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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1년 3월 19일 월요일 오후 02시 20분 34초
제 목(Title): 박석무/ 함선생보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


[함석헌탄생100돌] 함 선생님 보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났다 

 공포로부터의 자유! 평소 잊기 쉬운 이 개념을 그때처럼 실감있게 느껴 본 
적은 없다. 신체나 기아로부터의 자유는 피부에 와 닿지만 공포에 시달린 
경험이 없는 사람은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박정희 정권은 1972년 10월 
영구집권을 획책한 `유신'을 선포했다. 민주주의는 종언을 고하고 온 국민이 
압제의 사슬에 얽매이던 이듬해 초봄 나는 유신반대 죄명아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철창에 갇히게 됐다. 이른바 전남대 <함성지>사건. 15명이 붙잡혀 
재판을 받았다. 모두 대학생이고 나 혼자만 고교 교사였다. 보도는커녕 
면회조차 금지된 채 독방에서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며 재판날짜나 기다릴 
수밖에. “너희들쯤은 죽여서 동해바다에 던져버리면 끝이다”라는 수사관들의 
수 없는 엄포를 들었기에,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불안을 떨구지 못하고 있던 
때였다. 
재판날 오랏줄 묶인 채 법정에 들어섰더니, 회색두루마기에 하얀수염 휘날리던 
노투사 함석헌 선생이 외국인 코르체프 주교와 방청석 맨 앞자리에 근엄하게 
앉아 계시는 것이 아닌가. 

`아! 이제 죽지는 않겠구나!'란 생각이 스치며 공포가 가셔지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함 선생님이 목격했는데 어떻게 감히 우리를 죽일 수 있단 말인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당시 우리를 변호했던 홍남순 변호사 연락을 받고 
방청하러 광주까지 오셨다는 것이다. 

70년대, 함선생님이야말로 인권보루의 상징이셨다. 보도가 안 되는 
인권사각지대를 찾으셨던 선생의 그 위풍당당함과 굽히지 않으시던 기개에 
실낱같던 한국민중의 인권이 의지했었다. 국민기본권 수호에 가장 투철하셨던 
분, 선생이 지핀 그 불씨에 힘입어 민주화는 장족의 발전을 이룩해냈다. 참으로 
고마우신 그 의인을 나는 영원히 잊을 수 없다. 

박석무/한국학술진흥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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