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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sagang ( 평강왕자 )
날 짜 (Date): 2001년 4월 13일 금요일 오후 06시 36분 38초
제 목(Title): Re: 이기동교수 '도올 논어해석, 일본책 베


전 도올을 TV에서 딱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거의 헛소리
수준으로 들리더군요.
그래서 더는 관심이 없었는데, 아래의 글을 보곤 도올을
개새끼라고 생각했습니다.

===

도올 김용옥의 친일파관(觀) 비판 -  민족문제연구소 후원회원 이현우


  요즘 교육방송에서 방영되는 도올 김용옥의 '노자와 21세기'라는 강의가 인기를
얻고 있다. 어렵게만 여겨지는 노자 철학이 21세기에 어떤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쉽고 확신에 찬 언어로 강의하는 게 신선한 모양이다. 그의 책이라면 거의
안 읽은 게 없는 열성 독자인지라 나 역시 이를 즐겨 본다. 둥근 돌만 귀염을 받는
이 땅에서 확실한 자기 철학으로 세인들의 정과 망치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독보를 사랑하는 탓이다. 방송 강의에 아랑곳없이 '새끼, 개새끼' 같은 육두문자를
여과 없이 쓰는 그의 막힘 없음은 큰 매력이다. 그런데 99년 12월 30일의 강의에는
그냥 듣고 넘길 수 없는 부분이 있어 이를 좀 되씹어보고자 한다.

  노자 6장 중 현빈(玄牝)에 대한 강의가 끝난 후, 한 세기를 마감하는 마지막
강의인지라 우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했던 20세기의 문제에 대해 한 마디 짚고
넘어간 게 탈이었다. 그는 일제에 의한 35년의(도올도 그렇고 일반적으로
36년이라고 하지만 햇수를 만으로 따지면35년도 채 안 되므로 바로잡는다. 35년도
채 안 되는 역사의 수치를 36년으로 확대하는 무지가 어디 있는가.) 국권 상실이
우리의 주체성을 상실한 '자기 배반'을 강요한 사건이라며, 이로 인해 오늘날에도
우리들 골수에까지 박혀 있는 일제의 부정적 유산을 극복하는 게 가장 큰 문제란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그의
주장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일제 35년의 자기 배반적 상황에서는
친일파나 독립투사나 그 외의 다수에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제가 남긴
일체의 부정적 문화를 극복하는 데 그런 거 따지지 말고 너나 구분 없이 모두가
반성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제 35년을 거치면서 생존을 위해 민족 구성원 대다수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자기 부정과 배반의 모순적 상황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도올
식의 해석과 주장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 나는 그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을
뿐더러 이런 말을 거침없이 하는 그의 사고력에 대한 회의마저 생긴다. 이것은
대만대, 동경대, 하버드대의 학위를 자랑하고, 자기 기철학의 독창성을 자랑하는
석학, 자칭 우주보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천박한 역사 의식을
보여주는 무지에 찬 언사이다.

  도올은 말한다. 자기 배반의 역사 앞에서는 독립 운동 하다 죽은 독립 투사들은
오히려 속편하다고.(이런 말은 이런 맥락에서 이런 식으로 쉽게 얘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하나뿐인 목숨을 이민족 압제에 항거하다 바친 숭고한 죽음과 그
과정의 피땀 나는 고뇌를 최소한의 존경도 보이지 않는 말투로 쉽게 얘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자기 배반의 경험 앞에서는
친일파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나 모두가 똑같으므로 모두 같이 반성해야 한다고.

  예라이, 손! 누가 이걸 허연 침덩어리를 튀기며 현대와 고전을 넘나들며
열강하는 도올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라고 믿겠느냐.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는
물귀신도 아니고 그런 식이면 세상에 무슨 시시비비가 있겠느냐. 단언컨대 열혈
독립 투사나 소극적 피식민 대중과 외세의 사냥개 노릇에 적극적이었던 친일
매국노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자기 배반의 무게와 그에 대한
반성의 근수에도 차이가 있어야 옳다.

