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1년 3월 19일 월요일 오후 02시 14분 08초 제 목(Title): 진덕규/함석헌, 생각하는 씨알이라야 삽니� 출처: 한겨레 문화 [함석헌탄생100돌] 생각하는 씨ㅇㆍㄹ이라야 삽니다 함석헌의 반독재투쟁은 민중의 스스로함과 공동체 세상을 염원했던 독특한 정치사상을 태반 삼고있다. `부득이 정치하려면 씨ㅇㆍㄹ의 마음을 자기 마음 삼아 해야한다'고 했던 그의 정치노선은 무정부주의와 노자 무위사상의 영향이 배어있었다. “특권의식은 좁은 것이나 민중의 가슴은 언제나 넓다”는 말로 표상되는 씨ㅇㆍㄹ의 주체성이야말로 5·16쿠데타에 대한 선구적 비판과 3선 개헌반대투쟁, 3·1민주구국선언과 민주수호국민협의회 참여 등의 재야투쟁을 이끈 화두로 풀이할 수 있다. 타율지배를 거부하며 인간존재에 내장된 능동적인 의지를 주시했던 그는 민주화를 인간변혁의 과정으로 보았고, 철저한 비폭력노선으로 이를 실천했다. 80년대 이후 첨예해진 현실모순과 운동의 과학화 흐름 속에 이 노선은 설자리를 잃지만 90년대 다시 평가되기 시작한다. 편집자 1965년 10월 전경들과 대치하며 한일협정 반대시위를 벌이는 함석헌(사진 왼쪽). 그 옆 위아래 사진은 그가 60~70년대 시국성명을 낭독할 당시의 모습이며 맨 오른쪽 구석의 글은 65년 <사상계>지에 한일협정 반대를 호소하며 쓴 `싸움은 이제부터'란 기고문이다. 씨ㅇㆍㄹ의 정치와 열린 나라--함석헌의 정치 사상 '반정치 시대'에의 저항 정치 사상은 정치에 대한 관념체계이고 지향이념이다. 미리 밝혀 둘 것은, 함석헌 선생에게 정치는 결코 가치로운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선생의 시대에도 정치는 억압이 전부였고 통제와 갈등이 본질이었다. 요즘 식으로 `반정치적 정치'가 선생의 시대를 일관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외면할 수 없는 정치에 대한 비판적 관심이 따라다닌 꼴이었다. 함 선생이 지식인과 종교인으로서, 그리고 사회와 인간에 대한 경고음을 발하는 예언자로 자리잡은 것은 그에게 미친 한국정치의 영향 탓이라 할 수 있다. 타락한 자본주의에 얽매어 삶의 의미를 망각한 채 한낱 소비자로 달려가는 군중들의 모습에서 그는 실망과 함께 깊은 괴리감을 맛보아야 했다. 간악한 존재들의 지배체제로 사람과 사회가 점점 더 못되어 가는 현실에의 절망감을 이렇게 적어 놓고있다. “일제시대만 해도 우리 마음 속에 우산이 있었습니다. 주권을 잃었지만 도리와 인정은 살아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 슬픔 속에서도 인생을 살 수 있고, 보람 느끼는 것이 있고, 사람이 사람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해방되어 그 산의 아직 남았던 아름다움을 보고 새 역사의 궁궐을 꿈꾼 것도 잠깐, 나라 세운답시고 그 굵직 굵직한 것을 찍어버렸고 6.25로 그 자라나는 것을 깎아 버렸고, 이제 온즉 마소를 놔서 되는 대로 짓밟고 뜯어먹게 한 형편입니다.” 함 선생은 어둠의 장벽을 뚫고 달려갈 가치로운 존재를 설정했는데 그것이 바로 씨ㅇㆍㄹ이다. 씨ㅇㆍㄹ은 민중이지만 민중이 아니며, 개인이지만 개인이 아니다. 그것은 그의 정치사상에서 일관되는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이를 다시 이렇게 규정한다. “생각하는 씨ㅇㆍㄹ이라야 삽니다. 씨ㅇㆍㄹ은 생각하는 것입니다. 생각하면 씨ㅇㆍㄹ입니다. 생각 못하면 쭉정이입니다.” 함 선생에게 씨ㅇㆍㄹ은 하나님의 지움을 받은 존재다. 씨ㅇㆍㄹ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특성은 올바른 생각이다. 생각의 주체이며, 생각과 실천을 탐구하는 올바른 존재가 바로 씨ㅇㆍㄹ이기 때문이다. 씨ㅇㆍㄹ은 현실 문제나 장애를 딛고 일어서는 자기능력과 그 발양의 가능성을 가져야 한다. "우리 씨ㅇㆍㄹ은 불평을 가진 씨ㅇㆍㄹ입니다. 노한 씨ㅇㆍㄹ입니다…악에 대한 불평이요 사망에 대한 노여움입니다”라고 규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올바른 통일로의 다가섬 함석헌 선생에게 국가는 부차적이다. 어느 면에서 그것은 극복 대상이다. 현실적으로 국가는 씨ㅇㆍㄹ을 억누르고 민중이 씨ㅇㆍㄹ 되는 것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함 선생에게 국가는 대한민국으로 남한만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나라는 남북이 없는 하나의 민족 덩어리, 그 삶의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함 선생은 국가 대신 나라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에게 나라는 민중이요, 우리 모두이다. 