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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2년 4월  6일 토요일 오전 11시 33분 25초
제 목(Title): 현택수/ 부르디외의 예술사회학 


출처: 월간미술 

프랑스의 세계적 사회학자ㆍ 철학자ㆍ문화비평가이자 행동하는 지성으로 
1990년대 이후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가장 강력히 비판했던 피에르 
부르디외가 지난 1월 24일 밤 파리에서 타계했다. 부르디외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성향 분석을 중심으로 인간과 사회의 본질에 대해 고민한 대표적 
사회과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교육·미디어·문학·미술 그리고 패션까지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관심사로 유명하다. 여기에서는 예술 분야, 특히 미술에 관한 
그의 사상을 되짚어 본다.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1930년 프랑스 남동부의 소도시 베아른의 
전형적인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파리고등사범학교(ENS) 졸업 후 
1958∼1960년 알제리에서 군 복무를 하며 서구문명으로 인해 알제리 원주민이 
겪는 문화 박탈을 연구한 그는 파리대학 예술학부에서 레비스트로스·레이몽 
아롱의 조교를 거치며 사회학의 길로 들어섰다. 릴 대학 교수를 거쳐 1968년 
파리고등연구원에 유럽사회학센터를 설립하고 초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1981년 
프랑스 최고의 학술기관인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로 취임한 그는 이후 콜레주 
드 프랑스 및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부르디외는 
자본주의 사회구조와 정치ㆍ경제·문화ㆍ예술을 장악하고 인간을 억압하는 권력 
문제를 엄정하게 비판했으며, ‘아비투스’ 등 그가 창안한 개념은 현대 
인문사회과학의 기본 명제가 되었다. 1990년대부터 
빈민·노동자·이민·실업자를 위한 운동에 직접 참여한 그는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며, 2000년 5월 1일 노동절에 유럽의 진보적 
지식인과 노동조합·시민단체 등의 연대를 주도했다. 또한 그는 2000년 9월 
대산문화재단 주최로 열린 ‘서울국제문학 포럼’에 참석해 ‘위기 속의 
문화’라는 발표를 통해 상업주의에 저항할 수 있는 인간의 얼굴을 지닌 문화적 
국제주의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국내에 번역된 저서로 《재생산》(1970), 
《자본주의와 아비투스》(1977), 《구별 짓기》(1979), 《혼돈을 일으키는 
사회과학》(1980), 《상징 폭력과 문화 재생산》(1982), 《강의에 대한 
강의》(1982), 《예술의 규칙》(1992), 《세계의 비참》(1993), 《텔레비전에 
대하여》(1996), 《파스칼적 명상》(1997) 등이 있다.  
 

지난해 가을 서울에서 개최된 한 문학포럼에 초대되었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올해 1월 말 파리의 한 병원에서 타계했다. 그는 사르트르와 푸코에 
이어 프랑스 지성사에 빛나는 세계적인 석학이었다. 생전에 그의 독특하고 
방대한 학문적 성과와 비판적 사회참여 활동은 격찬을 받으며 그의 사회적 
명성을 국내외에 드높였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파리고등사범학교(ENS) 출신의 사회학자로서 프랑스 최고의 
지성을 상징하는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다. 그는 비판적 후기 구조주의 
이론가이면서 사회비판의 대열에 나서는 참여 지식인이기도 하다. 학문적으로 
그는 프랑스 구조주의자들과 많은 사회과학자들이 고민해 온 행위와 구조의 
관계를 통합하는 데에 기여했다. 그리하여 부르디외는 하나의 학파를 가진 
성공한 학자로서 명성을 날렸다. 또한 그는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명성도 갖고 있다. 1990년대부터 그는 빈곤·실업·파업 등 사회문제에 
주목하고,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며 매스미디어 앞에 혹은 직접 거리에 
나섰다. 

