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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1년 9월 28일 금요일 오후 06시 13분 04초
제 목(Title): 손원제/ 서구가 사랑한 문명충돌론 


출처: 한겨레 21


서구가 사랑한 문명충돌론

미국 테러사건으로 기세등등한 헌팅턴의 주장은 오리엔탈리즘과 손잡은 편협한 
이론 


 
사진/ 두 사람이 닮은 이유? 묵시록적 예언의 유행은 곧 한국 사회전반의 
지적토대가 이번 테러사태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만한 수준에 못 미침을 
말해준다.(GAMMA, 한겨레) 


“하늘에서 거대한 공포의 왕이 내려와 하늘은 45도에서 불타고 불이 새로운 
도시에 접근한다. 신의 도시에 커다란 천둥이 칠 것이다. 두 형제는 혼란으로 
갈라지며 요새는 고통을 겪고, 위대한 지도자는 굴복할 것이다. 큰 도시가 불탈 
때 세 번째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9월11일 벌어진 미국의 대재난은 이역만리 한국에서 중세 프랑스 대마법사의 
기이한 예언을 역사의 무덤 속으로부터 끄집어냈다. 새 천년의 도래와 함께 
공포의 예언력을 상실하는 듯했던 노스트라다무스의 세계종말론이 “라덴과 
노스트라다무스의 용모가 너무도 닮았다”는 새로운 증거까지 제시하며 사이버 
공간을 통해 급속도로 번졌다. 


묵시록, 그리고 우리의 지적 빈곤 


이런 현상은 사실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하다. 세계 패권국의 중심부에서 최첨단 
기술로 세워진 ‘제국의 상징’이 순식간에 너무도 ‘영화적’으로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사람들은 잠시 정신적 공황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을 터이다. 그들에겐 그 무엇이든, 극도의 혼돈을 가를 논리가 필요했다. 
합리적인 사고로는 쉽게 떠올리기 힘든 현상에 종말론의 마법적 논리가 맞춤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던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어떤 사안과 관련해 그 사회의 다수 
성원들에게 제공되는 분석과 설명의 틀은 결국 그 사회의 지적 총체를 
반영한다는 사실이다. 중세 주술적 예언담의 횡행은 말하자면, 그만큼 한국사회 
전반에 이번 사태를 이해할 만한 지식과 방법론이 결여돼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실로 이것은 단적인 사례일 뿐이다. 한국사회의 수많은 미디어를 뒤덮은 여러 
논리들은 적어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보다는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이른바 
‘근대적 학문’의 외양을 갖춘 여러 설명들조차 세계를 선과 악, 종말과 
영생으로 이분하는 주술적 논리로부터 결코 자유롭진 못했던 것이다. 

여러 매체들이 앞다퉈 차용했던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은 어떠한가. 
헌팅턴은 1996년 펴낸 <문명충돌과 세계질서의 재편>에서 냉전의 종언과 함께 
세계는 문명 대 문명의 충돌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선진적인 서구문명이 직면한 가장 큰 위기는 열등한 여타 문명권과의 충돌 
위험이며, 특히 서구 기독교문명권과 오랜 갈등의 경험을 갖고 있는 
이슬람문명권을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거론했다. 이번 사태는 발생과 동시에 
‘이슬람 자살테러’로 규정됐으며, 당연히 헌팅턴의 ‘묵시론적’ 예고는 
수많은 전문가와 매체들에 의해 다양하게 변주됐다. 

그러나 사실 문명충돌론은 그 논리의 조야함과 서구중심성 때문에 출발부터 
무수한 논란을 낳으며 엄혹한 지적 비판에 노출됐던 패러다임이다. 헌팅턴은 
서양과 비서양이 동일하게 ‘빅맥’과 ‘코카콜라’를 소비한다고 해서 동일한 
보편적 문명권으로 통합된다고 볼 수 없으며, 민주주의와 개인적 자유의 이상은 
그리스·로마문명과 기독교전통에 입각한 서구문명만의 본질적 특질이라고 
본다. 그는 이로부터 “미국 등 서구 선진 문명권 국가들은 여타 문명권 
국가들에 민주주의의 가치를 강요하는 개입을 해선 안 된다”는 정책적 결론을 
이끌어내며, “이런 점에서 문명충돌론이야말로 가장 비패권적 주장”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이런 주장은 실제에선 서구권 이외 지역의 독재와 착취는 그 지역 
문명의 당연한 속성이며, 따라서 미국의 책임이 아니라는 기이한 결론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미국이 독재정권을 지원하는 
것도 정당하다고 보는 진정으로 패권적인 논리라는 지적이다. 


이슬람과 서구의 갈등은 이슬람 책임? 