나라의 발전, 그것은 곧 남과 북이 하나 된 나라를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그는 나라를 사람에 비유하여 남북이 하나의 사람이기에 하나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사람이 온전하기 위해 몸이 나눠질 수 없듯 나누어진 나라는 결코 온당한 나라일 수 없다는 생각이다. 나라가 나라답게 발전하려면 먼저 '바로 섬'이 있어야 하고 그리고 '나감'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은 3단계를 거치는데, 먼저 나라가 정의에 의해 구부러짐 없이 제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섬'이다. 그리고 이어 생활의 자립을 이룩하는 것으로, 사회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제 기능에 따라 활동하면 국민경제가 잘 이루어지는 단계, 즉 '나감'으로 달려가게 된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국민경제가 발달하지 못한 이유를 특권계급이 물자와 기회를 독점하기 때문이라고 갈파했다. 나라가 나라답게 되는 마지막 과제는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자립해야 한다. 제 정신을 갖고 바로 서야 비로소 나라다움도 이뤄질 수 있다. 시비선악을 판별하고 불의를 징치하려는 투쟁정신이 자리잡을 때 비로소 인격적 개인에 의한 가치로운 나라가 세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민족 통일의 길 이런 나라를 받치는 기반이 곧 민족이다. 민족도 역사의 결과물이지만 특정 인물이나 세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민족성원에 의한 가치로운 삶의 역사적 축적이 민족을 만든다. 이점에서 민중이 민족의 핵심이며 전체라고 규정한다. 그에게 민족과 민중은 일체이다. 그 속에는 통치자가 아닌 민중이 핵이요 중심이다. 민족은 생명체이자 유기적이고 인격적인 존재이므로 옳은 것으로 달려가는 민족이라야 비로소 가치로운 민중의 미래를 담지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분단을 가져온 기본원인은 외세와 외세를 빌려 정권을 장악했던 통치세력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함석헌 선생은 통일문제를 푸는 방법은 바로 `부동동지지위대(不同同之之謂大)'라고 가르쳤다. '같지 않은 것을 같도록 하는데 위대함이 있다'란 뜻이다. 남북 사이 이질성을 넘어서 하나로 만들어 가는 것이 기본임을 가르쳐 준 것이다. '같게 하는 것'이 통일이기에 남북은 서로 이해의 폭을 넓혀 하나라는 생각을 확고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함 선생은 그 실천적 방안으로 중립노선을 내세운다. 강대국 대결에서 중도에 서는 것, 공산주의 대 자본주의의 갈등에서 중립으로 나아가는 것이 곧 중립노선이고 보면, 이는 곧 양자의 어울림이고 초극이라는 것이다. 통일을 위해 남북이 먼저 불가침 조약을 맺고 군비축소도 단행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점에서 한층 설득력을 얻게 된다. 남북이 평화를 국시 삼아 합칠 때 비로소 통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일은 남북한 지도자들의 몫이 아니라 남북에 있는 씨ㅇㆍㄹ 책임이라고 강조한다. 통일의 몫은 씨ㅇㆍㄹ의 몫이며 씨ㅇㆍㄹ에 의한 새 변혁의 대운동이 즉 참 혁명이라는 것이다. 씨ㅇㆍㄹ에 거는 기대 함석헌 선생에게 가장 바람직한 사회는 민중이 주인되는 나라이다. 민중이 중심되는 나라는 씨ㅇㆍㄹ이 주인이며, 넓은 의미에서 새 세상을 의미한다. 함석헌 선생의 정치사상은 씨ㅇㆍㄹ에 대한 기대이므로 그것에 의한 나라만이 가치로울 수 있고, 세계를 품는 열린 나라가 될 수 있다. 이점에서 함석헌 선생은 닫힌 나라, 즉 민족주의적 국가체제나 이데올로기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국가를 기피한다. 세계로 달려가는 열린 나라를 위한, 즉 씨ㅇㆍㄹ의 역사적 사명에의 믿음이야말로 함 선생의 일관된 정치사상이라 할 수 있다. 진덕규/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