  도올의 주장은 일말의 반성도 하지 않고 있는 친일파들에게 영예로운 면죄부를
선사할 뿐이다. 도올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자기 배반을 낳은 역사의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데서 오는 단순무지함 때문이다. 쉽게 얘기해 모두 같이 잘못해서
나라를 빼앗긴 것이므로 같이 책임져야 한다는 면에서만 정당성을 가질 뿐 그
비틀린 상처를 치료하는 데는 일말의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오히려 도올이 힘껏 주장하는, 우리들 골수에까지 박힌 일제의 부정적 유산을
극복하는 데도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우리의 반성이 그 자기 배반을 극복하고 미래 역사에서 그런 수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생산적인 것이 되려면 우리는 친일파와 그렇지 않은 다수의
과공(過功)을 엄밀하게 따져 봐야 한다. 그리고 합당한 신상필벌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청산의 유무는 가벼이 다룰 문제가 아니다. 일신의 탐욕을 위해 침략자의
주구 노릇에 앞장 선 반역자들과 대다수 소극적민중들에게 단지 같은 동포였다는
이유만으로 동일한 비중의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몰역사적인 짓이다.

  게다가 언감생심 독립투사들까지 뭉뚱그려 취급하는 것은 정작 친일파 자신들도
맘먹지 못하는 뻔뻔함의 극치이다. 다시는 그런 불행을 겪지 않기 위한 올바른
노력에도 찬물을 끼얹을 뿐 아니라 도올의 박학과 다식 앞에 한 수 접고 들어가는
단순한 청강생들에게는 역사 의식의 혼란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그 청산이 없었던
역사가 지금 우리들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눈이 있으면 크게 뜨고 한번 보라.

  빼앗긴 국권이 또 다른 외세에 의해 해방이란 이름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에게
가장 시급했던 절대절명의 과제는 자기를 배반하지 않고선 생존할 수 없었던
역사적 원인과 그로 인해 상실한 주체성을 회복할 냉철한 대응이었다.

  그러나 그 과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왜? 우리가 도올처럼, 적극적으로 자기를
배반하고 민족을 판 매국노와, 근근한 생존을 위해 피동적으로 자기를 부정한
다수와, 자기 배반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투쟁한 독립투사 각자에 합당한 청산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 게 꼭 자체 역량이 부족해서만은 아니었다.

  해방 후 대다수의 민중은 도올보다 바람직한 역사 의식에 눈 떠 있었지만 점령국
미국은 아군이 아니었다. 그들이 원한 건 무조건적인 순종을 바칠 꼭두각시였다.
점령국 미국에게 자주적인 독립 국가를 소망하는, 민족의 통뼈와 가시를 가진
좌우익을 망라한 독립투사들은 철저한 제거 대상이었고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다.
그것도 바로 일본에 붙어 독립투사들을 고문하고 죽이던 친일파 출신의 경찰과
군인들에 의해 다시 고문 받고 살해당한 것이다.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친일파들의
극악한 죄상을 묻고 미국의 침략적 세력 확장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공산주의자란 누명을 쓰고 죽어갔다.

  도올에겐 이런 역사가 보이지 아니한가. 수천 권의 장서를 자랑한다는 도올의
서가에는 도대체 어떤 책들이 꽂혀 있는가. 이후 우리의 역사는 어떤 길을
달려왔던가. 미국에 대한 무조건적 굴종과 식민성을 뿌리 깊게 하고, 기나긴
독재의 그늘 아래 지들끼리 똘똘 뭉쳐 양민들의 고혈을 빨아 호화로운 삶을
유지하고, 지금도 각계에서 무시무시한 세력을 휘두르고 있는 친일파와 그
자손들이 정녕 도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해방 후 양심적인 민족 세력에게 친일파가 숙청되었어도, 무슨 짓을 해도 한 번
이긴 놈은 영원히 이긴다는 전도된 사회적 가치관과, 온갖 부정부패와 파렴치를
저지르고도 수치를 모르는 인간 말자들이 지금처럼 대한민국에 횡행할까. 친일파
바로 그들이 도올이 그렇게 통탄해 마지않는 우리의 주체성 회복에 가장 큰
걸림돌로 역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일제 35년 통치의
어두운 사슬을 끊지 못하고 지금도 '일제의 부정적 멘탈리티'를 골수에까지 뿌리
박고 살아가는 이유이다.

