 의자에 앉을 운명이다. 훗날 왕의 옥좌에 앉는 위치에 올라갈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神의 아들 DIVI FILIUS 종교적으로 인간이 신이 되는 경우는 고대 근동 역사에서 찾아진다. 인류 역사상 그러한 통치자의 발현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역사에서 읽을 수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역사관은 홍수를 기준으로 홍수 이전과 이후를 대별하여 서술한다. 그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통치자의 통치 기간이다. 홍수 이전에는 3600×x8년, 3600×10년 등으로 기록한 데 비하여 홍수 이후에는 600+600년, 120년 등으로 바뀐다. '수메르 왕계보'에 의하면 홍수 이전 시대의 왕들 가운데 神이 된 인물은 도성국가 바드티비라의 양치기 왕 두무지이다. 수메르 신화에 두무지는 여신 인안나와 혼인하는 이야기로 잘 알려졌으며 두무지는 저승 여행을 하고 돌아온 인안나의 약속으로 반 년 동안 저승에 있다가 올라와야 하는 운명이 되었다. 바빌로니아어로 음역된 두무지의 이름이 히브리성서 에스겔서에 나오는 탐무즈 神이다. 바빌로니아 달력에 6∼7월에 걸리는 달을 '탐무즈 달[月]'이라고 하며 이 달은 哭하는 달로 정해졌다. (곡해주는 사람이 없는 망자들을 위해 곡하는 달이 있었다.) '수메르 홍수 이야기'에 의하면 홍수에 살아남은 의로운 왕 지우쑤드라도 신이 되어 동쪽 먼 곳에 가서 인류의 종자를 보호하기 위해 영원히 살았다고 전한다. (여기가 저승이다.) 기원전 27세기경 도시국가 우루크(성서의 에레크)의 왕이었다는 길가메쉬도 신이 되어 저승의 감독관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생존하였던 당시에는 신적인 존재로 군림하지 않았던 것 같다. 길가메쉬에 대한 전승이 기원전 21세기 우르 3왕조 시기에 영웅전으로 엮어지면서 신성을 부여받은 것이다. 길가메쉬가 신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생명초를 얻기 위해 우트나피쉬팀이 살고 있다는 먼 곳에 갔다가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 먼 곳이 저승이다. 불교용어로 극락세계이며 서방정토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역사상 통치자가 생존에 신이 되고 그렇게 부르라고 칙령을 내린 최초의 인물은 악카드 왕조를 세운 싸르곤의 손자 나람씬(기원전 2254∼2218년경 재위)이다. 나람씬은 지중해 연안 지역 레바논까지 점령하고 북쪽으로 니느웨에 그의 전승비를 세웠으며, 동쪽으로 자그로스 산맥을 넘어 엘람족들을 섬멸하고 남쪽으로 바다를 건너 오늘날의 오만까지 출정을 나갔다가 돌아온 戰士였다. 고대 근동 전역을 통치하게 된 나람씬은 자신을 신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神들만이 사용하는 두 뿔 달린 모자를 착용한 모습을 석비에 부조하게 하였으며 자기 이름 앞에 '神'이라는 뜻의 문자(dingir)를 첨가하여 신적인 왕임을 알렸다. 그 후 기원전 21세기 우르 3왕조의 우르남무, 슐기, 아마르씬 등 몇 왕들도 왕명 앞에 '神'(dingir)의 칭호를 첨가하는 전승을 따랐다. 고대 이집트 관습으로는 사람이 죽어 저승사자의 시험을 통과하면 신이 될 수 있었다. 따라서 왕은 반드시 저승신들의 왕인 오시리스가 된다. 고대 이집트 문화에서도 죽어서 신이 되는 경우를 인식하였다. 이집트 역사에서 살아 있는 동안에 신이 되려고 노력한 인물이 한 명 나온다. 태양신을 유일신으로 숭배하여 새 성전도시를 건설했던 아켄아텐이다. 그러나 그가 죽은 후 그를 이교도라고 배척하였다.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를 통합하고 그리스의 왕이 되어 근동 정복의 꿈을 실현했다. 