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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chess (채승병)
날 짜 (Date): 1996년02월08일(목) 15시28분01초 KST
제 목(Title): 독소전의 절정, 쿠르스크 전투 (8)


 4. 소련군의 움직임

 한편 소련군은 1943년 동계전투 동안의 혹독한 패배를 통해 많은 교훈을 얻은 
상황이었다. 42년 11월의 스탈린그라드 주변의 전투와 43년 2~3월에 이어진 하르코프
주변의 전투를 통해 소련군은 그들의 전술이 유능한 독일군과의 기동전투를 하는데
적합하지 않음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새로운 전술과 편제로 재무장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시간이었다. 남부전선 -- 돈강 및 도네츠강 하류 --, 특히
스탈린그라드 포위망을 압착하던 돈 방면군은 2월에 들어서야 간신히 그 임무에서
풀려났고, 그 사이에 보로네지 방면군, 남서방면군 등 도네츠강 동편의 주력부대들은
커다란 피해를 아직 복구하지 못했으며 중부전선에는 예비대가 거의 전무한 실정에
이르렀다.

 소련측은 겨울 동안의 전투에서 얻은 뼈저린 교훈으로(-- 도네츠강에 연했던 부대들
경우에는 평균 손실이 반 이상이었다 --) 부대 편성부터 바꾸고 있었다. 전 방면군
휘하 전차여단, 전차군단 등의 편제를 변경하며 우랄 지방에서 이제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각종 기갑장비들을 배치시켰다. 특히나 이제 멀리 북아프리카에서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이 거의 섬멸되었고 코카서스의 위협은 제거되었기 때문에 중동을
통한 미국의 원조물자 공급은 활기를 띄었다. 주목할만한 것은 미국제 야전 장갑차와
윌리스 지프가 대량으로 공급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소련군은 그전부터 우수한
전차 -- T-34와 KV-1 -- 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병들의 수송수단이 부족하여
기동작전 상의 열세가 대단했지만 미국제 차량을 대량으로 장비하기 시작하면서 
소련군의 기갑부대 전력은 모든 면에서 -- 적어도 장비의 면에서는 -- 독일군에게
확고한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스탈린과 스타프카(STAVKA - 소련군 최고사령부)의 여러 장군들, 특히 
역전의 명장 주코프는 아직도 소련군이 전선의 주도권을 잡지 못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찌보면 지난 겨울에 소련군은 이미 5배 이상의 우위를 점한채 전투를
개시했지만 독일군은 이를 극복하고 전선을 안정시켰다. 단순한 수자 상의 우위는
별 의미가 없었다. 소련군의 자질은 독일군에 비해 아직 많이 뒤졌으며 전체적으로
지휘관과 사병들 모두 경험이 부족했다. 게다가 독일군도 이제 초봄의 휴식기를 맞아
전면적인 부대 재정비가 이뤄질 것이 분명했으며 재장비된 독일군은 훨씬 막강한
전력을 지닐 것이 분명했다.

 결국 소련이 최후의 결정적 승리를 얻기 위해서는 독일군의 전력을 최대한 소모시킬
필요가 있었으며 특히 독일군의 기갑부대를 약화시켜야만 했다 -- 이것은 독일측과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독일측도 소련군 전차전력 소모가 목표였다. 그러나 히틀러는
여러 이유로 공세로 나서기로 했지만 스탈린과 주코프는 결코 그렇게 조바심을 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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