이 글에서는 그의 사상을 간략히 소개한 다음, 주로 예술 분야에 한정하여 그의 
이론을 소개하고자 한다. 부르디외는 문학·연극·영화·사진·회화·건축 등 
예술의 다양한 장르에 관심을 보였다. 그 가운데서도 문학에 관한 연구가 
많지만, 여기서는 될 수 있는 한 미술에 관한 그의 접근법을 발췌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부르디외의 사상과 주요 개념의 이해


부르디외는 기존의 철학 및 사회학을 포함한 인문사회과학적 전통을 독창적으로 
종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칸트주의의 유산인 주체의 비판철학과 레비 
스트로스, 미셀 푸코와 루이 알튀세르의 구조주의를 뛰어넘기 위하여 마르크스, 
베버와 뒤르켐의 사회학적 바탕 위에 후설, 사르트르 그리고 메를로 퐁티의 
현상학을 바슐라르와 캉기엠의 비판적 인식론과 함께 규합하고 있다. 
부르디외는 사회학에 있어서 실증주의적 경향을 경계하고 직관주의와 
초경험주의와도 단절한다. 그의 사회학은 전체주의적(holiste) 사고방식의 
철학이나 실증주의적 경험주의를 배격하는 한편, 
구조주의·마르크시즘·현상학과도 비판적 거리를 유지한다. 부르디외는 
개인/사회, 행위/구조의 관계분석에서 주관주의/객관주의, 의식/무의식, 
유심론/경험론, 미시분석/거시분석, 방법론적 개인주의/전체주의 등의 이분법을 
변증법적으로 통합하고자 노력했다. 그의 이러한 노력과 방법은 ‘구성주의적 
구조주의’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가 창안한 장(Champ)과 아비투스(Habitus) 및 문화자본(Capital Cultural), 
상징폭력(Violence Symbolique) 등의 주요 개념과 이론은 이러한 학문적 노력의 
소산이다. 이 주요 개념과 이론은 정치·경제·교육·문화·예술 등 여러 
분야에 걸친 방대한 그의 저서들을 통하여 설명되고 현실분석에 적용되었다. 
부르디외는 ‘장’의 이론화를 위해, 마르크스의 자본을 경제자본·문화자본 등 
다양한 자본으로 유형화하고, 베버가 종교분석에 이용했던 경쟁·독점·정당화 
등 일련의 개념을 수용한다. 그가 말하는 장이란 행위자와 제도 간에 벌이는 
일종의 힘 겨루기의 공간이다. 즉 장이란 상이한 자본과 권력을 가진 
행위자들이 정당성을 독점하기 위해 벌이는 투쟁의 공간인 것이다. 부르디외는 
예술의 세계를 이 같은 하나의 장으로 생각한다.

한편 장과 상보적 관계를 가진 또 다른 개념 ‘아비투스’는 특정한 사회적 
환경에 의해 획득된 성향·사고·인지·판단과 행동의 체계를 말한다. 그러나 
이는 사회적 환경에 의한 사고와 행위를 단순히 기계적으로 재생산하는 
메커니즘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상대적 자율성을 갖는 개념이다. 아비투스는 
사회제도, 구조가 인간행위의 산물이자 동시에 그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기도 하다. 예술의 장에서 아비투스는 예술가와 작품의 
위치(계급적·미학적·공간적·소비적 위치 등)를 생산·재생산하는 기능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아비투스가 학교 같은 제도를 통해 행위자에게 하나의 
미학이나 불평등한 문화를 강제한다면 그것은 상징폭력이라고 불릴 수 있다.


예술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


과연 예술작품은 순수하고 비이해타산적이며 경험과 합리적 이해를 벗어난 
것인가? 부르디외는 예술을 설명할 수 없다는 가정으로 예술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는 가다머적인 지적 패배주의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예술이 무목적성을 
표방하고 자율적이고 초월적 지위를 누리게 된 배경으로 인간의 신념과 행위의 
구조 그리고 제도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예술계는 예술에 
대한 사회과학적인 접근에 거부감과 반발을 보인다. 사회과학적 지식이 예술의 
신비성과 예술가의 예외적인 지위에 치명적인 상처를 줄지 모른다는 경계심과 
오해 때문이다. 물론 사회학자는 예술가처럼 ‘아름다운 풍경과 아름다운 
소리의 친구’가 될 수 없다. 그보다 그는 보고 느끼는 감각적인 여건을 설명할 
수 있는 명료한 관계 시스템을 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리하여 
부르디외가 의도하는 바는, 예술에 대한 사회과학적 접근으로 역사와 
아카데미즘의 성소에서 물신화되어 죽은 예술작품과 작가들을 꺼내어 자유 
속에, 즉 감상자의 이해와 숭배 속에 안치하기 위한 것이다. 예술가 및 
예술작품의 생산과 수용 조건에 대한 사회과학적 분석은 예술품을 파괴하거나 
수용자의 예술적 경험을 축소시키는 일이 결코 아니다. 맹목적인 사랑보다는 
상대를 알고 이해하는 사랑이 더 바람직하다. 부르디외는 예술작품에 대한 
감각적인 사랑은 일종의 지적인 사랑으로 완성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문학 속에 보이는 예술의 사회적 규칙