기원전 334년 소아시아 그라니코스 강가에서 알렉산드로스 왕은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 3세를 물리치고 전격적으로 동방원정을 시도했다. 기원전 332년 알렉산드로스 대왕 군대가 소아시아 지방을 거쳐 동쪽으로 진격했으며 지중해 연안 지역을 포함한 고대 근동의 전부를 정복하였다. 기원전 331년에 페르시아의 수도 페르세폴리스를 점령하였으며 이듬해 다리우스 3세는 암살당하고 페르시아 제국은 멸망했다. 마침내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그리스와 근동 전역을 그리스 제국으로 형성하게 되며 여러 도시를 건설하여 '알렉산드리아'라고 명명하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관한 전설에 의하면 그의 어머니가 태양신을 안고 그를 잉태하였다고 말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얼굴모습을 새긴 은전에 그의 머리카락을 태양신의 햇빛처럼 부각시켰으며 이것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신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원전 307년 아테네를 폭군의 압제에서 해방시킨 데미트리우스가 자기를 유일한 '진리의 신'이라고 말했으며 다른 신들은 모두 잠자고 있거나 다른 지역으로 여행갔다고 말했다. 프톨레마이오 2세(기원전 285∼246년 재위)는 그의 누이와 함께 神이라고 자칭했다( '형제 신'). 한편 셀류코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4세(기원전 175∼164년 재위)는 자기에게 신성이 있음을 확신하고 그의 이름에 에피파네스(顯現)를 첨가하여 그리스의 최고신 제우스가 자신에게 인격화되었다고 알렸다. 그는 자신의 형상을 그의 통치 지역의 모든 신전에 세워 경배할 것을 요구하였다. 로마 시대에 여러 황제들은 자신의 신성을 주장하여 아우구스투스(AUGUSTUS, '존엄한') '神의 아들(DIVI FILIUS, )'이라고 자신을 명명하였다. 기원전 44년에 암살된 율리우스는 42년 1월 1일 원로원과 국민투표에 의해 신으로 천명되었다(DIVI JULIUS). 그의 양자 옥타비아누스(기원전 27년∼서기 14년 재위)는 '신적인 율리우스의 아들(DIVI JULI FILIUS)'라고 명명하고 기원전 27년에 아우구스투스의 명칭을 원로원(senatus consultum, '원로원의 결정')에서 획득했다. 티베리우스 황제(15∼36년 재위)는 티베리우스 神殿인 티베리움을 지었다. 가이우스 칼리굴라(37∼41년 재위)는 살아있는 황제로는 처음으로 신성을 요구하여 그의 神命(genius)에 맹세하지 않으면 처벌했고 신전에 자기 신상을 세워 신으로 숭배하게 하였다. 클라우디우스 황제(41∼54년 재위)는 자신을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황제이며 主(TIBERIUS CLAUDIUS CAESAR )'라고 명명했다. 네로 황제(54∼68년 재위)가 자신을 신으로 추대한 것은 그다지 어색하지 않다. 아르메니아 왕이 네로 황제에게 와서 "나의 神이여, 나는 당신께 왔습니다. 내가 미트라를 숭배하듯이 당신을 숭배합니다"라고 말했다. (미트라는 페르시아의 태양신이며 로마 제국 군인들의 수호신이었다.) 네로도 자기의 상을 만들어 신전에 두었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69∼79년 재위)는 70년에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구원자'( , 쏘테르)로 입성했으며 그의 은전에 IMP CAESAR DIVI VESPASIANVS AVG('제국의 황제, 神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의 명문을 새겼다. 그의 둘째 아들 도미티아누스 황제(81∼96년 재위)는 자신이 군주( )이며 신( )이라고 행정문서에 기록했다. 이처럼 제국의 통치자가 신적인 존재로 상승하려고 노력한 흔적은 역사적으로 볼 수 있다. 