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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2년 4월 28일 일요일 오후 04시 58분 48초
제 목(Title): 조철수/ 태조왕건의 탄생설화와 용호신화


출처: 이머지


200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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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  우리 고대문화의 원형을 찾아서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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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조왕건의 탄생설화와 龍虎神話  
조철수  
 
 
 


한국 고대문화의 원형 가운데 큰 전승으로 이어지는 신화가 龍과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다. 호랑이는 깊은 山을, 용은 연못(池)이나 강 혹은 바다를 그 삶의 
배경으로 劇化된다. 고대 근동의 문화권에서 사자와 용이 그들의 신화에 큰 
위치를 차지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스라엘의 創造 詩篇 

고대 바빌로니아 문화에서 '태양의 송아지' 神이 '바다의 용'을 죽이고 그녀의 
시체를 반으로 갈라 세상을 창조하였다는 創世 서사시는 1천여 년 이상 매년 
신년축제에 낭송되는 종교적 의례로, 용이라는 상상의 실체가 그렇게 문화의 
중심체를 이룰 수 있었다고 본다. 바빌로니아의 문화를 전수한 고대 이스라엘의 
민족서사시인들도 바빌로니아의 창조 서사시에 버금가는 創造詩를 써서 그들의 
절대 창조주를 찬양하였다. 예를 들어, 시편 문구를 읽어본다(시편 74:13∼14). 


당신은 바다를 당신 힘으로 뒤흔드시고 
물위에 용(바닷괴물)들의 머리들을 부수셨습니다. 
당신은 레비야탄의 머리들을 깨뜨리시고 
바다에 사는 조롱꾼 패거리에게 먹이로 주셨습니다. 


레비야탄은 바다의 용을 뜻하는 고유명사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창조주도 
바빌로니아의 창세 신화에서처럼 바다의 용을 물리치는 모습으로 나온다. 
그러나 좀더 발전된 이스라엘의 神觀을 아래에 번역한 시편 구절에서 읽을 수 
있다. 바빌로니아 창조 서사시에서는 신들의 용사 마르둑이 티야마트와 그녀의 
패거리에 맞서 大戰을 벌이지만, 아래에 인용한 이스라엘의 창조시(시편 
104:25∼26)에서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바다의 용들을 만들어낸다. 


이것(하느님의 창조)은 바다, 크고 널찍하다. 
거기에 기는 것이 수없이 크고 작은 짐승들이. 
거기에 배들이 돌아다니고 
당신께서 만드신 레비야탄 이것이 그곳에서 놉니다. 


레비야탄은 동방 문화권에서 용왕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으며 바다에서 즐겁게 
노는 용왕의 모습을 위의 시편에서 볼 수 있다. 창조주의 한 피조물로 바다의 
왕 노릇을 하게 만들어진 바다의 용이 고대 중국이나 한국의 문화권에서 볼 수 
있는 그 용왕이라고 생각한다. 성서에 전해진 이스라엘의 신화는 그리스도교와 
유대교를 통하여 유럽 쪽으로 발전되지만 동쪽으로는 摩尼敎마니교, 
Manichaean, 동방교회의 일파인 네스토리우스派Nestorian(한문으로는 景敎),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교를 통하여 중국과 한국, 일본 등에 전해졌다. 



王建의 誕生說話 

《高麗史》의 첫 장 〈高麗世系〉에 기록된 太祖 王建의 가문에 대한 설화는 
태조의 건국 이념이 충분히 반영된 이야기이다. 비록 조선왕조 초기에 편찬된 
《高麗史》이기는 하지만 태조 왕건의 조상들에 대한 설화가 이렇게 잘 보존된 
것은 편찬자들에게 역사의식이 있어 改作하지 않고 毅宗의종(1146∼1170년)대에 
기록된 《編年通錄편년통록》을 전적으로 옮긴 것이다. 편년통록 자체는 
보존되지 않았지만 태조 왕건의 탄생을 궁극적인 목표로 갖가지 설화를 
동원하여 王世系 설화로 엮은 것은 이 책에 의존하여 인용된 것이며, 
삼국시대의 奇異한 이야기를 모은 삼국유사의 편집연도인 1280년대보다도 이른 
시기에 기록되었다는 점과 비교하여 보면 그 신화적 가치가 높다. 

태조 왕건의 탄생설화는 호랑이 신화와 용 신화의 결합을 알려주며, 三韓 
통일의 이념을 두 신화의 통합이라는 관점에서 그것의 열매로 보여준다. 왕건 
家門의 6代 조상으로 거슬러 올라가 虎景호경이라는 사람이 호랑이(虎女)에게 
붙들려가서 山의 大王이 되었다는 호랑이 신화로 태조의 世系 설화는 시작된다. 
이후 호경의 孫子인 보육의 딸이 당 나라 황제의 태자와 연분을 맺고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 作帝建작제건은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배에 올라 당 나라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물에 빠져 용왕을 만나게 되며 용왕의 딸(龍女)과 혼인하고 
七寶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와 三韓統一의 꿈을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에서 용 
신화와 연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태조 왕건의 건국 이념은 북쪽과 남쪽의 
통합에 있었으며, 그 前兆를 왕건의 조상들에게서 이루어지는 설화로 엮었고, 
이를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상징이 호랑이 신화와 용 신화인 것이다. 태조의 
왕세계 설화는 이러하다. 


虎景이라는 사람은 스스로 聖骨將軍성골장군이라 일컬으며 白頭山으로부터 떠나 
여러 고장을 돌아다니다가 扶蘇山부소산에 이르러 아내를 얻고 살았다. 그는 
활쏘기를 잘하고 사냥을 일삼아 오더니 하루는 마을에 사는 사람 아홉 명과 
함께 매사냥을 나갔다. 날이 저물자 굴속에서 지내려고 하는데 호랑이가 나타나 
굴 어구에서 크게 울부짖었다. 열 사람은 말하길 호랑이가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하니 우리가 모두 冠을 던져 호랑이가 잡는 관이 나가기로 하자고 하여 관을 
던졌더니 호랑이는 호경의 관을 잡아갔다. 호경이 밖으로 나가 호랑이와 싸우려 
하자 호랑이는 보이지 않고 바위굴이 무너져 모두 죽었다. 호경이 아홉 명을 
장사지내기에 앞서 山神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때 神이 나타나서 말했다. "내가 寡婦로서(子以寡婦) 이 산을 다스리고 
있는데(主此山) 다행히 聖骨將軍을 만나(幸遇聖骨將軍) 같이 夫婦가 되어 함께 
神政신정을 맡고(慾與爲夫婦共理神政) 請컨데 이 山의 大王으로 봉하고자 
한다(請封爲此山大王)." 그리고 말을 마치고는 호경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1)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를 호경대왕으로 삼고 祠堂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2) 
9인이 같이 죽었으므로 이 산 이름을 九龍山이라 했다. 호경은 舊妻(옛 아내)를 
잊지 못하여 밤마다 꿈같이 와서 合하고 아들을 낳으니 康忠강충이라 하였다.3) 

康忠은 體貌체모가 端嚴단엄하고 才藝재예가 많았다. 그는 부자의 딸을 취하여 
마가갑에 살았다. 신라의 監干감간 八元이 풍수를 잘했는데 부소산에 이르러 
그에게 산 남쪽으로 이사하고 소나무를 많이 심어 암석이 보이지 않게 하면 
三韓을 통합할 자가 태어날 것(統合三韓者出矣)을 말하여 산 남쪽으로 이사하고 
그렇게 하여 이름을 松嶽郡송악군으로 고쳤다.4) 그는 千金을 모으고 두 아들을 
낳았으며 아우(季)를 寶育보육이라고 개명하였다. 