 
사진/ 부시 행정부의 십자군 성전선언은 미국의 정책결정이 오리엔탈리즘의 
궤도를 따라 이뤄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걸프전 당시 전투 대기중인 
미군들.(한겨레) 


문명충돌론에 대한 가장 큰 비판은 역시 문명의 이질성에 따른 이슬람권과 
서구의 갈등을 필연적인 것으로 보면서, 그 책임을 전적으로 이슬람에 돌린다는 
점에 집중된다. 헌팅턴은 다양한 문명권 가운데서도 특히 이슬람문명과 서구 
기독교문명은 정면으로 충돌할 여지가 가장 큰 대립적 문명이라고 진단한다. 
그는 먼저 이슬람문명은 종교와 정치를 일치시키는 삶의 양식인 반면, 서구 
기독교문명은 종교와 정치를 분리시키는 문화양식이라고 본다. 또 기독교문명과 
이슬람문명 모두 유일신을 믿는 종교라는 점도 갈등을 부르는 중요한 요소로 
든다. 자신들의 신과 진리가 모든 인간이 따라야 할 가치라고 확신하는 
보편주의적 세계관 때문에 두 문명은 궁극적으로 갈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명충돌론은 이처럼 갈등하는 두 문명이 충돌로까지 나아가게 되는 이유로 
△이슬람문명권의 급속한 인구 증가에 따른 공격성 증가 △소련의 붕괴로 인한 
공동의 적 소멸 △서방 세속주의의 침투에 대한 이슬람의 문명적 적대의식 등을 
든다. 그러나 이슬람의 적대감이 근본적으로 서구의 침탈과 착취, 이스라엘에 
대한 일방적 편애 등에서 비롯된다는 점은 철저하게 무시한다. 구체적인 
현실관계를 도외시한 채 문화적 차이만을 서구 기준에서 일방적으로 강조한다는 
점은 문명충돌론을 비합리적 묵시론에 가깝게 한다. 

문명충돌론은 간명하게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패러다임적 위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복잡하고 혼란스런 현상에 대해 단선적인 설명을 
추구한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문명충돌론의 해석을 받아들이는 것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주술적 종말론에 기대는 것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를 바 없는 
효과를 낳게 된다. 

또한 바로 이 지점에서, 문명충돌론은 필연적으로 오리엔탈리즘과 만나게 된다. 
오리엔탈리즘은 서구 제국주의 패권국의 입장에서 본 동양이해의 총체를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 이래 서구는 소설과 학문, 연극과 영화 등의 문화 
영역을 통해 끊임없이 서구 이외의 세계를 ‘동양’(orient)이라는 하나의 
지리문화적 공간으로 타자화해왔다. 서구의 이해는 동양의 지리와 문화를 
우월한 서구의 사유와 기준에 꿰어맞추는 ‘상상적 가공’의 축적이었다. 
동양은 서구에 비춰 비이성적이고 열등한 존재로 규정돼왔다. 동양에 대한 모든 
세세한 지식들은 이런 기준에 의해 재편됐으며, ’우월한 서구 대 열등한 
동양’의 이분법을 강화해왔다. 

미국 컬럼비아대 에드워드 사이드 교수는 1978년, 지금은 고전이 된 책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서구의 동양 이해에 담긴 편향된 담론체계를 낱낱이 
해부했다. 특히 중동지역에 대한 서구의 담론을 중심 대상으로 한 그의 연구는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지식체계와 서구의 제국주의 중동정책과의 필연적인 
관련성을 제기한다. 그는 서구의 동양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이야말로 서구의 
정책을 합리화하는 토대로 작동했다고 본다. 서구는 늘 동양에 대한 객관적 
지식에 기반해 동양에 대한 지배정책을 펴왔다고 주장하지만, 실로 그 
지식체계야말로 객관적이기는커녕 오랜 역사를 통해 축적된 편파적 이해의 
총합이라는 비판이다. 


헌팅턴보다 ‘오버’한 성전 선포 


이번 테러사태 직후 나온 부시 미 대통령의 테러리즘에 대한 ‘성전’ 선포는 
미국의 정책결정이 여전히 오리엔탈리즘의 궤도 위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그는 “이번 전쟁은 선과 악의 대결”이며 “미국 편이 아니면 
테러리스트 편에 서는 것”이라고 양자택일을 촉구했다. 새뮤얼 헌팅턴은 
오히려 독일 <디 차이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에선 이슬람이 나눠져 
있기 때문에 문명의 충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패권국의 
지도자는 오리엔탈리즘의 이분법에 기반한 헌팅턴의 논리를 따라 끝내 ‘문명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전쟁’의 한길로 치닫고 있다. 


참고할 만한 책: 이삼성 가톨릭대 교수(정치학)의 <세계와 미국>(한길사)은 
제10장 ‘문명의 형이상학과 패권의 지정학’에서 문명충돌론의 오류와 허점을 
꼼꼼하게 짚고 있다. 서구 패권주의의 근원을 좇고 싶다면, 
<오리엔탈리즘>(교보문고, 박홍규 역)이 필독서이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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