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2년 4월 6일 토요일 오전 11시 42분 26초 제 목(Title): 문광훈/ 파이윰 초상화 출처: 월간미술 인류 최초의 초상화인 고대 이집트의 미라 초상화는 무려 2천년전에 그려진 그림이라는 것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작품성으로 진한 감동을 전한다. 죽은 자의 주검 위에 올려놓았던 생기 넘치는 젊고 건강한 모습의 초상화에서 육신의 소멸에 대한 공포를 잊고 싶어하는 고대인들의 희망을 엿볼 수 있다. 지금까지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미라 초상화의 신비한 세계를 만나 본다. <젊은 부인 초상> 나무에 밀랍화 33*20.3cm 기원후 160∼180년 고대인의 얼굴은 어떠할까? 미라의 머리 위에 덮씌워진 초상화그것은 발굴된 이집트 남부 지명을 따라 ‘파윰(혹은 파이윰, Fayum/Faijum)초상화’라고도 불리는데는 여러 다른 직업과 나이를 지닌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을 보여 주고 있다. 그들의 얼굴은 대체로 젊고 건강한 모습이다. 마치 한창때에 그려진 듯, 그들의 표정은 예외없이 싱그럽고 밝다. 검고 큰 눈과 불그스레한 뺨, 톡실한 입술과 곱실곱실한 머리 결을 가진 그들은 힘주어 만지면 금새라도 부서질 듯한, A4용지 크기에 두께가 1∼2mm에 불과한 작은 나무판 위에 그려져 있다. 무슨 이유로 그 그림들은 이미 죽은 자의 주검 위에 놓여 있었을까? 무엇을 말하기 위해 그림 속 인물들은 살아 있을 때의 생생하고도 잔잔한 표정을 짓고 있는가? 그들의 표정에서 어떤 점이 2000년의 시간적 풍화를 견디게 한 것인가?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시간에 대항하여 한때 살아 있던 생명의 흔적을 표현한 그 시대 화가의 이름은 무엇인가? 미라 초상화를 대하면서 순서 없이 터져 나오는 이런 질문들은, 그 그림 속 죽은 자의 눈빛과 그 눈빛을 바라보는 여기 살아 있는 나의 눈빛, 그 사이에 놓인 기나긴 삶의 시간적 의미를 묻게 한다. 미라 초상화의 발생 시기를 서기 100년에서 400년까지 잡는 것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거의 이견이 없다. 그러나 그런 관습들이 언제를 고비로 사라졌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4세기 말 무렵 로마의 국가종교이던 기독교가 들어온 후 이교도적 관습을 금지했을 터이고, 그로 말미암아 미라 초상화의 문화 역시 축출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추측은, 역사적으로 아우구스투스 이후 로마인들이 이집트의 지배자가 되었 다는 사실과 일치한다. 이 작품들의 전시를 위한 한 설명서에 따르면, 원래 이집트의 전통은 끈이나 베로 감싼 미라 위에 가면 하나를 놓는 것이 상례였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기원후 50년쯤부터 수백 년 묵은 미라 매장의 전통에 새로운 것이 나타난다. 즉 미라에 이집트 양식의 형상 대신 초상화를 얹어 매장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미라 초상화 전통은 전래적인 의미에서 이집트적이라기보다는 그리스적·로마적 전통에 닿아 있다. 미라 초상화는 이집트적 문화와 그리스적·로마적 문화가 혼합된 결과물인 것이다. 손상되고 마멸된 이 초상화들은 1800년대 말엽과 1900년대 초엽부터 발굴되기 시작하여 오늘날 1000점 가까이 남아 있다. 죽은 자의 초상화를 그 주검 위에 놓음으로써 그들은 육신을 소멸시키는 시간의 공포를 이기려 했는지도 모른다. 사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은 후 인간의 영혼이 계속 살아 있기 위해서는 그 육체와 이를 본 뜬 형상물이 잘 보존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미라뿐만 아니라 죽은 자를 그린 그림이나 단단한 화강암으로 두상(頭像)을 만들기도 했다. 