寶育은 성품이 慈惠로왔고 出家하여 지리산에 들어가 道를 닦고 마가갑으로 
돌아와 살았다. 어느 날 꿈에 鵠嶺곡령에 올라 남쪽을 향해 오줌을 
싸자(向南便旋溺) 三韓 산천을 넘쳐(溢三韓山川) 銀海를 이루었다.5) 보육은 
그의 형에게 꿈 이야기를 하자 그는 말했다. "너는 반드시 하늘을 받칠 기둥을 
낳으리라(汝必生支天之柱)."6) 그리고 그의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보육이 
居士가 되어 암자를 짓고 사는데 어느 날 신라의 術士가 와서 보고 말했다. 
"여기에 살면 大唐의 天子가 와서(居此必大唐天子來) 사위가 될 것이다."7) 그 
후 두 딸을 낳고 아우(季)를 辰義진의라고 했다. 

辰義는 아름답고 才智가 많았다. 언니가 산정에 올라서 싼 오줌이 천하에 
넘치는 꿈을 꾸고 진의에게 말하자 진의는 비단치마를 주고 그 꿈을 사자고 
하여 언니의 꿈을 사게 되었다.8) 이때에 당 나라 皇子가 산천을 
遍遊편유하고자 봄에 바다를 건너 드디어 松嶽郡에 이르렀다. 황자는 곡령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고 말했다. "이곳은 都邑을 이루리라." 이에 시종은 
대답했다. "여기는 八眞仙이 살 곳입니다(此八眞仙住處也)." 그의 일행은 
마가갑으로 내려와 보육의 집에 기숙하게 되었다. 태자는 옷이 터진 곳을 꿰매 
달라고 청하자 큰딸로 하여금 命에 응하게 하였으나 문턱을 넘다가 코에 피가 
흘러나오므로 대신 진의가 들어가 잠자리를 모시게 되었다. 태자는 여러 달 
머물다가 진의가 임신하였음을 알고 작별에 임하여 말했다. "나는 大唐의 
貴姓이다." 그리고 활과 화살을 주며 말했다. "아들을 낳으면 
주어라(生男則與之)." 진의는 아들을 낳아 作帝建작제건이라 하였다. 

作帝建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神勇이 있었다. 나이 16세가 되어 어머니는 
아버지가 남긴 활과 화살을 주니 이를 쏘아 백발백중이었으며 세상에서는 그를 
神弓이라고 불렀다. 작제건은 아버지를 찾아 뵙고자 商船에 올라 바다를 
건너가는데 구름과 안개가 끼어 배가 3일 동안 나아가지 못했다. 船中의 사람이 
점을 쳐보고 고려인을 제거해야한다고 말하여 작제건은 弓矢궁시를 들고 스스로 
바다에 뛰어들어 암석이 있는 곳에 섰다. 안개가 걷히고 순풍이 불어 배는 
떠났다. 작제건에게 한 老龍이 나타나 그는 서해용왕인데 매일 申時(오후 
3시∼5시)에 늙은 여우가 큰 빛을 발산하는 如來像으로 나타나 日月星辰을 
벌여놓고 나팔을 불고 북을 치며 擁腫經옹종경(종기가 나기를 바라는 주문)을 
읽으니 그는 두통이 심해진다고 말하고 그가 활을 잘 쏜다니 그의 害를 
없애달라고 원하자 작제건은 승낙했다.9) 

늙은 여우를 제거하자 용왕은 작제건을 용궁으로 맞아들이고 감사하여 물었다. 
"장차 서쪽 唐에 들어가서 천자이신 아버지를 보겠느냐? 富에는 七寶가 있으니 
동으로 돌아가서 어머니를 봉양하겠느냐?"10) 그는 東土에서 왕이 되기를 
바란다고 대답했다. 늙은이가 말했다. "동토에서 왕이 되려면 반드시 그대의 
자손 三建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王東土待君之子孫三建必矣)." 작제건은 時命이 
이르지 못함(時命未至)을 알고 용왕의 딸을 얻기를 원했다. 용왕의 장녀를 
아내로 삼은 작제건이 칠보를 가지고 돌아가려고 하자 용녀는 말했다(龍女曰). 
"아버지에게 버드나무 지팡이(楊杖양장)와 돼지(豚)가 있는데 칠보 보다 더 
나은 것입니다. 왜 청하지 않으십니까?" 그리하여 그들은 七寶와 돼지를 배에 
싣고 돌아오자 사람들은 말했다. "작제건이 서해의 용녀에게 장가들고 
돌아왔으니 참으로 큰 경사라 하겠다(作帝建娶西海龍女來實大慶也). 

" 그들은 영안성을 쌓고 궁실을 지었다. 용녀는 開州에 우물을 파고 물을 길어 
썼다. 돼지가 우리에 들어가지 않아 돼지 가는 곳을 따라가니 송악 남쪽 
기슭이었다. 그곳에 새로 집을 짓고 사니 강충의 옛 주거지였다. 용녀가 우물과 
용궁을 왕래하며 사는 것을 남편이 몰래 엿보아 들키게 되자 용녀는 부부의 
道에는 信을 지켜야 하는데(守信) 약속을 어겼기에 남편을 나무라고 용으로 
변하여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으며 작제건은 속리산에 들어가 불경을 읽다가 
세상을 떠났다. 용녀는 네 아들을 낳았으며 장남을 龍建용건이라고 하였으나 
후에 隆융으로 고쳤다. 