성령의 힘으로 잉태되어 인간으로 태어나 '하느님의 아들'로 불려진 예수의 神性은 고대 근동과 로마의 맥락context에서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도 3세기 말(274년)에 로마의 공식적인 神이 되면서 로마의 최고신 미트라 태양신의 위치(SOL INVICTUS, '無敵의 태양신')에 들어가게 되며 태양신의 생일인 동지 12월 25일에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갖게 된다. 비잔틴 시대의 예수 그리스도 그림에 그의 머리 뒤로 햇빛처럼 뻗치는 후광을 볼 수 있다. 고대 근동 문화권에서 인간(흔히 왕)이 신의 자격을 획득하는 경우는 위에 열거한 정도이지만 이들 가운데 저승을 여행하고 돌아온 인물은 불과 몇 되지 않는다. 두무지와 길가메쉬, 그리고 예수이다. 두무지는 반 년에 한번씩 저승에 갔다 돌아온다. 길가메쉬는 천신만고 끝에 먼 곳/저승에 가서 '再起의 풀' 생명초를 얻기는 하였지만 끝내 자기 고향으로 가져오지는 못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神系譜 전승에 두무지와 길가메쉬는 저승 監督官이 되었다고 전한다. 예수가 경험한 저승 여행은 그가 죽은 후 무덤굴에서 사흘 동안 있었던 것을 말한다. 그는 다시 일어나 무덤굴 밖으로 나와 그의 제자들에게 살아 있는 몸을 보여주며 부활시킬 수 있는 힘/권능을 제자들에게 넘겨주었다. 예수도 다윗의 왕손이었으며 죽을 때 십자가 위에 붙인 '유대인들의 왕'이라는 팻말을 보아도 그는 왕의 신분으로 신의 아들이 된 것이다. 고대 근동 역사에서 저승여행을 경험한 몇 되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 바리공주와 가장 가까운 인물은 길가메쉬 같다. ('길가메쉬 서사시'의 요약본은 본지 3월호에서 읽을 수 있다.) 또한 위에 열거한 '신의 아들'이 된 인물들은 모두 왕권을 중시했던 도성 사회의 문화에서 이루어진 신화/신화소이다. 〈바리공주〉 신화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오구대왕이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왕권사회를 배경으로 엮어진 신화이다. 한편 공주에게 태자의 임무를 짊어지게 할 수 있는 (혹은 여자가 왕위를 이을 수 있는) 아니면 적어도 사위가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한국의 고대 사회가 바리공주 신화 형성의 하한선이다. 아마도 신라의 탈해왕과 선덕여왕 사이에 바리공주 신화의 원형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생명수와 邪進慶 죽은 몸 위에 생명수와 생명초를 뿌려 죽은 자를 살리는 신화소는 고대 근동 사회에 잘 알려진 〈인안나의 저승여행〉 신화에서 볼 수 있다. 금성 여신 인안나는 저승에 내려가서 저승의 권한을 차지하여 보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저승에 내려가 일곱 개 저승문을 지나면서 몸에 걸친 치장과 옷가지 등을 빼앗긴다. 벌거숭이가 된 인안나는 저승의 女主 앞에 끌려왔다. 옥좌에 앉아 있던 여주가 놀라 벌떡 일어서 앞으로 다가오자 인안나는 그녀의 옥좌에 달려가 앉는다. 그때 주위에 있던 큰 신들이 인안나를 향해 소리쳤다. 그녀(인안나)는 그들을 쳐다보았다. 죽음의 눈길이었다. 그들에게 말했다. 분노의 말이었다. 그들에게 소리쳤다. 죄 짓는 외침이었다. 괴로움을 당한 이 여자는 두들겨 맞은 고기 덩어리로 변했다. 두들겨 맞은 고기 덩어리를 누구인가 나무못에 걸어 놓았다. 저승의 큰 신들이 인안나에게 고함을 지르자 그녀는 두들겨 맞은 고기 덩어리처럼 되어 삼일 동안 나무못에 매달려 있었다. 인안나가 삼일이 지나도 이승에 돌아오지 않자 인안나의 시종은 큰 신들에게 달려가 그녀를 구원해달라고 호소한다. 지하수 신 엔키는 그의 손톱 밑에서 진흙을 꺼내어 두 哭꾼을 만들고 그들에게 생명초와 생명수를 주며 인안나를 구하라고 저승으로 보낸다. 