형상을 통해 두 번째 죽음은 피해야 한다고 그들은 생각했던 것일까? 표현을 통해 시간의 무화 작용을 압도하려는 예술적 행위의 기원은 이미 여기에서 나타난다. 죽은 자의 얼굴을 덮씌우던 것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미라의 머리 부분에는 그냥 얇은 나무판을 얹기도 했고, 때로는 좀더 두꺼운 나무판지를 씌우기도 했으며, 어떤 경우에는 묵직하고 견고한 금속으로 그것을 좀더 화려하게 장식하기도 했다(우리가 아는 기원전 1300년경의 투탕카멘 왕의 관 뚜껑은 이 경우다). 미라의 몸체를 덮는 것의 종류도 다양하다. 단순한 끈이나 헝겊 이외에도 미라만한 수건도 사용되었다. 이 수건 위에는 대개 그들이 살아 있을 때의 전면상이 그려져 있다. 그런 수건들 중에는 한 명이 아니라, 이를테면 어머니와 아이의 모습을 나란히 그려 놓은 경우도 있다. 알려지지 않은 어떤 재앙으로 인해 그들은 함께 죽었던 것일까? 아니면 떠나간 아이를 잊지 못해 어머니마저 죽은 자식을 뒤따라갔던 것일까? 죽어서 각자의 관 속에 나란히 누운 그들은, 그들을 그린 수건으로 감싸져 한 몸이 되었다. 그려진 그들 옆에는 저승의 길을 보호하듯 창을 든 군인이 서 있다. 제단 위에서 한 사람이 제단 밑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어떤 물건을 받고 있고, 사람 머리를 한 새가 그 물건을 주는 사람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리고 제단 위에 선 사람 뒤에는 이름모를 나무가 한 그루 서 있고, 그 나뭇가지 위로 새 한 마리가 그려져 있다. 죽은 후에 그들은 새가 된다고 믿었던 것일까? 살아 생전에 하지 못한 지상에서의 비상(飛翔)을 죽어서라도 해보고 싶어서일까? 오, 삶의 양식만큼이나 다양한 죽음 후의 양식, 죽음의 양식…. 미라 초상화에 그려진 인물은 제각각 다르지만, 그 묘사방식은 다소 정형화되어 있다. 그리고 그 모두는 대개 심하게 훼손되어 있다. 어떤 것은 눈이 지워져 있고 또 어떤 것은 코의 형체가 없다. 어떤 것의 머리 부분은 세월의 힘을 지탱하지 못해 삭아 있고, 또 다른 부분은 심하게 갈라져 있다. 이런 심각한 파손에도 불구하고 미라 초상화에 그려진 대부분의 여자는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하고 있다. 그녀들은 빛나는 목걸이와 귀고리 그리고 화사한 옷가지를 걸치고 있다. 외양의 풍성함으로 죽음의 공허를 메울 수 있다고 그들은 생각한 것일까? 이에 반해 남자들은, 그가 청년기에 있건 소년기에 있건, 상대적으로 소박하게 차려 입고 있다. 그들 모두의 표정은 너무도 밝고 생생하여 죽은 후에 그려진 것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다. 꼬불꼬불한 머리카락을 가진 아이와 청년, 사춘기 연령의 소년과 소녀 들, 중년과 장년의 여인과 남자. 그들 사이에는 노인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살아 있는 듯한 차림새와 외모는 미라의 실제 죽음과 어떻게 어울릴 수 있는가? 그 그림들은 살아 있을 적에 그려진 것인가, 아니면 그들이 죽고 난 후에 그려진 것인가? 마치 그들이 지금 살아 있기나 한 것처럼 나는 그들에게 말을 걸어 본다. 그러나 그들은 말이 없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죽은 자들은 저 흔들림 없는 눈빛과 표정으로 관찰자에게 대답할 뿐이다. 죽음의 침묵이 삶의 답변을 대신한다. 영생을 향한 강한 열망 그 시대의 인간 수명이 대체로 서른 해를 넘기기 어려웠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려진 초상화의 많은 얼굴들이 왜 그렇게 젊은가 하는 물음은 어느 정도 해소된다. 