龍建은 容貌가 魁偉괴위하고 수염이 아름답고 器度(器局과 度量)가 넓고 커서 
三韓을 幷呑병탄할 뜻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꿈에 본 여인과 혼인하여 그녀를 
夢夫人이라고 불렀다. 그는 송악 옛집에 살다가 남쪽에 새집을 지었다. 용건은 
道詵大師를 알게 되고 그들은 곡령에 올라가 산수의 맥을 찾았다. 도선은 
위로는 천문을 보고 아래로는 時數를 살피어 말했다. "이 지맥이 壬方(北方)의 
백두산 水母木幹으로부터11) 와서 馬頭(말의 머리 모양 같은) 明堂에 
떨어졌는데 그대는 또한 水命이니(堂君又水命) 마땅히 水의 大數를 
따르며(宜從水之大數) 六六으로 宇를 지어 三十六區로 하면 천지의 대수에 
부응하여(作宇六六爲三十六區則符應天地之大數) 명년에 반드시 聖子를 낳을 
것이니(明年必生聖子) 마땅히 王建이라고 이름하라." 도선은 봉투를 만들고 
겉에 아래와 같은 내용을 썼다. "미래에 삼한을 통합할 主(未來統合三韓之主) 
大原君子에게 드립니다." 용건이 그 말대로 집을 지어서 살고 태조를 낳았다. 


태조 왕건의 王世系는 松嶽송악을 중심으로 龍虎가 만나는 이야기로 펼쳐진다. 
白頭山의 虎神의 보호와 황해도 앞 바다의 龍神의 降福강복으로 고려 태조는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선전propaganda하는 설화이다. 호경에서 왕건까지의 
계보와 연결고리를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본다. 구조적으로 보육의 딸 진의가 
천자와 연분을 갖고 아들을 낳는 단락을 분기점으로 위로 3世代와 아래로 
3世代를 구분할 수 있다. 호경은 호녀와 인연을 갖게되고 작제건은 용녀와 
혼인을 하며, 신라의 감간 八元이 강충에게 삼한을 통합할 자가 나올 것이라고 
예견하게되고 도선은 용건에게 그 사람은 六六으로 宇를 만들게 된다고 
알려준다. 보육에게 알려진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 삼한을 통합하는 主/王 
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백두산에서 나온 제1代朝 虎景이 산의 大王이 된 것처럼 
고려 태조 왕건도 통합삼한의 主가 된다. 

1 호경 ― 虎女 - 山大王 
2 강충 ― 統合三韓者出 
3 보육 ― 支天之柱 
0 진의 ― 天子 (生男則與之) 
1 작제건 ― 龍女 (實大慶也) 
2 용건 ― 天地之大數 
3 왕건 ― 統合三韓之主 

虎景이 山의 大王 즉 山神이 되었으며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낸다는 전승은 
왕건 가문의 神聖함을 가미하는 이야기이며, 또한 백두산의 호신의 가호로 고려 
왕조는 보호받는다는 것을 알려주는 단락이다. 반면에 왕건의 집안에 천자와의 
因緣이 설정되어야 건국신화가 그 구성 요인을 채울 수 있기 때문에 하늘의 
천자 대신에 당 나라 천자의 태자가 등장하며 바로 용신화로 연결된다. 호신과 
용신의 역할에서 다른 점은 용신화에서는 작제건이 용왕이 당하는 災難을 
물리쳐주고 용왕의 딸을 아내로 삼아 칠보와 돼지를 받아 돌아오는 이야기이다. 
즉 주인공은 용왕을 고난에서 구원하여주며 그 대가로 그의 딸과 寶貨를 얻는 
慶事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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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랑이 산신은 여신이며 虎女라고 설정할 수 있다. 단군신화의 해석에 
여자의 몸을 얻은 곰을 熊女라고 말한 것처럼 굴 밖으로 나간 호랑이를 虎女로 
대비하고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이해하는(본지 2001년 5월호 참조) 이유를 
호경과 호랑이 산신의 만남 단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 

2) 단군이 아사달에 은거하여 산신이 되었다는 것처럼, 호경대왕도 호랑이 
산신/호녀와 함께 사라져 산신이 되었다고 전한다. 

3) 왕건의 가문은 山神(山大王)의 자손이라는 영예를 얻게된다. 

4) 강충의 후손 작제건이 용왕의 災厄을 퇴치하고 용왕의 딸을 아내로 삼아 
칠보와 돼지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와 마침내 그 돼지가 우리를 찾은 곳이 
송악이다. 송악은 호랑이 신화와 용 신화를 연결시켜주는 場所的 고리이다. 

5) 산 위에 올라서 오줌을 싸니 온 곳에 오줌이 가득해졌다는 꿈 
이야기(旋流夢선류몽)는 삼국유사에 전해진 김유신의 누이 보희와 문희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왕권을 획득하는 꿈으로 사용되는 說話素이다. 
호경대왕의 자손에게서 삼한을 통합하는 아들이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6) '하늘을 바치는 기둥'이라는 표현은 '큰 인물'을 말하지만 이 단락에서 
특별히 이 문구를 사용한 것은 하늘을 바치는 기둥을 세울 인물을 가리킨다. 
삼국유사에 전해진 '황룡사의 구층탑' 설화와 비교하면 이는 삼한통일을 이룩할 
자이다. 

7) 바다 건너 당 나라 天帝의 아들 天子와의 만남을 설화소로 설정한 것이다. 
단군 신화에서도 단군은 天子/환웅의 아들로 하늘의 왕통을 계승하는 신화소를 
보여준다. 또한 주몽 설화에서도 주몽이 새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세 사람을 
데리고 도망하는 길에 강가에 이르자, "나는 천제의 아들이고, 하백의 
孫이다(我是天帝子河伯孫)"라고 告한다. 

8) 김유신의 누이들 보희와 문희가 꿈을 사고 파는 이야기와 같다. 김유신과 
그의 누이 문희와 혼인한 김춘추는 삼한통일의 꿈을 具顯한 장본인들이며 
김춘추가 무열왕이 되어 삼한통일을 이룩한 전통을 태조 왕건의 王世系에서 
인용하는 것이다. 

9) 삼국유사에 전해진 弓士 거타지와 용녀 설화와 매우 비슷하다. 같은 
설화소를 이용하여 각색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10) 고려 태조의 왕세계 전통에서도 보육의 딸에게서 왕세계의 분기점이 생기는 
것을 말해준다. 호랑이 신화로 王世系의 冒頭를 장식하는 호경대왕이 1代祖이고 
강충이 2代祖, 보육이 3代祖이며 보육의 딸이 천자와 연분을 맺고 아들을 낳아 
그 아들은 바다를 건너가다가 용왕을 만난다. 이후로는 용신화로 이어진다. 
따라서 호경의 아들로 왕권을 이룩할 인물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 자손의 
딸로 인하여 王系가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며, 중심 역할이 호녀에서 용녀로 
전환되는 것을 알 수 있다. 