부르디외의 예술사회학적 발상은 먼저 문학텍스트 속에서 보인다. 《예술의 
규칙》이란 그의 저서에서 그가 분석하는 대로 따라가 보자. 플로베르의 
《감정교육》에서 프레데릭은 두 세계, 즉 예술과 돈, 순수한 사랑과 금전적인 
사랑 사이의 양립 불가능한 가치를 추구하는 이중적인 존재다. 한편 아르누는 
예술세계 속에서 돈과 사업을 대변하는 존재다. 플로베르는 순수한 예술의 
세계와 사업의 세계를 대비하는 구도를 설정한다. 그리고 사랑과 예술에 대한 
사랑이 서로 상응하는 형식을 취한다. 두 가지 상반된 가치의 세계에서 
줄타기를 하던 프레데릭처럼 예술과 사랑에 광적인 사람은 사업의 세계에서 
보자면 패배한 사람이다. 그러나 예술의 세계에서 보자면 ‘패배한 사람이 
승자’인 게임이기도 하다. 그러나 프레데릭은 예술이나 사업의 게임 그 어느 
한쪽에 완전히 자신을 투자하는 데 이르지 못했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플로베르가 소설의 등장인물을 통해 분석한 것은 놀랍게도 객관화된 사회관계의 
구조다. 즉 순수한 사랑이 결합된 순수예술과 부르주아 예술 사이의 
대립관계다. 그리고 당시 보헤미안의 생활과 인간관계의 조건 및 사회공간 
구조를 객관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이처럼 문학적 텍스트가 독자를 문학적 환상 
속에 몰입시켜 드러내지 않는 사회적 사실의 구조를, 사회학적 눈은 잘 
포착하여 나타나게 한다.

플로베르가 소설에서 묘사한 것처럼, 부르디외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원리가 
지배하는 예술의 세계를 양극화된 구조로 인식한다. 즉 부르주아 세계에 
반대하여 그와 단절하고 대립하는 순수예술 세계의 존재다. 순수예술, 독립적인 
예술의 세계를 위해 당시 부르주아 예술과 맹렬히 저항하고 싸우던 예술가들은 
플로베르·보들레르·마네 같은 새로운 예술의 예언자·창조자·순교자였다. 
이들은 시장경제나 정치권력에 종속되지 않는 반대의 축에 위치하여 예술의 
자율성을 옹호하였다. 이들은 시장과 권력으로부터 독립과 자율성의 획득을 
위해 기존 예술계와 윤리적·미학적 단절을 표방하면서 그들과 상징 투쟁을 
벌였다.

새로운 질서의 확립을 위해 개인으로서 취해야 할 단절의 어려움은 있다. 
고독한 혁명가들은 부르주아적인 삶에 대한 동경과 사회적 인정에 대한 기대에 
주저하기도 한다. 보들레르는 한때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으려고 했고 한 
극장의 관리를 맡으려고 했다. 또한 마네의 <죽은 토레로>같이 개혁자의 
도발적인 위배가 역량의 부족함이나 실패로 나타날 수 있다. 이 개혁가들은 
‘저주받은 예술가’혹은 실패한 예술가로 상징적 혁명의 잠정적인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마네와 <낙선전> 살롱처럼 적어도 새로운 미학적 체제가 권력의 
장 안에 설정되기 전까지는. 

결국 플로베르는 《감정교육》에서 프레데릭과 여러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 구조 
속에서 권력의 장을 구성하는 여러 위치의 세계와 연결된, 또는 문학의 장 
속에서 권력의 장을 구성하는 위치의 세계와 연결된 관계구조를 객관화한 
것이다. 플로베르는 프레데릭을 통하여 장의 세력에 의해 조종되는 한 존재의 
무력함을 극화함으로써 창조자의 창조적인 단절을 상징화하였다. 그리고 
프레데릭의 모험을 통하여 이러한 무력함을 극복하고 권력의 장 속의 경쟁과 
갈등의 객관적인 사실을 환기한 것이다.