그러나 이 사실 역시 그 그림들이 살아 있을 적에 그려졌는지, 아니면 죽고 난 후 그려졌는지에 대한 시원한 답변은 되지 못한다. 그들 초상화는 실제의 모습인가? 아니면 상상으로 묘사되었을 뿐인가? 그림 속 생명의 현실과 미라 관 아래에 있는 주검의 현실, 그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되는가? 죽은 자가 남긴 살아 있을 때의 흔적… 그렇다면 우리 아직 살아 있는 자가 지니고 있는, 앞으로 죽을 때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살아 있을 때 그려졌건 죽고 난 후에 그려졌건, 그 그림들은 그러나 100년을 스무 번이나 더한 뒤에 서 있는 우리에게 무엇으로, 어떤 의미로 자리하는가? 2000년의 거리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그 눈빛은 무엇을 전하려는 것일까? 당시의 왕과 왕족이 자신의 초상을 동전에 새겨 전 로마제국에 퍼뜨렸듯이, 그림 속의 그들도 그 초상화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 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들 이외의, 그 초상화에 전혀 그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숨결은 어디에 묻혀 있는가? 피라미드 속에 매장되지도 못한 채 사막 위로 흩뿌려진 이름없는 사람들의 발자취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먼지로 변해 버린 무수한 생애의 흔적을 우리는 기억하는가? 우리가 매일 마주치며 보는 거리의 사람들처럼, 고대인들의 얼굴은 대체로 활기 차고 밝은 모습이다. 그들은 검고 큰 눈망울과 건강하게 보이는 얼굴빛과 손질된 머리모양새를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초상화에 그려진 사람이 누구인지를 모른다. 물론 그들 중에는 우리가 몇 가지 문헌의 도움으로 그들이 가졌을 법한 직업, 이를테면 제사장이나 군인 등의 직업을 추측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대체로 그 사회의 상위계층에 속한 사람들임을 짐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정확하지는 않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들의 심성은 어떠했는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으로 절망했으며 또한 무엇을 노래하고 춤추었는지를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한다. 하물며 그들이 살다 간 삶의 정황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어떤 사랑과 미움 속에서 신을 경배하고 자신과 이웃을 돌보았는지에 대해서는 더 더욱 알 길이 없다. 그들이 맞을 죽음의 순간처럼, 그 삶을 완벽하게 증거할 어떤 자료도 우리 손에 남아 있지 않다. 우리는 그려진 이 초상화에서 정녕 고대 이집트인을 보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을 보고 있는 것인가? 혹은 그 어떤 인종상의 좁은 계통에도 넣을 수 없는 인간 일반을 보고 있는 것인가? 아니 그 초상화에서 우리는 이전의 우리 선조들만큼이나 앞으로의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다채롭게 채색된 고대의 젊은 인물들은 너무나 생생하여 마치 우리가 직접 만나고 사귄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 어느 누가 그려져 있는지 모르지만, 초상화 속 그들은 우리 눈앞에서 마치 말을 걸려는 듯 친숙하게 다가와 서 있다. 