11) 북방(水) 백두산의 北東方으로부터 山脈산맥이 뻗어져 나왔다는 말이다. 


200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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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  우리 고대문화의 원형을 찾아서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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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조왕건의 탄생설화와 龍虎神話  
조철수  
 
 
 


弓士 居陀知와 龍女 

거타지와 용녀 이야기도 주인공이 용왕이 겪는 재난을 물리치고 그의 딸을 얻게 
되며 당나라에 가서 이로 인해 재물을 얻어 돌아왔다는 설화이다. 줄거리는 
이러하다. 


신라의 제51대 진성여왕의 막내아들이 당 나라에 사신으로 가는데 백제의 
해적이 진도를 막고 있다하여 궁사 50명과 함께 떠났다. 배가 鵠島곡도(지금의 
백령도)에 닿자 갑자기 풍랑이 크게 일어 열흘 동안 머물게 되었다. 사람을 
시켜 점을 쳤더니 이곳에 神池가 있어 그곳에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못가에 제사를 지내니 한 노인이 꿈에 나타나 궁수 하나를 이 섬에 
머물게 하면 순풍을 얻어 떠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래서 나뭇조각에 각자의 
이름을 적어 연못에 띄워 가라앉는 자는 이 섬에 머문다고 장했다. 거타지의 
것이 가라앉아 그를 남겨놓고 모두 당나라로 떠났다. 

노인이 거타지에게 나타나 말했다. "나는 西海의 若약이다.12) 해가 뜰 때마다 
한 중이 하늘에서 내려와 다라니를 외우며 이 못을 세 바퀴 돌면 우리 부부와 
자손들이 모두 물위로 떠오르게 되는데, 그 중이 우리 자손의 肝腸을 빼내 
먹었다. 이제 다 없어지고 오직 우리 부부와 딸 하나만 남아 있다. 내일 
아침에도 그 중이 반드시 올 텐데, 그대가 쏘아주기 부탁한다." 다음날 그 중이 
나타나 주문을 외우자 거타지는 활을 쏘아 땅에 떨어뜨리니 그는 늙은 
여우였다. 늙은 용왕은 거타지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그의 딸을 아내로 주겠다고 
하여 승낙하자 용왕은 자기 딸을 꽃으로 변하게 하여 그의 품속에 넣어 주고 두 
용에게 명하여 거타지를 데리고 사신의 배를 뒤쫓게 하였다. 당나라에 도착하자 
당나라 사람들이 신라 사람이 두 마리의 용을 업고 오는 것을 보고 그 사실을 
황제에게 고하여 황제는 거타지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고 金帛금백을 후히 주어 
돌려보냈다. 거타지가 귀국하여 꽃가지를 꺼내니 여인으로 변하여 함께 살았다. 


이 설화에서도 거타지는 용왕의 厄運액운을 해결해주고 龍女를 아내로 얻게 
되며, 용왕의 기지로 용 두 마리가 신라인들이 타고 온 배를 호위하게 하여 
唐皇帝는 특별히 거타지에게 금과 비단을 후히 주어 가지고 돌아왔다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이 용왕이 겪는 災害를 물리치고 구해주어 그 대가로 용녀를 
아내로 삼게되며 또한 보화도 얻어 福을 누린다는 신화이다. 


皇龍寺의 九層塔과 天之柱 

보육이 오줌을 산천에 싼 꿈을 그의 형에게 전하자 이 꿈은 하늘을 받치는 
기둥을 낳을 것임을 뜻한다는 대목에서 바로 기둥이 삼한을 통합한 왕건을 
가리킨다고 이해할 수 있다. 삼국유사에 전해진 황룡사의 구층탑 설화와 
비교하면 보다 더 분명해진다. 황룡사의 구층탑 설화는 이러하다. 


자장법사가 당 나라에 유학하고 있을 때에 어느 날 神人이 나타나 그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하며 말하길, "황룡사의 護法龍은 나의 
맏아들이다... 본국으로 돌아가서 구층탑을 그 절에 세우면 이웃나라가 
항복하고 九韓이 조공을 바칠 것이며 왕업이 길이 편안할 것이다"라고 했다. 
자장법사는 고국으로 돌아와 선덕여왕에게 백제에서 工匠을 데려와 황룡사의 
구층탑을 세울 것을 청하고 그렇게 하기로 되었다. 처음 절의 기둥을 세우던 날 
匠人이 백제가 망하는 꿈을 꾸고 일손을 멈추자 갑자기 땅이 흔들리고 캄캄한 
가운데 한 老僧과 壯士가 나타나 그 기둥을 세우고 사라졌다. 이 탑을 쌓은 
뒤부터 천하가 태평하고 삼한이 통일되었다. 후에 고구려가 신라를 침범하려 
하자 신라에는 3가지 보물인 황룡사의 丈六尊像장육존상과 구층탑과 진평왕의 
天賜玉帶천사옥대가 있기 때문에 범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周나라에서는 
九鼎구정이 있었기 때문에 楚나라 사람들이 감히 엿보지 못했다는 것도 이러한 
경우다. 이에 讚찬한다. 


(이 탑을) 귀신이 받들어 帝京제경을 扶壓부압하니 
휘황한 金碧금벽이 기왓장을 들썩거리네 
올라와 보니 九韓만 복종하랴 
비로소 천하가 태평함을 깨닫겠네 

또한 《東都成立記동도성립기》에 말하기를, "신라 제27대에는 여왕이 주인이 
되어 비록 道가 있었으나 위엄이 없어 九韓이 侵勞침노하였는데, 만일 용궁 
남쪽 황룡사에 구층탑을 세운다면 이웃나라의 재앙을 진압할 수 있을 것이다. 
제1층은 日本, 제2층은 中華, 제3층은 吳越오월, 제4층은 托羅탁라, 제5층은 
鷹遊응유, 제6층은 靺鞨말갈, 제7층은 丹國단국, 제8층은 女荻여적, 제9층은 
濊貊예맥이다"고 하였다. 


백제의 匠工이 첫 기둥을 세우다가 멈추자 기이하게도 한 노승과 장사가 나타나 
기둥을 세움으로 마침내 구층탑이 건축되었다는 神異한 이야기이다. 이 단락과 
王世系에서 '하늘을 받치는 기둥'을 비교하면, 두 맥락에서 공통되는 부분은 
기둥과 삼한통합이라는 명제이다. 따라서 '하늘을 받치는 기둥'은 삼한을 
통합할 인물을 가리키며 神異하게 세워진 기둥으로 구층탑이 완성된 것은 
호법룡의 힘이라는 신화이다. 구층탑의 기둥을 세운 한 노승과 장사를 王世系의 
豫示와 비교하면 노승은 도선대사이고 장사는 왕건으로 대비할 수 있다. 도선과 
왕건은 삼한을 통합하는 첫 기둥을 세운 인물이라는 암시이다. 보육에게 예시된 
支天之柱지천지주는 도선이 태조 왕건의 탄생을 예견하고 봉투에 쓴 
'統合三韓之主'를 가리킨다. 이 모든 꿈 이야기와 예견은 모두 
事後post-factum의 각색이겠지만, 구조적으로 잘 맞추어진 국가 시조의 
탄생설화이다. 