두 곡꾼 요정들이 저승에 파리처럼 날아 들어와서 저승 여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무못에 걸어 놓은 두들겨 맞은 고기 덩어리를 그들에게 주었다. 한 번은 생명초를 또 한 번은 생명수를 그 위에 뿌렸다. 인안나는 일어났다. 인안나는 이승으로 올라가는 조건으로 그녀 대신에 머리 하나를 보내겠다고 약속하며 저승을 떠난다. 세상에 올라와 그녀의 시종, 歌手, 집사 등을 보는 즐거움은 컸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은 다음 그를 내려다 무덤굴 속에 놓고 그가 다시 일어나는 것처럼 나무/나무못에 매달려 죽은 사람을 살리는 전승의 시원은 여기에서 발견된다.) 죽은 몸에 생명수와 생명초를 뿌려 부활시키는 神話素는 〈인안나의 저승 여행〉에서 그 원형이 발견된다. 고대 근동 문화에서 죽음은 不淨한 것으로 취급했다. 부정한 것을 정화하는 정결례 의식에 지하수를 뿌리는 예식이 가장 보편적이었다. 생명수는 생명을 일으켜주는 물이며 또한 종교적 의례의 역동성은 정결례에서 찾을 수 있다. (지금도 그리스도교에서는 물로 세례를 받으며 전통적으로 물 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의례였다. 물로 세례를 받는 의미는 지난 죄를 사하는 것 즉 不淨을 정화하는 예식이다. 은유적으로 말하면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의식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정결례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아래 텍스트는 〈마귀를 쫓는 呪文〉의 부록에 있는 呪文이다.) 이 呪文은 (악한) 맹세를 푼다. 呪文: 거룩한 물, 呪文의 물 [...] 경외로운 곳에서 [솟아오르는] 유프라테스강의 물 지하수에서 정성껏 돌본 물 엔키의 거룩한 입으로 淨化한다. 압주(지하수)의 일곱 아들들이2) 물을 거룩하게 한다. 물을 깨끗하게 한다. 물을 빛나게 한다. 네 아버지 엔키 앞에, 네 어머니 담갈눈나 앞에 그(병자)가 거룩하게 될 것이다. 그가 깨끗하게 될 것이다. 그가 빛나게 될 것이다. 악한 혀가 밖으로 나가 설 것이다. 지하수신 엔키의 힘/말씀이 들어있는 생명의 물로 驅魔司祭구마사제는 사악한 것/부정/죽음을 몰아낸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회에서 정결예식을 행했던 구마사제는 고대 한국 문화의 巫女로 이해할 수 있다. 바리공주가 죽은 부모의 몸에 생명수를 뿌리는 것은 구마 행위이다. 不淨한 몸에 생명수를 뿌리는 邪 의례이다. 한편 살아난 부모가 기뻐 축하연을 베풀고 무장승을 맞이하는 것은 경사스러운 일이다. 進慶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바리공주〉 신화의 주제는 邪進慶의 전승에서 찾아진다. 처용과 거타지의 설화가 벽사진경의 전승에 있는 것처럼 고대 한국 문화의 중심체는 잡귀를 쫓아내고 즐거운 일을 맞이하는 意識이다. 처용이 서역에서 온 사람인 것처럼 바리공주에서도 생명수는 서역에서 가져오며 무장승의 체격은 서양인의 모습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서역은 글자 그대로 西域이다.) 문화적으로 이해하면, 생명수와 생명초는 서역에서 수입한 乳香, 沈香(알로에)이나 향료 등을 일컬을 것이다. 꽃밭과 저승 감독관 바리공주가 무장승과 함께 살던 약수터 근처 뒷동산에 꽃밭이 있었다. 그 꽃밭에는 사람을 살리는 꽃들이 있었다. 고대 한국의 서사무가 〈안락국전〉에 꽃밭과 사람 살리는 꽃의 신화소가 나온다. 제주도 무가에 〈이공본풀이〉로 전해진 신화이다. 이 이야기는 〈월인석보〉에도 기록이 있으며 일명 〈원앙부인 본풀이〉로 고대 한국의 원형 신화 가운데 하나이다. 3) 이 신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임신 중인 부인을 두고 남편은 서천 꽃밭으로 떠난다. 이공본 풀이에 의하면 남편은 꽃감관[花監官]의 임무를 맡고 불려간다. (서천 꽃밭은 〈바리공주〉의 뒷동산 꽃밭처럼 저승이다.) 