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Kinder (collins) 날 짜 (Date): 2001년 7월 15일 일요일 오후 10시 11분 39초 제 목(Title): Re: 명성황후 * 우리 시대에 족보는 있어도 진.짜. 족.보.는 없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상민(99%?)과 양반(1%?)으로 나누어 놓았던 시대가 100년전 까지 이땅에 존재했고 상껏으로서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영광'에 비해서 '수치심'이 훨씬 더 컸기 때문입니다. 엄연히 과거지사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 상껏(?)이기를 거부하고 양반임을 자처(?)하는 데에는 아픈 조선의 역사가 우리의 삶에 녹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조선말 민비와 같은 시대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설사 민비를 국모로 여겼었다 하더라도, 상껏으로서의 아픔은 훨씬 컸었을 것입니다. '토지'라는 대하소설에 보면, 상것들의 아픔이 절절히 쓰여있던데...... * 조선시대 사람이 아닌 내가 민비를 국모로 받들어 모셔야 한다면 내가 상것의 피임을 속이고 양반임을 자처하는 것 하고 무엇이 다를까요? * 우리에겐 두 가지 선택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예 상것들을 중심으로 역사를 다시 쓰던가,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조선시대 사람들은 민비를 국모로 받들었어야 했다." 는 식으로 주어와 목적어 그리고 시제를 분명히 해서 역사를 쓰던가..... 그렇지 않고 "사람들은 민비를 국모로 모셔야 했다" 고 기술해서, 은근히 내가 가지고 있는 '상껏'으로서의 정체성에 불을 지르지 않았으면 좋을 것 같네요. * 제 입장에서 볼 때,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아쉬움을 찾으라 한다면, 쟁기와 낫으로 일어나서, 왕족.사대부.양반세력을 물리치고 민중의 승리를 이끌어 내었던 것이 아니라, 일제 강점기를 통해서 어설프게 힘의 이동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 민비가 일제에 의해서 살해당한 것을 슬프게 생각하는 것은 대한민국 땅에서 살아가는 한 시민으로서의 그것이지 결코 민비가 나의 국모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일제 때, 전쟁에 끌려가서 죽은 상껏과 민비 둘 중에, 어느 것이 나를 더 분노하게 만드는가를 묻는다면 당연히 나를 있게 해준 상껏의 죽음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할 것입니다. * 천주교 박해 사건들에서 수백의 사람들이 죽음과 맞바꾸어서 받아들인 것은 천주교라는 종교 그 자체가 아니라 "하느님 아래 인간은 평등하다"는 그 신념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인간존엄을 완전히 박탈당하면서 피곤한 삶을 연명해가느니, 태어나서 나를 처음으로 참 인간으로 대접해준 천주를 선택한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배운 역사에서는 쇄국이냐 개국이냐의 대결로 주로 묘사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어느덧 이하응의 입장이 되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 이상 위의 논쟁을 보면서 산발적으로 드는 생각들을 적어봤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