보육에게 알려진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 도선이 용건에게 제시하는 作宇六六 
즉 "六六으로 宇를 지어라"는 뜻이라면, 여기에서 宇는 단순히 용건의 저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용건은 서른 여섯 칸 짜리 집을 지었겠지만) 태조 
왕건에게 宇는 天地四方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三十六區의 區와 
宇六六의 宇를 합한 區宇는 천하를 뜻하는 단어이다. 그래야만 호경대왕이 산의 
대왕인 것처럼 왕건은 宇(國土)의 主가 될 수 있다. 三十六과 六六이라는 
상징숫자의 묘한 통로에서 그 진의를 발견할 수 있다. 


상징숫자와 신화 

신화를 엮어나가는 핵심적 요소 가운데 하나가 상징숫자이다. 숫자를 
상징적으로 사용하여 전후 관계를 이어주거나 암시하는 방법이다. 신화에서 
상징숫자를 상징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실체적으로 판단하면 신화가 지향하는 
목표를 바르게 알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때로는 숫자뿐 아니라 
단어로도 이중효과를 나타내는 경우가 흔하다. 예를 들어, 히브리성서에 아담과 
그의 아내가 집어먹은 열매는 무화과 열매라고 유대교 전승에 말한다. 그러나 
서양의 그림에 그 열매가 사과로 나오는 것은 히브리어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라틴어에서 유래한 발상이다. 라틴어로 malum(사과)은 '惡하다'는 뜻도 있기에 
일종의 重意法double entendre으로 그림에 표현된 것이다. '사과'라는 단어에 
'악하다'는 뜻이 있기 때문에 에덴동산 이야기에 상징적으로 표상된 것이다. 


물고기 153마리 

큰 상징숫자(예를 들어, 도선이 용건에게 알려주는 宇六六이나 三十六區에서 
66이나 36은 상징숫자이다)는 숫자 자체가 지니는 상징성도 있으며, 그 기본 
단위의 숫자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상징성을 찾아내어 선후관계를 조합하여 
그 뜻을 알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신약성서의 복음서에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티베리아 호숫가, 제자들이 배에 타고 물고기를 잡고 있는 곳에 나타나시어 
그들이 물고기 잡는 일을 거드시자 "시몬 베드로는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올리니, 백 쉰 세 마리나 되는 큰 물고기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요한 
21:1∼14). 

이 例話는 물고기 153마리에 대한 상징숫자의 퍼즐게임이다. 한글 번역 2백주년 
신약성서의 403쪽에 인용된 각주에 의하면 153은 1부터 17까지의 수를 모두 
합한 것으로, 충만함을 나타내는 상징적 숫자이라고 한다. (1에서 17까지 합한 
수가 어떻게 충만함을 나타내겠는가? 보통 상징숫자가 나오는 경우에는 그 
단락에 상징숫자를 해결해주는 단어나 문구가 나오기 마련이다. 그래야 청중이 
숫자의 상징성을 파악할 수 있으며 전개되는 결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여기서 물고기 153마리 예화를 이해하는 열쇠는 그 단락의 마지막 문장에 있다.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이들 사이에서 일어나신 후 그분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세 번째이다"(14). 3이라는 숫자가 상징적으로 사용된 것을 알려준다. 즉 153의 
숫자에 3이라는 숫자가 상관됨을 일러준다. 비록 14절에 세 번째라는 인용구 
이외에 직접적인 숫자는 나오지 않으나, 적어도 그 당시 청중이면 (지금의 
독자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또 하나의 숫자를 계산할 수 있다. 예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어나신 날의 숫자이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어나셨다"는 명백한 사실(삼일만에)을 '세 번째' 나타나셨다는 
문구와 함께 다시 쓴 것이다. 3-3으로 153을 나눈 숫자 즉 17이라는 숫자가 
바로 열쇠이다. 

호숫가에서 배에 타고 물고기 153마리를 가득 담은 그물을 끌어 올렸다는 
예화와 17의 상징성은 노아의 배와 관련되어 나온다. "노아의 나이 육 백 살 
때, 둘째 달 그 달의 십 칠 일째 날, 이 날에 큰 깊은 물의 온갖 원천이 터졌고 
하늘의 홍수 문이 열렸다"(창세기 7:11). 바로 이 날에 노아는 그의 식구들과 
온갖 짐승들을 데리고 方舟로 왔다. 홍수는 온 땅에 40일 동안 있었다. 물이 
불어나고 모든 것, 모든 사람까지도 사라졌다. 150일 동안 물이 불었으나 
하늘의 홍수 문이 닫치고 물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백 오십 일 끝에 물이 
줄어들었다. 배는 일곱째 달 그 달의 십 칠 일째 아라라트 산 위에 
쉬었다"(창세기 8:4). 노아가 그의 식구들과 온갖 짐승들을 방주에 태우러 가는 
시작의 날이 그 달의 17일째이며 그들이 탄 방주가 새로운 땅에 내린 날짜가 
바로 그 달의 17일째이다. 노아의 식구(공동체)가 새로운 삶을 바라며 새 
공동체의 의식에 참여하는 출발시기가 17이며 장기간의 고난 끝에 새로운 땅에 
도착하여 새 생활을 시작할 그 날이 또한 17이다. 여기에서 17은 노아의 방주와 
같은 공동체 배를 상징하는 숫자이다. 예수께서 153마리 물고기를 말씀하시는 
것은 17(예수 공동체/초대 교회)의 시작과 새로운 출발(계약)을 3번x3번이나 
약속하는 단락이다. (고대 그리스 전승에서도 그 예를 읽는다. 오딧세이 
이야기에 오딧세우스가 칼립소Calypso를 떠난 후 17일 동안 뗏목에 떠다녔다. 
그리스 전승에 의하면 배를 만들기 위하여 통나무를 자를 때에는 그 달의 
17일째에 하라고 말한다. 한국의 무속신화 成造氏 安心國 신화에 성조가 
귀양갔다가 돌라오라고 하며 만들어주는 배의 크기가 팔구칸이다. 이것도 
17칸을 가리키는 것 같다. 실상 17이 어떻게 배와 관련되는 상징숫자인가는 또 
다른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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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海神을 말한다. 