  그런데 뭐가 어쩌고 어째? 전에는 이광수를 뭐라고 하더니 요새는 서정주를 걸고
넘어진다? 예끼 이 사람아! 정신 차리게. 이게 대의에 목을 내놓는 선비를
자처하며 고금동서의 철학·사상을 강의하고 일본 통치의 부정적 유산을 떨쳐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철학자의 입에서 나올 소린가.

  알 만한 친일파 중에 민족 앞에 참으로 참회의 눈물을 흘린 사람을 꼽을 수
있는가? 침 찍어 바르는 억지 참회라도 했어야 식민지 백성의 고뇌 끝에 외세에
가담했노라고 용서를 하든 말든 할 것 아닌가. 박정희, 최규하, 정일권,
임영신......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거개의 친일파들이 죄과에 대한 사과 한 마디
없이 대한민국의 요직을 다 차지하고 호의호식했지만 그들이 현대사에 끼친 영향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저 하나를 위해 이민족에게 제 겨레붙이마저 판 자들이 못할 짓이 무엇인가.
가미가제 특공대로 옥쇄했다는 조선인 〈마쓰이 오장 송가〉를 비롯한 친일 시로
조선 젊은이들의 개죽음을 부추기던 서정주와, 나중에 군홧발로 광주의 피를 밟고
집권한 전두환을 찬양하는 시를 헌사한, 한국 최고의 시인이라는 서정주가 어떻게
다른지 도올은 설명할 수 있는가. 독립군을 대량 살해하는 관동군에서 제 민족의
꽃 같은 투사들을 잡드리던 박정희와 독재·인권 유린·정적에 대한 가혹한
탄압으로 일관한 박정희에게는 놀랄만한 일관성이 있지 아니한가. 꽃다운 나이의
제자들을 종군위안부의 비참한 사경으로 몰아넣은 김활란을 기리는 상이 당당히
수여되는 이 웃지 못할 코미디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들도 피하고 싶은 잔이었을 것이라고? 백번 양보해 그렇다 쳐도 그들의 책임
문제가 가시지는 않는다. 엄연히 잔을 팽개치거나 피한 사람들이 있고 그런 행동이
역사적으로 정당하고 우월한 것이었다면 말이다.

  친일파들이 첫단추를 끼워 놓았던 우리의 관료 사회나 군대를 한번 보라. 부당한
명령과 지시에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무조건적 상명하복의 비민주적 기풍이
어디에서 왔는가? 정말 뚜렷한 사고력과 철학을 가진 사람은 배겨나질 못하고
말단과 한직을 두루 돌고, 위에서 시키는 거라면 두말 없는 무골충이 되지 않고는
출세할 수 없는 곳으로 만든 게 누구며, 그들의 부정부패로 뿌리에서부터 흔들리고
망가지는 나라가 미국인가, 일본인가.

  도올이여, 박학다식만 자랑할 게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일관된 철학으로 모든 걸
재단해야 하지 않은가. '한강 상수원에 러브호텔 인가를 내주는 무식한 공무원
개새끼들'을 욕했으면 그보다 훨씬 더 나쁜 친일파 '개새끼들'에게도 침을 뱉는 게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가. 친일파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별 차이가 없다는
무분별함 때문에 이 나라에 사회 정의가 요원하고 도올이 그토록 개탄하는 부정적
사회상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도올의 기철학에는 '선(善)'과 '윤리학'이 없다는 주장도 아직은 좀 접어
두시는 게 좋겠다. '선은 미(美)에 부속된다'는데 그건 사회 정의가 무르익고 자기
배반의 역사가 없는, 이미 미가 선의 바탕에서 피어나는 북구의 선진 사회에서나
어울리는 말이지 부도덕과 파렴치가 사회 생활의 큰 무기가 되는 한국의
현실에서는 엉뚱한 놈들 몸단장하는 데나 혹사당하기 쉽다.