예술세계의 자율성


위의 문학 텍스트에서 보이는 것처럼, 예술의 장에서는 예술의 자율성을 
주장하면서 정치·경제적 요소로부터 독립되길 원하는 문화자본 등 상징자본을 
많이 갖는 예술인과, 예술 외적인 요소에 많이 의존하여 경제 자본과 권력을 
갖는 부르주아 예술인이 있다. 순수 예술가가 부르주아적 요구를 멀리하면서 
순수 예술의 자율성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는 경제적 궁핍이다. 그들이 
부르주아 예술가와 투쟁하기 위해서는 부르주아 예술행위의 의미와 기능과 
차별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르주아 고객과 시장을 포기하고 상업적 
가치가 없는 예술작품을 고집해야 한다. 그들은 이러한 고통스러운 예술시장 
경제의 메커니즘을 스스로 초래하고 그 필연성을 충족시켜야 했다. 예술의 
자율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예술가는 이 도치된 새로운 경제원칙 안에서 
자유롭고 고상해지는 ‘사치스러운 노동자’가 되길 원한다.

19세기 말 쿠르베를 제외하고 화가들이 대중적인 정당화를 추구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대중적인 확산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유일한 작품은 대중이 접근하기에 상대적으로 값이 비쌌을뿐더러, 그들이 알고 
있는 성공이란 사교(계)적인 성공이었기 때문이다.

예술이 돈이나 권력에 종속되지 않고 그 어떤 형식과 치환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예술 생산의 장의 자율성 주장과 분리될 수 없다. 이로써 예술이 기존 
규칙으로도, 그 어떤 초월적인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고, 예술 그 자신의 
규칙을 생산하고 그것으로써 자신의 평가 척도를 삼는다는 ‘예술을 위한 
예술’의 주장이 나오게 된 것이다.


예술의 재생산, 아비투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란 말이 있다. 화가나 화랑마다 고유한 아비투스가 있어 
독특한 예술 전시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화랑은 계급·교육·세대·취향·기질 
등으로 구별되고 차별되는 화가와 작품의 미적 기준을 생산·재생산하는 기능을 
맡고 있다. 화랑이 소장하는 작품은 화가의 명성과 작품의 소장 기간, 상업적 
가치에 따라 미학적·경제적 차이를 드러낸다. 

자기 고유의 작가군이 없는 보부르같은 상업적 화랑은 당시대와 아주 다른 
시기의 학파, 연령의 화가들(추상화가·후기 
초현실주의자·극사실주의자·신사실주의자)의 작품을 전시한다. 화가들은 좀 
알려졌거나 장식적 가치 때문에 일반인들의 접근이 용이하다. 그리고 이미 
주목받는 아방가르드 화가들을 높은 가격을 제시하면서 영입한다. 반대로 
소나방·드니즈 르네·뒤랑 뤼엘과 같은 화랑의 소장품에서는 체계적인 
구상으로 각기 시대의 유파를 끌어 모아 예술 발전의 논리를 볼 수 있다. 즉 
미국의 팝아트에서 미니멀아트·개념예술·통신예술 등에 이르는 최신 경향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드니즈 르네 화랑은 기하학적 추상과 키네틱 아트 
사이를 연결하여 유명해졌다.

예술 장의 구조는 적대적인 위치의 공시적인 대립으로 구별되고 차별된다. 
장은, 즉 지배/피지배, 인정된 자/신참자, 후위/전위, 늙음/젊음 등 사회적 
관계의 분화와 대립이 생성되는 곳이다. 또한 장 속의 이러한 대립은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생산·재생산되는 것으로서 
다름아닌 아비투스의 효과이기도 하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아비투스란 어떤 
계급이나 집단의 의식에 내재된 인지·판단·성향·행위의 주형 체계다. 장의 
구조는 아비투스의 재생산적 기능에 의해 성립되기도 한다. 또한 역으로 
아비투스는 장의 조건에서 작동한다. 즉 아비투스는 예술 생산의 장 안에서 
행위자의 투쟁에 의해서만 사실상 존재한다. 아비투스는 구체적으로 작품에 
제도화되거나 동시에 정신구조와 신체 속에 내면화되어 나타나면서 작품의 
생산과 유통 가능성의 사회적 조건을 한정한다. 아비투스는 예술그룹 성원의 
세대·사회적 출신·학력·성향 등을 동질적으로 구조화하면서 재생산한다. 

