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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chess (채승병)
날 짜 (Date): 1996년02월08일(목) 16시10분46초 KST
제 목(Title): 독소전의 절정, 쿠르스크 전투 (9)


 소련측은 일단 독일군이 공세를 취한다면 어느 쪽으로 공격을 해올 것인가 면밀히
검토하였으며 역시 가장 위험한 지구를 쿠르스크 돌출부로 꼽았다. 쿠르스크 돌출부
지역은 지난 동계전투에서 탄력을 얻은 남부집단군의 제 1차 목표가 될 것은 분명해
보였다. 3월에 해빙기를 맞아 중지되었던 벨고로드 전면의 공세가 재개되고 이곳의
돌출부가 제거되면 독일 중부집단군이 모스크바-비야즈마 전면에서 공세로 돌아설
가능성도 있었다. 
 반면에 멀리 도네츠강 하류는 그닥 공세에 적합해 보이지 않았다. 도네츠강 하류
지구에서 공세가 개시되면 또 독일군의 측면은 길게 늘어날 것이 분명했다. 이미
전력이 극히 부족한 독일군 상황에서 측면을 노출시키는 것은 자살행위였기에.
 또하나 가능성있는 작전 구역은 레닌그라드 지구였으나 독일군 핵심전력의 거의 
대부분이 남부에 치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를 북부전선으로 이동시키기는 쉽지
않을듯했다. 
 
 게다가 이러한 스타프카의 예상을 확신시켜줄 비밀 정보가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대전 대부분 기간 동안 소련군에게 가장 핵심적인 정보를 제공해오던 독일내 간첩망
'루씨(Lucy)'의 정보가 이번에도 그 위력을 발휘했다. 사실 이 '루씨'의 정확한 
정체와 구성원은 소련측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었으며 전쟁 후에도 밝혀지지 
않은 실로 기묘한 조직이었다. 일부 단편적 정보를 종합해보면 이 '루씨'는 일단의
반 나치적인 독일 고급장교단 들이었다고 전해진다. 구성원은 약 십수명 안팎으로
알려졌는데 이들은 각기 사령부와 일선부대 사이를 잇는 명령계통, 병참계통 등 
다양하게 포진해 있었다고 하며 각종 핵심정보를 직간접으로 접하여 이를 종합, 
대단히 구체적인 형태로 스위스의 소련 간첩망에 전달했다. 그리고 스위스에 있는
소련의 간첩들은 이 정보들을 중거리 무전망을 통해 영국 런던의 소련 대사관에 
보고하였으며 이는 런던에서 다시 무전으로 모스크바로 보내지고는 하였다. 

 그런데 4월 중순, 독일군 사령부에서 작전 명령 제 6호 '성채작전'이 발령되자마자
이 정보가 즉시로 '루씨'를 통해 모스크바로 도착했던 것이다. 어떻게 이 중대한
정보가 이토록 빨리 포착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실 이 작전명령서는 단 13부
밖에 배포되지 않았으며 배포대상자도 초고위 장교들에게 한정되었었다. 그런데
'루씨'는 모스크바에 독일군의 하계공세 목표지가 쿠르스크 지구라는 것을 정확히
알렸던 것이다. 사실 스타프카(STAVKA)도 이 정보에 다소 당혹감을 금할 수가 
없었다. 아직 작전이 발령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되는 시점에 이처럼 정확한 정보가
입수되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루씨'는 소련측에서 심은 간첩망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를 확인시켜주는 전문이 영국측으로부터도 전달되었다. 영국측은 확실한
공격에 관한 정보를 전해주지는 않았지만 독일군이 쿠르스크 전면에서 공세의 조짐이
보인다고 알려주었다. 사실 이 정보의 출처는 바로 그 유명한 '에니그마'의 해독에
의한 것이었다 -- 물론 영국은 소련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이미 40년
경에 입수한 독일 암호해독기 에니그마로 독일 공군의 암호전문을 포착해 알아낸 
사실이었다. 

 소련측은 이 두가지의 정보가 극히 유사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이 정보를 믿기로
하였다. 그리고는 이제 쿠르스크 돌출부가 43년 여름의 전장이 될 것이라 가정하고
그 대비책을 세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모두들 이 하계작전의 향방이 전 동부전선의
운명을 결정지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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