  그 선이나 윤리학도 사소한 생활상의 가치관에 대한 게 아니라 한 나라의 국풍과
역사의 향도를 가름하는 역사관에 관한 것일 때는 선악을 명확히 해야 한다.
미개하고 후진적인 사회일수록 역사의 시시비비를 제대로 가려 줘야 그 사회가
진보한다. 그런 길라잡이가 되어야 할 천재적 지식인 도올 선생께서 그런 책임에
걸맞지 않게 친일파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한 배를 탔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데 묶어 취급하는 것은 심히 가벼워 보인다.

  그런 역사 의식의 빈사는 거듭 같은 문제를 되풀이시킨다. 성수대교, 삼풍이
그에 그치지않고 씨랜드와 라이브 호프로 되살아나는 게 왜인가. 제대로 된 청산과
단죄가 없기 때문이다. 성수대교 때 관련 공무원과 업자들만이라도 제대로
처벌하고, 삼풍이 무너졌을 때 일생 햇빛을 못 볼 정도로 처벌했더라면 씨랜드와
라이브 호프의 학생들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대형 사고에 연루된 부패한 죄인들도 여론만 사그러들면 적당히 돈 쓰고
빠져나와 떵떵거리는 사회에서 제이, 제삼의 라이브 호프가 나올 것은 자명하다.

  마찬가지로 만일 우리가 다시 나라를 빼앗기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진다면 일제
35년에 나온 매국노보다 훨씬 많은 매국노가 나올 것이다. 우리 역사가 그러한
매국 행위가 수지타산에서 별로 손해 볼 게 없다는 선례를 보여 준 탓이다.
친일파의 화려한 득세와 독립지사들의 처절한 몰락을 보라. 그거 이상의 훌륭한
교재가 또 있는가. 매국하면 삼대가 망한대도 사세 부득이하면 매국하는 무리가
나오는 법인데 되찾은 나라에서도 매국한 무리들이 성공을 했으니 전 국민이
매국노가 안 되는 것도 이상한 거다. 분노하고 통곡할 일 아닌가.

  지금 도올이 누리고 있는 혜택은 작은 게 아니다. 공공의 자산이라 할 방송에서
50회가 넘는 강의를 할 기회가 주어진 건 도올이라는 한 학문적 인격체에 대한
사회적 믿음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 그가 청중들의 역사 의식을 그르칠 수도
있는 몰가치적 주장을 가볍게하는 것은 보기 안타깝다.

  나는 도올의 존재를 사랑한다. 만약 그 강의가 방송이 아닌 어느 조촐한
강의였다면 이런 글을 쓸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매체의 호평으로
방송국을 찾거나, 티브이 앞에 앉은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냥 넘길 수가
없다. 젊은 학생에서부터 백발 노인에 이르기까지 도올의 강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사물을 규정 짓는 사전적 언어가 될 수 있을 만큼 영향력이 크다. 그간 소홀했던
친일파와 민족 정기에 대한 작업들이 이제나마 겨우 활기를 띠려 하는 판에 도올의
주장은 친일파와 민족 정기에 대한 주제에 쉽게 손사래를 치게 할 수도 있으리란
염려를 지우기 어렵다.

  내 말에 이의가 있다면 반론을 주시기 바란다. 다른 문제는 내가 몇 수라도 접고
무릎을 꿇 수 있겠지만 이것만은 양보할 수가 없다. 이미 그르친 역사야 어쩔 수
없겠지만 미래의 역사마저 매국노들을 배양하는 토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 도올의
건승을 빌며 남은 강의가 50회뿐 아니라 100회 200회로 늘어나는 대성공을
거두기를 바란다.

월간 '인물과 사상' 2000년 2월호 중에서

===





                             온달공주를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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