초상화 속 인물의 눈빛은 한결같이 맑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열망을 가졌으며 과연 그 열망의 얼마만큼을 이루고 나서 자신의 삶을 반납했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그들은 마치 살아 있는 듯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내 시선이 머무는 곳, 오래 머물고자 하는 곳, 거기에는 이미 내 모습이 어려 있기 때문일까? 말없는 그들의 눈빛은 살았을 적에 그들이 지녔을 법한 어떤 품위와 절제를 떠올리게 한다. 그들의 눈빛이 맑은 까닭은, 죽음 앞에선 어떤 광휘도, 어떤 영광에 대한 찬탄과 혼탁에 대한 불평도 쓸모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아서인가? 그들의 표정은 밝고 잔잔하며 또한 신실한 느낌을 준다. 그것은 죽음의 경험 후에 그려진 것이어서일까? 아니면 살아 있을 적에도 이미 그러했음을 말하는 것인가? 혹시 살아 있을 적에 이루지 못한 열망을 죽은 후에나마 이루기 위해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들의 맑은 표정은 자세히 보면 일정한 감정을 섞고 있기보다는 오히려 모든 감정을 탈각한 것처럼 보인다. 일체의 감정적 껍질을 벗어나 버린, 비어 있는 듯한 표정. 최소화된 감정, 혹은 감정의 부재마저 포용하는 감정. 그래서 그 표정은 무엇보다 담백하게 여겨진다. 이 때문인지 그들의 표정에는 있는 그대로의 것만 담겠다는 의지가 배어 나오는 듯하다. 모든 불필요한 것을 배제한 그대로의, 혹은 있었던 그대로의 모습만 담겠다는 듯이 그들의 표정은 가차없는 정직성을 띠고 있다. 미라 초상화의 맑은 눈빛은 감정적 탈각의 담백함을 보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슬픔을 느끼게 한다. 담백하고 정직해 보이는 그들의 눈빛에서 왜 나는 말못할 비애를 느끼는가? 죽은 자의 결연함은 살아 있을 때의 결연함이 쉽지 않음을 암시하는지도 모른다. 눈물이 언제라도 쏟아져 내릴 듯, 그것은 아련한 감정의 안타까운 정적 속에 감싸져 있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단호함으로 무장한 채 앞을 쳐다보고 있다. 다가온 죽음에 대한 의식이 그들의 삶을 단련시켰던 것일까? 아니면 죽음으로 인해 비로소 그들은 침착의 바탕을 사후적(死後的)으로 체현한 것인가? 가장 미미한 사물의 움직임에도 마음에 파문을 일으킬 듯한 눈빛 속에서 그러나 그 어떤 결연함을 결코 포기하지 않은 채 정면을 주시한 그들의 시선. 연약과 견고 사이, 섬세와 강인 사이 그 어디쯤에서 죽은 자의 눈빛은 매순간 흔들리는 듯하다. 침착하고 고요한 표정 속에 그들의 목소리와 숨결, 아직도 들려오는가? 불어오는 바람은 그들의 아득한 자취를 담고 있는가? 오로지 남아 있는 것은 슬프도록 적요로운 그들의 말없는 눈빛. 어떤 말도 잊은 듯한 그들의 눈빛은, 마치 채워지지 못한 열망으로 지워져 간 과거를 기억하는 듯하다. 그 눈빛은 “끝없는 작별에 대한 기억”(존 버거)을 담고 있다. 눈빛에 어린 모든 기억은 작별의 순간을 선회한다.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은 있지 않은 것의 그림자를 지닌다. 눈은 지나간 것, 놓쳐 버린 것을 기억하고자 한다. 말없는 시선의 빛은 영혼의 빛일 것이라고 나는 단정한다. 영혼을 비추는 맑은 눈빛 <종려나무와 장미꽃 장식을 든 수염난 남자의 초상> 나무에 밀랍화 40×28cm 기원후 3세기 그 많은 초상화 가운데 내 눈길을 가장 오래 끌었던 것은 짧은 머리칼을 지닌, 창백한 한 젊은이의 초상화였다. 그에게는 여느 사람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목걸이나 귀고리가 걸려 있지도, 반지가 끼워져 있지도 않다. 또 그는 금빛으로 장식된 월계수관을 머리에 얹고 있지도 않다. 흰색 옷을 소박하게 차려입은 그는 단지 왼손에는 올리브 나뭇가지를, 오른손에는 작은 장미다발을 들고 있다. 왜 그는 보석이 아니라 작은 장미 화환을 들고 있을까? 왜 그는 장미와 올리브 나뭇가지를 든 자기 모습을 자신의 관 위에 놓으려 했던 것일까? 