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chess (채승병) 날 짜 (Date): 1996년02월09일(금) 16시00분02초 KST 제 목(Title): 독소전의 절정, 쿠르스크 전투 (11) 5. 지연의 악순환 만슈타인 원수는 4월 15일 성채작전 시안 발령 이후 하루속히 전투를 개시하기를 계속 열망하고 있었다. 그로서는 남부집단군 휘하 부대들이 재장비를 완료하는 시점인 5월 중순이 공격의 최적기라고 생각했다. 또 사실 이 시기가 러시아에서 작전을 수행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이도 했다. 3~4월의 해빙기에는 도로 포장율이 3%도 되지 않는 러시아의 모든 도로가 진창으로 변하기 일쑤였고 7월경에 들어서면 비가 자주 내려 전진이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다. 결국 늦봄과 초가을이 공격의 최적기로 여겨지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앞서 밝힌대로 중부집단군 휘하 제 9군 사령관 발터 모델 원수가 이에 반발했다. 5월 중순이면 남부집단군 휘하의 제 4 기갑군과 켐프 분견군은 재장비를 완료할 수 있겠지만 제 9 군은 그렇지 못했다. 모델은 오렐 지구의 돌출부 확보와 쿠르스크 북쪽에서의 충분한 견제, 공격을 위해 휘하에 가능한한 많은 기갑부대를 받기를 원했으며 한정된 독일의 공업력에 미루어볼 때 이 재장비에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리고 OKH(독일 육군 총사령부) 참모총장 자이츨러도 이쪽을 지지하고 나섰기에 히틀러는 계속 작전을 연기하고 있었다. 게다가 히틀러로서는 보다 강력한 무기로 장비된 부대를 써서 이 지역의 주도권을 확실히 잡고자하는 욕망도 있었다. 이당시 히틀러는 막 생산단계에 돌입한 신예전차 판터(Panther)와 지난 겨울에 가공할만한 위력을 보여준 티거(Tiger), 그리고 티거 개발경쟁에서 탈락한 포르쉐사의 섀시를 써서 만들어낸 강력한 구축전차 페르디난트 (Ferdinand) 등을 총체적으로 선보이고 싶었다. 사실 이 신무기들의 위력은 분명히 막강한 것이었다. 6호전차 티거의 56구경 88mm 포는 2000m 이상의 거리에서도 T-34의 47mm 전면장갑을 뚫을 수 있었다. 그에 반해 소련의 자랑, T-34 전차의 76.2mm 포가 티거의 100mm 전면장갑을 뚫으려면 약 500m 거리로 접근해야만 했으니 독일군은 T-34가 접근하기도 전에 일소해버릴 수 있었다. 5호전차 판터의 70구경 75mm 포는 더욱 우수하여 포탄의 포구초속이 무려 850m/s에 달해 구경은 더 작지만 장갑관통력은 티거의 56구경 88mm KwK36을 능가했다. 게다가 전면장갑도 80mm에 30도 경사를 주어 피탄능력이 우수했고 속도는 45km/h에 달했다. 이에 비해 페르디난트는 하나의 공룡과도 같은 존재였다. 무려 70톤에 육박하는 둔중한 중량에 전면장갑은 무려 200mm(!)에 달했고 포는 독일군 대전차포의 정수, 71구경 88mm포였다. (이 포는 포구초속이 1000m/s에 달했고 2000m 밖에서도 90mm 가까운 장갑판을 뚫을 수 있었다.) 그밖에도 새로운 수많은 신무기들이 여름 무렵에 본격적으로 투입 가능한 상태였고 이 모든 것은 지난 41~42년의 전반적인 장비의 열세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 여겨지고 있었다. 드디어 독일군에게도 소련군보다 우수한 장비가 지급되려는 참이었다. 하지만 기갑총감 구데리안은 이런 발상에 대해 극력 반대했다. 그는 전차 전문가의 입장에서 신형 무기의 섣부른 투입의 역효과를 계속 주지시켰다. 구데리안은 이런 불완전한 장비를 가지고 전투에 임하면 그 신무기의 강력한 충격이 효과적으로 가해지지 못하고 적군에게 이에 대한 충분한 방어전술을 습득할 기회만을 줄뿐이라고 역설했다. 그가 특히나 걱정한 것은 독일군의 차세대 중(Medium)전차인 판터의 기술적인 결함이었다. 판터는 바로 이 치타델 작전에 선보이기 위해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으나 이미 테스트에서 기계적 결함이 자꾸 드러났다. 그 주요한 원인은 종래 판터의 엔진을 560마력 짜리를 탑재할 것으로 생각하고 기어박스를 설계했으나 갑자기 엔진을 700마력 짜리로 변경하여 기어 계통에 무리가 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와서 기어 계통을 다시 설계하여 생산하면 도저히 작전 기일에 맞출 수 없었기 때문에 이 결함이 무시된채 생산되고 있던 차였다. 페르디난트는 또 하나의 기묘한 약점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것은 전방기관총이 없었다는 점이다. 전방기관총의 필요성이 설계시에 간과되었던 것이다. 설계팀은 장거리 전차전에서 발휘될 71구경 88mm 포의 위력에만 주목했지 근거리의 보병과의 전투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다시 기관총좌를 재설계하면 전방 부대가 이 차량을 시험할 기한이 부족했다. 이미 전년도에 독일군은 신무기의 섣부른 투입에 의한 쓴맛을 본 적이 있었다. 최초 생산된 티거들이 충분히 집결되기도 전에 레닌그라드의 소택지에 5대가 투입되어 참담한 실패를 겪었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러한 실패가 되풀이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믿고자 하지를 않았다. 그것은 독일의 파멸을 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