떠나는 남편을 그리워하며 아내는 따라가지만 얼마 가지 못하여 발병이 나서 더 이상 갈 수가 없게되었다. 남편은 그녀를 그 동네 부자에게 맡기고 남편은 서천 꽃밭으로 간다. 그녀에게서 태어난 아들은 장성하여 아버지를 찾게 된다. 여러 본에 서로 다른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집주인은 꽃감관의 아들 안락국과 그 아내를 고생시키며 핍박한다. 안락국은 집주인 몰래 도망할 수 있었으며 어머니에게서 아버지의 이름을 알아내고 서천 꽃밭에 가서 아버지를 찾을 수 있는 증표를 얻는다. 아들은 봇짐을 차리고 아버지를 찾아 떠난다. 집주인이 이를 알아차리고 개를 시켜 여러 차례 도망간 안락국을 잡아오도록 하지만 실패한다. 끝내 아들은 서천 꽃밭에 가서 아버지를 만나지만 그 동안 집주인은 어머니를 죽여 토막을 내어 밭에 던져 버렸다. 서천 꽃밭에는 사람을 웃기게 하는 웃음 꽃, 서로 싸움을 일으키게 하는 싸움 꽃, 사람을 죽이는 악심 꽃, 사람을 살리는 환생꽃 등이 있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원수를 갚으라며 아들에게 악심꽃과 환생꽃을 준다. 아들은 돌아와서 악심꽃으로 부잣집 일가친족을 다 죽이고, 토막 난 어머니의 시체를 차례로 모아 그 위에 환생꽃을 놓으니 어머니가 살아난다. 아들은 어머니를 데리고 서천꽃밭에 들어가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고 한다. 한국의 고대 신화에 서천 꽃밭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원앙부인 신화에 꽃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불교의 색채가 첨가되면서 〈蛇福說話〉와 같은 이야기에는 蓮花藏世界와 같은 꽃밭이 등장한다. 갈비뼈와 생명의 女主 고대 근동 문화에도 정원/꽃밭은 신화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거룩한 도시 딜문〉 신화에 지하수 신 엔키가 꽃밭에서 풀/꽃을 맛보고 병 걸리는 이야기가 있다. (수메르語에 풀과 꽃은 같은 단어이다.) 모두 여덟 가지의 꽃/풀이 나오는데 불행하게도 그 가운데 네 단어의 뜻만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꽃/풀과 관련되어 만들어진 신들에서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이야기의 발단은 엔키가 '천 짜는 여신' 웃투에게 맥주를 맘껏 마시게 하고 그녀를 겁탈한다. 화가 난 웃투의 할머니는 웃투의 아랫배 속에서 엔키의 물을 꺼내 정원에 뿌렸다. 정원에 나무 풀, 꿀 풀, 채소 풀, 새싹 풀 등 여러 가지 꽃/풀이 자랐다. 호기심에 가득 찬 엔키는 그 꽃/풀을 먹고 각각의 맛을 알았다. 그러나 엔키는 여덟 군데가 아프게 된다. 웃투의 할머니는 엔키의 아픈 곳에서 작은 신들을 만들어낸다. 나무 풀을 먹고 아픈 곳은 머리가죽이며 그 곳에서 '아버지 풀 신'이 태어나게 한다. (즉, 나무 풀을 먹으면 두통이 생긴다.) 꿀 풀로 병 걸린 곳은 머리카락이며 그곳에서 '양털 꼬는 女主'가 태어나게 한다. 다음으로 아픈 코에서 '계선주에서 낳는 여주', 아픈 입에서 '입을 채우는 여주'(맥주의 여신), 아픈 목구멍에서 '목숨을 주는 여주', 아픈 팔에서 '팔을 치켜드는 여주', 다음 꽃 이름은 모르겠지만 그것을 먹고 엔키는 갈비뼈가 아프게 되었다. 갈비뼈에서 '생명의 여주'가 태어나게 한다. 이 꽃/풀을 먹으면 생명이 연장되는 것이다. 생명초이다. 다음은 어깨가 아프고 그 곳에서 '아름답게 하는 여주'가 태어나게 한다. 이 꽃/풀을 먹으면 아름다워진다. 〈거룩한 달문〉 신화의 이 단락에서 보여주는 신화소는 엔키의 꽃밭에는 아프게도 하고 아름답게도 하며 생명을 연장시키는 등 여러 종류의 꽃/풀이 있다는 것이다. 관심 있는 부분은 '생명의 꽃'/생명초이다. 〈인안나의 저승 여행〉 신화에서 지하수 신 엔키가 인안나를 살리기 위해 哭꾼에게 준 생명초도 이 꽃밭에 나오는 '생명의 여주' 꽃/풀일 것이다. '생명의 꽃/풀'과 '갈비뼈'와 '생명의 여주' 관계를 엮어놓은 이야기가 고대 이스라엘의 신화에 나온다. 