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hobbes (& calvin)
날 짜 (Date): 1996년03월12일(화) 18시35분51초 KST
제 목(Title): [번역] 유고의 역사.



yjkwon님께 감사드리며..
너무 읽기 힘들어서 번역했습니다...
:-)  

존대어는 생략했습니다. 너무 길어질것 같아서.. :-)

그럼..


Copywrite (C) by Richard Bondi, rsb5c@Virginia.edu

도대체 무슨일이 (전)유고슬라비아에서 일어나고 있나 ?

지난 몇년간 모든 신문들의 첫 페이지에는 발음하기도 어려운 유고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죽는 것을 주요기사로 보도해왔다.만약 여러분이 다른사람과 같다면, 

1989년 이전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면 왜 그런지 거의 알수 없을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포기한다면 이 이야기는 레바논과 같은 이해하기 힘든 증오의 

이야기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발칸의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들과 다르지 않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들고 있는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던지고 있다. 거기다가, 

뉴스들은 개괄적인 설명이 없는 사실의 나열에 불과하다.  만약 여러분이 발칸 

전문가는 아니지만 왜 옛 유고연방이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판이 되었는지 알고 

싶으면 계속 읽기 바란다.


지정학적 위치와 1914년까지의 역사

유고슬라비아는 그렇게 먼나라가 아니다.  프랑스의 큰 항구 보르도에서 출발하여

이탈리아를 거쳐 아드리아해라고 불리는 은빛바다를 지나서 멋진 모래사장이 

여러분의 시야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여러분의 비행기를 향해 발사되는 대공사격이

드디어 옛 유고연방에 왔다는 것을 알려줄것이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그리고 옛 유고연방의 모든 땅과 알바니아, 그리스를  포함하는,

지중해를 가르키는 거대한 삼각형의 땅인 발칸에 온것을 환영한다. 

동쪽으로는 터키가 중동을 감싸고 있고, 북서쪽으로는 옛 소련 연방이 이 모든땅을

압박하고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발칸은 동과 서의 자연적인 교량이었으며 이번 세기까지도 작은 슬라브

왕국과 작은 공국들의 집합체였다.  옆의 큰 세력들은 이곳의 전략적 중요성을 빨리

알아 차렸다.  오토만제국은 중세기에 발칸을 휩쓸었으며, 세르비아 왕국을 1389년

쓰러뜨렸고 마침내는 비인(Wien)으로 가는 통로까지 1683년 확보했다.  터키의 

세력이 물러가자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세력이 이를 대신했고 이 지역을 식민지화 

했다. 슬로베니아인, 크로아티아인, 몬테네그로인, 세르비아인들은 마침내 

그들사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로 독립하는 것이 더이상의 굴욕적인 일을 

막는 것임을 깨달았다.   19세기와 20세기초에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그들의 

발칸 식민지를 위협하는 새로운 민족주의와 싸웠다.  민족주의자 Gavrilo Princip

(가브릴로 프린시프??)는 오스트리아를 몰아내려는 발칸 민족주의를 대변하여

1914년 오스트리아 황태자의 행차에 다가가서 그를 암살했는데 이것이 세계 

1차대전을 일으켰다.   몇년후 연합국은 전쟁중의 슬라브 독립운동을 인정하고

마침내 1918년 12월 1일, 세르비아의 알렉산더 대공은 기쁜 마음으로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연합왕국을 선포했다.


유고슬라비아는 72년뒤 끝날때와 마찬가지로 인종 분규로 사작되었다. 알렉산더의 

발표가 있은후 몇시간뒤, 크로아티아에서 폭동이 발생했다.  유고슬라비아의 

지도없이는 그 이유를 알기가 불가능하다.  북으로는 슬로베니아가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헝가리와 접경하고 있고, 밑으로는 크로아티아가 (수도 자그레브)

U자를 뒤집은 모양으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수도 사라예보)를 껴안고 있고,

그밑으로는 작은 몬테네그로가 아드리아해를 끼고 있고, 세르비아(수도 베오그라드)

가  보즈보디나(Vojvodina)와 코소보(Kosovo)지방을 끼고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남쪽에 마케도니아(Macedonia)가 자리잡고 있다. 1914년 오스트리아가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를 점령하고 있었고, 독립 세르비아는 

몬테네그로를 차지하고 있었다. 더 남동쪽으로 가면 쓰러지는 오토만제국과의 

복잡한 정치적 국경이 있었다.


19세기에, 세르비아는 독립을 유지하고 있었고 발칸의 작은 지방들을 병합하고는 

이것을 외세침입에서의 해방과 대 슬라브 연합으로의 가입으로 보았다. 그러나,

수세기의 혹독한 지배에도 전통을 잊지 않았던 크로아티아는 1918년의 남 슬라브 

연합(Yugoslavia)을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대신하는 세르비아의 지배의 신호탄으로

여겼던 것이다.  크로아티아는 많은 권리의 지역정부를 가지는 연합을 원했지만, 

상황과 불운이 겹쳐서 마침내 세르비아 왕의 지배를 받는 중앙집권식 정부를 

베오그라드에 가지게 되었다. 그럼으로써 1918년에 시작되어 수십년동안 

연방주의자와 중앙집권주의자사이의 분쟁이 시작되었다.  이 새로운 왕국의 입헌 

군주제 실험은 국회안에서의 국회의원들끼리의 총싸움으로 인해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왕은 국회를 해산하고 10년동안 혼자 다스렸다.  이것은 크로아티아인들을 

1918년과 같은 정도로 분노케 만들었다.  그래서 1941년 나찌의 탱크와 폭격기가 

국경을 넘어왔을때까지 이 절대왕정 실험은 순탄하지 않았다.


독일군과 같이 들어온 300명의 크로아티아 민족주의 테러리스트 우스타샤(Ustasha)는

곧 나찌 괴뢰정권을 수립했다.  우스타샤는 크로아티아 독립국가를 목표로 했지만,

크로아티아인에게서도 지지를 받지못했고, 유고슬라비아에서 불법화되어서 수년동안

이탈리아와 헝가리의 테러리스트 훈련장에서 훈련받았다.   그들은 1930년대에 이미 

폭발물과 암살의 전문가가 되었다.  불행히도 그들은 완전한 미치광이들로서 

그들의 지도자 안테 파벨릭(Ante Pavelic)은 히틀러가 유태인을 미워하는것과 같이

세르비아인을 미워했다.  한번은 한 양동이 가득 세르비아인들의 눈을 뽑아내서

"나의 충성스러운 우스타샤가 나에게 선물했다."며 자랑한 일도 있었다.[1]

전쟁이 끝날때까지 그들은 수십만의 세르비아인들을 집단 수용소와 마을에서 

살해하고, 교회에 마을 사람들을 몰아넣고 불을 태우는 등  크로아티아인은 잊고 

싶어하지만 세르비아인들은 절대 못잊을 방법으로 죽였다.

(계속)






우리는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나 여전히 살아 가고,
   우리는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나 여전히 살아가고,
      우리는 산다는게 뭔지 모르지만 여전히 살아간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   -  고대 로마 격언.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