九韓과 三十六區 

태조의 탄생설화에서 도선대사는 용건에게 왕건의 탄생과 그 상징숫자를 
일러준다. "그대는 또한 水命이니 마땅히 水의 大數를 따라 六六으로 宇를 지어 
三十六區로 하면 천지의 대수에 부응하여 명년에 반드시 聖子를 낳을 것이니 
마땅히 王建이라고 이름하라." 흔히 36은 36칸 집(宇)으로 이해한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전 국토에 36군을 설치했다는 전승을 보아도 36은 전통적으로 
사용되는 숫자이다. 분명히 용건은 도선대사의 말대로 36칸 저택을 지었으며 
그곳에서 왕건이 태어났다. 여기에서 36은 6x6으로 계산하여 나온 숫자이고 6은 
水의 숫자라고 흔히 설명한다. 

하지만, 우선 36은 6x6으로 나온 숫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려시대에 
六六(6x6)은 三十六(36)이라는 곱셈 방식으로 사용하였을까? 여러 신화소를 
판에 맡게 잘 엮어서 만든 〈高麗世系〉의 편집자가 天地의 大數에 따라 태어날 
聖子를 예언하는 문장에 六六(6x6)은 三十六이라고 표면적으로 그 상징성을 
표현했을까? 그것도 당나라에서 一行地理法을 터득하고 돌아온 당대의 祖師 
道詵의 입을 통하여 상징의 大數가 그렇게 쉽게 일차적으로 표상되었을까? 
오히려 三十六은 결과의 숫자이고 그 36을 곱셈으로 환산하여 6x6 즉 六-六의 
상징성을 유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그 숨은 숫자의 상징성은 곱하는 
숫자가 아니라 六-六이다. 그 六六이 무엇인지를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확실히 집을 짓는 일(作宇)과 연관된 서른 여섯 칸 三十六區의 36은 곱해서 
나온 숫자이다. 상징숫자의 원리에 의하면 36은 6x6 혹은 4x9로, 혹은 1에서 
18까지를 합한 숫자로 그 상징성을 찾는다. 집 짓는 일과 관련되어서 6의 
숫자는 고대로부터 육각형hexagon의 집을 뜻한다. 벌의 집 모형에서 유추된 
건축양식이라고 설명된다. 그러나 태조가 태어난 집이 육각형으로 서른 여섯 칸 
집이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집을 짓는 일과 관련하여 위에서 읽은 황룡사 구층탑의 '하늘을 받치는 
기둥'(支天之柱)의 문맥과 비교하여 그 해답을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구층탑의 
기둥을 세웠던 사건과 연관하면 숫자는 9이다. 선덕여왕 시대에 하늘을 받치는 
기둥을 세울 수 있는 인물이 결국 宇를 지을 수 있으며, 위에서 피력한 것처럼 
용건의 宇는 저택이었겠지만 왕건에게 宇는 천하통일의 국토이다. 삼한을 
통합하며 무엇보다도 힘써야 할 직무가 국토방위일 것이다. 선덕여왕의 
경우처럼 이웃나라 九韓이 틈만 있으면 신라를 넘보고 침노하였다고 전한다. 
이래서 구층탑은 각층마다 각 한 나라씩을 지키는 수호의 힘이 있다는 
전승이다(위의 황룡사 본문에서 구층탑의 제1층에서 제9층까지 九韓의 나라가 
각각 제시된다). 

황룡사의 구층탑은 지나간 전설 속의 이야기가 아니었을 것이며, 누구에게나 
九韓의 침입을 이겨내는 구층탑의 신이한 힘은 신라의 불교적 믿음을 대변하는 
상징이었을 것이다. 마치 周나라에는 九州에서 금을 모아 만든 九鼎구정이 있어 
그 보물의 신비한 힘으로 국가를 수호할 수 있다고 선전하는 것처럼, 도선이 
예견하는 태조 왕건의 탄생신화에도 九韓의 침범을 막을 수 있는 상징물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용건이 지은 36간 저택이며, 이것을 九層塔의 설화로 
이해하면 36은 9x4에서 나온 숫자이다. 여기에서 4는 사방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황룡사의 구층탑도 塔身部의 각 층 轉角이 四方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도선이 의도하는 바는 九韓의 도모를 방지할 수 있게 네 칸 짜리 집을 
아홉 개 즉 三十六區를 지었다고 상상할 수 있다. 이러한 통로가 신화를 읽으며 
구체적 상징을 찾아낼 수 있는 극적 상상력이다. 

天成 2년(927년)에 태조가 견훤에게 보낸 답서에서 九土의 재난을 읽을 수 
있다. 아래 인용문은 《삼국유사》 제2권 奇異 제2 〈후백제와 견훤〉에 
나온다. 


나는 위로 하늘의 뜻을 받들고 아래로 백성의 추대를 받아, 과람하게 장수의 
권한을 갖고 경륜의 모임에 참여하였습니다. 지난번 三韓이 액운을 만나고 
九土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 가운데 황건적에 든 자가 많고 논밭도 赤土 아닌 
것이 없습니다. 거의 풍진의 경보를 늦추게 하고 나라의 재앙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善隣하여 우호를 맺었습니다. 과연 수천 리가 農桑의 업을 즐기고 7, 
8년 동안 군사들이 한가로이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태조가 구토의 재난을 구하고 백성들의 평안을 이룩했다는 말이다. 확실히 九의 
상징성이 실제 숫자임을 알 수 있다. 

실상 王世系 설화의 시작에 9의 상징숫자가 나온다. 호경이 동네 사냥꾼 아홉 
명과 사냥을 갔다가 호경만 살아남고 굴이 무너져 모두 죽었으므로 산 이름을 
九龍山이라고 고쳤다는 데에서도 그 예시를 읽을 수 있다. 아홉 명의 사냥꾼은 
九韓/九土와 연결되는 상징숫자로 읽을 수 있으며, 용건의 형제는 자신을 
포함하여 모두 네 명이라고 표명하는 것은 4의 상징성을 들어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서도 4x9의 등식을 구할 수 있다. 위에서 읽은 153 마리의 
물고기의 예화에서처럼 상징숫자로 엮어지는 이야기에는 흔히 그 상징을 풀 수 
있는 열쇠가 장치되어 있다. 우연이겠지만 공교롭게도 王建의 이름에서 4-9의 
획 숫자도 볼 수 있다. (상징숫자 9의 상징성이 어떠한 보편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는 또 다른 이야기이다.) 


六六의 大數 

祖師 道詵은 용건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또한 水命이니 마땅히 水의 大數를 
따르며(宜從水之大數) 六六으로 宇를 지어 三十六區로 하면 천지의 
대수(天地之大數)에 부응하여 명년에 반드시 聖子를 낳을 것이니 마땅히 
王建이라고 이름하라(宜名曰王建)." 도선의 풀이에 의하면 六六은 水之大數와 
관련되며 또한 天地之大數이다. 또한 六六은 태어날 聖子의 숫자이기도 하다. 
이렇게 따르는 것은 마땅하다고(宜) 두 번이나 반복한다. 