히브리성서에 나오는 에덴 동산 이야기이다. 하느님이 아담을 만들고 아담에게 단잠을 재운 후 그의 갈비뼈를 취하여 '아담의 상대로 도움'이 되는 여자를 만들었다. 엔키의 아픈 갈비뼈에서 태어난 여신이 '생명의 여주'인 것처럼 아담의 갈비뼈에서 만들어낸 여자가 '모든 생명의 어머니'(창세기 3:20)가 된다. 갈비뼈의 여주는 달[月]의 여주가 된다. 수메르 문화권에서 갈비뼈의 여주를 '생명의 여주'라고 부르는데 그 특별한 이유는 언어적으로 갈비뼈와 생명이라는 단어가 서로 같은 발음(티)이기 때문이다. 또한 생명의 여주(닌티)가 달의 여주가 되는 것도 생명을 잉태하는 여자와 달/월경의 상관관계에서 설명될 수 있지만, 달의 여주는 '닌이티'라고 발음되므로 '닌티'(갈비뼈의 여주/생명의 여주)는 쉽게 '닌이티'(달의 여주)라는 단어로 이해될 수 있다. ('이티'는 달[月]이라는 뜻이다. 단어의 곁말놀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고대 한국 문화에서도 혼인한 여인이 자식을 가지려고 달을 쳐다보며 달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풍속이 있다.) 또한 수메르어로 '티'는 화살을 뜻한다. 고대 근동 문화권에서 활과 화살로 계약을 맺는 의식(본지 8월호 참조)도 '티'가 '생명'이라는 의미가 있는 데 그 근거를 둔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계약의 문구는 아래와 같다: "아무개 神의 생명으로 아무개와 아무개는 계약을 맺는다." 아담의 갈비뼈에서 특별히 여자를 만들어야하는 이유가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 설정되며 꽃밭과 상관이 있다. 에덴 동산 신화에는 여자가 나무에서 열매를 먹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꽃을 먹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범주의 신화소이다. 아담과 여자는 선과 악을 아는 나무 열매를 먹고 '생명'을 얻은 것이다. 열매를 먹은 그들은 '우리(하느님) 가운데 하나처럼 되었다'(창세기 3:22)고 전한다. 神처럼 살 수 있는 생명이 채워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들이 '생명의 나무'에서 다시 한번 가져다 먹고 영원히 살게 되면 곤란하다고 느껴 그들을 에덴 동산에서 쫓아낸다. 이래서 유대교 신비주의자들은 영생을 얻기 위해 에덴 동산에 들어가 생명의 나무를 본다고 말한다. 〈바리공주〉의 여러 본에 죽은 이를 살리는 꽃이라고 되어있지만 또한 몇몇 본에 복숭아꽃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냥 꽃을 포함하여 과일 열매나무 꽃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바리공주〉의 뒷동산 꽃밭이나 〈원앙부인〉 신화의 꽃밭뿐 아니라 지하수신 엔키가 꽃/풀을 먹고 아프게 되는 꽃밭이나 여자가 선과 악을 아는 나무에서 열매를 먹고 당분간이나마 신처럼 되었던 에덴 동산/꽃밭 등 모두가 꽃/풀/열매로 아픈 이/죽은 이를 치유하는/살리는 신화소의 공간이다. -------------------------------------------------------------------------------- 2) 압주(Abzu/Apsu)는 지하수를 뜻한다. 수메르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에 하나가 에리둑이며 그 곳은 연못으로 둘러 쌓인 지역의 낮은 언덕이었다. (일곱의 상징성 때문에) 우연이겠지만 지하수의 아들들이 일곱이다. 