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chess (채승병) 날 짜 (Date): 1996년02월09일(금) 15시23분37초 KST 제 목(Title): 독소전의 절정, 쿠르스크 전투 (10) 소련군 최고의 명장, 게오르기 주코프 원수는 독일군을 어떻게 맞아 싸워야 할 것인가의 문제로 많은 고심을 했다. 그리고는 4월 초에 그때까지 각종 정보망을 통해 보고된 사실들을 근거로 스탈린에게 보고서를 작성해 올렸다. 이 보고서에서 그는 쿠르스크 돌출부 근방에서의 소련군의 작전 방침을 제안했다. 독일군의 공격을, 어쩌면 사상 유래없는 강력한 것일수 있는 공격을 맞아 싸우려면 소련군에게는 일단 두가지 가능한 선택이 있었다. 첫째는 독일군이 공격을 개시하기 전에 의표를 찔러 선제공격을 가하는 것이었고 두번째로는 독일군이 공격하기를 기다려 강력한 방어 체제를 구축하고 독일군을 소모시킨 후에 반격에 나서는 것이었다. 주코프는 이 보고서에서 후자를 택할 것을 권고했다. 어찌보면 이는 전년도 여름의 경험에 근거한 것일 수도 있었다. 1942년 여름, 블라우 작전(스탈린그라드와 코카서스 방향으로 침공하려던 독일군의 작전) 개시 전에 하르코프 방면에서 소련군이 공세로 나섰지만 오히려 거꾸로 독일 제 6군과 제 1 기갑군의 거센 반격 때문에 포위, 섬멸된 예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독일군은 게다가 방어전술에 대단히 능했고 경험이 풍부했기 때문에 조바심을 내다가는 또다시 대패의 수렁에 빠져들 수 있었다. 결국 스탈린 주재의 소련군 최고사령부 회의가 4월 12일에 열렸다. 주코프는 훗날 이 회의의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스탈린은 전에 없었던 진지한 자세로 각종 발언을 경청했다......" 스탈린도 이런 중대한 전국의 고비에서 각오를 단단히 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주코프를 비롯한 여러 장군들의 의견에 따라 쿠르스크 전투를 독일군 전력을 소모시키는, 사상 유례없이 강력한 방어전을 펴기로 결정했다. 소련측은 쿠르스크 돌출부를 거대한 -- 폭 120km, 둘레 400km의 -- 요새로 만들기로 작정했다. 수많은 지뢰, 화점, 전차, 토치카, 대전차장애물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뜨거운 여름을 향한 소련의 노력이 경주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