올리브 나뭇가지의 푸르름으로 죽음의 어둠에 맞설 수 있다고 그는 생각한 것일까? 올리브 나무와 장미는 그가 죽었을 때처럼, 살아 있을 때에도 혹시 그의 친구는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그는 살아 있을 때, 그 올리브 푸른 가지를 들고 무엇을 했을까? 죽은 뒤에까지 장미의 향기를 기억하려 했던 그는 살아 있을 때, 그 향으로 무엇을 했을까? 오, 그는 무엇을 다하지 못하여 죽음의 마당에서도 자신의 관 위에 보석 대신 푸른 가지와 꽃을 놓고자 했던 것일까? 네가 네 주검 위로 장미 화환과 올리브 가지를 가져갔듯이, 다가올 내 죽음을 장식할 작은 꽃과 나무의 이름은 무엇인가? 살아 있을 때의 나는 푸르른 나무 한 그루와 한 다발의 꽃향기를 지금 가꾸고 있는가? 인류에게 남겨진 회화사에서 가장 오래 된 초상화인 미라 그림들이 과연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죽은 자의 말없는 눈빛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가? 그들을 쳐다보는 지금 여기의 우리 표정은 그들 고대인의 표정과 어떻게 같고 또한 다른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듯 화려하게 채색된 그 먼 과 거의 인간들이 우리 눈앞에서 보여 주는 침묵의 의미는 무엇일까? 미라에 초상화로 장식하는 관습을 누가 만들어 냈는지 아무도 모르듯이, 여기 그림으로 남아 있는 자의 삶과 그들 열망의 흔적에 대해 아무도 알지 못한다. 죽은 자들이 무엇을 희망했는지를 알지 못하듯이, 그들을 절망케 했던 사연에 대해서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면서 그들의 눈빛과 표정은 우리에게 그리도 친숙하게 나타난다. 그 그림들은, 우리가 그들로부터 시선을 돌리지 않는 한, 2000년 후 지금 여기의 우리 앞에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느낌도, 그 초상화들이 무덤 속에 죽은 자와 더불어 안치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전혀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머나먼 곳 이집트에서 이집트식으로 매장되었더라면, 오늘날의 우리는 그들 침묵 속 중얼거림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얇은 나무판에 그려진 대부분의 그림들은 미라의 장식품으로서, 로마의 지배를 받던 이집트에서 그리고 로마식으로 장례되었기에 수백 년 동안 사막의 황무지에서 살아 남았고, 그리하여 마침내 발굴되어 나온 것이다. 바로 이것이, 그 눈빛의 의미와 더불어 다음의 질문을 계속하게 한다. 사막의 바람 속에서 죽은 자에게 표현을 주었던 이는 누구였을까? 초상화의 인물들이 지닌 그 말없는 눈빛은 알려지지 않은 어떤 무명화가의 눈빛을 또한 떠올리게 한다. 알려진 눈빛은 알려지지 않은 눈빛을 상기시킨다. 우리가 여기서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 초상화를 그린 이름없는 화가들의 어떤 회화적 능력이나, 혹은 이 개인초상화의 발전적 전개에 대한 예술사적 고찰이 아니다. 그 그림들은 표현방식으로 보아 한편으로는 틀에 박힌 듯한 인상을 주는, 대체로 소박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것들은 그들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을 결코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한 강렬한 시선으로 우리를 흡입한다. 죽음 뒤에도 살아 있는 듯한 빛을 머금은 영롱한 생명의 시선들. 그 눈빛은 이미 2000년 전의 어느 한때, 먼지바람 이는 황무지 사막 위에 살았던 사람의 것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으리 만치 사실감으로 차 있다. 