六六은 6-6(육육) 혹은 66(육십 육)으로 읽을 수 있으며 또한 6-6과 66의 
二重意味로도 이해할 수 있다. 상징숫자 66은 이슬람 세계에서 이슬람교의 
唯一神인 '알라'(Allah)의 상징숫자로 사용된다. 알라의 숫자가 66이 되는 것은 
아랍어로 알라의 철자(영자로 A-L-L-H)를 숫자로 환산하여(1-30-30-5) 더한 
수이다. (아랍어는 히브리어처럼 子音字에 모음부호를 첨가하여 표기한다. 
모음부호는 온전한 철자가 아니다.) 이렇게 단어의 각 철자를 숫자로 환산하여 
그 더한 수로 그 단어의 命을 헤아리는 방법을 게마트리아Gematria라고 부른다. 

게마트리아는 그리스어 게오메트리아(영어의 geometry와 같은 단어)에서 차용된 
히브리어 용어이다.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아랍어에서 철자는 숫자로 사용된다. 
그리스어 알파벳의 알파는 1이고 베타는 2이며 감마는 3 등등으로 사용한다. 
히브리어와 아랍어도 마찬가지이다. 게마트리아는 이렇게 철자를 숫자로 
환산하는 數値學이다. 따라서 인명이나 지명 등을 숫자로 환산하여 숫자의 
이치로 단어의 命을 알아본다. 예를 들어, 요한묵시록에 '육백 육십 육'이라는 
상징숫자가 나온다. 흔히 적그리스도antichrist의 상징숫자라고 말한다. 
"지각이 있는 사람은 그 짐승의 숫자를 계산해 보아라. 

사실 그것은 어떤 사람의 숫자이며 그 수는 육백육십육이다"(요한묵시록 
13:18). 즉 이것은 어떤 사람의 이름을 숫자로 환산하여 더한 숫자이다. 이와 
반대되는 숫자는 예수에게서 발견된다. 예수는 히브리어로 '예슈아'이고 이것을 
그리스어로 음역하여 (예수스)로 표기했다. 이것을 수치로 환산하여 
10-8-200-70-400-200 더한 숫자가 그 상징숫자이다. 그리스도교와 유대교 
문화권에서 888은 666의 반대 상징숫자이다. (888의 수치가 나오게 '예슈아'의 
이름을 그리스어로 음역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8은 福의 숫자로 성서에 
자주 나온다. 따라서 888의 상징성은 8의 상징적 福을 세 번 겹쳐서(8-8-8) 
만든 숫자이다. 예수께서 "복되어라"를 여덟 번 반복하시며 마지막 문장인 
"그들의 것은 하늘의 왕국이다"라고 끝맺는 것이 팔복/진복 선언이다(마태 
5:3∼10). 

유대인들에게 아들이 태어나면 8일째 할례를 행한다. 유대교에서 할례는 
갓난아기의 복을 비는 제의이다. 중세교회에서 사용했던 세례용 물통은 
팔각형이었다. (태조 왕건의 탄생설화에서도 8자는 복을 받는 전후관계로 
보여준다. 신라의 감간 八元이 강충에게 산 남쪽으로 이사하고 소나무를 많이 
심어 암석이 보이지 않게 하면 三韓을 통합할 자가 태어날 것을 말하였고, 
당나라 태자가 松嶽郡에 당도하여 "이곳은 都邑을 이루리라"라고 말하자 이에 
시종은 "여기는 八眞仙이 살 곳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삼한을 통합할 왕건이 
태어난 송악군은 八의 상징숫자가 계시된 곳이며 福된 장소이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조로아스터교, 이슬람교 등에서 상징숫자 6은 창조의 숫자로 
이해된다.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6일 동안 창조하였고 조로아스터교에서도 
창조를 6시대로 구분하며 6명의 大天使로 상징된다. 


알라의 숫자 66 

이슬람 세계에서 알라의 숫자 66은 거룩한 숫자이며 위대한 숫자이다. 이슬람교 
신도들은 기도하거나 기도하는 시간을 알릴 때 항상 '알라후 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시다')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이슬람 세계의 사원이나 왕궁 벽면 등 눈에 
띄는 곳에 '알라' 혹은 '알라후 아크바르' 등의 문구가 아름다운 글씨체로 
새겨진 것을 볼 수 있다. 또는 이슬람 匠人들은 보석뿐 아니라 접시, 항아리, 
주전자 등의 일상용기에도 이러한 글씨를 새겨 넣는다. 알라의 위대함을 마음에 
새기는 것 같다. 그림에 보이는 이슬람 주전자의 표면에 아랍어로 /v/의 음가를 
지닌 철자 두 개(큰 쉼표 같은 무늬)가 서로 마주 보이게 새겨져 있다. 이것은 
/v/의 음가를 지닌 철자이며 숫자로 6이다. 이 두 철자를 서로 마주보게 그린 
것은 6-6을 뜻하며 즉 66의 상징성을 표현한 것이다. 이와 비교하면 태조 
왕건의 大數 六六은 六-六으로 六十六을 가리키는 상징숫자라고 이해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지역에서 출발했던 이슬람교 문화는 8세기경부터 서쪽으로 
지중해연안과 동쪽 陸路로 중앙 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남쪽 海路로 인도를 
거쳐 말레이지아, 중국, 신라, 일본으로 연결되는 무역 루트를 건설했다. 
이슬람 세계의 무역상들이 개척한 육상과 해상 루트를 통해 서역과 동방의 
진귀한 물품뿐 아니라 異國문화가 소개되었고, 특히 상류층 생활에 알려지게 
되었다. 아랍 문화권에 신라의 이름과 풍토가 소개된 것은 9∼10세기 문헌에서 
읽을 수 있으며, 그들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인들은 집을 비단과 금실로 수놓은 
천으로 단장하며 금으로 만든 식기를 사용한다고 전한다. 이것은 신라의 상류층 
생활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아랍 무역상은 신라에서 금, 비단, 鐵劍, 陶器 등을 수입하였고, 신라인에게 
乳香유향, 沈香침향(알로에) 등 각종향료와 유리제품, 玉, 모직물, 공작 꽁지깃 
등 주로 상류 사회의 소모품들을 수출하였다. 이러한 값비싼 물품뿐 아니라 
이와 동시에 화려한 생활에 맞는 외래 악기와 놀이 등이 신라 상류층 문화에 
깊이 들어왔다. 심지어 흥덕왕 9년(834년)에는 사치를 금하는 칙령을 내려 
외래품 단속을 실시했을 정도로 상류층의 외래문물 수입이 대단하였다. 그 칙령 
서문에 아래와 같이 전한다. "사람들은 보배롭고 기이한 외래품만을 
숭상한다"(只尙異物之珍奇). 