부르디외는 화가와 화랑의 예를 든다. 화가의 생물학적 나이와 예술적 
나이에서도 아비투스적 차이가 발견된다. 일반적으로 아방가르드 화랑의 화가는 
센강 우안 화랑의 나이든 화가나 작고한 화가와 대조된다. 아방가르드 화가의 
경우 생물학적 나이와 예술적 나이는 일치한다. 또한 화랑에 소속된 화가의 
나이 구조를 비교해 보면, 화가의 나이와 생산의 장 속에 화랑의 위치 사이에는 
뚜렷한 관계가 보인다. 1930∼1939 년 사이에 출생한 화가는 아방가르드인 
소나방에, 1900∼1909년 사이는 인정된 아방가르드인 드니즈 르네 또는 프랑스 
화랑에, 1900년 이전 화가는 드루앙 또는 뒤랑 뤼엘에 속해 있다. 반면 
보부르나 클로드 베르나르 화랑은 아방가르드와 인정된 아방가르드 사이의 
중간에 위치한다. 드루앙이 전시하는 화가는 아방가르드 예술가와 모든 점에서 
반대되는 특징을 지닌다. 아방가르드 예술가보다 훨씬 더 많은 수가 
국립미술학교 보자르를 졸업하고 아카데미적인 예술(후기 인상주의)을 
실천하며, 아카데미적인 주제(바다·초상화·알레고리·농촌 
풍경·나체·남프랑스 풍경 등)를 선택한다. 화랑은 그들에게 많은 상과 메달을 
주고 커다란 살롱 등의 단체 회원으로서 후진 양성과 행정적으로 합법화된 
심급의 권력적인 위치(보자르 교장·파리대학 교수 등)에 접근해 있다. 

그러면 예술세계는 어떻게 변화되는가. 부르디외는 예술작품의 변화의 원칙은 
예술 생산의 장 속에서 행위자와 제도의 투쟁 속에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화랑은 매순간 예술적 나이·예술 양식·제도적 인정의 정도에 따라 구분되고 
경쟁하는 투쟁의 장에 속하게 된다. 아방가르드는 매순간 인정된 아방가르드와 
다른 하나의 새로운 예술세대로 구분된다. 1975년 아방가르드 예술 취향과 
부르주아 취향 사이에 설정된 대립과 유사한 구도가 반복된다. 즉 
소나방·드니즈 르네·뒤랑 뤼엘 화랑이 상징화한 대립 구도는 1945년 드니즈 
르네가 아방가르드를 대변했던 공간의 대립구도와 마찬가지였을 것이고, 이보다 
훨씬 전 1875년 뒤랑 뤼엘에 취했던 전진적인 위치의 공간 구도와도 유사했을 
것이다. 이러한 구도는 문학이나 연극·음악 등 예술의 장과 비평의 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상동적 구조로 보인다.