그 시선은 그것을 바라보는 내 시선과 마음을 끊임없이 쓰다듬고 어루만지며 내게 무엇인가를 호소하는 듯하다. 호소하는 그의 눈빛과 이 눈빛을 생각하는 내 눈빛 사이에는 무엇인가가 끊임없이 왕래하는 듯하다. 지금 여기의 나를 불편하게 하는 눈빛의 강인한 힘, 이를 가능하게 했던 그들의 삶의 에너지는 무엇이었을까? 죽은 자의 눈빛이 살아 있는 자에게 남기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미 오래 전에 떠나가 버린 자의 시선에 우리를 머물게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미라덮개의 남자 초상> 나무에 밀랍화 52×37×22cm 기원후 2세기 후반 오른쪽 페이지 <부인이 그려진 관덮개> 아마포에 템페라 221×106cm 기원후 65~80 인간이 자신의 삶을 증거하는 방식은, 지금처럼 그때에도 그들 숫자만큼이나 많았을 것이다. 어떤 이는 명성에서, 어떤 이는 신분에서 그것을 찾았고, 또 어떤 이는 재산에서, 또 다른 이는 권력으로 그것을 구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렇듯이 또 어떤 이는 그 어려움을 알고 미리 체념했을 것이며, 아예 처음부터 그것을 구하지 않은 이도 있을 것이다. 또한 그저 삶 그 자체로써 자기 생애를 증거하고자 한 이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파윰의 초상화를 그린 무명의 화가는 어떠했을까? 아마도 그는 그저 그리면서 제 삶을 표현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고대인의 삶을 우리가 이 초상화를 통해 생각하게 된 것은, 그 많은 삶의 방식 가운데 이 이름없는 화가들의 표현적 실천 덕분임을 우리는 안다. 어쩌면 그 장인들은 단지 자신과 가족의 하루 끼니를 때우기 위해 온종일 쉬지 않고 노예로서 그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이 비의도적 형상의지가 2000년 세월의 비바람을 뚫고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태곳적 숨결을 미치게 한다. 이런 만남 속에 시간의 광대한 간격은 사라진다. 일상적 삶의 긴급한 필요에서 나오나 표현의지에 의해 그 필요를 넘어서게 되는 활동 - 예술적 형상화는 2000년 전의 고대인과 2000년 후의 우리를 연결시킨다. 형상적 표현의지는, 그것이 어디에서 연유했건 간에 황무지 속의 생명에 한때 인간학적 빛을 부여한다. 표현적 실천이 시간 속에서 시간을 뛰어넘는 의미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다. 초상화 인물들의 눈빛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빛 그리고 우리 눈빛에 각인되는 그들의 눈빛. 눈빛들은 시간을 넘어 교차하면서 서로 어울린다. 그들 말없는 눈빛에 녹아 있는 어찌 할 수 없는 죽음의 비애들은, 그들 운명뿐만 아니라 그것을 그린 화가의 말할 수 없는 곡절까지 담고 있는 듯하다. 초상화 속 인물들의 눈빛은 바로 그것을 그린 화가의 눈빛이 아닐까? 그리고 그 눈빛들과 그것을 바라보고 떠올리는 내 눈빛은 어떻게 다를까? 그것 사이에 과연 차이가 있기나 한 것인가? 초상화 인물들의 눈빛을 그리면서 그 시절의 무명 화가는,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후에 발굴될 그림들을 볼 후대 사람들의 눈빛을 떠올렸던 것은 아닐까? 아니 수천 년 후의 지금 우리도, 또다시 수천 년 뒤에 올 후대 사람들에 의해 그때까지 남아 있을 몇 점의 낡은 초상화를 통해 희미하게 기억될 것이라고, 단지 먼지의 흔적으로만 남아 있게 될 뿐이라고 그 눈빛은 말하는 것이 아닌가? 