당나라에도 화려한 이슬람 문화는 성황을 이루었으며, 長安은 국제 무역도시로 
回敎사원도 있었다. 또한 유대교 회당도 있었으며, 중국 관리로 등용된 
유대인들도 많았다. 중국 유대인에 관한 가장 오래된 역사적인 기록은 서기 
9세기 아랍 여행자들의 여행기에 나온다. 한 기록에 의하면 유대인 
무역상인들은 프랑크 왕국에서 터키 지방을 거쳐 유프라테스 강을 타고 
바그다드를 경유하여 티그리스 강으로 내려가 페르시아만에 이르러 해상으로 
오만과 인도, 중국과 무역을 하였다고 한다. 중국의 여러 연안 도시에 
유대인들이 아랍인들과 더불어 집단으로 거류하면서 주로 국제 무역상업을 하며 
살았으며, 그들을 매개체로 서양의 문물이 중국의 상류층에 많이 소개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葡萄포도와 石榴석류뿐 아니라 胡芥호개(겨자), 
胡瓜호과(오이), 胡桃호도, 胡豆호두(완두), 胡麻호마(깨), 胡蒜호산(마늘) 등 
胡자가 들어간 여러 식품 이름에서 중세의 중국이나 한국 등에 서역문화의 
유입을 볼 수 있다. 

신라시대에 이슬람 무역상인들의 왕래와 더불어 서역 문화의 유입은 고대 한국 
사회의 큰 발전에 한몫을 차지하였으며, 지적 시민국가 형성에 도움을 주었다. 
신라시대에 入唐僧입당승들의 학문 발전은 단순히 불교문헌을 배운 것으로만이 
아니라 서역의 문화를 접하고 배워 활용한 점으로도 보아야 한다. 도선과 같은 
祖師는 당나라에 유학하여 서역의 학문을 배우고 유대교나 이슬람교의 문화도 
이해했을 것이다. 더욱이 六六의 상징성을 태조 왕건에 맞추는 의도는 
건국신화의 전통을 살린 것이며 고대 한국 사회의 국제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도선의 종교적 성찰도 함께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알라의 六六은 
거룩한 숫자이며 위대한 숫자라고 하는 뜻을 聖子(이 당시 문헌에 聖子가 
특별히 '거룩한 아들'이라는 뜻을 가지지는 않지만)나 天地之大數라는 이름으로 
내포시킨 것 같다. 


龍虎의 만남 

도선의 풀이에 의하면 용건은 水命으로 설정되며 그 유래를 백두산으로 잡는다. 
즉 백두산에서 발원하는 水脈이 그 물줄기를 뿌린다는 해석이다(水母木幹). 
실제적으로 용건은 연못과 바다를 왕래했던 龍女의 자식이기에 분명히 
水命이다. 또한 왕건이 태어날 때 신비스런 광채와 자줏빛 기운이 용 같은 
형상으로 방을 비추더니 하루종일 뜰에 가득 차 있었다고 전한다. 왕건은 그의 
아버지의 용 氣運을 타고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도선이 용건의 水命을 
백두산으로 잡는 의도는 백두산의 호랑이 신화와 연결시키는 작업이다. 비록 
표면적으로는 용건의 집터 地脈이 백두산으로부터 뻗어져 왔다는 것이지만, 그 
백두산은 왕건의 제1代朝 호경이 백두산에서 내려온 사람이라는 점을 확인하는 
지시어이다. 

호경이 山의 대왕 즉 山神이 되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왕건의 집안은 용신과 
호신이 아울러진 가문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호경이 山大王이 된 점은 
조선의 개국신화인 단군 史話에서 단군이 아사달에 은거하여 산신이 되었다는 
전통을 왕건의 조상이 계승한다는 점도 암시한다. 〈高麗世系〉의 우수한 점은 
虎神話와 龍神話의 만남을 도식화한 것이다. 도선의 풍수지리 예언은 고려 
태조가 단순히 정치적인 왕으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며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主라는 점을 드러낸다. 다시 말하면, 종교적 해석이 
포함된 것이다. 

용건은 삼한을 통일할 왕건을 낳을 것이며, 그는 삼한을 통합할 뿐만 아니라 
백성의 풍요와 평안을 가져올 인물로 예정된다. 용건의 아버지 작제건에 의해 
그러한 요소가 이루어질 것을 말한다. 작제건이 용왕의 재해를 물리쳐 주고 
용궁의 평안을 가져온 것은 훗날 왕건이 이끄는 고려왕조의 태평성대를 
예견하는 것이며, 용왕의 후한 마음으로 얻은 七寶와 돼지를 주민들은 큰 
경사[大慶]라 불렀으며, 이는 결국 福받은 땅에서 태조의 탄생을 알리는 것으로 
백성에게 복을 가져올 왕인 天地之主로 군림하게 될 것을 말한다. (이씨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업적과 그의 가문/王統을 神聖化하고 天命을 내세워 널리 
알리는 건국서사시 龍飛御天歌도 왕건의 탄생설화 〈高麗世系〉를 형성한 
6代朝를 모델로 그려진 것은 주지하는 바이다.) 

고대 근동 문화권에서 참 구원자는 救援과 後援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교뿐 아니라 기원전 2세기에서 서기 3∼4세기까지 지중해연안 
지역에 강한 敎勢를 펴고 있었던 이시스Isis교는 고대 이집트 종교의 
오시리스-이시스 신화를 구심점으로 아기 호루스을 안고 젖을 먹이는 어머니 
이시스Isis를 그들 종교의 성격으로 표상했다. 이시스교에서도 구원자는 민중의 
고난을 구원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기를 보호하는 母神으로 민생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후원자적 역할도 컸다. 

초대 교회의 성격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사탄의 악령에서 구원될 수 있으며, 
또한 교인들의 경제적 도움으로 함께 분배하는 공동체를 지향했다. 서기 
7세기에 일어난 이슬람교도 이 양면성을 중시했으며, 교세가 지중해연안과 
중앙아시아 쪽으로 확산되고 무역상인을 중심으로 富를 축적할수록 알라神의 
구원자적·후원자적 성격은 더욱더 두드러지게 보였다. 고려 태조 왕건 탄생 
설화에서도 이러한 양면성이 찾아지며,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서역 문화의 
根幹과 밀접하게 설명될 수 있다. 또한 고대 한국의 전통적인 구원자적 
虎信仰과 西域的인 후원자적 龍信仰의 조화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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