약수터를 지키는 무장승도 아들을 일곱 얻는다. 3) 조흥윤, 〈한국의 원형신화 원앙부인 본풀이〉,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바리와 심청 바리공주보다는 심청전이 더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심청 이야기도 바리공주처럼 부모에게 효도를 하기 위해 자기의 몸을 바치는 효심의 설화로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심청은 늙은 봉사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인당수에 뛰어 들어간다. 그녀는 바다 속 왕궁에 인도되어 용왕의 아내가 된다. (바리공주는 바다 건너 저 멀리 서역국으로 가지만 심청은 바다 속으로 들어간다. 실상 상상계의 공간에서 바리가 간 곳이나 심청이 간 곳 모두 저승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도 '하늘 용'/'대추야자나무 열매'라는 별명을 가진 두무지가 내려간 곳도 강물/바다 속이거나 바다 멀리 저 먼 곳/저승이다. 본지 6월호 참조.) 심청은 아버지가 눈을 뜨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용왕과 함께 이승으로 올라와 잔치를 베풀어 전국에서 봉사들을 모이게 한다. 잔치 마지막 날까지도 심청은 심봉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심청과 용왕이 이승에 올라와 잔치를 베풀 수 있는 기간이 정해진 것은 약속된 기간을 말한다. 그들은 이승에서 활동하는 인물들이 아니다. 한정된 삶을 이야기한다.) 마지막 날, 즉 이승의 삶이 거의 끝나는 날에 심청은 심봉사가 잔치에 들어오는 것을 알게 된다. 심봉사는 죽었다던 심청의 살아 있는 목소리를 듣고 기뻐 자기 딸을 보려는 열정에 눈이 떠졌다고 흔히 이해하며 이렇게 판소리 극에도 연출된다. 심봉사가 눈을 뜨게 된 것은 기쁨이며 경사이다. 바리의 약수와 환생꽃으로 죽은 부모가 다시 살아나는 기쁨과 같은 것이다. 삼국유사의 처용편에 이러한 것을 進慶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과연 심봉사가 자기 스스로 눈을 뜨게 되었을까? 봉사는 어둠의 은유적 표현이다. 어둠은 악한 힘의 권한에 있는 상황을 말한다. (그렇다고 장님이 악하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고대 근동 문화뿐 아니라 고대 중국의 신화에서도 빛과 어둠의 대조로 창세 신화를 엮었다. 어둠을 몰아내고 빛이 있게 하여 세상을 창조하였다는 논리이다. (히브리 성서의 창세기도 그러하다: "빛이 있어라".) 따라서 어둠은 잡귀나 사악한 귀신들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여긴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은 어둠을 몰아내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복음서에 전해진 예수의 행적 가운데 불구자나 절름발이, 벙어리, 소경, 손이 오그라든 사람, 미친 사람, 중풍병자, 나병환자 등을 낫게 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물론 불구자를 치유하는 목적이 예수 공동체에 들어와 하느님의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지만 그들이 어둠의 굴레에서 벗어나 구원의 빛을 보게 하는 사업이다. 불구자를 치유하는 예로 소경의 눈을 뜨게 한 단락들을 비교하여 본다. 소경들이 예수에게 다가와 "저희 눈이 뜨이게 해주십시오"라고 청한다. 예수는 그들의 눈을 만지며 "당신들이 믿은 대로 당신들에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라고 말하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고 전한다(마태 9,27∼31). 神性을 소유한 사람이 물리적으로 눈을 만지며 말을 전하여야 이루어진다. 이러한 말이 呪文이며 不淨한 것을 깨끗하게 치유하는 정결예식이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 정결례 의식에 구마사제가 환자의 치유를 위하여 물, 소금, 기름 등을 뿌리거나 불을 태우며 주문을 읽었다. 