오, 우리는 기억하고 잊으면서 다시 기억되고 또 잊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망각의 저 거친 인류사적 강물을 건너 우리가 정녕 잊지 않고 보듬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초상화의 그 슬픈 눈빛은, 지금 여기의 우리가, 떠나간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을 그린 화가의 속내마저 알지 못할 것이라고 죽은 자가 이미 예견한 데서 오는 듯하다. 존재의 덧없는 소멸 가운데서도 그들이 견지하는 저 눈빛은 예나 다름없이 잔잔하다. 죽은 자의 눈빛은 강렬하지만 침착하기에 뜨겁지 않고, 슬프지만 견고하기에 공허하지 않다. 침착의 견고함, 이것의 바탕은 가라앉은 평정심(平靜心)인지도 모른다. 견고한 열정은 외향화된 것이 아니라 내면화된 것이다. 참된 열정은 마음의 평정성으로부터 온다. 덧없음을 깨달았음에도 이 덧없음을 넘어서고자 하는 정신의 견실함. 그 무엇이 시간 속에서 시간을 넘어서는 표현을 덧없는 존재의 자취들에게 부여하게 했을까? 스스로 지워지면서 지워짐의 흔적을 보존하고 그 의미를 알리고자 했던 견인의 형상적 욕구와 의지, 이것은 혹시 태곳적부터 우리에게 매일처럼 송신되는 삶 자체의 목소리 - 너는 네게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로 되돌아가라는 인간사의 전언은 아니던가? 죽은 자의 말없는 눈빛에서 나는 이미 떠나간 세계와 지금 남아 있는 세계 그리고 앞으로 올 세계 사이의 삶의 송신을 읽는다. 시간을 넘어 이미 사라진 세대들로부터 뒤따라올 다음 세대, 다음다음 세대 그리고 그 다음의 세대로 전해지는 이 끊길 듯 끊기지 않은 무언의 전달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죽은 자의 눈빛을 그림으로써 무명화가는 수천 년 전 삶의 어떤 목소리를 들려주고자 했던 것인가? 죽은 자의 눈빛과 그 눈빛을 태곳적 빛 속에서 표현한 무명화가를 보며 지금 여기의 우리는, 그들에게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과연 어떤 식으로 자리해야 하는가? 초상화 속 인물에 대해 그러하듯, 이 인물을 그린 화가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초상화의 인물들은 이미 죽었고, 그 인물들을 그린 화가 역시 오래 전에 죽었다. 초상화 인물들에 대해 그러하듯, 우리는 이 초상화에 대해서도 그리고 이 초상화를 그린 화가에 대해서도 친숙하면서 또 낯선 채로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의 죽음을 통해 수천 년 뒤의 후대 사람들과 오로지 무언의 침묵으로밖에는 만날 수 없을는지도 모른다. 수천 년 뒤의 우리는 우리에게 다가와, 당신들의 삶은 어떠했느냐고 물을 그들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셀 수 없이 많은 벌레가 두터운 수의를 꿰뚫고 온몸을 구석구석 후비고 갉으며 돌아다녀도 우리는 머리털 한 가닥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그때 찾아올 침묵 속 이야기에서 죽은 내가 느낄 그 광막한 낯섦을 초상화 속 인물들은 지금 내 앞에서 느끼고 있을까? 피할 길 없는 이 겹겹의 낯섦이 내게 다시금 이렇게 묻게 한다: 지금 여기, 이 지상에 살아 있는 너의 장미 화환은 무엇인가? 너는 네 죽음에 가져갈 푸른 나뭇가지 하나 준비하고 있는가? 나는, 너는 그리고 우리는 우리 삶의 어떤 푸르른 나뭇가지와 붉은 장미 다발을 이 삶 이후로까지 가져가려 하는가? 살았을 적에 푸른 나뭇가지 하나 준비할 수 있다면, 죽은 뒤 우리는 새가 되어 날아갈 수 있을까? 마치 그림의 형상을 통해 영혼의 불멸을 믿었던 고대 이집트인들처럼, 글의 표현을 통해 우리는 육신의 소멸을 넘어 다가올 역사의 세대와 이어질 수 있을까? 죽은 자의 말없는 눈빛은 쉼없이 내 삶의 푸른 나무가 무어냐고 되묻는 듯하다. 죽은 자의 수천 년 전 그 눈빛 앞에서 삶에 지친 내 눈꺼풀을 나는 차마 감을 수가 없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