정치적 대립과 같이 놓여 있는 예술의 미학적 대립


예술가는 고유한 예술적 게임의 규칙에 따라 예술행위의 사회적 인정인 
정당성의 독점을 위한 내적 경쟁을 한다. 그들은 위치와 기능에 따라 자신이 
가진 특수한 자산의 배분 구조를 보존하거나 변형·전복시키는 데 따르는 
이해관계에 종속되고 투쟁에 가담하게 된다. 그런데 그들은 마치 이런 투쟁 
자체에 대한 이해관계와 정당성에 대한 질문을 문제 삼지 않는 것처럼 장 속에 
몰입하는데, 이것은 그들이 이런 장의 게임에 투여한 신념 때문이다. 
부르디외는 게임의 생산과 재생산에 기여하는 이 보이지 않는 공모의 효과를 
‘일루지오(illusio)’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현실적인 환상이다. 즉 작품 
창조의 카리스마적 이데올로기를 작가에게 돌리고, 화랑이 그것을 인정하고 
보증하며, 소비자가 작품을 감상하고 사게 되는 일련의 게임 과정에 대해 
거기에 참여하는 모든 행위자가 갖는 일종의 마술적 환상을 말한다. 공장에서 
만든 완제품에 제목을 달고 서명하는 것만으로 작품이 되어 비싼 가격에 팔리는 
것은 바로 예술가를 인정해 주는 예술 장의 논리의 효과 때문이다. 즉 그런 
예술적 행위가 정당화되는 것은 예술가·비평가·예찬가·소비자가 믿는 인식과 
평가 범주의 전통 때문이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만초니가 <예술가의 
똥통조림>으로 그 위에 올려 놓은 모든 것을 예술작품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나, 
뒤샹이 <샘>이라는 제목을 달고 서명함으로써 변기를 예술품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모두 예술적 게임에 대한 일루지오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그의 
예술사회학에 따르면 예술작품의 가치 생산자는 예술가가 아니다. 

예술가가 창조자로서 능력이 있다는 믿음을 생산하면서 페티시로서 예술작품이 
가치를 생산하는 신념의 세계인 생산의 장인 것이다. 예술사회학의 분석은 
작가나 작품에 대한 전통적인 연구가 아니다. 마르셀 뒤샹식의 타격처럼, 
예술가라고 명명하고 그의 작품을 전시해 주고 예찬하고, 사고 파는 과정에 
관여하는 예술의 가치는 장 속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생산되고 재생산되는데 
사회학은 바로 그 조건을 연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행위자(예술가·화랑·비평가·컬렉터), 전시장소(화랑·미술관)와 인정의 
심급(아카데미·학교·살롱) 등이 연구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 가운데 학교 
예술교육의 불평등성과 상징 폭력은 부르디외에게 중요한 연구 대상이다. 예를 
들어 미술관과 박물관에 소장된 미술작품에 대한 이해는 감상자로 하여금 
특별한 코드의 습득을 요구한다. 예술작품의 이해에 필요한 코드는 대부분 
학교에서 배운다. 교육제도는 강제된 의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강제하는 
기제다. 학교는 문화에 있어 사회적으로 조건지어진 불평등을 재능의 
불평등으로 해석하여 성공의 불평등으로 전화시키는 제도다.

마지막으로 상동관계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기로 하자. 독립적인 예술의 세계도 
정치사회적 요소와 관계 있다. 즉 예술의 미학적 대립은 정치적 대립과 같이 
상동적 위치에 놓여 있다. 부르디외는 《국립현대미술관지》라는 저널에 실린 
‘아노미의 제도화’(1987)라는 글에서 작가와 화가는 각기 자신의 독립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서로가 처한 상동한 구조 속에서 서로가 가진 것을 이용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정치적으로 드레퓌스 옹호자는 아카데미·살롱·부르주아 
어조에 반대하여 마네를 옹호했던 사람과 동일하고, 예술적으로 프루동은 
회화의 인간적·도덕적·사회주의적인 독서에 반대한 사람과 동일한 것이다. 
작가 졸라는 언제나 정복당한 사람의 편에 설 것임을 천명하고 마네를 
옹호했다. 졸라는 외적 요구에 대해 반발하고 예술의 자율성을 강화하려는 
목적에서 정치와 지배적 화단에 대해 적대감을 표시했다. 졸라는 쿠르베와 
프루동이 형식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없이 그림에게 뭔가를 의미하라고 
강제한다고 비난하고, 예술은 모든 사회적 규칙 밖에서 사회를 부정하고 개인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술의 자율성 확보를 위해서 정치 권력을 비판하고 
사회를 부정하는 강한 주장이 정치 권력과 멀어지는 것이 아니다. 졸라나 
마네의 ‘상징적 투쟁’은 궁극적으로 ‘상징적 혁명’을 가져 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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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택수는 고려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파리 4대학(소르본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학교 인문대학 사회학과 부교수로 재직중이다. 
저서로 《문화와 권력》(편저), 《현대사회의 구조와 변동》(공저), 《그래도 
나는 벗기고 싶다》, 《문화인류학》(공저), 《현대사회학의 이해》 등이 
있으며, 역서로 《텔레비젼에 대하여》, 《강의에 대한 강의》, 《예술사회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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