고대 문화에서부터 악귀를 물리치는 의례로 물리적인 수단과 주문/말씀이 사용되었으며 후대에 오면서 때로는 주문으로만 치유하는 경우가 나온다. 복음서에 전해진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예에서 예수가 눈을 만지지 않고 단지 말로만 눈을 뜨게 하는 것을 볼 수 있다(마가 10:46∼52; 누가 18:35∼43). 〈심청〉 신화에서 심봉사는 심청의 목소리를 듣고 놀랜 나머지 보고싶은 마음에 눈을 뜨게 되었을까? 삼국유사에 전해진 거타지 설화에서 거타지가 스님으로 둔갑한 늙은 여우를 죽여 용왕의 우환을 물리치는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용왕에게 드리워져 있는 어두운 기운을 물리친 것이 벽사의 힘이다. 고대 근동 신화뿐 아니라 고대 한국 신화에서도 벽사 신화소의 정형에 의하면 항상 잡귀를 몰아내는 신적인 힘을 가진 媒體가 있다. 자기 스스로 어둠을 물리치고 빛을 보게 되는 것이 아니다. 심청은 심봉사의 눈을 만지고 눈이 뜨이게 말을 했을 것이다. 문화적으로 이해하면, 주문을 읽는 것이다. 용왕의 아내로 심청은 이러한 신적 권능을 가질 수 있으며 적어도 소경의 눈을 뜨게 할 만한 능력이 있었을 것이다. 〈심청〉 신화의 원형을 찾는다면 심청은 아버지를 만나자 그녀의 손으로 그의 눈을 만지고 "아버지"라고 외마디를 질렀을 것이다. "아버지, 눈을 뜨십시오"라는 말이다. 심청이 심봉사의 눈을 만지지 않고 그냥 "아버지"하고 외치는 대목도 타당하다. 〈바리공주〉에서처럼 약수나 생명의 꽃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말/주문으로 치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인용한 복음서에 전해진 예수의 치유방법과 비슷하다. 마치 창세기에 전해진 창세신화처럼 하느님이 "빛이 있어라"라고 말하자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생겼다는 이야기와 같은 맥락이다.) 심봉사는 눈을 뜨고 싶어서 딸을 뱃사람들에게 팔아 바다에 빠지게 하였으며 오구대왕은 병을 치유하고 싶어서 딸을 서역/저승으로 보냈다. 고대 사회에서 눈이 뜨이게 되거나 병이 치유되는 것은 오직 신적인 힘을 빌려야 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기원전 4세기 초 고대 그리스에 히포크라테스가 진단 의학을 발전시킨 이후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그렇게 믿었으며 오늘날에도 그러한 부류가 있다.) 오구대왕이나 심봉사 모두 그들의 딸을 보내며 어떻게 하여야 자신들의 불치/병이 낫게되는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오구대왕은 딸을 발이 석자세치나 되는 약수터지기에게 보내어 아들들을 낳게 하여 약수를 얻어와 자신의 치유를 도모하였고 심봉사는 자기 딸을 바다 속 용왕에게 보내어 눈이 뜨이게 될 기회를 엿보았다. 비정한 부모의 처사이다. 바리공주는 未知의 무장승을 만나는 기쁨에 고생스러운 서역 행로를 견디어 나갔으며, 심청은 즐거운 얼굴빛으로 인당수에 몸을 던졌을 것이다. 굿판 제사 상에 올려진 돼지머리는 웃는 얼굴이다. 바리공주는 서역행로에서 슬픈 얼굴로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으며 심청 또한 찡그린 얼굴로 바다에 몸을 던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神的 소양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들의 작심과 자발적 행위에는 神性을 얻게되는 기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고대 한국 巫의 속성이라고 생각된다. 무우를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